• 최종편집 2024-02-2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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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사의 악기, 하프의 매력 속으로! - 심소정 하피스트 / 국제하프협회(International Harp Association) 총괄지휘 & 감독
    ‘귀족 악기’, ‘배우기 어려운 악기’ 등 몇몇 편견으로 대중과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던 하프는 인기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유명 연예인 유재석이 오케스트라 하프 연주에 도전하는 과정이 방송돼 학교 방과후 수업과 음악학원 하프 취미반 등으로 문의가 이어지며 대중화와 함께 라이프 영역으로 들어서는 기회가 됐다. 이에 주간인물은 2024년 새해를 맞아 공연 소식을 기다리는 관객들에게 곡선미의 우아한 외관과 아름다운 음색을 지닌 하프의 매력과 함께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악기라는 걸 알리기 위해 공연, 도서, 곡, 앨범 등 다양하게 활동 중인 하프계 신진 아티스트, 심소정 하피스트를 소개한다. _김민진 기자 ▲ 셀린(SelyN) - 1st Single ‘Northern Star’ / 2nd Single ‘NeveR & AlwayS 예원학교, 서울예고, 서울대 졸업 후 미국 이스트만대 석사 및 연주자 자격증을 취득하고 성균관대 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하며 연주자로서의 기반을 탄탄히 다져온 심소정 하피스트는 음악저널, 한음, 영산음악, 해외파견, 서울오케스트라 콩쿠르 등 국내 유수의 콩쿠르에서 입상한 바 있다. 또한 Osaka International Competition Espoir Award 1위를 거머쥐며 해외에서도 빛나는 행보를 이어나간 그는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 몰도바국립방송교향악단 등 다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서울바로크합주단 초청연주, 송사비의 클래식 음악야화, EBS TV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 전국 세미나를 개최해 100여 회의 강연을 진행한 심소정 하피스트 지난 12월에 셀린(SelyN)이라는 예명으로 두 번째 싱글 ‘NeveR & AlwayS’를 발표한 심소정 하피스트는 싱어송라이터 영역에서도 음악적 기량을 펼쳐 나가며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들과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첫 번째 싱글 ‘Northern Star’은 팝록 장르의 데뷔곡으로 트와이스의 ‘Knock Knock’, 오마이걸의 ‘비밀정원’ 등 다수의 히트곡에 참여한 아이돌 메이커, 마유 와키사카가 함께 작업했고 심소정 하피스트 역시 작사/작곡에 참여하며 차세대 크로스오버 뮤지션으로서의 시작을 알렸다. “하프가 비싸고 어려운 악기라는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어려움들이 저를 더욱 강인하게 만들었고 음악의 가치와 의미를 더 깊게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편견을 완전히 없애고 모든 사람이 나를 이해하고 받아주길 바랐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모두에게 나의 선택을 인정해 주길 바라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대신에, 편견에 의해 제한받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고 넘어서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긴 설명보단 결과물로 늘 보여주려다 보니 어느새 연주가, 작가, 가수, 강의자 등 많은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웃음).” ▲ “하프와 강아지만 있어도 행복하다”는 심소정 하피스트 세광음악출판사에서 최연소 작가로 ‘미니하프’ 연계교재를 편찬한 그는 하프만이 가진 장점을 최대로 살리고 동시에 “배울 곳이 없다, 어렵다, 비싸다”등 하프의 허들을 깨기 위한 목적으로 ‘국제하프협회’를 설립했다. 심소정 하피스트보다 최소 10살, 많게는 20살까지 나이 차이가 있는 베테랑 학원 원장들도 협회에서 하프를 배우며 자격증을 취득하고 있다. “하프를 배우신 학교 선생님들과 학원 원장님들께서 아이들 발표회 영상이나 사진을 보내주시는데요. 너무 귀엽고, 제가 다 뿌듯하더라고요. 게다가 하프가 본인의 일상을 변화시켰다는 분도 많으시고, 그분들이 하프 앙상블을 만들어 연주회도 열었습니다. 저 대신 도서관이나 공공기관에 연락해 제 책을 홍보해 주시는 열정 넘치는 팬들까지... 하프를 사랑하는 모든 분께 감사한 마음을 보답할 수 있도록 하프 대중화에 기여하는 다양한 활동을 더 열심히 펼쳐나가겠습니다(웃음).” 심소정 하피스트는 오는 1월 26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영화 겨울왕국의 영감을 받아 기획된 ‘Frozen Harp’ 독주회로 설렘 가득한 새해를 맞아 관객들과 마주할 예정이다. [1157] 인스타그램 : @harpist._.ss0vly ⬇Youtube Lin⬇ youtube.com/@harpistssovly?si=Wv-CWO0fzECuBrj2
    • 문화
    2024-01-23
  • [문화산책] 연우 손유경 한얼우리그림협회 회장 / 전통민화 명인 제14호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 민화분과위원장 / 창원문화재단 이사
    한국의 얼이 담긴 미술을 추구하는 한얼우리그림협회는 2023년 9월 23일부터 11월 5일까지 경남 하동 칠불사 보설루에서 특별전(그림으로 풀어내는 부처님의 가르침전), ‘卍卍展(만만전)’을 성황리에 마쳤다. 한얼우리그림협회는 2019년 손유경 회장이 우리의 혼과 얼이 담긴 작품을 해외에 널리 알리기 위해 창립했으며, 2007년 손 회장과 문하생의 전시를 시작으로 만들어진 ‘소천민화협회’가 한얼우리그림협회의 모태다. “부처님의 진실한 법을 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대중들에게 있어 이번 전시는 종교를 통하여 그 해답을 찾는 기회가 되셨을 것이다”고 소회를 밝힌 손유경 회장과 따뜻한 차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마산 앞바다를 바라보며 민화, 불교, 전통, 철학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_김민진 기자 It's raining flower rain 꽃비 내리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동양화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부산, 대구, 창원, 프랑스, 인도, 중국 등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전시를 통해서도 우리 민화(民畵)를 알리고자 42회에 걸친 개인전과 200여 회 그룹전을 개최한 손유경 회장은 약 25년간 선현들의 뜻깊은 정신을 헤아리는 민화를 그리며 문체부 장관상, 통일부 장관상, 환경부 장관상, 국회의장상 등 각종 수상, 위촉장, 감사장을 받은 바 있다. “우리의 전통적인 미술이 가장 경쟁력이 있다”는 신념으로 손유경 회장이 창립한 한얼우리그림협회는 조각, 회화, 사진 등 다양한 장르에서 약 250명의 작가들이 회원으로 구성돼 있다. 최근 전시가 있었던 칠불사(경남 하동군)는 지리산 해발고도 830m 토끼봉에 자리한 사찰로 2년 전 손 회장과의 인연으로 시작한 ‘卍卍展(만만전)’이 벌써 올해로 다섯 번째 전시를 하게 됐다고. Where am I going? “부처님의 가피력이 온 세상에 내려 모든 중생에게 이롭게 되기를 기원하며 불교 이론을 그림으로 설명하는 전시를 해온 ‘卍卍展(만만전)’은 코로나가 있던 때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미술 속에 담아 지친 대중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됐지요. ‘卍(만자 만)’은 부처님의 가슴에 있는 길상(吉祥)의 징표를 나타내는 문자로 힘겨운 시절의 종식과 평안의 시대를 염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풀이한 작품을 통하여 관람하시는 모든 분이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성제(四聖諦) 등 인간의 존재성에 대한 물음에 부처님의 법을 이해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기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잘 그리는 것과 좋은 작품은 다르다”고 전한 손유경 회장은 본인 작품에 빠져있기보다는 다양한 학문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열린 사고로 전통과 융합 발전시키길 원했다. 특히 철학 공부를 좋아한다는 손 회장은 예를 들어 여백 하나도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비교 및 노자의 도덕경 등을 참고해 왜 동양화는 여백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가는 재미가 그림을 그릴 때 좋은 영향을 많이 미친다고 한다. 2024년 4월 개인전 개최를 포함하여 올해 갑진년(甲辰年) 청룡의 해, 손유경 회장의 활발한 작품 활동 또한 기대된다. 지역의 중견작가로서 국내외 전통 민화작가로서 펼칠 손 회장의 다양한 행보를 주간인물이 응원한다! [1156] chaekgeori(책거리) 여보게 관상가 양반 내가 왕이될 관상인가?
    • 문화
    2024-01-11
  • [재난안전보안관] 행정주도 재난관리체계 대응 한계, 재난안전보안관 도입으로 안전문화 혁신을
    “재난안전은 중앙정부와 민간단체와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재난안전보안관 제도를 공공기관은 물론 시장과 기업에 확산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장훈 국민재난안전총연합회 회장은 “재난안전법에만 근거한 소극적·협의적 보여주기식 행정에서 벗어나 재난안전 유관 개별법에까지 적용되고 확산될 수 있도록 법·제도적인 정비가 수반돼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하고 “법·제도적인 정비에는 재난안전보안관 활동이 핵심적인 내용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_유경석 편집국장 ■ 연합회, 전문인력 양성·재난안전보안관 전문성 강화 주력 국민재난안전총연합회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국민 참여를 유도하고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간 개별법에 따라 부분별로 이뤄지던 국민 안전을 일원화해 나라를 안전선진국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설립됐다. 안전 관련 전문 인력 양성과 재난안전보안관 전문성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국민재난안전총연합회는 최근 월드케어필센터에 ‘2023 제1회 대한민국 희망 재난안전 봉사자 표창 수여식’을 가졌다. 이날 행사는 주민의 자율적 참여로 철저한 사전 점검과 신속한 초기 현장 대응을 통해 피해를 줄이도록 하는 민관 협력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는 예측 불가능한 재난 발생 빈도가 급증하는 가운데 재난유형이 다양화·대형화하면서 인명·재산 피해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행 행정 주도 재난관리 체계로는 적시성 있는 재난의 예방과 대응에 한계를 보이는 데 따른 것이다. 국제표준화기구 ISO/IEC 17024 재난예방안전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재난안전보안관은 재난안전에 대한 교육방법과 재난 상황 발생시 행동요령 등을 숙달하고, 각종 재난과 안전 관련 위기로부터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민간 안전요원이다. 장훈 회장은 “항상 대형사고나 인명피해가 나서야 움직이고, 그 움직임 역시 시늉만 하는 무사안일의 체질이기 때문에 유사한 사고가 계속 반복되는 것”이라며 “관(官) 중심 행정으로 시민 불편이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노력보다는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에게 불행이 오지만 않는다면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더 나아가서는 ‘대통령, 자치단체장 등은 임기만 되면 떠난다’는 착각에 그저 버티면 된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무사안일’ 체질화…보여주기식 행정 이젠 그만 대형사고나 인명피해가 발생한 이후 대책 마련에 나서는 등 반복되는 행정기관의 늑장 대응을 비판한 것으로, 행정안전부에서 시행 중인 안전보안관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한 제도 개선 요구이기도 하다. 실제 세월호 사고(2014.4.16) 이후 이천 투석 전문 병원 화재(2022.8.08), 강원 태백 장성사업소 탄광 갱도 붕괴(2022.9.14), 포항 인덕동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2022.9.06), 용산구 이태원 압사 사고(2022.10.29),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 터널 화재(2022.12.29), 서울 인왕산 화재(2023.4.2) 등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면서 국민 불안은 높아지고 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안전을 소홀히 한 결과라는 평가가 많다. 이는 안전불감증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매년 약 278만 명의 노동자가 업무상 사고나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2022년말 기준 우리나라 재해자는 13만348명에 달한다. 이중 질병재해로 1349명, 사고재해로 874명이 목숨을 잃었다. 주요 선진국들이 연간 사고사망 만인율(0.07~0.35)을 비교적 낮게 유지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 중대재해로 인한 사고사망 만인율은 0.43(2021년 기준)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일터에서 사망·사고는 개인의 생명, 가족의 행복을 파괴하고 사회적 비용, 국가적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저서에서 제도가 포용적(inclusive)이면 흥하고 착취적(exclusive)이면 빈곤해지는 것을 증명했다.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에서 높은 산재율을 기록하고 있는 근본 원인은 정치·경제 제도가 착취적임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 OECD국가 중 높은 산재율…영유아·고령자 각종 사고 노출 사망·사고는 일터만의 문제는 아니다. 보호를 받아야 마땅한 어린이들이 각종 안전사고와 교통사고, 영유아 돌연사 등으로 매년 400여 명이 사망하고 있다. 인구절벽을 걱정하면서도 정작 태어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각종 사고에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령자 안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는 2025년 고령인구비중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그 속도도 빨라져서 향후 5년간 고령인구는 29.4% 증가하고, 고령운전자는 59.4%가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간 고령자 교통안전 확보를 위해 노인 보호구역 활성화, 운전면허 반납제도 운영 등을 시행 중이나 고령인구 10만명 당 교통사고 사망자는 OECD 최하위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고령자에게 안전한 환경은 누구에게나 안전하다는 점에서 사회 전체의 안전 수준을 한 차원 높여야 한다는 의미다. ■ 안전교육 과감히 개선…관리감독 '지방 이양' 실효성 강화 장훈 회장은 “안전분야의 고질적인 부패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지 불신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안전분야 부패 근절을 위해서는 정부는 물론 시장과 기업, 시민사회, 그리고 개별 국민의 합심과 협력이 요구되며 사회 공동체적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안전(Safety)하고, 환경(Environment)적이고, 시스템(System)을 갖춰야 안전한 나라, 국민이 안심하는 나라, 경제 강국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안전분야 부패 근절을 위한 감시 시스템 구축과 반부패 환경 조성의 책무가 있고, 지방자치단체장과 기업은 안전분야 부패 근절을 위한 비용을 선제적으로 내부화하는 등 안전사회 구현을 위한 사회적 가치를 시장과 기업 경영에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간 형식적으로 이뤄진 안전교육 관행을 과감하게 개선해야 해요. 안전교육에 대한 강제조항을 두고, 안전교육 실태조사 및 사후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하는 근거조항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는 특히 “실효성 있는 관리감독을 위해서는 현재 각 부서별·분야별로 이뤄지고 있는 안전교육과 시설점검 등을 통합 조정하는 한편, 지방이양이 가능한 것은 과감하게 지방에 이양할 것”을 주문했다. ■ 사회공동체 책임·재난안전보안관 활용, 안전분야 부패 근절 이와 함께 중앙행정기관과 재난관리책임기관을 대상으로 정밀안전평가를 실시하고, 정밀안전평가 시 해당 재난안전사고를 제대로 예방하고 대응·수습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 평가하는 한편 정밀안전평과 결과 해당 재난안전사고 예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이 미흡하다고 판단될 경우 과감하게 재난안전사업을 수행할 수 없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장훈 회장은 “안전분야 부패는 안전무시 관행과 불법행위에 대한 사회적 묵인에서 비롯된다”면서 “안전분야 부패 근절을 위한 사회 공동체적 책임과 재난안전보안관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안전사고 현장점검 및 예방 활동을 위한 공무원들의 부족한 인력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안전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된 전문 민간단체에 안전교육 및 안전점검 등을 위탁 위임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도록 하면 될 것입니다. 재난안전보안관들이 갖고 있는 전문성(사명감)을 활용해 민관협업을 통해 안전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국민재난안전총연합회가 동참해나가겠습니다!” [1149]
    • 문화
    2023-05-31
  • 전국 유일의 장애인체육 후원단체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 - 장애인체육과 대구 스포츠에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다
    박영호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 단장 / 대구북구축구협회 협회장 / 까사데코 대표이사장애인 : 신체적이나 정신적으로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 체육 : 일정한 운동 따위를 통하여 신체를 튼튼하게 단련시키는 일, 또는 그런 목적으로 하는 운동 신체를 단련시켜기 위한 ‘체육’과 신체 또는 정신적인 결함이 있는 사람인 ‘장애인’, 두 단어가 어울리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장애를 이겨내고 체육계에 종사하는,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고 운동으로 승화시킨 사람들이 장애인체육 선수들이다. 박수가 아깝지 않은 이 사람들에게 박수에서 그치지 않고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의 10번째 단장으로 위촉된 박영호 단장을 만났다. _박가빈 기자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의 박영호 단장은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40여 년 동안 대구에 거주 중인, 그야말로 ‘터줏대감’이다. 대구시 북구에서 원목 가구 전문점 까사데코를 운영하고 있는 박 단장. 그가 장애인 체육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18년이라고 한다. 그는 “지인을 따라 익산에서 열린 장애인 전국체전을 보러 갔습니다. 그때 시각장애인 100미터 달리기, 휠체어 배드민턴, 농아인 축구 등 다양한 종목에 참여하는 장애인 선수들을 보고 감명을 받아서 2019년에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에 가입해서 활동을 시작했죠”라며 지원단과의 인연을 설명했다. “각 가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먼 친척 중에라도 꼭 장애인이 한 명쯤은 있을 겁니다. 그분들을 보면 생활에 참 어려움이 있음을 느낄 수 있을 텐데, 체육회에 속한 분들은 그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이를 스포츠로 승화한,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은 전국 유일의 장애인체육 후원단체이다. 장애인체육의 발전을 위해 후원금을 조성하고 장학금을 전달하며, 지역사회에도 봉사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 단장은 “전국 유일의 장애인체육 후원단체이다 보니 벤치마킹을 위해 여러 지역에서 보러오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1기는 소수로 시작했으나, 점점 늘어서 10기인 현재는 142명으로 최다 인원을 기록했다. 지난 2월에 있었던 ‘제10기 지원단 위촉식’에서는 10년 차 활동 멤버 4명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박 단장은 이 위촉식에서 2023년도 지원단장으로 위촉됐다. “예전 월례회 때는 30명만 오면 많이 온 거라고 했는데, 요즘 월례회 출석 인원은 약 60명이 넘습니다. 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개를 통해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보니 중간에 이탈하는 경우도 잘 없죠. 코로나 시기에도 후원회의 인원은 계속 증가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국채보상운동의 발원지가 대구인데, 어려운 사람을 돕고 함께 이겨나가고자 하는 정신이 지금까지 이어지지 않았나 합니다.(웃음)” 그는 “대구에 있는 장애인체육 대표선수들의 지원이 주목적이고, 장애인체육에 대해 홍보하고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한 뒤 “그 일환으로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스포츠 종목의 룰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중이에요”라고 말했다. “운동경기를 볼 때, 룰을 잘 모르고 보면 이해도 안 되고 재미도 없을 것입니다. 이는 장애인스포츠도 마찬가지예요. 일반적인 운동경기에 대해 잘 아는 분들도 장애인스포츠 종목을 보며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죠. 예를 들어 휠체어 테니스 같은 경우는 투바운드가 룰인데, 모르고 보는 사람들은 의문을 가질 수가 있다고 봅니다. 룰을 잘 이해해야 보는 재미도 있고, 장애인스포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최근 분위기는 장애인을 ‘돕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어울린다’는 개념을 강조 중”이라고 말한 뒤 “장애인을 도와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가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강조하는 거죠”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박 단장이 감사로 속한 대한장애인낚시연맹에서 준비 중인 대회의 이름이 ‘전국 어울림 낚시대회’이다. “장애인들과 어울려서 함께 살아가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도 우리를 통해 얻을 점이 있고, 우리도 그들을 통해 얻을 점이 있다는 것을 지원단 생활을 통해 더더욱 피부로 느끼고 있어요.” 지난 3월 21일, 지원단은 대구 북구청에 북구 내 장애인 선수들을 위한 장학금 200만 원을 기탁했다. 박 단장은 “각 구·군별 장애인체육회를 만들자는 취지도 있었고, 장애인체육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습니다”라며 기탁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구청장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앞으로도 다른 구·군을 돌아다니며 장애인체육을 홍보하고 선수들을 지원할 예정입니다”라고 밝혔다. 올해 지원단의 후원금은 1억 6,460만 원이 책정됐으며, 전액 후원 예정이라고 한다. 박 단장은 “지역의 편중 없이 골고루 후원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 뒤 “구·군 단위에서 장애인체육에 대한 지원이 잘 이뤄지면 대구시 전체의 장애인체육 활성화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며 바람을 드러냈다. “지원단으로서 후원은 당연한 것이고, 단원들 간에 친목 도모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단원분들이 다들 본업이 있으신데, 다양한 직종의 단원들과 교류하며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지원단을 통해 후원도 하고 얻어가는 것도 있었으면 합니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지원단은 대구장애인체육회 직원들과 함께하는 체육대회 겸 단합대회를 5월 중에 개최할 예정이라고 한다. “서로 알아가면서 도울 부분은 도와줄 수 있도록 원만한 관계 형성을 도모하려고 합니다. 자기 시간을 쪼개가며 나와서 고생하는 지원단원들과 체육회 직원들이 관계 형성을 잘해서 앞으로 함께 걸어 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그는 단장으로서 활동의 범위를 넓혀나갈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장애인체육부서가 보통 문화체육부 내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담당 부서를 알아보니 복지과 내에 장애인체육부서가 있더라고요. 앞으로 장애인체육부서와 연계해서 다양한 방면으로 장애인체육 활성화와 홍보에 힘쓰겠습니다.” 단장 임기는 1년, 그는 임기가 끝나고도 고문으로서 활동을 이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박 단장은 체육회 선수들에 대해 “장애인체육 선수들은 우선 ‘장애’라는 결함을, 곧 자기 자신을 이겨내는 선수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만 해도 대단한데, 선수로 나와 성적을 내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 뒤 “물론 체육인으로서 몸도 중요하지만,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한데, 정신적으로 무장해서 열심히 해주길 바랍니다. 그럴 수 있도록 지원단에서 적극적으로, 지속적으로 지원해 주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던졌다. 박 단장은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 단장과 동시에 대구북구축구협회의 협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40팀으로 대구 내에서 최다를 자랑하는 북구 축구협회에서 4 년차 회장을 맡은 그는 다방면으로 북구 축구 활성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부키 슛돌이 FC’는 지역아동센터와 소외계층, 저소득층 아이들 우선 선발, 이후 관내 아이들을 선발해서 무료로 수업을 진행하는 사업이다. 박 단장은 “여러 단체에서 다양한 봉사활동과 후원 활동을 진행하다가 ‘내가 북구 축구협회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라는 생각 끝에 나온 것이 부키 슛돌이 FC였어요”라며 창단 배경을 설명했다. 2021년 창단해 올해로 3기를 맞은 부키 슛돌이 FC, 박 단장은 “1기 당시엔 6학년만 뽑아서 진행하려고 했으나, 자리가 남아서 5학년까지 선발했습니다. 2기 때는 4학년까지 뽑았더니, 5·6학년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더라고요. 그래서 올해 3기에는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총 60명을 선발했습니다”라며 우여곡절을 설명했다. “감독 1명, 코치 4명, 운영실장 1명, 총 6명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주 1회 토요일에 수업을 진행하고 있고, 축구에 대한 교육은 감독과 코치가 진행하고 저는 주로 인성교육을 위주로 참여해요. 예절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확실히 교육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인사를 강조합니다. 아이들이 인사를 하지 않는다던가 대충 인사를 했을 때는 재차 불러서 교육하기도 하죠.” 부키 슛돌이 FC는 학부모들에겐 일절 돈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박 단장은 “첫해에는 보조금 없이 진행했고, 2기 때부턴 구청에서 일부를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개인적으로 후원해주시는 분들의 후원금이 정말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라며 “지면을 빌어 아낌없이 후원해주시는 후원자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아이들 식사와 간식이 정말 중요한데, 제가 음식업체에 연락해서 ‘한 달에 한 번만 가격을 싸게 해서 제공해달라’라고 타협해서 제공받기도 합니다.” 올해 4월 1일에는 북구 여성축구단인 ‘부키 W-FC’가 창단식을 가지기도 했다. 박 단장은 “대구에 5개 여성축구단이 있었는데, 북구에는 없었어요”라고 말한 뒤 “4월부터 시 대회에 출전할 예정입니다”라고 밝혔다. 대구의 여자 초등축구팀은 2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인 침산초등학교 여자축구부도 박 단장의 작품이다. 지난 2월, 그는 침산초 여자축구부 활성화를 위해 생수와 트레이닝복 등을 지원해주기도 했다. 인터뷰 말미, 박 단장은 “체육회의 홍영숙 사무처장님을 비롯해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 감사합니다. 백만 원을 내는 한 사람보다 만 원을 내는 백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어 “장애인체육회와 지원단, 그리고 체육 꿈나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 그리고 그 관심의 지속을 위해 많은 사람들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더욱 정이 넘치고 사랑스러운 도시 대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라며 대구와 장애인체육회, 그리고 지원단 활성화의 바람을 드러냈다. [1148]
    • 문화
    2023-04-27
  • 대한민국 합창과 지휘의 발전을 이끌어온 일등공신 - 여홍은 원로 합창 지휘자 / 교수
    아름다운 음악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가슴을 울리며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한다. 특히 합창의 조화롭고 아름다운 정서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맑게 만든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음악교육, 하지만 대한민국은 경제 성장속도에 비해 음악・예술에 대한 지원이나 관심이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쉽지 않은 환경에서 합창계를 발전시킨 일등공신, 여홍은 교수를 만났다. 반세기 이상 평생 외길을 걸어온 그는 90세를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지금도 현장에서 우리나라 합창계와 합창 지휘계를 선도하고 있다. _우호경 취재본부장, 주정아 기자 늘 아름답고 거룩한 음악이 넘치던 기독교 집안,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여홍은 교수는 어릴 때부터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 중학교 시절부터는 교회에서 선교를 위해 고아원이나 양로원에서 찬양 봉사를 하기도 했다고. “1936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유치원을 졸업한 후, 해방되기 일년 전에 귀국해 할아버지의 고향이신 대구 반야월로 왔어요. 고등학교 2학년 말에 대구 신명여고에서 서울 신광여고로 전학했지요. 고3 음악담당이셨던 김경환 선생님께서 이끌어주신 덕에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해 서울대학교 음대에 입학해 성악을 전공하게 됐습니다.” 이후 50대에 대학원에 진학하여 60대에 미드웨스트대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처음 이화여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중, 남편인 강만식 교수(원자생물물리학 전공, 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의 권유로 일반대학원인 성신여대 성악과를 졸업하게 된다. “박사학위는 저를 음악의 세계로 이끌어주신 김경환 선생 님의 남편이셨던 구두회 교수님께 논문 지도를 받았어요. 대단한 인연이지요. 워낙 철두철미하셔 죽을 힘을 다해 논문을 통과했어요. 그 논문을 다시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였지요(웃음).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 당시에 학위를 받은 일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지 구 교수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성악을 전공한 여 교수는 합창지휘에 있어 더욱 큰 활약을 보였다. “1960년에 대학 졸업 후 모교인 신광여고에 임용됐습니다. 1980년, 당시 최명자 교장선생님의 간곡한 권유로 신광노래선교단을 창단하고 각종 음악회 및 전국 순회공연 등을 500여 회 가졌습니다. 그 때부터 합창과의 인연을 맺게 된 셈입니다. 물론 교회성가대 지휘는 계속 맡고 있었지만요.” 어수선한 국내 정황에 합창계 역시 여건이 쉽지 않았지만 그의 합창에 대한 열정 만큼은 그 누구보다 뜨거웠다. “각 학교마다 미션스쿨에서는 거의 합창단이 있었어요. 제가 전국고등학교합창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을 때에는 합창제가 열리면 서울 소재 대부분의 고등학교 합창단들이 모두 참여해 2~3일 동안 경연을 할 만큼 큰 행사였지요. 하지만 지금은 입시다 뭐다해서 아이들에게 그런 경험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여 교수는 서울시교육위원회에서 서울음악교사 합창단을 결성, 동료교사와 함께 창단 때부터 퇴임시까지 12년 동안 단장을 맡으며 유럽 연주 객원지휘 활동을 했다. “당시 합창계에는 서울시 음악교사 합창단을 지도해주신 분들이 계셨어요. 너무 감사한 분들이었지요. 러시아에서 오셨던 노다르 찬바 교수님을 비롯해 일곱 분의 지휘자 교수님들과 선생님들 생각이 한번씩 납니다.”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기도한 여 교수. 국민훈장은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 학술분야에 공을 세워 국민의 복지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큰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으로 여홍은 교수는 ‘지금까지 잘 해왔구나하는 생각에 참 자랑스럽고 소중하며, 감사한 수상’이었다고 말하며 소녀 같은 미소를 보였다. 이외에도 여 교수는 수많은 기관, 단체에서 특별상, 공로상, 장려상, 감사장 등을 수상했다. “모두 감사하고 뜻깊은 상이었지만, 특히 저를 기쁘고 보람되게 해준 것은 퇴임 시 동료인 국어교사 박기원 선생님이 주신 패에요. <짙은 꽃 향기를 남기시고>라는 주제로 시 한편을 돌에 새겨 주셨는데, 아직도 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답니다(웃음).” 2006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을 펼친 한국교회연합성가대의 ‘메시아 연주회’에서 지휘를 맡은 여 교수, 50여 회 동안 여성으로 메시아 지휘를 맡은 사람은 여 교수를 포함해 단 2명에 불과했으니 그의 입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독일에서 앙코르 송을 5곡이나 받으며 청중들이 10분 이상 기립박수를 쳐 독일 조간신문에 최고의 여성 지휘자가 한국에서 왔다는 제목에 기사가 대서특필되며 국제적으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청중들을 완전히 매료시킨 최고의 공연이었다. “미주성가대합창제 초청으로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도 공연을 했고 한호문화예술제 초청으로 호주 시드니오페라하우스에서도 독창 연주로 영광의 무대에 설 수 있었어요. 꿈만 같은 순간이었지요.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와 지휘는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7,17민족화합대성회’입니다. 그외에도 잠실 주경기장에서 2,000여 명을 지휘한 일, 잠실 체육관에서의 부흥회 당시 1,200명(엔그래함-빌리그래함목사의 따님)지휘, 5・16여의도 광장에서 부활절 연합예비 당시 500명 지휘,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순복음인천교회의 150여 명의 지휘 등 대규모의 행사에서 수많은 지휘를 맡았지만 현재하고 있는 을지로교회와 친정교회인 숭덕교회의 30명도 안되는 성가대원들을 지휘하는 일 또한 소중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태도와 마음가짐은 똑같기 때문이지요(웃음).” 그는 한국합창총연합회 자문위원을 비롯해 한국교회음악협회, 일반합창・고교합창연합회에서 고문을 맡아왔다. 또한 한국여성합창협회에서는 이사장으로 오랫동안 활약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드물었던 시대에도 결코 소외되거나 기죽는 일 없이 적극적으로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내왔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럽게도 목소리가 변하지 않아 을지로교회 수요정오성가대에서 엘토를 맡은 바 있는 그는 올해 2023년 부터는 지휘를 맡고 있다. 여 교수는 “독일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테너로 활동하고 있는 막내아들(강대준 교수-독일 뮌헨국립음대 최고연주자 과정을 졸업한 후 독일 드레스덴 국립오페라단에서 활동)과 조그만 공연장에서 조촐하게 작은 음악회를 하고 싶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전했다. 평생을 음악과 합창 발전을 위해 일해온 여홍은 교수, 남다른 열정과 선한 영향력으로 살아온 그는 후학들에게도 의미있는 이야기를 전했다. “음악이 내 삶의 전부입니다. 삶이 풍요로워지려면 무엇보다 믿음을 바탕으로 정직과 성실, 그리고 겸손한 생활이 중요해요. 제가 간절히 바라왔던 삶이기도 한데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언제나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살아갔으면 합니다.” [1147]
    • 문화
    2023-04-13
  • ‘그림 읽어주는 남자’가 전하는 감상하는 즐거움 - 이창용 도슨트
    전시회에 가면 늘 ‘내가 좀 더 예술에 대한 조예가 있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든다. 작품만 보고도 느끼는 것이 있겠지만, 그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나 숨겨진 이야기 등을 알고 보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 ‘가르치다’라는 뜻의 라틴어 도세르(docere)에서 유래한 도슨트(docent)는 일정한 교육을 받거나 전문지식을 갖추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일반 관객들을 대상으로 작품을 설명하는 사람, 또는 일을 뜻한다. 전시를 기획하고 운영 전반을 총괄하는 큐레이터나 미술평론가에 비해 다소 생소하게 느낄 수는 있겠으나 도슨트야 말로 우리와 가장 가까이서 소통하는 안내자이자 메신저인 셈. ‘그림 읽어주는 남자’ 아트스토리105의 이창용 대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도슨트다. 1세대 도슨트로서 현재 한국에서 가장 왕성한 강연, 저술, 방송활동을 하는 인물. 전국에서 이어지는 강연 요청으로 피곤할 법도 한데 인터뷰 내내 귀에 쏙쏙 들어오는 명확한 화법과 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로 분위기를 이끈다. 역시는 역시다. _김유미 편집국장 “도슨트는 전시회를 해설해 주는 사람으로 관람객에게 미술품을 감상함에 앞서 전시 작품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을 통해 전시 관람의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합니다. 미술관 관람이 조금은 지루하거나 어려울 때는 물론, 잘 알려진 작가의 작품이라도 작품의 표현 기법을 위주로 작품을 감상하는 것보다 작품의 작가의 생애나 그 시대 사회 문화 전반에 대한 조금의 지식이 있다면 보다 넓은 시각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겠죠. 특히나 난해하게 느껴지는 현대미술로 갈수록 사전에 미술사적 맥락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관객들에게는 각각의 작품이 드러내는 의미를 짧은 감상시간 안에 포착해 해설하는 도슨트가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역사학을 전공한 이창용 대표는 2004년, 로마사를 공부하던 중 ‘로마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이탈리아로 훌쩍 떠났다. 이래저래 범상치 않은 인물임은 확실하다. “가이드 일을 하는 선배를 따라 박물관에 갔는데 여행객들에게 소개하는 내용을 들으며 갸우뚱했어요. ‘어? 저게 아닌데? 내가 하면 더 재밌게 설명할 수 있는데’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후에 바티칸 박물관을 방문한 여행자분들을 상대로 도슨트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처음엔 용돈이나 벌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공부하면 할수록, 일하면 할수록 제 적성에 딱 맞는 거에요. 2년 후,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원에서 제대로 미술사학을 공부하면서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습니다(웃음).” 당시만 해도 ‘도슨트’는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상황. 좋아하는 것만으로 일을 이어가기에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결국 학업을 마치고 해군장교로 복무하고 대기업에 취업한 이 대표. 3년 여 근무하는 동안 특유의 친화력과 창의적 성향은 조직에서 빛을 발했지만, 맘 속 깊이 감춰놓은 도슨트에 대한 열망은 계속 커져만 갔다. “안정적인 생활 속에서도 행복하지가 않더라구요. 많은 고민 끝에 큰마음을 먹고 미술의 본고장인 프랑스 파리로 떠났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 하다보면 길이 열리겠지’라는 생각이었지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등 유럽의 미술관에서 현지 가이드와 도슨트로 활동했습니다. 쉽지 않았지만 정말 소중한 시간들이었어요. 미술을 전공하고 유학 와 있던 아내를 만나기도 했으니까요(웃음).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한 후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그간 쌓아온 역량을 맘껏 펼쳐보자 싶었어요.” 이창용 대표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미술사를 귀에 쏙쏙 들어오는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다. 연 평균 300회 강의를 이어가며 전 국민들의 문화수준 향상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미술과 클래식이 함께 하는 <아트콘서트> 마스터로도 활동 중인데 세계적인 화가들과 그들의 명작에 얽힌 이야기와 이어지는 곡을 선정해 오케스트라의 선율로 풀어내는 매력적인 공연으로 전국적으로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이창용 대표는 최근, 인기프로그램인 JTBC ‘톡파원25시’에 출연해 ‘미깡(미술깡패)’라는 별명을 얻으며 인지도를 더욱 높여가는 중이다.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좋은 기회들이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제 개인의 영광보다 ‘도슨트’라는 직업을 알리고 많은 분들이 작품을 제대로 알고 즐길 수 있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방송에서도 얘기했지만 시간과 비용을 들여 큰 맘 먹고 세계적인 박물관에 오셔서 그곳의 가치를 제대로 느끼고 즐기지 못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은 ‘모나리자’만을 위한 곳이 아님에도 줄을 서서 기다려 모나리자 앞에서 사진만 찍고 가시는 여행객들이 대부분이세요. 극장에서 영화 예고편만 보고 나가버리는 셈입니다. 우리가 다가가려 하는 만큼 그림은 우리에게 찾아와 감동을 선물해 줍니다. 어렵게 생각하시지 말고 그림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면 해요. 저도 계속해서 노력해가겠습니다.” 최근 이 대표는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를 발간했다. “그동안 여러 출판사와 논의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전문적인 내용보다는 야사 위주의 흥미만을 원하여 출판이 성사되지 못하였습니다. 오랜 기간 기다려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는 총 4부작으로 1편 ‘프랑스’, 2편 ‘스페인-네덜란드’, 3편 ‘이탈리아-오스트리아’, 4편 ‘한국’으로 출간될 예정. “많은 사람들은 미술관에서 그림을 관람하는 것을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지루하다고 이야기하죠. 한두 시간 짬을 내어 한 권의 책을 읽듯이,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화가의 인생을 살펴보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 그 화가의 작품이 이 전에 비해 훨씬 더 깊고 무겁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재밌는 동화책을 읽어주며 어린아이에게 책에 대한 재미를 갖게 해주는 것처럼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를 선물해 주는 ‘그림 읽어주는 남자’로 꾸준히 기억되고 싶습니다.” [1140] [2018~현재] •아트스토리105 대표 •미술사 전문강사 / 아트콘서트 마스터 [2012~2018] •루브르 박물관 현지 도슨트 •오르세 미술관 현지 도슨트 [2012]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바티칸 박물관전> 큐레이터 [2006~2008] •바티칸 박물관 현지 도슨트 [2005]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인상파 거장전> 도슨트
    • 문화
    2023-02-27
  • 디오라마(Diorama)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재현의 마술사
    거대한 세상 안에서 또다른 작은 세상을 만들어내는 미니어쳐 예술, 디오라마(Diorama)는 작은 무대를 뜻한다. 풍경화나 그림으로 된 배경에 축소된 모형을 설치해 특정한 장면을 만들거나 배치하는 것을 말하며 모형을 이용해 역사적 사건, 자연 풍경, 도시 경관 등을 표현한다. 주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활용되며 기록용으로 쓰였지만, 이제 하나의 예술 장르로써 다양한 오브제의 활용과 축소된 연출은 물론, 음향이나 조명을 함께 연출하여 생생함을 더하기도 한다. 영화, 드라마 미술 감독이자 무대 예술가로서 활동해오던 신언엽 감독. 그는 자신의 무대를 작품으로 승화시켜 국내 최초 디오라마(Diorama) 전시를 선보이며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장르를 발견해 재현의 마술사로 불리는 인물이다. 신언엽의 디오라마를 조명해본다. _우호경 취재본부장, 주정아 기자 디오라마는 한 장면의 사건이나 시간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인물과 배경의 전체적인 질감의 정교함을 보여주며 스토리, 음향, 조명, 홀로그램 등의 미디어 기술을 활용하여 아트와 테크놀로지가 결합된 융복합 예술을 보여준다. 이러한 표현 매체의 확장은 관람객에게 마치 그 시간 그 장소에 들어가 있는 듯한 생생한 장면(Scene)을 보여주며 쉽게 가지 못하는 공간, 느껴볼 수 없었던 공간을 디오라마 작품을 통해 만나 볼 수 있다. “디오라마는 단순한 키덜트(Kidult) 산업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한 찰나의 순간을 입체감 있는 표현으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보여줍니다. 장르를 구별하지 않는 다양한 주제의 작품을 통해 교육적,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느껴 볼 수 있어요.” 디오라마는 근대 이후 유럽귀족들이 테이블 위에 인형 등을 올려놓고 역사적인 전투 장면을 재현하는데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인형 뿐 아니라 공룡, 전차, 자동차, 비행기 등 점차 종류가 다양해 졌고 1820년대 프랑스의 화가이자 사진 발명가인 다게르가 무대 예술가로서의 경험을 활용해 1822년 파리에서 세계 최초의 디오라마 극장을 설치하고 운영했다고 한다. 1932년, 일본 도쿄과학박물관에서 전시된 디오라마가 최초로 기록된 전시용 디오라마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언엽 감독은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정밀 묘사로 인물화를 그리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유명한 배우였던 안토니오 반데라스를 그린 그림은 지금 봐도 사진과 같이 보일 정도로 상당한 실력이다. 부산이 고향인 신 감독은 서울로 올라와 연극학과에서 무대디자인과 기술을 공부하고 영상대학원 프로덕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이후 실감융합콘텐츠학 박사를 공부하며 방송업계 드라마 미술감독, 공연무대 디자인과 영화 미술감독으로 활동한다. “연극, 뮤지컬 무대 디자인, 드라마·영화 미술감독,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호텔 인테리어와 웨딩홀 디자인도 많이 맡았어요. 콘서트부터 광고나 뮤직비디오 세트 디자인을 했구요. 시간과 예산적인 문제로 인해 제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황에 갈증이 나서 디오라마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피규어를 수집했었거든요(웃음).” 신 감독은 히어로 피규어에 영감을 받아 ‘배트맨’ 시리즈를 시작으로 ‘백투더 퓨처’, ‘매드맥스’, ‘트랜스포머’, ‘스타워즈’ 등 피규어를 수집해왔다. 그리고 자신의 전공을 살려 영화 속 장면을 축소된 모형으로 재현해 보곤 했다. “전공인 무대 디자인이 바탕이 됐습니다. 취미로 피규어를 모았는데 표현이 정교하고 또 고가의 제품이 많았죠. 비싸게 샀는데 그냥 장식장에만 두기가 아깝더라구요(웃음). 피규어의 배경을 만들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작품 사진을 찍어 공유했더니 반응도 좋고 무엇보다 제가 너무 즐겁고 재미있더라구요.” 점차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고퀄리티의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게 된 신 감독. 취미로 시작된 신언엽의 디오라마는 관련 산업분야의 전시나 박람회에 초대 작품으로 초청되었고 그의 작업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닌 가상의 캐릭터를 현실의 세계로 가져와 우상의 대상인 영화 속 인물들을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는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된다. “그동안 제가 너무 해외 히어로를 주인공으로만 만들고 있었더라구요. 이순신 장군, 안중근 의사 등 우리나라의 영웅을 주제로 한 디오라마를 만들고 싶었는데 우리나라 영웅 피규어가 없어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을 보게 됐고 뭉클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역사적으로 커다란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남과 북,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마주했던 판문점의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3D디자인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크기가 비교적 큰 디오라마를 전시할 장소가 문제였다. 신 감독은 통일부에 문을 두드렸다. 서기관을 통해 그의 디오라마를 주제로 했던 논문과 포트폴리오, 피규어를 챙겨들고가 통일부를 설득해 장소를 제공받은 것. 첫 전시 공간은 경의선의 북쪽 가장 끝에 위치한 ‘도라산역’ 로비였다. 전시공간이 마련되었고 ‘판문점 선언’ 당시를 재현한 디오라마가 완성이 되어 ‘봄이 오면(When spring comes)’ 이라는 작품명을 가지게 되었다. 같은 해 이 작품은 4월에 서울시청, 5월에는 부산항 축제장과 부산통일관에 전시되었으며 그 이후 계속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기릴 수 있을 만한 의미 있는 공간에서 전시가 이루어졌다. 디오라마 영역에서 단독으로 전시를 개최한 국내 최초・최대 규모이자 미술감독이자 무대예술가였던 ‘감독 신언엽’이 ‘작가 신언엽’으로의 변신을 알린 뜻 깊은 전시이기도 했다. 전공 분야에서 인정받고 승승장구하던 감독 신언엽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디오라마 작가로 변신했다.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대중들에게 알리는 의미 있는 일에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쏟기로 결심한 것. 2019년 서대문(돈의문)을 디오라마로 복원한 작품도 화제였다. 일제 강점기였던 1915년에 강제 철거된 돈의문을 104년 만에 문화재청, 서울시, 제일기획, 우미건설 등이 참여해 민관 협력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신 작가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디오라마로 복원하는 작업을 맡았다. “외부 제의를 받고 작업한 첫 작품인데 서대문 복원이라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업이라 참여하게 되었지요.” 모 통신사와 컬래버레이션으로 진행한 ‘군산 쌀 수탈사건’, 일제강점기의 디오라마 재현을 통해 역사적 의미와 함께 탁월한 창의력을 인정받았다. 국한된 소재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확장성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그는 홀로그램, 음향, 조명 등 4차 산업의 다양한 미디어를 도입해 생동감 있는 장면들을 연출해 내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신 감독은 바쁜 일정을 쪼개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공연예술스쿨(무대미술) 강단에 서며 학생들과도 소통하고 있다. “디오라마는 인간의 숨겨진 로망을 실현해줍니다.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져봤을 법한 본능일 거예요. 시공간을 초월해 특별한 역사적 순간, 새로운 창조적인 자신만의 세계를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이 디오라마의 매력입니다.” “디오라마를 통해 재현된 결과물들은 판매하지 않고 문화와 교육, 전시의 목적으로만 활용할 계획”이라는 신언엽 감독. “자신의 디오라마 작품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올바른 역사관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게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며 따듯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 EDUCATION ] • 2020 ~ 2022 | 광운대학교 실감융합콘텐츠학과(박사수료) • 2009 ~ 2018 | 홍익대학교 영상대학원 프로덕션디자인 전공(석사) • 1998 ~ 2006 | 용인대학교 연극학과 무대디자인 및 기술 전공(학사) [ AWARD ] •2018 | 통일부장관 표창 디오라마부문(통일부장관 조명균) [ FILM ] •2021 | (주)엠씨엠씨 ‘봄날’(감독: 이돈구) 외 12편/미술감독 [ BROADCASTING ] •2017 | MBC 수목미니시리즈 ‘역도요정 김복주’(연출 오현종) 외 4편/ 미술감독 [ DIORAMA EXHIBITION ] •2016.03 ~ 2018.08 | SBA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엽스타일(YUPSTYLE) 디오라마관 상설전시 • 2018.03 ~ 2019.03 | 서울시 상암동 DMC홍보관 엽스타일(YUPSTYLE) 디오라마 상설전시 • 2018.03 ~ 2019.03 | 서울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살림터 1관 로비 상설전시 • 2019.02 ~ 2019.04 | 파주시 도라산역 로비1F ‘4.27판문점’ 디오라마 상설전시 • 2019.12 ~ 2020.02 | 서울 인사동 CNT 마루갤러리 개인전[재현의 마술사: 신언엽의 디오라마] [ LECTURE ] • 2011.09 | 한국방송예술진흥원[장면만들기] 출강(2학기)/외래교수 • 2017.08 | 서울코믹콘[ 디오라마그시작의배경] -코엑스 • 2018.09 | 홍익대학교영상대학원프로덕션디자인[ 공간과조명] 출강(2학기)/시간강사 • 2022.05 ~현 | 구리고등학교 레인보우 메이커 특강[매체미술교과로서 디오라마의 세계] 수업/시간강사 • 2022.09 ~현 |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공연예술스쿨 무대미술 출강/시간강사 [1140]
    • 문화
    2023-02-27
  • 패션계의 슈퍼루키(super rookie) 끼와 열정 가득한 MZ세대의 대표 디자이너
    꾸준히 성장해온 국내 패션시장,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해외직구 등을 통해 소비자들이 해외브랜드 의류를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타격을 맞고 있다. 김량환 대표는 이런 시대흐름에 맞춰 온라인과 오프라인 쇼핑몰을 만들어 개별브랜드(Leon)를 창업, MZ세대들에게 유니크한 디자인으로 특별하고 새로운 패션을 전하고 있는 인물이다. 글로벌 패션리더로 성장하고 있는 김 대표를 만나봤다. _우호경 취재본부장, 주정아 기자 BIGBANG INTERNATIONAL 김량환 대표는 Leon브랜드와 도깨비 쇼핑을 통해 다양한 제품들로 구성된 종합쇼핑몰을 창업하여, 특별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특히 MZ세대들이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유니크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는데 좋은 소재만을 고집하여 품질향상을 우선시하는 한편, 대량 생산으로 제품단가를 낮춰 판매하는 차별화 전략으로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국내 온라인 쇼핑몰과 유명 온라인 쇼핑몰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될 예정으로 고급원단을 이용한 자체 브랜드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대 초반인 김량환 대표는 독보적인 창업 아이템과 기술성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미한 독창적인 디자인들이 눈에 띈다. “국내외 최신의류 트렌드에 맞추어 앞서가는 색상과 디자인을 개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섬세한 제품 마감처리에 신경을 쓰고 있어요.” 김 대표는 “최근 시장 환경 SWOT분석을 통해 보자면 강점은 원단 기능성 고급화, 차별화된 디자인, 가격대비 뛰어난 품질입니다. 약점은 판매 채널을 다양화와 마케팅 홍보를 확대부분이지요. 무엇보다 오프라인 거래처를 확보해야 합니다. 코로나 및 경기 침체로 인한 경쟁 업체 세력이 약화되어 있고 시장 점유가 용이한 점이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해요. 또한 위기라고 한다면 의류사업 진입 장벽이 낮아 창업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과 악성 재고증가를 들 수 있겠지요.” 20대 초반이지만 그의 시장분석은 경험이 많은 CEO 못지않게 직관력과 통찰력이 돋보인다. 그만큼 날카롭고 정확하다.” 현재 경북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 학생으로 학업을 병행하면서 도깨비 쇼핑을 운영 중인 그는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좋은 파트너를 찾아 다양한 유통 채널을 구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유행에 얽매이기보다는 소재와 봉제, 가봉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 독창성)와 숙련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더욱더 연구에 힘을 쓸 계획입니다. 브랜드 이름만큼이나 ‘김량환’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 가치가 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시도하고 있어요. 소비의 주축으로 떠오른 MZ세대는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꾸미고 활용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를 대표하는 유니크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싶어요.” 자신만의 개성 드러내는 디자인으로 MZ세대들과 소통할 것 “최근 의류 등을 구매하는 형태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패션 대기업들은 브랜드를 축소하거나 통합을 추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처럼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 역시 어렵게 되겠죠. 때문에 온라인 쇼핑몰을 활성화 시킬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재 온라인 쇼핑몰을 중심으로 중저가 쇼핑몰이 성장하고 해외진출이 활발한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온라인 유통비중이 높은 패션업계를 중심으로 패션디자이너의 활동이 좀 더 넓어지고 자유로워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 대표는 의류 외에도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면서 소비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주얼리, 가방, 악세서리 등을 구매할 수 있도록 현재 도깨비 쇼핑을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독창적인 생각을 끊임없이 합니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엉뚱한 시도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요.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모든 방면으로 시도하고 받아들일 생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MZ세대들과 소통할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상업적으로 대중에게 유통되는 옷보다는 자신의 가치관과 개성을 뚜렷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보는게 남는 것’이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여가 시간엔 전시회와 패션쇼, 박람회 등 패션・미술과 관련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보고 배우고 느끼고자 합니다. 예술적 감각과 패션 안목을 키우고 영감을 얻는데 도움이 되고 있어요.” 하이패션의 불모지로 여겨졌던 한국에서 변함없이 자신의 패션철학과 아이덴티티를 고수하여 현재 자신의 입지를 월드클래스로 다지는 데 시금석이 된 인물,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 ‘우영미’ 대표가 롤모델이라며 웃어 보이는 그는 최근 MZ세대들 사이에서 그의 브랜드 가치가 다시 한 번 평가되고 있지만 세계적 명성에 비해 국내 인지도와 시장점유율이 적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대기업이 패션 유통을 장악한 국내 패션 업계 실정과 명품 패션에 대한 일종의 사대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 잡으면서, 국내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평가 절하 된 측면이 컸어요. 그 과정에서 MZ세대들은 ‘우영미’를 발견했고, 열광하고 있는 거죠. 그야말로 ‘시대가 클래스를 알아본 셈’이죠.” 톡톡 튀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호기심, 그의 순수하고 뜨거운 열정, 그리고 단단한 자신감으로 뚜벅뚜벅 발을 내딛는 그는 옷을 만드는 즐거움이나 좋은 소재를 발견할 때의 기쁨이 가득하다. 그는 유명 브랜드라고 해서 무조건 좇지 않는다. 자신의 니즈를 정확히 알고, 무엇이 좋은 건지 야무지고 스마트하게 소비하는 MZ세대들의 욕구를 적중시키고 있다. “패션이란게 예술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엄연히 비즈니스이기도 하죠. 그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패션 산업군은 예술에 한 발자국 걸쳐 있으면서도 비즈니스가 중요합니다. 다른 면으로 봐서는 제조업이라고 할 수도 있겠구요. 하나의 상품이 나오기까지 굉장히 복잡하고 까다로운 과정이지만 그 사이에서 밸런스를 잘 잡고 철저하게 준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졸업 후 여성 패션에 최초로 바지 정장을 도입, 여성에게 자유를 입힌 패션 혁명가라고 평가받는 ‘이브 생 로랑’의 나라, 프랑스로 유학을 떠날 계획이라는 김 대표. 김량환 대표 자신의 피지컬(신체)과 패션 수준 또한 남다르다 보니 모델이냐는 오해도 많이 받는다. ‘시크하며’, ‘쿨’한 이미지지만 내면은 누구보다 따뜻한 그는 “무엇보다 나만의 아이덴티티(Identity, 독자성)를 갖추고 싶다”며 카리스마를 내비치다가도 “향후 소외계층에 의류를 나눔하는 등 환원 사업도 함께 해나가고자 한다”는 뜻도 전했다. 그의 성장과 왕성한 활약을 통해 대한민국의 패션 피플들이 자신만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멋을 즐기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를 기대해 본다. [1145]
    • 문화
    2023-02-27
  • 유쾌한 만능엔터테이너 부부 “경남 김해, 엔터 문화의 저력을 입증해보이겠습니다”
    키즈댄스대회 <두다붐3(DODABOOM)>. 2019년부터 시작돼 벌써 3회를 맞이하는 이 대회는 경남 최대 규모의 키즈댄스경연대회로 자리 잡은 한편, 서울에서 유명연예기획사 관계자도 직접 김해를 찾아 참여 학생들의 공연을 관람할 정도로 그 위상을 더해가고 있다. 작년 9월 대회에는 경남뿐만 아니라 제주ㆍ울산 등 전국에서 60팀(솔로 댄스ㆍ저학년 14명ㆍ고학년 46명)이 참여하고, 300명이 넘는 관중들이 공연장을 가득 메울 정도로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매년 성공적으로 개최되며 그 규모와 위상을 키워가는 이 대회의 주최는 다름 아닌 김해지역 케이팝 댄스 전문학원인 ‘엔터아트아카데미’. 엔터아트아카데미 내외점에서 김보연・김민수 대표를 만났다. 이토록 유쾌하고 즐거울 수 있을까. 두 대표에게는 지면에 차마 다 담을 수 없는 좋은 기운과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_김유미 기자 김보연・김민수 부부는 두다붐 대회뿐 아니라 경남 김해에서 1년에 3〜4회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까지 참여하는 콘서트를 진행하고 꾸준한 길거리 버스킹으로 케이팝 문화 확산에도 노력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댄스 동아리 활성화를 위해 6년째 자비를 들여 ‘스쿨액션’이라는 행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장유(1호점), 삼계(2호점), 내외(3호점), 주촌(4호점 예정) 네 곳을 운영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중에도 이렇게 힘을 쏟는 이유가 뭘까? “저희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후배들에 대한 애정이라고 해야겠죠. 물론 저희가 처음 춤을 배울 때와는 달리 K-POP과 K-DANCE의 열풍이 거세지면서 춤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전문적인 댄서를 꿈꾸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만, 서울・수도권이 아닌 지방의 경우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가진 전문댄스학원 부족에다 인식도 따라주지 못하고 있는게 사실이에요. 경남 김해에서도 인프라와 시스템을 부족하지 않게 갖추고, 후배들이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춤을 출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오직 그 마음 하나로 열심히 달리고 있지요(웃음).” 김보연 대표는 충북 제천, 김민수 대표는 충남 예산이 고향이다. 끼 많던 부부는 각각 레크리에이션학과, 이벤트연출과를 졸업했다. 춤에 진심이었던 두 사람은 서울의 한 댄스학원에서 만나자 마자 연인이 됐다. 강사로 있던 그녀가 장르를 넘나드는 후배 김민수 대표의 뛰어난 댄스 실력에 한 눈에 반하고 만 것. “하지만 프러포즈는 남편이 먼저 했다”며 그녀가 장난스레 웃어 보인다. 2009년, 결혼 후 두 사람은 서울에서 인연이 있던 선배의 권유로 경남 김해에 내려오게 된다. 댄스에 있어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곳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펼쳐보고자 하는 큰 꿈을 가지고 내려와 수석 강사로 안정된 생활을 했지만, 뜻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서는 자신들만의 길을 개척할 수밖에 없었다고. 2011년, 큰마음을 먹고 김해 시내를 벗어나 장유에 엔터아트아카데미를 오픈했다. “여유자금 없이 학원부터 열었으니 최대한 비용을 줄여야 했어요. 임대만 해놓고 인테리어부터 디테일한 마감까지 처음부터 둘이서 직접 해나갔습니다. 당시에는 ‘초등부’, ‘유아부’도 운영했었는데 정말 고생 많았죠. 대소변 못 가리는 아이들까지 케어하고 잠도 재우고…. 아이들에게 예쁜 무대 의상을 입히기 위해 공업용 미싱기를 사서 밤새도록 돌리기도 하구요. 남편은 공구를 들고 뛰어다녔죠. 학원차 운행까지 직접하며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보람되고 즐겁기도 했던 시간이었어요. 그 때 그 고생들이 다 자산이 되어 이제는 웬만한 일은 전문가 수준으로 어렵지 않게 챙길 수 있게 되었거든요(웃음).” 장유(1호점)에 이어 삼계(2호점) 오픈은 자연스레 진행됐다.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제자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실력 있고 뛰어난 친구들을 강사로 채용했어요. 저희와 같이 지역에 있는 후배들에 대한 열망이 뛰어난 친구들이다 보니 더 열정적으로 임하더라구요. 내외(3호), 주촌(4호 예정)은 물론,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자 합니다.” 끈끈한 사제 간의 정으로 똘똘 뭉친 엔터아트아카데미는 내실 있는 교육 커리큘럼으로 유명하다. SM 등 대형기획사에서 오디션을 직접 보러올 정도로 브랜드 파워도 있다. 실제 서울 본사 기획사 연습생으로 4명을 최종 합격시키기도 했다. 대학입시 전문학원으로도 100% 합격률을 자랑한다. 비영리단체 ‘엔터아트’를 통해 댄스공연은 물론, 공연기획, 영상촬영에다 전문MC까지 해내는 재능 많은 두 부부는 잠시도 쉴 틈이 없다. 다양한 지역 행사에 꾸준히 초청 받으며 밝은 에너지를 전하고 있다고. 엔터아트아카데미 자체적으로도 정기적인 콘서트를 직접 선보이며 학생들에게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한편, 지역민들에게도 쉽게 접할 수 없는 댄스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해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모금을 통해 독거노인돕기 등 환원사업도 펼치며 따뜻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댄스를 통해 스스로 자유롭게 생각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고 창의력을 기를 수 있도록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획일화된 댄스가 아니라 같은 동작이라 하더라도 각자만의 개성을 갖췄으면 하지요. 엔터아트아카데미 콘서트의 경우 각 지점별로 작품 스토리, 기획, 안무구성, 음악, 의상 등을 학생들 스스로 기획하고 연습합니다. 춤을 잘 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연의 레퍼토리나 스토리 라인의 설계까지 짜내면서 실력을 키워가는 거죠. 지방에서 춤을 추고 배우는 친구들이 어깨 쫙 펴고 당당하게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도 계속해서 서포트 해나갈 수 있게 열심히 하겠습니다(웃음).” [1145]
    • 문화
    2023-02-27
  • 뜨거운 댄스의 열정으로 삶의 활력 되찾아 건강한 여가문화를 선도하는 「예비 사회적 기업」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신도로에 위치한 ㈜정글러 댄스 스튜디오는 여성가족형 예비 사회적 기업이다. 댄스 학원으로 첫 사례가 더욱 의미가 깊은 이곳은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건전한 여가문화를 선도하는 곳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주간인물은 타고난 춤꾼으로 새로운 여가문화를 선도하는 손정희 대표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올해 서른아홉의 손정희 대표는 타고난 춤꾼이다. 어려서부터 춤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던 그녀는 학창시절, 댄스 동아리 활동을 하며 끼와 재능을 펼쳤다. 대학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하고 선박 회사에 디자이너로 일하며 평범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던 그녀에게 춤은 잊지 못할 꿈이었단다. “학창시절, 춤은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는 탈출구였어요. 6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났고 열심히 일하는 부모님은 늘 바쁘셨죠. 학창시절, 댄스 동아리 활동을 통해 춤을 연습하고 친구들과 함께 무대에 섰던 순간이 가장 행복했어요. 늘 ‘학교-연습실-집’을 오가며 바쁘게 생활했지만 그때가 가장 살아있는 것 같은 순간이었어요. 대학생 때도 외부 댄스팀을 결성해 활동했었구요.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사회인이 되었지만 춤에 대한 갈망은 여전했습니다. 댄스 강사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직업이다 보니 고민도 많았지만 꿈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에 끝내 회사에 사표를 쓰고 댄스 강사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0대 시절, 아이돌 가수에 열광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춤에 대한 욕구는 비단 10대 청소년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마음껏 자신의 끼를 펼치고 새로운 재능을 찾고 싶은 중장년층의 춤에 대한 욕구도 대단하다. 조금은 부끄럽고 수줍은 마음에 망설여지는 춤 배우기. 손정희 대표는 그런 사람들에게 보다 쉽게 춤에 다가설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처음엔 쑥스러워하던 회원들도 점점 실력이 늘고, 수업에 빠지는 일 없이 즐겁게 춤을 배우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취미 생활로 춤을 배우고 싶어 하는 직장인, 삶의 새로운 활력을 찾기 위해 춤을 배우는 시니어, 건전한 여가 활동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건강해지는 청소년들까지... 춤을 통해 새로운 삶의 기쁨을 되찾는 회원들이 있어 일할 맛이 납니다(웃음).”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즐거운 그녀의 수업에는 남다름이 있다 . 단순히 테크닉을 전수하는 것을 넘어서 열린 소통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 특히나 말 못할 고민이 많은 청소년들에게 그녀는 누구보다 친한 친구이자 따뜻한 멘토다. “2~3년 전, 부산 서면에서 춤을 배우는 학생들과 함께할 수 있는 연습실을 열었어요.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치다보니 너무 정서적으로 힘든 친구들이 많았어요. 처음에는 제가 춤을 가르치기 힘들 정도였는데 아이들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남모를 고충이 많더라고요. 자연스레 아이들과 친해지면서 힘든 마음을 토닥여주고 용기를 북돋아주고 싶더라고요. 그랬더니 부모님한테도 선생님한테도 말 못할 고민을 제게 털어놓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춤을 배우며 점점 밝아지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제가 그랬던 것처럼 춤이 이 아이들의 힘든 현실을 극복하고 꿈을 이뤄가는 새로운 돌파구였으면 하는 바람이 컸어요. 그 연습실 이름이 정글러 댄스였고 그 이름을 따, 북구 화명신도시에 ㈜정글러 댄스 스튜디오를 열었습니다.” ‘청소년들의 건전한 여가문화 확산에 기여하겠다’는 창업정신에 걸맞게 이곳은 2021년 여성가족형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됐다. 댄스 학원으로는 첫 사례라 그 의미가 더욱 깊다. 부산 북구진로교육센터를 비롯해 청소년상담센터와 다른 예비 사회적 기업과 MOU를 체결하고 건전한 여가문화를 선도하고 복지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10대 청소년들 중에서 아이돌에 열광하지 않는 학생이 있을까요. 그럼에도 아직도 청소년들이 춤을 춘다고 하면 곧 탈선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님들이 많아요. 하지만 실질적으로 건전하게 춤을 배우면 오히려 스트레스 해소와 자아실현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함께 춤을 배우는 친구, 선후배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기에 인성 교육에도 효과적이죠. 이렇듯 청소년들의 건전한 여가문화 확산을 통해 올바른 전인성 교육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이곳은 K-POP, 코레오, 힙합, 줌바 등 다양한 춤을 배울 수 있다. 아동, 청소년, 직장인, 시니어 등 학원을 다니는 연령층도 다양하다. 무엇보다 열정과 실력을 갖춘 전문 댄스 강사의 맞춤 교육을 받을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 요즘 가장 트렌디한 K-POP을 배우고 만족해하는 한 회원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K-POP을 배우는 것이 유행인데 이곳은 요즘 가장 트렌디한 K-POP을 배울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며 “개인 SNS 계정에 춤을 배우는 일상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힐링”이라는 호평을 전했다. 손정희 대표는 댄스 강사지만 그에 앞서 가장 열정적인 춤꾼이다. 그녀가 가장 빛을 나는 곳은 역시 무대. 여러 댄스 대회에 나가 수상한 화려한 이력만큼이나 오랜 시간 갈고 닦아온 춤 실력은 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무대 위에 설 때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팀원들과 함께 무대를 준비하며 땀 흘리고, 성공적으로 무대를 완성했을 때 희열은 커요. 이런 충만함과 행복을 많은 분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프로, 손정희 대표. 그녀는 열악한 댄스 강사의 근로여건 개선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댄스 강사의 근로여건이 워낙 열악하다보니 저도 어려울 때가 많았어요. 특히 코로나19가 유행할 때는 생업을 하지 못해도 제대로 보상을 받지도 못했죠. 이런 어려움을 익히 알기에 후배들에게는 보다 좋은 근로환경에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싶어요. 앞으로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정글러 댄스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후배들이 안정적인 근로환경에서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어요.” [1141]
    • 문화
    2023-01-27
  • 나만의 특별한 사진, 스토리텔링을 통해 피사체를 프레임 안에 담아내다
    사진이 대세인 시대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전에 스마트 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우리의 일상은 스마트폰 앨범 속에 담겨 추억으로 남는다. 이제는 보다 전문적인 사진이나 영상들도 스마트폰으로 촬영할 수 있어 상업화하거나 전시회를 갖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나만의 특별한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을까?’하는 고민은 누구나 한번쯤을 가져봤을 것이다. 스토리텔링을 통한 피사체를 프레임에 담아 예술적인 장면을 연출하며 특별한 분위기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양재명 작가를 만나 셔터토그를 해보았다. _우호경 취재본부장, 주정아 기자 어릴 때부터 사진 찍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는 양재명 작가, 아버지께서는 중학교 2학년 때, 일본인 친구에게 부탁해 당시 야시카[YASHICA] 카메라를 선물해 주셨다. 당시만 해도 한국 경제수준에서 카메라는 굉장한 고가의 물품이었다. 그는 용돈을 모아 주말이면 흑백필름 2통을 구입하여 카메라를 들고 덕수궁, 경복궁 등을 오가면서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동네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장에게 사진 강습을 받는 등 사진 찍는 일에 남다른 열정을 가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진을 전문으로 배운 분이 아니었기에 전문적인 사진 강의라기보다는 현장실습 위주의 기술 전수였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 땐 그 시간이 어찌나 좋던지요(웃음).” 양재명 작가는 서울예술대학 영화학과에 진학하면서 영화 카메라를 전공했지만 좀 더 전문적으로 사진과 카메라를 공부하고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일본 최고의 예술학교인 도쿄비주얼아트에 입학하여 방송학과에서 ENG 카메라, 스튜디오 카메라를 공부하였고 졸업 후 다시 사진학과에 편입해 광고사진도 공부했다. 이후 미국 하와이 주립대학에서 포토저널리즘을 전공하는 등 해외 각국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며 전문적으로 이론과 실기를 겸한 프로작가로 성장해갔다. 양 작가는 “이미 필름 카메라의 시대는 오래전에 지났고 DSLR(Digital Single Lens Reflex) 카메라의 시대도 스마트 폰의 편리함에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누구나 스마트폰 하나면 자신만의 멋진 사진을 찍어 전시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편리하게 촬영하는 스마트폰으로 찍는 사진은 한계가 있지요. 전문 프로 사진가들이 DSLR 카메라를 고집하는 이유는 스마트폰으로 표현할 수 없는 디테일하고 심도있는, 자기 표현력이 강한 사진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사진을 배우는 사람들은 꽃 사진, 풍경 사진을 주로 촬영한다. 그러다 혹 인물 사진을 찍을 때 배경은 흐릿하고 피사체의 인물만 또렷하게 표현된 사진에 매료된다. 그러나 피사체 심도의 깊고 얕음은 사진가가 주제에 적합하도록 촬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양 작가는 사진을 찍기 전에 반드시 ‘스토리텔링’을 이용하여 촬영하라고 권유한다. 많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고민하는 문제는 ‘어떻게 사진을 찍어야 하는가’이다. 이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스토리텔링’을 모른 채 그저 피사체를 보이는 대로 찍으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은 마음의 창을 통해 사물을 이해하고 기록하는 예술 자신만이 생각하는 특별한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멋진 사진은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일상생활 속에서 생활하는 장소에서 만들어진다. 그러기에 사진 자체를 특별하게 찍으려고 하기보다는 촬영하는 장소를 잘 선택하여, 멋진 사진을 만들 수 있는 곳을 찾아 그 장소를 완벽하게 표현하는 사진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선택한 장소를 찾았다면 장소에 담긴 보편적인 요소와 느낌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담는 것이 핵심이며, 촬영할 때 그 장소의 특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요소를 찾는 것이다. 또 다른 관점은 단순히 그 장소를 묘사한 사진과 그 장소에 대한 스토리를 전달하는 사진의 패러다임을 통한 사진의 이해라고 전했다 그는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스토리텔링’이다. 프로 사진가들은 촬영하기 전에 반드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토리를 생각하고 사진을 찍는다. 무턱대고 셔터만 누른다면 결과물에서 큰 차이가 난다. 남들이 공감하는 멋진 사진을 찍는 방법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렌즈와 조리개 셔터와 노출 그리고 빛의 관찰과 활용방식을 이용하여 프레임 한 컷에 주제(스토리)를 넣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토리와 함께 인간의 삶과 갈등, 진실과 정의, 삶과 죽음이라는 부제를 넣어 촬영하라고 권유한다. 양 작가가 생각하는 사진은 카메라의 메커니즘과 렌즈에 의한 광학적 기록이기보다는 사진가의 마음의 창을 통해 사물을 이해하고 기록하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또한 ‘사진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피사체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같은 피사체라도 다르게 표현될 수 있는 독특한 종합예술이라고 강조했다. [1141] •서울예술대학 영화과(연기, 영화 카메라 전공) •일본 선샤인 외국어대학 일본어과, 도쿄비주얼아트 방송학과 및 사진과 졸업 •미국 하와이 주립대학 저널리즘 전공 •호텔신라, 삼성에버랜드, 대상 청정원,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 조일제지 엘르골프, 엘르스포츠 등 다수의 유명 기업광고 촬영 •현)서울외신기자클럽 정회원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 소속 골든브릿지(금교) 서울특파원 외신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김여정 북한 조선노동당 국무위원, 김영남 조선노동당 상임위원장 등 세계 각국 정상들과 노태우, 김영삼,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대통령 취재 •대학에서 사진 강좌와 칼럼을 쓰고 매년 사진 전시회도 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수상 내역 •2020. 한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보도 기자 대상 •2021. 제7회 대한민국 예술문화 스타 대상 문화예술 대상 대한민국을 빛낸 한국인 대상 보도 기자 대상 Great 대한민국 100인 대상 보도 부문 대상 •2022. 대한민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취재 보도 대상
    • 문화
    2023-01-27
  • 자연이 주는 치유, “온 가족이 함께하는 행복한 하루를 선사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감각과 운동적 조작을 통해 배운다. 그러므로 자연 환경은 유아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적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자연 세계 자체가 거의 모두 유아들이 직접 경험하고 조작할 수 있는 생생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자연 세계에서의 다양한 경험은 다음과 같이 유아에게 발달의 모든 측면에서 성장을 도모해 줄 수 있다. -Wilson, 1995-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다보니 어떻게 하면 이 귀한 시간을 가장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되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보고 듣고 몸으로 부딪히는 체험활동을 하고 부모들은 탁 트인 자연 속에서 차 한 잔하며 힐링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떨까?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읍 율리중마을길 55에 위치한 청송자연농원을 찾았다. _김유미 기자 고즈넉한 산속에 자리잡은 ‘청송자연농원’에 들어서면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 한 느낌이 든다. 40여년 식당으로 운영되던 공간은 리모델링을 거쳐 스마트팜, 카페, 펜션, 수영장이 들어선 복합체험공간으로 탄생했다. 여름에는 계곡 옆 평상에서 더위를 식히고 계곡물을 받아쓰는 수영장에서 피서를 즐길 수 있고, 카페와 스마트팜에서는 아이들의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사시사철 운영되는 펜션 역시 인기다. “아이들과 함께 한 소중한 체험들은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지요. 온 가족이 함께 오셔서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주차를 하고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쉬며 주위를 둘러보자 고무장갑을 끼고 여기저기를 살피며 정돈하는 류금순 대표의 모습이 보인다. 뒷산까지 너른 부지에 건물만 해도 두 동, 손이 많이 갈 수 밖에 없을 터. 부슬부슬 내리는 비까지 맞아가며 일하는 모습이 정스러워 한참을 바라봤다. 역시나 직접 만나본 류 대표는 순수하고 따뜻한 미소의 소유자였다. “오랫동안 식당을 운영했어요. 정말 바쁘고 성실하게 일했지요. 하지만 세월은 어쩔 수 없더라구요(웃음). 점점 체력에 한계를 느끼던 즈음, 남편과 함께 청송자연농원을 좀 더 의미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자연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정말 멋진 곳인데, 어떻게 하면 많은 분들이 찾아오셔서 힐링하고 가실 수 있을까. 무엇을 준비해야할까 고민을 많이 했지요.” 류 대표는 올해 여름부터 카페를 오픈하는 동시에 꼬마농부체험을 시작했다. “화분을 꾸미고 아기허브를 심고 밀짚모자를 꾸며 나만의 농부모자 만들기를 하는 프로그램인데 정말 호응이 좋았어요. 카페 옆 비닐하우스에 심어논 아기 옥수수와 파프리카, 상추, 딸기 등으로 시기별로 새로운 체험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아이디어들이 자꾸만 떠올라요(웃음).” 가을에는 뒷산 감나무에서 감따기 체험을, 빼빼로데이를 앞두고는 빼빼로 만들기 체험,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퐁퐁트리 만들기가 진행됐다. 지금부터 1월 말까지는 딸기케이크 만들기 체험이 가능하다. 하우스에 있는 다양한 작물 따기는 언제든 환영이다. “특별히 홍보하지 않았는데도 입소문이 나서 부산, 울산, 양산 등지에서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더라구요. 카페와 체험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차선영 실장의 역할이 큽니다. 본인이 두 아이의 엄마이자 공예, 요리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분이라 굉장히 알차고 세심하게 준비해주세요.” 모래놀이터와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등 아이들을 위한 배려 속 주인장의 넉넉한 마음이 엿보인다. “운동 부족, 대화 부족인 아이들과 자연 속에서 긴장을 풀고 함께 다양한 체험을 하며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셨으면 합니다. 잘 준비해놓고 있겠습니다(웃음)." 카페 창가에서 바라본 산 아래 웅장한 풍광은 신선이 된 듯 한 느낌까지 갖게 한다. 여유로운 좌석과 테이블 배치에 각종 허브로 꾸며진 실내조경 역시 숨통이 확 트일 정도로 깔끔하고 시원하다. 연못 속에서 노니는 금붕어까지, 자연 그대로를 담아논듯 특별하다 . “최근 단체 예약도 많아지고 있어요. 체험이 끝나면 부리나케 떠나는 형식적인 체험농장이 아닌, 충분히 즐기고 놀면서 멋진 추억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청송자연농원의 소식들을 계속해서 올릴 테니 많은 관심가져주세요.” [1144]
    • 문화
    2023-01-27
  • 탈모인의 새로운 희망, 두피 문신 “완벽한 시술(S.M.P)로 보답해야”
    S.M.P(Scalp Micro Pigmentation) 두피 문신은 두피에 미세한 바늘로 점을 찍는 시술로, 작은 점을 찍어 모근처럼 보이게 해 탈모 부위를 자연스럽게 채워주는 효과가 있다. 이 시술은 의료용 시술에 속하며, 모발을 직접 심는 것에 비해서 통증이 덜하고 회복 기간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겨울로 넘어가는 지금의 계절엔 짧은 일조량으로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탈모를 유발한다. 숭숭 빠지는 머리카락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어 탈모로 고민하는 젊은 층이 차츰 증가하는 요즘, S.M.P를 찾는 이들이 더욱 늘고 있다. _김민진 기자 촉망받는 육상선수에서 스칼프 테크니션(Scalp Technician)으로 더스틴(DUSTIN), 제2의 인생을 점찍다 “내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며, 고객상담 시 그 누구보다 “탈모인의 마음을 잘 안다”고 운을 뗀 더스틴(DUSTIN) 주식회사 그레이시티 스칼프 잠실본점 대표원장은 S.M.P로 전국에서 모이는 뜨거운 상담과 기술 문의로 지역마다 본점을 설립하는 가운데 현재 부산본점도 담당하고 있다. 훤칠한 키와 남다른 체격으로 인터뷰 현장 복도를 순식간에 런웨이로 만들어버린 그는 알고 보니 육상선수로 15년간 필드를 뛰며 촉망받던 유망주였다. 어떻게 S.M.P의 길을 걷게 됐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 새벽부터 야간훈련까지 정해진 시간과 프로그램에 맞춰 규칙적인 운동인의 삶을 살면서 마치 농부와 같이 1년 내내 사시사철 모든 역경을 견디고 훈련하다가 수확하는 때 딱 한 번 전국체전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게 때론 허무한 마음이 들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는 중에 사춘기 시절부터 슬슬 탈모 징조가 보였고, 운동할 때나 외출할 때 늘 저에겐 모자가 필수였습니다. 머리카락에 대한 스트레스로 무슨 일을 하든 100% 몰두가 안 되더라고요. 운동을 하면서 땀이 날 때도 물놀이를 가보려고 해도 자연스레 머리 스타일링에 대해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알게 된 그레이시티에 두피 문신 받으러 갔다가 상담하면서 ‘이건 된다, 무조건! 내가 먼저 배워보고 시술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번뜩이며, 이제는 ‘주도적으로 내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세상으로 나가는 첫 발걸음! 그레이시티(GRAYCITY)와 함께 더스틴(DUSTIN) 대표원장은 S.M.P를 접하기 전에 모발이식, 부착식 가발 등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양한 시도와 많은 돈을 썼기에 고객들이 상담하는 동안 그의 생생한 경험담을 듣는 것부터 큰 용기를 가지게 된다고. “나이가 지긋이 드신 어르신도 20년간 가발을 써오시다가 저를 만나셨고요. 학부모도 딸아이와 손잡고 오셔서 상담받으시고, ‘졸업식 때 가장 멋있는 아버지로 만들어드리겠다’는 약속도 지켜드렸죠. 이러한 여러 고객 사례 중에서도 꽃다운 스무 살 청년의 시술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요. 두피 전체의 모발이 빠지는 전두탈모로 몸과 마음 모두 병이 든 상태였지요. 동행하셨던 어머님도 같이 우시는데... 그 모습에 이 친구를 반드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컸고, 시술 후 만족 그 이상의 감동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시는 고객분들을 보면 이 일을 시작하길 참 잘한 것 같다는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1142]
    • 문화
    2022-12-26
  • 경북문화관광공사에서 선정한 뷰 카페, 김천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발돋움 중
    카페가 단순한 음료를 넘어 더 깊은 취향의 영역으로 들어선 지금. 커피 본연의 맛과 종류도 중요하지만, 커피를 마시는 공간에 대한 스토리가 더해진 디테일이 주목된다. 넓은 주차장을 기본으로 드라이브해서 찾아가는 맛도 있는 대형카페의 경우엔 건물의 외관부터 입구, 실내, 정원 등 모든 공간이 하나의 컨셉으로 디자인돼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번 주간인물에서 찾은 지역 핫플레이스로는 높은 건물과 넓은 실내, 커다란 창밖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으로 도심 속 카페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 김천의 떠오르는 대형 베이커리 카페, ‘메타1976’을 선정했다. _김민진 기자 애향심을 바탕으로 탄생한 메타1976 가상과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를 딴 카페명과 디자인 컨셉을 잡았다는 건축주, 김나영 대표는 토목 관련 근무 경험이 있는 남편 김규식 씨와 ‘1976년생’ 동갑내기 커플로 두 사람의 아이디어가 가득 담긴 이 공간을 위해 경제적으로도 그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메타1976>을 내걸고, 남다른 고향사랑으로 김천시 조각공원길 330-137에 카페를 세웠다. “별을 상징하는 조명 하나하나에도 남편이 신경을 많이 썼어요. 무심코 보면 아무도 알아채지는 못하겠지만, 저희 부부 눈에는 사소한 아이템 하나도 그냥 못 넘어가겠더라고요(웃음). 천장형 에어컨을 설치할 때도 건축컨셉에 잘 어울릴만한 브랜드를 고르고 골라서 최대한 우주를 연상케 하는 공간 구성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어디 멀리 찾아가지 않고서도 제가 사랑하는 고향, 김천 안에도 집 앞에 힐링할 수 있는 명소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건축 쪽으로 일가견이 있는 남편의 도움이 컸습니다.” 최근 김충섭 김천시장도 메타1976 카페에 깜짝 방문해 김천시민을 위한 문화공간 조성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소속의 박정아 배구 선수도 들려 휴식 시간을 보내 신상 카페임에도 불구하고 지역민은 물론, 김천 IC를 지나던 여행객들도 “고속도로에서 반짝거리는 예쁜 불빛이 눈길을 끌었다”라며 이곳을 찾는 발길이 크게 늘고 있다. “남녀노소 모두가 건강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도록” 메타1976은 대형 베이커리, 브런치 카페로 유명한 만큼 모든 빵은 100% 유기농 밀가루로 당일 생산되는 시스템으로 그날 남은 새 빵은 인근 보육원에 기탁하는 나눔을 실천하는 김 대표는 “아주 작지만, 저희가 하는 일이 지역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라고 수줍게 전했다. 평일 낮, 취재진이 현장에서 직접 확인했을 때도 유독 노인층이 주 고객을 이룬 모습이었다. “어르신들은 커피를 안 좋아한다는 말은 다 옛날 말이다”라며, “특히, 저희 빵을 먹고 나면 속이 편하고 더부룩하지 않아서 좋다고 카페에서 드신 후 나가실 때 또 사 가신다”라고 김 대표가 빵에 대한 자부심을 표해 메타1976에서 제공하는 베이커리 중 몇몇 차별화된 시그니처 메뉴 소개를 부탁했다. “<파주빵>은 저희 셰프님이 파주에서 근무하실 때 방송까지 나왔던 빵인데요. 완두콩이 들어가 소화가 잘됩니다. 구수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며, 어르신들의 입맛에도 취향 저격이죠. <먹물 어니언>은 오징어 먹물로 반죽했고, 안에 양파와 크림의 조합이 느끼하지 않으며 손님들께서 ‘한국인의 입맛에 딱이다’라고 말해주시는 빵이어서 매장 내 인기 제품입니다. <소금빵>의 경우엔 다른 곳과 차별화를 둔 부분이 쌀가루 50%를 첨가해 쫄깃하고 담백함은 배가 되고 버터가 적당히 들어가면서 더욱 고소한 풍미가 담겨 단짠(달고 짠)으로 갓 구워낸 소금빵은 겉바속촉의 끝판왕이라고 부르지요(웃음). 소금빵 다음으로 인기 있는 빵인 <바질 토마토>는 토마토, 바질, 베이컨의 환상적 조합이 피자빵인 듯 아닌 듯 묘한 매력을 줍니다.” 이외에도 메타1976의 아포가토(Affogato)는 상하목장 아이스크림과 최고급 이탈리아 원두의 절묘한 만남을 이루며, 매장에서 직접 생산한 수제 마카롱과 함께 큐브 치즈와 스틱 과자로 완성된 음료 또한 김 대표가 자신 있게 추천하는 메뉴다. “각종 전시와 공연이 펼쳐지는 문화예술의 장으로” 통유리 창으로 펼쳐지는 탁 트인 뷰와 더불어 카페 안에서는 지역민에게 다양한 문화공연을 선사하기 위해 계획 중에 있다고. 이미 메타1976의 공간을 알아 본 단골손님들이 먼저 제안하여 진행된 유치원 하우스콘서트, 고교입학설명회 등도 성황리에 마쳤다. 음악과 미술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눈과 귀가 힐링이 될 수 있도록 꾸며가고 있는 곳이다. “밤샘 작업을 거친 또 하나의 작품 탄생이 있었습니다. 밋밋하고 뭔가 허전하던 공간에 무얼 채워 넣을까 고민고민하다가 그냥 시중에 파는 흔한 그림 액자는 걸고 싶지 않아 작가님을 섭외해서 직접 작업을 했지요. 메타의 규모에 걸맞은 초대형 사이즈의 그림이 압도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화려한 컬러감과 현대적인 예술미에 매료당하실 겁니다. 오 작가님 이하 여러 작업자님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메타1976의 역사에 한 획을 그으셨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카페를 방문하시는 분들이 세상 유일한 미술작품을 메타1976에서 많이 감상하실 수 있도록 재능 있는 작가님들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무분별한 확장은 지양하고파” 카페 오픈하고 몇 개월 채 되지 않아 초창기부터 프랜차이즈 문의가 잇따른 메타1976은 707특수임무대대 출신인 남편 김규식 씨의 강직하고 올곧은 가치관을 존중하고 한마음으로 뜻을 같이하는 김나영 대표의 확고한 경영이념으로 무분별한 확장을 지양한다. “저희 카페의 진가를 여기저기서 알아봐 주신다는 것은 정말로 감사하고 뿌듯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럴수록 처음 저희 부부가 지녔던 창업 신념을 잃지 않으며, 고객님들께 건강하고 신선한 빵과 음료를 제공해 드림에 변함이 없을 것을 약속드리며 집중하고 싶고요. 이후에 현재의 규모보다 조금 더 크게 직영점으로 하나 더 세워서 많은 시민들이 모임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짓고 싶습니다.” [1142]
    • 문화
    2022-12-26
  • 차(茶) 한 잔으로 인생이 바뀌는 기적! “맛있는 차를 만드는 제다인(製茶人)으로 남고파”
    경주시 건천읍 단석로 1757에 자리한 ‘다다티하우스’는 대한문인협회 시인으로 등단한 주인장이 운영하는 카페로 “내 시는 읽기 쉬워야 한다”는 철학이 이어져 “차(茶)도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제조시설을 갖춘 이곳에서 수제약선차를 선보이고, 한국약선차꽃차연합회 운영 및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마침 차생활지도사 수업을 마친 이은주 대표와 향긋한 차 한잔을 앞에 두고 차로 인생이 바뀐 그의 삶을 들어봤다. _김민진 기자 Q1. 차(茶)를 가까이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실 것 같은데요. 현재 맡고 계신 일들도 함께 소개해주신다면. A.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아버지께서 가꿔 온 모든 꽃이 사시사철 잎 하나 마른날 없이 항상 싱싱하고 향기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7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세 아이의 엄마로 돌아와 경력 단절에 대한 불안정한 마음이 들 때 “그래, 내가 잘하는 일은 풀 만지는 일이었지”라고 번뜩 떠올랐죠. 평소 관심을 가지고 블로그에 700여 편의 글을 모아왔던 약초에 관한 상식으로 ‘약초활용요법’이라는 평생교육원 과정을 듣다가 약초를 먹는 방법을 좀 더 간편하게 하고 싶어 제다(製茶)에 관심을 가지고 ‘꽃차소믈리에’를 시작했습니다. 궁금한 것이 많고 더 깊게 알아가고 싶은 것이 넘쳐났던 저는 늘 질문하는 학생으로 결국엔 교수님께서 대답을 못하는 지경까지 오셨죠(웃음). 그리고 배운지 1년 만에 <산우산야초꽃차문화원>을 개원하고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1997년, 적어도 제가 가르친 제자들만큼은 어려움 없이 사범 활동을 하고 자신들의 작은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한국약선차꽃차연합회>를 창설해 꽃차소믈리에, 약선차사범, 차생활지도사 과정을 교육하고 있어요. 현재 <다다티하우스> 카페도 운영하며, 중국의 국영차창 ‘운남동경호(雲南同慶號) 보이차’를 수입 및 판매하는 총판을 가지고 있습니다. Q2. 차(茶) 교육에 대한 열망이 더 크신 것 같습니다. 타 문화원과 달리 크게 차별화를 둔 부분이 있으신지요? A. 한국차, 중국차, 일본차를 모두 교육하는 이색카페로 전국각지에서 수강생이 찾아오는 유일무이한 곳이죠. 모든 차를 판매하고, 시음도 할 수 있는 1층 카페에서는 사실상 영리를 위하기보다는 차를 알리기 위한 무료 나눔이 주를 이루는 공간입니다(웃음). 특히, 한국약선차꽃차연합회의 꽃차소믈리에 과정은 전국 최초로 잎차를 6대 다류 제다법으로 분류하여 만들기 시작했어요. 꼭 찻잎이 아니더라도 허브 종류의 잎 혹은 꽃도 경발효, 비발효, 부분발효, 산화발효, 후발효차로 만들어 전통차의 제다법을 따르고 이를 바탕으로 차 공부에 깊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합니다. 단지 꽃차만 배우는 것이 아닌, 제다법을 통해 차를 알고 전통차를 이해하여 차의 본질을 알아 가는 차생활지도사 과정을 통해 한국/중국/일본차의 깊이를 들여다볼 수 있으며, 생활 속 차인(茶人)이 돼가는 과정을 습득하게 되죠. 그리고 사범 과정을 통해 각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해드리고 있습니다. Q3. 10년 넘게 차(茶) 외길인생을 걸어오신 대표님의 교육으로 제자들의 인생이 바뀐 특별한 사례도 있으시죠? A. 감사하게도 한국약선차꽃차연합회를 통해 70개의 문화원이 만들어졌습니다. 먼 곳에서 그들을 응원하며 지켜보는 제 마음이 얼마나 흐뭇한지요. 제가 겪었던 것처럼 경단녀의 삶에서 한국약선차꽃차연합회 수료 후, 다시 자기의 협회를 만드신 분도 계시고 대학에서 강의하고 계신 분도 있으며 작은 공방을 차려서 열심히 수업하고 계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면 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고 계신 인생 선배님들이시죠. 삶은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나이 55살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꿈을 정해 놓고 그 꿈을 위해 나아가다 보면 그 어느 날 우리는 그 꿈에 닿아 있지 않을까요?”라고 제자들에게 항상 하는 말입니다. Q4. 지금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많은 역경이 있으셨을 것으로 예상하는데요. 그 일로 깨달은 삶의 철학이 있으시다면. A.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던 저는 두 살 터울 오빠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이유로 공부를 더 할 수 없었어요. 늘 꿈에 야간 고등학교에 가서 시험을 치는 꿈을 꾸는데 아이를 업고 가서 달래고 기저귀를 갈고 있더라고요. 이 똑같은 꿈을 수십번 꿔서 외울 정도였습니다. 3~40대 시절은 아이 셋을 키우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일찍 아이들을 키워 놓고, 47살에 제가 벌어서 다도대학원을 입학했지요. 2019년, 위덕대학교 외식산업학부에서 또 공부를 시작했고, 처음에 8학기는 이것이 정녕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싶을 만큼 높은 장벽이었습니다. 만학도 장학금을 받는다 쳐도 제게는 힘든 경제적 난관이 많았죠. 이제 마지막 기말고사 한 번만 치고 나면 졸업입니다! 삶은 꿈꾸는 자의 것이죠. 지난해부터 진행해온 ‘강철맨탈챌린지’로 제자들은 12개월 동안 1일 1글 포스팅이라는 어려운 일도 해냈습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만 먹으면 못 할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Q5. 차(茶)를 비싸고, 어렵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비싼 한복을 입고 행다(行茶) 위주의 다례원 교육을 받는 등 어려워하시는 분이 많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차는 커피처럼 마시는 음료입니다. 단지 관심이 조금만 있다면 사람들과 소통하며 스스로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여유를 주는 맛있는 음료죠. 우리의 차 역사와 문화를 재조명해 보면서 ‘초암차보존회’를 만들어 차의 역사를 바로잡고 알리기 위해 힘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차보존회 속의 생활차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요. 차는 누구나 쉽게 마실 수 있는 건강한 먹거리임을 꼭 알리고 싶습니다. [1142]
    • 문화
    2022-12-26

실시간 문화 기사

  • 시가 있는 삶의 뜨락에서 당신과 나의 영원한 같은 자리를 꿈꾸다
    따뜻한 시선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바라보며 아름다운 언어를 통해 詩로 표현해내는 이가 있다. 세월의 강에서 헝클어진 삶을 노래하며 아직도 식지 않는 열정, 감사, 낯선 것에 대한 동경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 「당신과 나는 같은 자리입니다」로 2집을 발표한 권희수 시인을 만나 보았다. _우호경 취재본부장, 주정아 기자 권희수 시인은 오랜 세월이 흐린 지금도 그녀의 고향인 전북 순창 괴정리 정자나무 아래에서의 시간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 “늘 인정이 있는 따뜻한 품을 그리워하고 있어요. 땅을 파고 하늘을 보며 사는 따스한 우리네 이웃들, 그것이 권희수 시인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녀의 고향인 전북 순창 괴정리 정자나무 아래에서의 시간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 “늘 인정이 있는 따뜻한 품을 그리워하고 있어요. 땅을 파고 하늘을 보며 사는 따스한 우리네 이웃들,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이며 영원한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시에는 원천적 생명성과 인생의 희망이 물결친다. 넓은 들판 끝 병풍처럼 펼쳐진 채계산과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 자락의 괴정리가 살아넘친다. “살구꽃이 지면 강 건너 지천으로 피어 있는 진달래꽃에 맘을 빼앗기고, 넘실거리는 보리밭 물결과 미루나루 초록물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5월의 싱그러움에 가슴 두근거렸던 시절, 좋아하는 시를 외우며 국어선생님을 꿈꾸던 소녀였지요. 그 꿈을 이뤄 21년 동안 중,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했습니다.” 성차별이 심했던 시절, 권 시인은 여학교 제자들이 살아가야 할 이 사회의 변화를 온몸으로 요구하며, 남녀평등과 교육민주화를 실천하는 선생이었다. “제 고향, 괴정리의 아름다운 풍경은 격동의 제 젊은 날로 인해 어느새 사유와 성찰 절제의 감성으로 변모하게 되었지요.” 권 시인은 평상시에 쓰이는 일상적인 말을 과감하게 시어로 채택해 질그릇처럼 투박하되 은은한 멋이 있는 시로 빚어낼 줄 안다. 우리말에 대한 언어감각이 탁월한 그녀는 자연愛의 동경과 고향에 대한 아련한 추억, 오래 된 것들에 대한 애정, 사람 관계를 중요시하는 인생관을 진실된 언어로 표핸해낸다. 나의 詩는 마음 밑바닥의 순수 영혼을 퍼 올려지는 샘물 권 시인의 詩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사랑을 가장 낮은 자리에서 바라본다. 삶의 배경이 되는 진솔한 정서에 시선을 담으며, 울고 싶은 사람의 곁에서 함께 울고 소망이 강렬한 사람 곁에서 함께 희망의 노래를 부른다. “하늘, 바람, 햇빛, 그리고 시는 늘 같은 자리입니다. 시를 쓰는 날은 가슴의 울림이 있는 날이지요. 일상에서 가슴에 콕 찌르는 감성을 잡고 전지적인 관점으로 폭 넓게 자신을 응시하고, 인간으로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어떻게 비워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영감을 남겨야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한 편의 시가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제가 너무나 즐기는 시간이지요. 사랑스런 제 자신을 발견하는 기쁜 날이기도 합니다(웃음).” ‘시는 삶의 노래’라는 권 시인. “시를 통해 고난과 슬픔을 치유한다”며 “자신의 마음 속에 어떤 외부적 환경도 뛰어넘을 수 있는 작은 우주를 품고 살아야 하는데 그것의 원천이 바로 시”라고 말한다. 덧붙여 “현상 너머의 무지개를 바라볼 수 있는 통섭의 혜안을 순순하게 나누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권 시인은 CBMC(한국기독실업인회, Connecting Business and Marketplace to Christ) 평택지회장이자 더불어 민주당 다문화위원회 부위원장, 평택을 지역위원회 다문화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 “결국 오늘 존재한다는 것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가는 시간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의 시어 진실을 노래해야 합니다. 희망과, 용기의 노래를 불러야 하지요. 좋은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로버트 프로스트 시인의 담장고치기(Mending Wall)시에서 ‘He only says, Good fences, make good neighbors’라고 노래했듯이 말입니다.” 5월의 붉은 장미처럼 겨울을 이겨 낸 가시넝쿨 / 한가득 꽃을 품고 왔다 // 5월의 / 햇살 사이로 훈풍 사이로 / 너를 향한 미소를 품고 왔다 // 눈짓만으로도 / 담장을 넘은 장미 향기는 / 세상을 향해 아우성이다 // 너를 넘어 이웃에게로 / 이웃을 넘어 우리에게로 / 앞다투어 손을 내민다 // 이름도 없이 / 바램도 없이 / 붉은 장미처럼 서로에게 덤이 되어주자 // 우리함께 / 담을 넘어 / 선을 넘어 / 사랑의 혁명을 일으켜 보자 // 5월의 붉은 장미처럼 // PROFILE •전라북도 순창 출생 •전주우석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전) 전북 고창여고, 평택여고 등 국어교사 •전교조 전북지부 여교사 위원장 •전북일하는여성 회장 •국제대학교, 가천대학교 외래교수 •피어선 문우회장 •시인 「월간 문학바탕」등단 •현)권선생 논술학원장 •<세미책> 공동대표 (세상의 미래를 바꿀 책읽기-병영문화 바꾸기) •문학바탕 서경지회장 •저서) 시집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 2016 시집 「당신과 나는 같은 자리입니다」, 2020 동인지 「시와 에세이 9~16호」, 「시와 빛 1,2」 [1116]
    • 문화
    2021-05-27
  • “진주영남예술제를 통해 경남 진주시를 세계인이 찾는 도시로 만들어야 합니다” 영원히 기억될 여인, 하바울의 도전
    이번 주 주간인물이 만난 특별한 주인공은 바로 하바울 진주영남예술제협의회 회장이다. 1949년 최초로 시작된 영남예술제가 지난 8월 11일, 진주 혁신도시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진주영남예술제 기획 단계부터 진행까지, 화려한 축제 무대 뒤에는 하바울 회장이 있었다. 울아카데미실용음악학원과 국제러시아어한국어학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로 감동을 전하는 가수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하 회장. 그녀의 머릿속엔 온통 경남 진주의 발전뿐이다. 하바울 회장과 만남을 약속한 해운대그랜드호텔, 서구적인 미모에 매력적인 미소를 머금고 로비에 들어선 그녀에게서 호텔 밖 펼쳐진 바다의 시원함과 활기가 느껴진다. 설렘을 가득 안고 그녀와 마주 앉았다. _정효빈 기자 최초의 예술제인 진주영남예술제 부활에는 진주영남예술제협의회 하바울 회장의 땀방울이 담겨있다. 그녀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제1회 진주영남예술제’를 준비했을까. “진주영남예술제에서 ‘영남’은 사전적 의미 외에도 ‘세기의 만남. 영원한 만남’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술제를 상징하는 로고는 아름다운 다섯 색상으로 구성돼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담고 있고요. 또한, 회모리 문양을 통해 ‘화합과 융합’의 의미도 담았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축제란 지역민들끼리만 즐기는 동네의 축제를 넘어 다른 지역, 먼 나라에서도 찾아와 즐길 수 있는 축제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진주시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교육과 관광문화 상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라질 하면 삼바가 떠오르죠? 브라질의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준 것이 축제문화잖아요. 진주시도 예술제를 통해 발전을 도모합니다. 축제기간에만 축제장이 되는 곳이 아니라 교통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찾아올 메리트가 있는 축제여야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찾아오면 소비를 하고 갈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어야 해요. 현재 진주에서 이 요건이 충족되는 곳이 바로 혁신도시이며, 진주영남예술제를 진주 혁신도시에서 개최하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한 예술제를 진정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술에 관심이 없는 분들이 예술제를 지배하다보면 결코 성장할 수 없어요. 예술을 전공한 사람들이라면 예술제 발전 방향에 대한 마음가짐 자체가 다를 것이고, 예술제로써 진정한 빛을 발할 수 있으리라고 봐요. 저는 진주영남예술제를 보령의 머드축제처럼 세계인이 찾아오는 축제로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이 예술제가 진주를 발전시킬 관광상품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독특한 무언가를 찾아야한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다소 미숙한 부분도 있지만 흙 속에서 진주를 발견해 천천히 닦아내듯이 앞으로 많은 부분을 갈고 닦아 ‘진주영남예술제는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도록 꾸준히 발전시켜나갈 예정입니다. 허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속이 꽉 찬 내실 있는 축제, 더불어 예술제가 열리는 진주 혁신도시 내에 각종 관광 인프라가 구축된다면 먼 해외에서도 기꺼이 진주를 찾아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번 예술제에 저희 시장님을 초청했는데, 결국 오시지 않으셨더라고요. 이런 부분은 참 아쉬웠습니다.” 하바울 회장은 러시아어학원을 운영하는 대표이자,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이들을 위한 한국어 교재를 쓴 저자이기도 하다. 그녀가 러시아어를 배우고 교재를 출판하게 된 배경이 궁금했다. “모스크바에 있는 남동생이 국제적인 교류를 작게나마 시작해보자고 권유해 러시아어를 배우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알파비트’도 하나도 모르는 상태였어요. 경상대학교 러시아학과에 편입학해 저보다 한참 어리고 똑똑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다보니 자극이 많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처음 1년 동안은 잠도 거의 자지 않고 정말 독하게 공부했어요. 교재에 실린 예문은 전부 달달 외울 정도였으니까요. 학교에서 배우는 교재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국내에 출판된 러시아어 교재는 전부 사다 읽기도 했어요. 그 시기에 든 생각이, 우리나라에는 아직 러시아어를 제대로 깊이 있게 공부할만한 교재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러시아어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되어있지 않아 교재가 미흡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죠. 그때부터 다양한 러시아어 교재를 탐독하며 저만의 노트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치열하게 공부하다보니 어느 순간 저보다 2년 먼저 공부한 친구들보다 제가 저만치 앞서가고 있더라고요. 처음엔 저를 ‘이모’라 부르며 쭈뼛대던 친구들이 ‘언니, 누나’하며 다가와 모르는 것을 물어보곤 했어요. 이후에 제가 러시아어학원을 운영하자 당시 대학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이 수강생으로 저를 찾아오기도 했고요. 그러던 어느 날 학원으로 ‘러시아어 교재가 있느냐’라는 문의가 왔고, 학부시절 정리한 저만의 노트를 활용해 본격적으로 러시아인을 위한 한국어 교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어만의 독특한 언어적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독학이 가능한 교재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던 차에 교재 문의가 들어온 거죠. 여러모로 시기가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아요. 전 세계에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국가가 24개국이나 되는 거 아세요? 진주에 정착하신 이주노동자 분들이 저를 찾아와 우리나라 말을 쉽게 배워가는 모습을 볼 때면 참 뿌듯한 마음이 들어요.” 보컬, 피아노, 재즈 등 음악에도 재능이 탁월해 현재 가수로 활발히 활동 중인 하바울 회장. 어린 시절부터 노래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다고 하는데. “살면서 ‘가수가 되어보지 않겠느냐’를 제안을 세 번이나 받았어요. 이런 저런 이유로 그 제안을 거절해왔지만, 세 번째 기회가 찾아왔을 땐 ‘가수’라는 단어가 저에게 다가온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서울에 오디션을 보러 다니곤 했는데, 유명 작곡가님께서 이른 아침에 제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신 적도 있어요. 이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 작곡가분들을 직접 찾아 나섰지만, 가수와 작곡가 모두 곡에 대한 방향성이 같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그러던 중 지인으로부터 ‘정의송 작곡가님을 꼭 만나보라’는 권유를 듣게 됐어요. 그 이후 정의송 작곡가님의 번호를 어렵게 알아내 매일같이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어요. 작곡가님은 저를 전혀 모르셨지만 저를 알릴 수 있는, 제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하루에 한 번씩 꿋꿋하게 보냈어요(웃음). 그분을 향해 꾸준히 문을 두드리자, 비로소 답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직접 작곡가님을 만나보니 확실히 다른 분들과는 다르시더라구요. 첫 만남이었는데도 이미 저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파악하고 계셨어요. 직접 만나기도 전에 저라는 사람을 연구해주신 분이죠. 그분이 저에게 ‘당신은 이미자도, 주현미도, 패티김도 아니다. 당신은 하바울이다.”라고 말씀해주신 것이 참 기억에 남아요. 정의송 작곡가님을 만난 것 자체가 저에게 굉장히 큰 행운입니다. 그분의 진심을 느꼈고, 제가 처음으로 만난 ‘진정한 작곡가’이기 때문에 그분이 제게는 진정한 스승님이에요.” 스승인 정의송이 작곡한 ‘광야’라는 곡은 그녀에게 그 어떤 노래보다도 뜻 깊을 것 같은데....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강하게 치고 들어오는 피아노 선율이 굉장히 인상적인 곡이었어요. 도입부를 듣자마자 눈물이 핑 돌 정도였으니까요. ‘광야’라는 노래는 정의송 스승님께서 이육사의 시를 가사에 담아 저에게 주신 곡이에요. 이 특별한 노래가 반드시 대중음악이 되는 시대를 만들어갈 겁니다. 현재 대중문화는 너무나 상업적인 색이 짙어요. 요즘 사람들이 7080 음악을 다시 찾고 있잖아요? 그 시절의 노래들은 굉장히 순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 실력 있는 가수들이 배출되어 다시금 순수한 자연의 노래를 부르는 시대가 와야 해요. 가수 하바울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창조’와 ‘영원성’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항상 온 마음과 영혼을 실어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노래를 듣는 분들이 감동을 많이 받으시는 것 같아요. 제 소중한 노래들을 영어, 러시아어, 한국어로 녹음해 올 크리스마스에 정식 음반으로 발매할 예정입니다. 기대 많이 해주세요(웃음).”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 오가고 있는 하바울, 그녀가 꿈꾸는 내일은 무엇일까. “저의 마지막 직업은 강연가예요. 전문분야를 가르치는 강의와 달리 강연은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전달하는 일’이죠.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학력이나 커리어, 토익점수같은 ‘악세서리’만 강요당하고 있어요. 저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인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이야기를 하되, 진취적인 기상과 인성을 강연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진취적인 인물은 인성이 밝고 올바른 분들입니다. 김헌규 변호사님처럼 오랜 기간 한 길만 걸어오신 분이라든지, 정인후 진주시의원님도 여기에 포함되는 것 같아요. 이러한 진취적 인물들이 진주시를 이끌어간다면 진주가 더욱 발전하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도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 나이 70세가 되면 러시아 책 번역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커피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조그마한 라이브 카페도 운영해볼 생각입니다. 많은 분들로부터 ‘진주 혁신도시 산들로 55번지에 가면 좋은 라이브카페가 있다더라. 음악도 좋고 책도 읽을 수 있고. 그곳에 꼭 가봐야겠다’는 칭찬을 듣는 장소로 거듭났으면 해요. 그렇게 제가 한걸음 발을 디뎌 놓으면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창조적인 아티스트가 56번지에서 또 다른 멋진 일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진주 혁신도시 산들로가 한국적인 독특한 소품도 판매하고, 훌륭한 커피와 음악도 즐길 수 있는 행운의 길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이왕이면 길 이름이 ‘행운길’로 바뀌어도 좋을 것 같네요(웃음). 이런 식으로 하나 둘씩 특색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나가고, 그렇게 꾸며진 멋진 진주 혁신도시에서 진주영남예술제가 열린다면 얼마나 멋있을까요. 저라면 비행기를 타고서라도 방문하고 싶을 것 같아요.” 이제껏 걸어온, 현재도 묵묵히 걷고 있는 그녀의 모든 발걸음이 경남 진주의 발전을 위한 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진주의 발전과 더불어 문화 예술의 세계적 교류와 활성화를 위해 쉬지 않고 달릴 하바울 회장. 마르지 않을 그녀의 열정을 주간인물이 응원한다. •진주시 국립 경상대학교 러시아어학 석사 •진주시 국립 경상대학교 러시아학 학사 •음악(노래)교육, 러시아어 교육 •한국어교육, 강연(스피치)교육 •모스크바 음악아카데미 음악학 •교육청 음악교육 강사, 시청 노래교육 강사 •러시아어 강사, 한국어 강사 •러시아 모스크바 한국문화 가수부분 공연 활동 •작곡가 장태민 30주년 디너쇼 초청 라이브 가수 •의령군 국가복지프로그램 전문강사 초빙/노래교육강사 •사천시 국가복지프로그램 노래교실 강사 초청/노래교육강사 •한여름밤의 꿈의 음악회 메인 초청 라이브 가수 •울아카데미실용음악학원 대표 •국제러시아어 한국어 학원장 •기기몬출판사 대표 •스토리텔링 노래교실 대표 •경남예술문화회관 공연 다수 •한여름밤의 꿈의 음악회 문화예술분과장 역임 •메인엠시 가수 •정의송 패밀리콘서트 다수 공연 •저서: 쉬운한국어 시리즈 학습교재(러시아어를 쓰는 외국인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교재) • 앨범 ‘영원히 기억될 여인 하바울’ [1115]
    • 문화
    2021-04-23
  • 부처님의 품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찾아가는 도량
    창원시 의창구 동읍 용잠리, 한적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8m에 달하는 대불(大佛)이 아주 멀리서부터 눈길을 끈다. 대불을 등대 삼아 가다 보니 쉽사리 대한불교조계종 용잠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마치 정토(淨土)에 온 듯한 향내가 코끝을 적셨다. 이른 시간에 도착했건만 주지 원공(圓空)스님은 법당 앞에서 이미 기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어주는 스님, 이렇게 또 주간인물과 새로운 인연이 생겼다. _취재 박정호 기자, 글 송인주 기자 ‘창원시의 대표적인 전법도량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라는 평을 듣는 용잠사는 5년 전 창건 된 전법도량이다. 창건 이후 다양한 포교 활동과 기도, 불자들을 위한 불교대학 교리강좌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20년 10월에 봉안된 높이 8m 높이의 석가모니 대불은 용잠사에 찾아오는 불자들에게 친견하는 것만으로도 신심이 우러나게 하고, 마음의 고뇌를 내려놓게 하는 안식처가 되게끔 도량을 돌봐주고 있다. “용잠사에선 다양한 신행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기도, 교리 강좌와 해탈의 직접적인 수행인 참선수행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기본적인 기도로 새벽예불을 새벽 4시에, 오전 10시 10분에 사시마지를 올립니다. 그리고 저녁예불을 저녁 6시 30분에 올리고 있어요. 교리 강좌에 있어선 1월부터 7월까지 매주 월요일에, 6개월 과정으로 기본교리과정을 진행하고 있고, 경전반은 여러 경전을 바꿔가며 매주 수요일에 강의하고 있습니다. 본과반이라고 할 수 있죠(웃음). 시절이 시절이니 만치 밴드나 유튜브를 통해서 비대면으로도 함께 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주지 소임을 다하고 있는 원공스님은 뛰어난 학승(學僧)이다. 1994년 대한불교조계종 단일계단 수계(受戒)를 거친 스님은 해인사 강원 졸업, 망월사, 해인사, 동화사의 선방(禪房)에서 수년간 안거 수행하며 법력을 쌓아왔다. 2017년, 대승불교의 바탕인 공(空)사상을 오롯이 담은 ‘제법공상의 이해와 수행’을 출간하여 불교의 핵심이 되는『반야심경(般若心經)』을 누구나 쉽게 이해 할 수 있게 정리하기도 했다. “고뇌에 빠진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제시하고 열반으로 이끌기 위해 함께합니다. 경전을 배웠기에 가르치는 것이고 참선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리고 행하고 함께하고 있습니다.”라고 피력한 스님의 말을 빌려 신앙이념에 관하여 담아보기로 하였다. 불교에서는 열반을 가르치는데, 열반이란 나고 죽음을 해결하여 다시는 나고 죽음을 되풀이 하지 않고, 평안을 누리는 경지를 말합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 너무나 추상적이게 생각되기도 할 것인데, 열반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자기의 본래상태’입니다. 모든 생명체를 크게 나누어 보면 열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상대적인 관계 속에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지 행하면, 그것의 결과가 생기는데 그것을 불교에서는 ‘업(業)’이라고 합니다. 이 업(業)에는 반드시 보(報. 갚음)가 있기 마련이어서 그 업의 결과 과보로 인하여, 좋은 업(業)이 있으면 인간, 천상의 모습을 이루고, 나쁜 업(業)이 있으면 축생, 아귀, 지옥, 아수라 등의 모습을 이룬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인간인 것은 업에 의한 과보(果報)의 모습이지 진짜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업(業)을 지으면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범부중생은 이 여섯 종류의 길에 돌고 돌며,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또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기도 하고, 미운 이와 만나기도 하고, 하고 싶은 것에 뜻대로 안되기도 하며,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끝없이 변해가는 일을 겪고 있습니다. 이 겪고 있는 일들이 뜻대로 안되니 ‘괴롭다’ 하는 것입니다. 중생의 삶이 ‘괴로움’이라는 뜻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렇게 살아야만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 괴로운 윤회의 삶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생활은, 현재의 내가 바깥의 보이는 것, 들리는 것들을 향해서 갈구(渴求)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몸으로, 입으로 업(業)을 지어 그 결과로 나타난 상태라고 합니다. 그렇게 밖으로 향하지 않고,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등의 이끌림을 그치고 안으로 고요를 이룬다면, 이 여섯 삶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분들을 아라한, 벽지불, 대보살이라고 하며 열반(涅槃)을 이룬 분들이라고 하여, 나고 죽음과 그 가운데의 여러 가지 일들의 뜻대로 안 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분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들도 아직은 완전한 열반(涅槃)을 이룬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더 깊이 닦아서 여래(如來)가 되고서야 완전한 열반을 이루어 대자유인(大自由人)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열 가지 생명의 존재’ 이치로 살펴보면, 중생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일을 행하느냐에 따라서, 인간, 천상, 축생, 아귀, 지옥, 아수라 등의 상대적 업에 매여 괴로운 생활을 하는 여섯 종류의 삶을 살수도 있고, 또 아라한, 벽지불, 대보살 등 업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의 자유를 누리는 세 종류의 삶으로 살수가 있으며, 또 여래가 되어 대자유인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 이 이치로 보면 열반(涅槃)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자기의 본래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저 지옥에서 천상까지가 모두 나의 행하는 바대로 나타나는 나의 업의 모습이고, 열반도 그 업을 벗어난 나의 삶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이 업의 모습에만 ‘나’라는 인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만, 윤회의 삶과 해탈의 삶을 살펴보면 우리 중생이 얼마나 큰 능력의 존재인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나를 몰라서 내가 지은 나의 업(業)에 매여서 자유롭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고, 내가 나를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회복하기만 한다면, 모든 얽매임을 벗어나서 대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렇듯 열반은 자기의 ‘본래 모습’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자기 개발(開發)입니다. 자기의 숨어 있는 무한(無限)의 역량을 개발하여 스스로 대자유인이 되자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중생들이 당신의 품속에서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이러하니 누구나가 자기의 본래 상태 즉 열반을 성취하여 대자유의 삶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가르침을 펴신 것입니다." 용잠사는 꾸준한 사회공헌활동으로 온기를 전하고 있는 도량이기도 하다. 신도회인 ‘금강회’와 함께 김장 나눔, 이웃돕기 쌀 나눔, 불자들의 마음을 모은 장학금 기탁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나눔을 실천해오고 있다. “고마운 분들이 참 많습니다. 불자 분들이 등(燈) 하나라도 달아주시는 마음을 모아 그 마음 그대로 사회에 돌려드리는 것뿐이에요. 그리고 수행처소를 마련해주셔서 참 고맙고 그런 감사한 마음을 나누려고 나름 열심히 정진하고 있습니다.”라고 피력한 원공스님, 지면을 빌어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도 함께 풀어놓았다. “불교란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차근차근 기본교리부터 시작하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내가 나를 몰라서 어렵고 괴로운 생활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바르게 회복한다면 무한능력의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꼭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을 내셔서, 인연이 닿는 곳에서 좋은 인연을 맺어보시기 바랍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많이들 고달프실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등불 삼아서 힘겨운 시절을 잘 이겨내기를 바랍니다.” [1115]
    • 문화
    2021-04-23
  • 삼청(三淸)의 고장, 청도! 아름다운 산, 들, 강을 한폭에 담다
    경북의 최남단에 있는 청도군은 산이 푸르고 물이 맑으며 인심이 순후해 예로부터 ‘삼청(三淸)의 고장’으로 불렸다. 운문사와 적천사 등 신라 천년의 고찰을 비롯해 청도읍성, 석빙고 등 찬란한 문화유산이 곳곳에 있는 유서 깊은 고장으로 청도반시, 복숭아, 한재 미나리 등 청정 특산물과 소싸움으로도 유명하다. 맑고 수려한 경관과 청정한 기운에 이끌려 인접한 대구 경북의 예술가들이 이곳으로 속속 둥지를 틀면서 전원 문화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름다운 고장, 청도. 청도의 사계를 만끽할 수 있는 새로운 명소가 생겨 화제다. 360도 각도로 청도의 산, 들, 강을 담아낸 엘파라이소365가 그 주인공이다. 주간인물은 독특한 테마와 문화로 새로운 공간문화를 이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_박미희 기자 따스한 햇살이 머무는 곳, 화양읍 소라리 365-104에 위치한 엘파라이소365는 한폭의 동양화 같은 청도의 자연을 담아낸 아름다운 카페다. 정남향으로는 용의 형상을 한 맑은 강이 보이고, 좌로는 대구 부산을 잇는 신대구 부산 고속도로가, 중앙으로는 청도군청과 청도읍내가, 우로는 청도 공설운동장을 지나 이서면까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정남향의 명당에 위치한 이곳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청도의 사계를 만끽할 수 있다. 4월이면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리는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들녘과 모내기하는 농부의 정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7월이면 대지를 물들일 듯 푸르른 청녹의 잎사귀들의 향연과 넘실되는 강물을 바라볼 수 있고 11월이면 가을산을 수놓는 낙옆을 보며 만추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1월이면 고요한 적막 속에 소복소복 눈이 쌓이는 새하얀 설원을 바라볼 수 있다. 아름다운 청도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담아내는 공간. 엘파라이소365는 자연과 조화롭게 어울리는 여백의 미를 지닌 공간이다. 스페인어로 지상낙원을 뜻하는 엘파라이소(EL paraiso). 그 이름에는 청도의 새로운 명소를 만들겠다는 오재환 대표의 의지가 담겨있다. “원래는 전원주택을 짓기 위해 매입한 곳이었지만 숨어있던 아름다운 경관에 매료됐어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청도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도록 카페를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옷도 스타일이 있듯이 건축도 개성이 있죠. 이처럼 획일성을 벗어나 청도다운 멋과 낭만을 담고 싶었어요. 최고의 인테리어는 ‘자연’이라는 말처럼, 최대한 주변 자연과 어울리는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드넓은 대지에 위에 세워진 초대형 카페는 10여 년 이상 건설업에 몸 담아온 그의 땀과 열정이 담겼다. 곳곳에 그의 손길이 닿은 것. “산의 지형을 안정적으로 살리기 위해 계단식으로 건물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층마다 보이는 뷰가 다 다르지요. 1층에서는 복숭아 밭이, 2층 테라스에서 강변이, 3층에는 산이 잘 보여요. 정남향에 건축물을 세워 채광이 아주 좋아요. 무엇보다 이곳은 시야에 거칠 것 없이 가장 넓게 청도의 전경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3층인 내부는 층마다 각양각색의 개성이 있다.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도록 층마다 공간 구성을 다르게 했다. 2~30대 젊은 층을 타킷으로 한 1층은 송판무늬 노출 콘크리트에 컬러풀한 가구와 소품, 그림으로 포인트를 줬다. 베이커리와 커피를 주문할 수 있는 2층은 넓은 테라스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가족단위 고객들을 배려한 3층은 마운틴 뷰를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징크 판넬 지붕과 그린 인테리어로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각 층마다 볼 수 있는 경관이 다 달라요. 다양한 각도로 청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조망할 수 있도록 넓은 창과 테라스를 뒀습니다. 각 층마다 다른 인테리어를 해 이동할 때마다 다른 공간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했어요. 무엇보다 다양한 세대들이 함께 어울리며 소통할 수 있도록 공간을 기획했죠.” 카페 건물 한편에 있는 외부공간과 소나무는 색다른 정취를 자아낸다. 그가 직접 골라 심었다는 소나무는 한국에서 몇 없는 귀한 나무라 운임비만 수천만원이 들 정도로 귀한 몸. 수려한 소나무 옆으로 놓인 우물과 야외공간은 현대적이면서 한국적인 멋을 느낄 수 있다. 오 대표는 앞으로 이곳을 지역민과 함께 하는 소통과 교류의 공간으로 이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앞으로 야외공간에 철마다 미나리,복숭아, 청도반시 등 청도 특산물을 판매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어요. 이를 통해서 농가와 소비자 간의 직거래를 통해 지역의 우수한 특산물을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공간만큼이나 맛있는 베이커리와 음료도 인기다. 갓 구워 신선한 베이커리와 바디감이 좋고 향이 살아있는 커피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곳을 찾는 단골손님은 “빌딩숲을 벗어나 탁 트인 자연을 만끽할 수 있어 좋다”면서 “청도시내와 주요관광지와 가까워 접근성도 좋고 무엇보다 커피와 베이커리가 맛있어 자주 찾게된다”며 호평을 전했다. 작년 12월 오픈한 이곳은 얼마되지 않아 ‘청도 핫플레이스’로 소개되며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코로나19 여파 속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청도의 명소로 거듭나고 있는 것. 새로운 카페 문화를 열어가는 오재환 대표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10여 년 이상 건설 현장에서 닦은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청도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만들어가는 것이 꿈이란다. “앞으로 엘파라이스365를 시작으로 온실식물공장, 고급한식당, 캠핑장, 황토찜찔방, 테마정원을 갖춘 해비치타운을 만드는 것이 꿈이에요. 청도를 찾은 관광객들이 아름다운 청도의 자연과 건강한 먹거리, 우수한 특산물을 만끽할 수 있는 관광타운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테마와 문화가 있는 청도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만들어 장차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1114]
    • 문화
    2021-04-16
  •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전시공간 ‘키덜트뮤지엄’ 참신한 전시기획으로 창의력 개발의 장을 열다
    왕실의 기증을 시작으로 방대한 규모의 소장품을 보유한 서구 미술관들과는 달리, 국내 미술관들은 짧은 역사만큼이나 소장품의 규모나 내용이 비교적 미약한 편이다. 이러한 가운데, 개인이 평생에 걸쳐 모은 진귀한 소장품들을 전시한 공간이 있어 화제다. 키덜트뮤지엄을 이끄는 김동일 관장은 40여 년간 직접 모아온 50,000여 점에 이르는 수집품을 ‘세대를 아우르는 추억의 물건’이라는 주제로 전시하며 전 세대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리움과 추억이 공존하는 키덜트뮤지엄의 이야기를 주간인물이 담았다. _정효빈 기자 경주시 보문관광단지에는 눈에 띄는 독특한 건축물이 있다. 로마의 콜로세움을 본뜬 보문콜로세움이다. 유교·신라·가야의 얼이 깃든 경주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건축물 같지만, 이런 건물이 우리를 때때로 다른 시공간으로 데려가곤 한다. 보문콜로세움에 자리 잡은 키덜트뮤지엄 역시 그러하다. 축음기, 영사기, 라디오, 음반 등의 수집품과 김동일 관장의 창작품들이 시대별, 분야별, 주제별로 구분되어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긴 세월이 묻은 물건들은 금세 친근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우리를 과거로 데려간다. 키덜트뮤지엄은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관람객 모두가 각자의 추억을 떠올리며 즐길 수 있는 공간인 것. 개인 소장품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진귀하고 어마어마한 양의 수집품에 놀라기도 잠시, 전시된 물건들은 전체 소장품의 10~2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니, 그간 김동일 관장이 걸어온 길에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이십대 초반일 땐 해외여행을 쉽게 갈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는데, 운 좋게 친한 형을 따라 영국으로 여행을 떠나게 됐습니다. 한 상점에서 어디선가 음악이 계속 흘러나오기에 ‘이 소리가 어디서 나느냐’고 물었더니, 주인이 코카콜라병을 가리키더라고요. 소리의 정체는 콜라병 모양의 라디오였습니다. 그야말로 문화충격이었죠. 당시 국내에서는 상상조차 못 했던 다양한 물건들을 접하며 굉장히 놀랐습니다. 어찌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던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유럽의 물건들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시관은 영사기박물관, 소리박물관, 인형·피규어박물관, 문구박물관, 골동품박물관, 만화박물관 등으로 구분돼있으며, 소장품은 주기적으로 교체 전시되어 관람객들에게 다채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양이지만, 소장품 하나를 구하기까지의 시행착오와 간절함, 기쁨 등 각각 추억이 서려 있기에 소장품의 먼지를 털고 닦아내는 과정 역시 큰 즐거움’이라며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김동일 관장. 소장품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을 알고 나니, 각각의 물건들이 옛 추억을 가득 머금은 채 ‘나 기억하지?’라며 친근하게 말을 거는 듯하다. 키덜트뮤지엄에서는 뛰어난 가치의 소장품뿐만 아니라 김동일 관장의 창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시절,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인테리어 소품을 제작해왔다는 김 관장은 버려진 제품 등 폐자재를 활용한 독창적인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부분적으로 손상돼 가치가 떨어진 자개장의 자개를 이용한 신라의 유물 액자부터, TV 프레임 속에 다양한 피규어들을 배치한 디오라마 작품들은 우리에게 미래와 환경에 관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이와 더불어 해양쓰레기를 활용해 참신한 업사이클링 제품을 탄생시키기도. “작년 겨울 해안가의 쓰레기를 줍는 봉사활동을 하게 됐는데, 현장에 가보니 못 쓰는 부표들이 눈에 띄더라고요. 인위적으로 색을 덧입히지 않았는데도 색감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워 버려진 부표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중 부표로 만든 우체통은 ‘2020 해양수산부 주관 해양쓰레기 업사이클링 아이디어 공모전’에 당선된 바 있으며, 키덜트뮤지엄에 오신 고객분들께서 이 우체통을 만들어달라는 요청도 많이 주셨습니다. 향후 해양쓰레기를 활용해 만든 참신한 작품들을 전시한 공원을 조성해보고 싶어요. 전 세계적으로도 그런 곳은 찾기가 힘든데,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생긴다면 참 좋지 않을까요?” 영사기, 축음기 등 시대를 대표하는 발명품은 물론, 번뜩이는 아이디어의 창작품을 선보이며 매력적인 전시를 이어가고 있는 김동일 관장. 그는 ‘키덜트뮤지엄을 통해 관람객들의 창의력에 신선한 자극이 되길 바란다’는 뜻을 밝히기도. 여기서 다소 아쉬운 점은 김 관장이 소장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수집품을 수용하고 전시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김 관장은 ‘향후 전시 공간이 추가로 마련된다면 재미는 물론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교육 전시를 기획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우리나라가 공부 실력으로는 세계 어디에서도 뒤지지 않습니다. 다만, 토론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거나,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은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죠. 제가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가장 절실하게 느낀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빛나는 창의력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낼 인재들을 배출하려면 국내에서도 노벨상 같은 공신력 있는 시상식을 만들어 많은 이들이 이 분야에 도전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1114]
    • 문화
    2021-04-16
  • 생활에 믿음이 스며드는, 머물지 않고 행(行)하는 불자가 되는 도량
    부산 사상구 덕포동에 위치한 광명사. 주지인 법경스님과 함께 2017년 6월부터 매달 첫째, 셋째 주 화요일마다 무료급식을 실천해오며 지역에 온기를 나눠온 도량이다. 무료급식 외에도 건강 치매 예방프로그램, 풍선 만들기, 문화공연 등을 병행, 매달 정기적인 자비행을 실천해오고 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실시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로 행사 진행에 차질이 생기자 무료급식 행사를 도시락 전달 행사로 바꾸어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도 보였다. 지역의 독거 어르신들의 새해 건강을 보살피기 위해 정성껏 조리한 삼계탕을 전달하며 “코로나-19가 사라지고 활력있는 일상 속에 지낼 때까지 힘내시고 모두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라는 법경 스님을 주간인물이 조명해보았다. _박정호 기자 어릴 적 육상에 소질을 보였던 법경 스님, 초등학교 시절 소년체전에 출전하기도 하며 선명하게 두각을 드러냈다. 하루는 체육 교사가 “너는 도시로 나가 꿈을 펼쳐라”라며 그를 혼자 부산으로 보냈다. 하지만 당시 그는 고작 초등학교 5학년, 꿈만 좇아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자취를 하기엔 너무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대화를 이어가는 스님의 표정을 보니 그 또한 ‘운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어린 나이에 혼자 지내며 방황을 많이 했어요. 그 시간이 너무 후회스러웠죠. 그러다 20대 젊은 시절 우연한 기회에 운명처럼 불교를 접하게 되었고 은사 스님의 가르침으로 참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출가하게 되었죠. 스승을 받들며 구도의 세계로 들어가는 ‘사미계(沙彌戒)’를 받고 1년 정도는 부모님 모르게 행자 생활을 했습니다(웃음). 이후 정식 승려가 되는 ‘구족계(具足戒)’를 받을 때 부모님을 모셨어요. 구족계 이후 기도 중에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는데 저를 안아주시며. ‘너는 따뜻한 마음으로 가거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뜻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부처님의 자비로운, 따뜻한 마음을 세상에 가서 펼쳐라’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수행하던 공간을 떠나 부산 사상구에 오게 되었죠.” 큰스님의 품을 떠나 부산에 처음 왔을 때는 그에게 주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작은 방과 불상 한 분이 전부, 말 그대로 벌판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 와중에도 부처님을 모시며 행복을 느꼈고 기회가 온다면 자비행을 실천하고자는 마음을 키워갔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신념으로 매일같이 기도를 올리며 지낸 시절을 회상하며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게 된 계기에 관하여 이야기를 이어갔다. “부처님이 이끌어주시는 대로 살아가다 보니 하나 둘 좋은 인연을 만났어요. 그러다 보니 한분 두분 도와주시는 불자님들을 만나게 되었고 지금까지 기도 정진하게 되었죠. ‘관세음보살님께서 화두로 주신 따뜻한 마음을 어떻게 펼칠까?’라는 생각을 몇 년을 하다가 2016년 8월 속가 아버님께서 타계하신 찰나에 ‘세상의 모든 어르신이 나의 어머니고, 아버지고, 부처님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능력이 되는대로 공양을 올리자는 마음으로 2017년 6월부터 무료급식소를 마련, 어르신들께 공양하기 시작했죠. 곧 4년 차가 되는데 앞으로도 급식소 시설을 더욱 더 발전시켜서 아이들 놀이 공간도 따로 마련해주고 싶어요. 최종적으론 온 세대가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곳이 되고 싶습니다.” 모두 신도(信徒)가 아닌 불자(佛子)가 되고, 겉모습만 불자가 되는 게 아닌 ‘올바른 불자’가 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전하고 싶다는 법경스님. “지식이 많다고 부처가 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행하지 않으면 결과가 없다고 생각해요. 행하지 않는 지식은 쓸모없는 것이니 회향(廻向)하는 불자가 됩시다”라며 스님이 추구하는 진정한 불자의 모습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저의 법명이 법경(法炅)입니다. 이름대로 ‘부처님의 법을 세상에 밝게 펼치는 것’이 저의 신조이고 다짐입니다. ‘부처님 법을 머리에 담고만 있으면 나 혼자만 성불하는 것이고 부처님 법을 세상에 펼치고 행하면 만 사람이 성불한다’라는 신념을 앞으로도 펼쳐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서 잘못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도 알게 모르게 많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항상 참회하는 마음과 내려놓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참회하는 마음과 욕심을 버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세상이 좋아 보이고, 맑아 보이고, 편안하고 즐거운 삶이 될 것입니다.” “ ‘자작자수(自作自受)’,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본인이 지은 공덕도 악덕도 자기가 다시 받는다.’라는 뜻으로 통하죠. 부디 이 글을 보는 여러분들은 공덕을 많이 지어서 공덕이 가득한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1114] ▲ 광명사의 다양한 나눔활동
    • 문화
    2021-04-16
  • 순수미술과 대중문화의 조화, TANSAN EVERYWHERE
    2017 - 가로수길 루다갤러리 단체전 유썸 전시 2021 - 대한민국 회화대상전 우수상 Inst. @tansan4596 / Email. tansan4596@naver.com 예나 지금이나 미술의 새로운 흐름과 思潮라는 건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방 또한 부끄럽거나 숨겨야 할 것도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를 토대로 새로운 재해석에 성공한다면 오리지널과는 또 다른 이색적인 개성을 찾을 수 있다. 피카소의 작품이 그렇고 고려시대 중 원(몽고)의 내정 간섭기에 들어온 색동문양도 이제 몽고의 것과는 다른 개성이 돋보이는 문화로 자리잡은 것 역시 그 예로 들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수용을 통해 자기화에 성공했을 때 독특한 개성을 지닌 자기만의 새로운 장르가 탄생된다는 것이다. 색을 먹는 캔버스와는 달리, 색을 반대로 쏘아 표현하는 디지털상의 그림은 어디서든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점과 색을 쉽게, 무한대로 고를 수 있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여기 디지털 그림 작품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24세의 청년작가, 서보형 그림작가 TANSAN을 만나 그의 작품세계로 들어가 보았다. _우호경 취재본부장, 주정아 기자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여지고 느껴지는 그림 그리고파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 기록은 큰 자산 “학창시절에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늘 공부하기가 싫어 문제집에 낙서를 하던 학생이었어요(웃음). 평소 애니메이션을 광적으로 좋아해서 늘 만화 캐릭터를 따라 그리곤 했죠. 그러던 어느 날 저와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우연히 제 문제집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재밌는 웹툰 스토리가 생각났는데 같이 그려볼래?’하고 묻더라고요. 그 제안이 함께 웹툰을 구상하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계기가 됐어요. 그 이후부터 이전과는 다르게 좀 더 진지하게 그림이라는 매력에 깊게 빠지게 됐죠. 학교는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같은 반에 그림 잘 그리는 친구랑 ‘사진 똑같이 그리기 대결’ 같은 걸 하곤 했어요. 그러다 친구에게 압도적으로 지게 됐는데, 그때부터 승부욕이 불타올라서 눈에 보이는 건 닥치는 대로 모두 그려보며 그림 연습에 매달렸습니다.” 서보형 작가는 그림연습을 할 때 연필이 아닌 볼펜을 고집했다. 이유는 연필은 다시 고칠 수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대충 그리게 되지만 볼펜은 고칠 수가 없으니 한 번 선을 긋더라도 철저하게 고민하고, 완벽한 계산으로 신중하게 선을 긋는 연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단다. 초창기 그의 그림을 보면 모든 작품이 볼펜으로 그려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로도 서 작가는 피나는 노력과 연습을 거듭했지만, 눈에 보이는 더딘 발전으로 좌절감도 맛봤단다.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와 다시 배틀을 했지만 결과는 역시 또 참패. “엄청난 실망을 하면서 옆자리 친구도 이기지 못하는데 앞으로 나의 미래 진로를 그림 쪽으로 가는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에 우울한 시간을 보내면서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하지만 서 작가는 그림을 포기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매력에 빠져 있었고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나날들을 보내고 있던 와중 서 작가에게 웹툰을 그리자고 추천을 해준 친구와 광화문 밤길을 걷다가 이상하게 거리의 사람들, 풍경, 신호등의 색, 가로등의 불빛들이 눈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보여지는 것을 느꼈다. “말로는 설명이 안되는 일상에서 오는 밤거리의 조명들이 감정으로 와 닿아 끊임없이 가슴을 움직이면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일상과 평범한 거리의 사람들 속에 어느 노부부가 뽀뽀를 하고 있는 흑백 벽화를 보는 순간 확 빨려 들어가더군요. 흑백 벽화 속에 그림은 명암과 구도가 좋았으며,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나의 가슴에 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그 때 ‘그림은 테크닉이 전부가 아니구나! 테크닉은 그저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구나’하고 확신했지요. ‘나는 예술을 해야겠다. 이 길은 내 길이다’라고 마음먹으며 그 이후부터는 평범하게 지나치는 감정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서 작가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닌, 눈에 안 보이는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날그날 감정기록을 했던 것들은 독특한 작품세계의 시초가 되었다. 그의 작품을 일반인들에게 보여주면 그림을 감상한 사람들은 본인이 느꼈던 감정과 똑같이 느끼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한다. 이제는 더 이상 습작이 아닌 서 작가만의 감정이 실린 작품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림은 언어, 색과 선을 통해 감정 표현해내 “저는 그림은 언어라고 생각해요. 시대와 국경을 자유롭게 오가는 언어인 셈이죠. 감정을 전달하는 언어, 감정은 단어로는 설명하기 정말 어렵고, 복잡하지만 그림으로는 정말 간단해요! 그리고 더 강렬하게 와 닿죠. 사람들이 제 그림을 봤을 때 ‘아! 행복이란 건 이런 감정이었지. 슬픔이란 이런 감정이었지’하는 것들을 느꼈으면 해요. 그래서 저는 제가 느끼는 가볍고 무거운 일상들을 주제로 그림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 영유아부터 연세가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제 그림을 보고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제가 쓰는 색과 선 때문이지 않을까 해요. 영유아들은 시각적인 면에 미숙한 발달로 그림책들을 보면 주로 두꺼운 선을 사용하고 색 대비가 강하고, 따뜻한 붉은 계열인 난색계열을 주로 사용해요. 여러 감정을 전달하려면 난색만을 쓸 순 없기에 한색과 중성색을 사용할 때도 많지만 제 그림에 색 대비가 강하고 선이 두껍고 특징만을 잡아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은 남녀노소가 그림을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감정을 그린다는 것은 삶을 정말 리듬있고 색감 있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며, 그림을 그리는 것은 전공자들만이 아닌 누구든 그릴 수 있다고 강조하는 서 작가. 누구나 그릴 수 있고 감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림’이라고 강조했다. 그림을 감상하는 독자들에게 메시지가 있다면……. “제 그림이 세상 어디에든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제 그림을 보고 감정을 느끼고 삶의 색이 더 다채롭게 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가 구하는 작품세계입니다. 그래서 저는 작품을 티셔츠나 모자, 신발, 예를 들어 칫솔 같은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자주 쓰는 곳에 그림을 넣고 싶어요. 사람마다 전부 살아온 방식과 느끼는 것들이 다르다 보니 같은 그림을 보고도 모두 다르게 해석하는 것을 보고 저는 마치 거울을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당신이라는 사람의 감정에 이런 면을 제 그림은 이렇게 비춰 보게끔 해주는 역할이랄까요. 그러니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제 그림을 보고 정말 마음껏 느끼고 즐겨 주셨으면 합니다.” [1113]
    • 문화
    2021-03-31
  • 베이비복스 1기 리더 정현전, 부산 유명 맛집 '초함' 대표로 제2의 인생 펼쳐
    태극기 한복 모델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정현전 대표 핑클, SES와 함께 국내 1세대 아이돌로서 많은 인기를 얻었던 걸그룹 ‘베이비복스’ 부산에서 모델로 활동하던 정현전, 정시운과 리드보컬을 맞은 차유미, 무용을 전공한 김이지, TV 공개방송을 구경하다 픽업된 이희진이 바로 1996년에 결성된 베이비복스의 1기멤버들이다. 이들은 3년 여 간의 연습기간을 거쳐 1997년 정규 1집 'EQUALIZEHER'로 데뷔해 타이틀곡 <남자에게(민주주의)>로 왕성한 활동을 시작했다. 베이비복스는 2004년까지 한국에서 총 8장의 음반을 발표했고 아이돌 1세대 중 디바 다음으로 가장 많은 정규 앨범을 발표한 그룹으로 보컬, 댄스, 랩파트를 각각 맡는 21세기 현재 완성형 아이돌 구성을 갖춘 유일한 그룹이라고 평가받아오고 있다. 그중 1기 리더를 맡으며 맡언니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 정현전씨를 만났다. 고향 부산으로 돌아와 자신이 좋아하던 '요리' 솜씨를 맘껏 펼치며 유명 맛집 대표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그녀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식으로 정리해본다. _박정호 기자 Q> 유튜브 채널 <근황올림픽> 출연 이후 더 많은 관심을 받고 계십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코로나19로 인해 다들 힘든 시기지요. 저 역시 방역에 신경을 많이 쓰며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제가 운영하는 '초함'은 오픈형 식당이 아니라 룸으로 이루어져 있어 손님들이 꾸준히 찾아주고 계십니다. 방 크기도 다양해서 가족, 친구, 동호회, 회식 등을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인데 지금 시기에 맞아떨아졌어요. 하지만 그래도 작년엔 여파가 있어 자연스레 여유 시간이 많아졌는데 그동안 메뉴 개발에 전념했습니다. 외식경영에도 관심이 생겨 외식경영학 박사과정 수업도 들으면서 나름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Q> 데뷔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학교에서 '벙어리'냐고 할 정도로 말이 없었어요(웃음). 그래서 친한 친구들은 항상 발랄한 성격들이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장래 희망이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었으니 말 다했죠. 요리하는 걸 좋아해 늘 '큰 냉장고가 있는 집에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몸이 아파 병원에 다닐 땐 간호사가 될까 하기도 했는데 그때 TV에서 전인화 선배님이 장희빈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연기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모두에게 “영화배우가 되어서 여러분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겠다”라고 말했다고 하니 의외로 당돌한 면도 있었나봐요. Q> 처음 캐스팅 당시를 회상해본다면. 광안리에서 길거리 캐스팅을 받았어요. 학생 때 당시 잡지나 CF에도 간간히 출연하고 있었는데 매니저 분이 당시에 주신 명함이 제 눈엔 허술해 보여 버렸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나중에 알고 있던 작가분이 연락오셔서 그 매니저분에 대해 확신을 주신 바람에 다시 인연이 닿게 되었습니다. 면접에서 “뭐가 제일 하고 싶냐”라고 물어보기에 “연기자요”라고 답했어요. 그러니 흔쾌히 한번 해보라고 하시더군요. ‘토요일 토요일 밤에’와 단막극 등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버니까 너무 즐겁더라구요. 그러다 매니저님이 “연기는 나중에 하고 내가 가수 매니저니까 가수에 도전해보는 건 어때?”라고 물어보시기에 뜻에 따라 가수 연습생이 되기로 했죠. 멤버가 몇 번씩 바뀌는 치열했던 연습생 시절을 보냈었지요. Q> 베이비복스 활동 당시는 어땠나요? 항상 젝스키스 뒤의 순서로 나갔으니까 격렬한 춤이 많아 부상을 많이 입었죠. 멤버 중 차유미는 부상으로 인해 무릎에 물이 차 탈퇴하기도 했구요. 그 와중에도 마냥 즐거웠어요. 저는 항상 꿈에 가득 차 있었죠. 무대를 하나 만드는 것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컨셉을 어떻게 잡을지 매일 연습하며 구상했어요. 환경이나 상황이 바뀌면서 완성된 무대가 엎어질 때도 있었지만 저는 마냥 행복했어요. 당시 3사 방송에 나오는 것 자체가 쉽지가 않았던 시절에 사장님을 잘 만나서 7월부터 12월까지 47회를 출연할 정도로 바빴습니다. 일정을 소화하려 심야 고속버스를 타는 날이 참 많았는데 텅 빈 고속도로의 가로등 불빛과 버스의 불빛이 막힘없이 뻗어 나가는 모습을 보는 걸 즐겼어요. 끝없는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나의 미래도 불빛처럼 끝없이 펼쳐진 것 같았죠. 행복했던 날들이었지만 저도 활동을 길게 하진 않았습니다. 연예계를 직접 경험해보니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꿈을 높이 잡아라’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때의 저는 다른 목표가 없었고 ‘연예인’이 되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다시 생각해보면 제가 끈기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리더로서 힘들었던 일들이 많았어요. 팀을 컨트롤 해야 했고 총대를 메야 했던 일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그만둔 걸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Q>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항상 감사했던 게 무대에 설 때마다 관객분들께서 ‘젝스키스 보고 베이비복스 보고 가자’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1집 '남자에게’라는 노래가 있었는데 나레이션이 엄청 파격적이어서 그런지 인기가 상당했던 기억이 나네요. 활동 시기가 IMF와 겹쳐 앨범도 많이 팔리지도 많았고 전반적인 분위기가 어려웠지만 하루에 스케줄이 11개를 소화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차를 타고 방송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공연하기 위해서 전국을 많이 돌아다녔어요. 제주에서 강원도로 갔던 기억도 나네요.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아서 감사한 기억뿐이에요. Q> 탈퇴 이후 공백기에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다시 연기연습도 하고 다른 R&B팀 연습도 하며 서울에서 있었습니다. 그때는 또 뭘 해도 안 됐어요. 팀을 모아도 해체되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사람이 때와 기회는 늘 오는 것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되었죠. 10년 정도 서울 생활을 하다가 부산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친구들이 오면 항상 초읍에 '초함'이라고 제가 좋아했던 가게에서 식사를 하곤 했는데 인연이었는지 어머니께서 건물을 구입하시고 덥썩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힘들어서 울기도 했는데 벌써 5년 차네요. 어릴적부터 음식을 만들고 즐기는 걸 좋아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손님들이 제 음식을 맛있게 드셔주셔서 늘 감사하죠.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외식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초함만 성장하는 게 아니라 초함이 자리한 부산 초읍 지역도 함께 살아날 것이라는 목표로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으신 말씀. 그래도 어릴적 꿈이 현모양처였는데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웃음). 아들이든 딸이든 하나 낳고 서로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과 살아보고 싶어요. 사람 마음 중 가장 좋은 마음이 사랑(愛)이라잖아요. 사람들이 ‘내 가족도 소중하지만 타인도 남의 소중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조금 더 생각을 열어 사소한 문제가 생기면 그냥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라고 넘겼으면 좋겠어요. 지금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끼고 서로 얼굴을 가리고 살아가고 있잖아요. 나중에 마스크를 벗을 때가 곧 올 테니까 그때까지 서로 마음속에 ‘사랑 愛’를 많이 새겨두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 대표는 인터뷰 내내 여전히 도시적이고 아름다운 외모와는 달리 꾸밈없는 털털한 모습으로 반전 매력을 드러냈다. 그녀가 운영 중인 '초함' 역시 마찬가지. 빼곡한 건물들 사이 시골 느낌의 정겨운 흙집의 모습을 한 '초함'은 투박하지만 정겹고 세련되진 않지만 편안한 곳이다. 푸짐하기만 한 밥상은 차리기 쉽지만, 품격있으면서도 깔끔한 한식 테이블은 이외로 어렵고 낯선 법. 이곳에서 나오는 한식의 맛과 멋을 살린 차림새는 예사롭지 않다. "한식이라고 해서 전통만을 고집하면 자칫 올드한 테이블이 될 수 있어요. 심플하면서 간결한 그릇과 음식이 돋보이는 담음새가 중요하죠." 주인장의 따뜻한 감성이 깃든 '초함'이 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장소가 되길 기대해본다. [1113]
    • 문화
    2021-03-31
  • ‘모자람 없이 온전하게’ 공간의 정체성을 오롯이 담아내는 감각적인 디자인 스튜디오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공간 계획과 클라이언트의 니즈가 적절하게 맞아 떨어졌을 때, 비로소 이들 모두가 만족하는 공간이 탄생된다. 깊이 있는 소통을 통해 고객의 욕망을 읽어내고, 막연한 그들의 이상을 구체화시켜 머릿속에서만 그리던 공간에 대한 꿈을 실현시켜주는 젊은 디자이너 그룹을 만났다. 주식회사 ‘오롯이’는 단순한 디자인 작업을 넘어 클라이언트의 이상을 오롯이 담은 공간을 구현해내는 프로젝트로 단단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작업만 잘하기 보다 고객에게 착한 업체로 다가가고 싶다’는 유진우 소장, 그의 말 속에서 오랜 시간 변하지 않을 굳건한 마음을 만났다. _정효빈 기자 ‘남다름’을 발견하는 힘 색다른 시도와 안목이 빚어낸 창의적 공간 주식회사 오롯이는 경상북도를 주 무대로 활동하며 젊은 감각과 남다른 안목으로 개성 있는 공간 프로젝트를 수행해온 디자이너 그룹이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에만 치우치기보다 이용자의 편의를 중심으로 한 설계로 내실 있는 포트폴리오를 쌓아온 유진우 소장. 클라이언트와의 소통을 기본으로 한 그의 디자인 철학이 투영된 공간에서는 디자이너와 고객 모두가 행복으로 충만하다. “토목학과 졸업 후 우연찮게 지인이 운영하던 회사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전공과 다른 부분이 많았지만 일을 하다 보니 공간을 디테일하게 터치하는 점이 상당히 매력적이더라고요. 어린 시절부터 남들과 똑같은 것보단 색다른 것에 관심이 많았고, 사물을 보는 시각도 조금은 남달라서인지 이 일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어요. 이후 부친께서 운영하시던 건물관리 회사에 인테리어 사업 분야가 추가되며 운영에 참여하게 되었고, 2017년 법인기업으로 ‘주식회사 오롯이’가 새 발걸음을 내딛게 됐습니다.” 인터뷰가 이루어진 경북 포항 소재의 ‘오롯이 스튜디오’. 과거 병원으로 운영되었다던 건물은 본래의 레트로함을 간직한 채 모던한 간판과의 조화로 독특한 멋을 자아내고 있다.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서니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된 벽면과 내부 곳곳에 독특한 소품들이 가득, 공간 전체에 빈티지 감성이 짙게 묻어난다. ‘사용자의 취향을 담아 주인과 꼭 닮은 공간을 구현시킬 때, 공간 디자이너로서 일의 매력과 즐거움을 느낀다’는 유진우 소장. 그의 확고한 취향이 고스란히 녹아든 공간을 마주하니, ‘사용자와 닮은 공간’이라는 설명이 어느 때보다 쉽게 와닿는다. 강렬한 개성과는 상반된 섬세함과 진중함을 지닌 유진우 소장. 새삼스럽지 않은 담백함과 무엇 하나 특별한 건 없다는 듯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모습은 화려하게 드러내지 않아도 고유의 멋스러움이 드러나는 그의 작업 공간과도 상당 부분 닮아있다. 쉽게 지나치는 평범한 사물에서도 가치를 발견해내는 힘을 지닌 유 소장은 공간을 구성함에 있어서도 본래의 용도가 아닌 색다른 방식으로 자재를 활용할 때 흥미로움을 느낀다고. ‘특정 공간만이 가진 유일한 특징을 부여해드리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에게는 건물 철거 현장과 철물점, 고물상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장소다. “평범한 자재를 이용하더라도 그대로 사용하기보다 신선한 방법을 접목시키려고 해요. 바닥재를 천장에 이용한다던지, 평범한 자재를 뒤집어 시공해 색다른 질감을 표현하기도 하고요. 뒷면 고정부분이 ㄷ자 형태인 철재마감재를 옷가게 인테리어에 어떻게 접목할지 고민하다가, 원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돌출 고정부분을 뒤집힌 상태로 시공해 한쪽 벽면 모두가 옷걸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시공한 적이 있습니다. 독특한 자재가 아니더라도 발상을 조금만 전환하면 공간 전체를 살리는 포인트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좋은 공간이란 이용자가 편안함 느끼는 것 의견 차 좁혀나가는 소통에 집중해 고객에게 ‘착한 업체’로 다가가고파”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며 공간을 이용하는 이들의 편의와 만족감을 높이는 프로젝트를 수행해온 유진우 소장. 특별한 홍보를 진행하지 않았음에도 그가 작업한 특색 있는 공간들이 입소문을 타며 자연스레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포항 소재 기업인 ‘포스코플랜텍’ 사옥 내부의 북카페와 직원전용식당, 휴양지를 연상시키는 태닝샵 등 그의 손길로 탄생한 다양한 공간들이 대표적인 예다. “포스코플랜텍으로부터 이용하지 않는 사무공간을 북카페로 리모델링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이후 클라이언트의 만족도가 높아 해당 기업의 직원전용식당까지 추가 인테리어 작업을 진행하게 됐죠. 직원들의 복지 향상에 목적을 둔 공간인 만큼, 직원식당은 힘들게 일하는 직장인분들께서 식사시간만이라도 외식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레스토랑 같은 모습으로 꾸몄습니다. 이 외에 ‘몰디브’라는 이름의 태닝샵도 성공적으로 작업이 완성돼 해당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디자인 컨셉이 좋다’는 연락을 받기도 했어요. 아무래도 공간을 이용하시는 분들이 만족했던 프로젝트가 제 기억에도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웃음).” 수많은 클라이언트들이 머릿속에 공간을 상상하며 들뜬 마음으로 인테리어를 의뢰하지만, 현실은 모든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경제적인 여건을 포함한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 그 합을 맞춰나가는 것 역시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클라이언트와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유진우 소장은 이러한 갈등을 푸는 해법으로 ‘모든 것을 오픈하는 방식’을 택했다. 공사의 평당 시공비를 공개하는가 하면, 자재 내역서나 인건비 등 고객이 의구심을 갖는 부분이 생기면 세부 내역까지 전부 공개하며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고. 이는 ‘수익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유 소장의 신념에서 비롯됐다. 이와 더불어 10년 가까이 유 소장과 손발을 맞춰온 시공팀의 역량과 이에 따른 완성도 높은 공사 역시 오롯이가 가진 경쟁력 중 하나다. 공정표에 따른 정확한 공사 진행과 더불어 클라이언트와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매번 현장에 방문하지 못하는 고객의 불안함도 잠재웠다. “매번 작업 현장에 오기 힘든 클라이언트분들에게 저희 작업 모습을 수시로 촬영해 보내드리곤 합니다. 주택 신축 공사같은 경우 건물 뼈대에 시멘트를 바르기 전 그 속에는 어떤 자재가 들어갔는지, 단열 처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등 집이 완성되고 나서는 확인하기 힘든 부분을 작업 과정 중에 촬영해 고객분들에게 보내드리고 있어요. 자세한 정보까지 공유하다보니 저희를 상당히 신뢰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일하면 이윤도 적고 힘들지 않느냐’고 주변에서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저희가 당장 배부른 것보다 고객분들이 좋은 공간에서 멋진 생활을 누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기업의 이윤보다 항상 먼저 추구되어야 할 가치죠.” “인테리어는 물론 건물위생관리 등 공간에 관한 올인원 서비스 제공하는 기업으로 거듭날 것” “클라이언트가 가진 이상과 저희가 정한 콘셉트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을 때, 저와 소비자의 만족감이 상상 이상으로 펼쳐지기도 해요. 그런 순간엔 정말이지 대단한 희열을 느끼죠. 그분들에게 얻은 힘으로 저희가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유진우 소장은 ‘좋은 공간이란 사용자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곳’이라고 정의한다. 편안함은 특정 장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공간에 머무는 이들이 진정으로 그곳을 애정하고 아낄 때 피어오르는 감정이라고 믿는다고. “어떤 규모의 공사이던 간에, 고객분들에게는 목숨 같이 소중한 비용일 수 있다는 걸 저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몇 해를 모아 작은 가게를 준비하는 분들도 계실 테고, 평생 모은 돈으로 조용한 시골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분들도 계실테죠. 그렇기 때문에 작은 공사일지라도 절대 함부로 대할 수가 없습니다.” 주식회사 오롯이는 유진우 소장의 부친이 운영하는 ‘주식회사 로하스’에서 독립한 기업으로, 주택 건축과 인테리어, 리모델링은 물론 건물위생관리 등 건물에 관한 전반적 케어를 제공하고 있다. 공간의 처음과 끝을 모두 함께하는 서비스를 ‘오롯이’ 한 곳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 유 소장은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건물에 관한 전반적인 관리 역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업 분야”라며 “10년 후엔 건축과 관련된 올인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 앞으로도 고객이 공간 안에서 최상의 편리함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기업이 되겠다”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최근 기업체의 요청으로 다수의 작업을 수행하며 저희 오롯이에 관심을 가져주는 분들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개인 클라이언트뿐만 아니라 큰 규모의 작업도 앞으로 더욱 활발하게 진행할 예정입니다. 개인적인 꿈이라면, 중학생인 제 아들이 건축에 관심이 많아요. 아들과 꿈에 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 편인데, ‘네가 건축과에 진학하면 나중에 아빠와 한 공간에서 함께 일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하곤 해요. 가족과 함께 ‘오롯이’라는 이름을 오랫동안 지속해나가는 것이 제 꿈입니다.” 공간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편안함을 제공하고 일상의 행복을 더해주고 있는 주식회사 오롯이. 많은 이들이 몸 담고 있는 공간에 그들의 진심이 깊이 스며들길 바란다. [1112]
    • 문화
    2021-03-22
  • growing together 함께 성장 bearing together 함께 견디고 sharing together 함께 나누고 enlightene together 함께 깨닫고
    모든 사람은 늙는다. 거스를 수 없는 절대 진리에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고,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순응하며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여기 또 한 사람, 나이 드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매 순간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 의사출신 70대 신인가수이자 보건의료인으로, 날마다 인생 최고의 날을 살아가는 사람 주혜란 박사를 만나 젊게 그리고 멋지게 사는 에너지의 원천이 무엇인지 물었다. _ 우호경 취재본부장, 주정아 기자 노인들을 격려해오며 산 세월 대한민국 여성 최초, 최연소 보건소장을 시작으로 한 평생 보건의료인으로 소외된 이웃을 돌보며 사랑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주혜란 박사. 노년의 우아한 아름다움과 건강한 정신을 표출하며 행복을 전파하고 있다. 봉사하는데 나이는 상관없다며 노인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마음을 치료하고 있다. 즐거운 마음과 행복한 마음으로 삶의 의욕을 가지고 살면 나이들 겨를이 없다고 말하는 그녀. 인터뷰하는 행사장에서도 그녀를 찾는 이들이 너무나 많은 인기인이었다. 일흔 여섯 살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고 있는 주 박사에겐 모든 것들이 몹시 어울린다. 의사, 가수, 시니어 모델 등의 일들이 주혜란 박사에겐 자연스럽다. 젊음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아도 청춘은 꿈꾸는 사람에게는 떠오르는 태양인 것이다. “봉사하는데 나이는 문제 될 것이 없다”며 노인들을 격려하며 희망을 전하는 일로도 하루가 바쁜 그녀. ‘소외된 이웃에게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는 대한민국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여성 의학박사’는 그녀에게 딱 떨어지는 수식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에 빛이 있으면 스스로 밖이 빛나는 법 주혜란 박사는 지난해 보건대상 시상식에서 국민 보건증진에 공적이 지대하고, 보건학발전에 이바지한 바의 공로를 인정받아 보건대상을 수상했다. 그녀에게 수상소감을 들어봤다. “평생을 보건의료인으로 살아왔습니다. 지난해는 생의 황혼기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을 한해였지요. 개인적으로 너무나 가슴 벅찬 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보건의료인으로 한 길만 달려온 제 삶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순간이었죠. 절대 혼자 힘으로 이룬 것은 절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 순간 가장 생각나는 사람은 아버지이십니다.(보건의료인으로서 큰 버팀목이 되어주신 보건의료인들의 스승이자 아버지이신 송정(松亭) 주인호 박사가 바로 그녀의 아버지다). 작년에 모교이기도 한 고려대학교에 주인호 강의실이 개설되면서 아버지에게 조금이나마 보은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거 같아요. 제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상을받게 되어서 아버지의 가르침을 열심히 따라왔다고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안에 빛이 있으면 스스로 밖이 빛나는 법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내부에서 빛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라고 말씀하신 슈바이처 박사. 그의 말처럼 제게 빛은 아버지셨고 그분이 인도해주신 보건의료인의 사명감이 아니었나 스스로 곱씹어 봅니다.” 그녀가 한 문장 한 문장 정성껏 전할 말을 글로 전하며 감동이 되었다. ‘Bravo My Life’ 병약하고 어려운 노인들과 함께하고 싶은 바램. 소외된 이웃의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는 대한민국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여성 주혜란 박사. 그녀는 병들고 무기력한 노인이 아니라 건강한 사회의 자산으로,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변화의 주체로 노인들의 역할을 강조하며 대한민국 모든 노인들이 함께 행복하기 위해 너무나 바쁘다고 말한다. 인터뷰 장소인 성동구 고산자로 8길 5에 위치한 ‘경신빌딩’은 한국전쟁 이후 부모님께서 사시던 곳으로 어머니 김경신 박사의 뜻을 기리며 현재는 송정요양원으로 운영 중이다. 지하 음악실에서는 대한민국 최초 1호 DJ 최동욱 선생의 '세시의 다이얼'이 진행 중이며 매주 화, 목, 토 PM 3시, 5시에 열린다. 음악 감상 후에는 주 박사의 배려가 담긴 식사와 기분 좋은 와인 한 잔으로 깊어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마련되어 있다. “한국 사회에서 나이 든 사람에게 대한 편견을 많이 드러낸다. 아무것도 모를 것으로 생각하고 젊은이들은 그들의 문화에 끼워주지도 않는다. 무조건 나이가 들었다고 소외시키면 안 된다. 나이 들어 노인이 되면서 경제인의 능력을 잃었다고 생각하며 인정하지 않고 펌하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 든 사람들한테는 명철한 두뇌와 지혜가 있다. 지식은 컴퓨터를 통해서 얻을 수 있지만, 삶의 지혜는 어른들에게서 나온다.”라며 젊은이들에게 당부하는 멘트가 가슴에 와닿는다. “growing together(함께 성장), bearing together(함께 견디고), sharing together(함께 나누고), enlightene together(함께 깨닫고) 젊은 세대와 나이든 세대가 서로가 곁을 줘서 소통하고 이해되고 사랑하게 되길 바란다. 나이 차에 대한 장벽을 허물고 존중하는 문화를 만드는데 소임을 다하고 힘을 보태겠다"고 전하는 주혜란 박사의 표정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고 곁에 있는 기자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의 어머니 릴리안 여사의 말처럼 “매일 맞이하는 아침이지만 오늘 다시 새롭다. 오늘을 가슴 설레이는 체험으로 만들어야겠다”라고 말한 것처럼 꿈을 가지고 충실히 삶을 꾸미고 있는 그녀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인 것 같다. 자유로운 노년의 모습을 보여주며 우아하게 나이들고 있는 주혜란 박사에게 존경의 박수를 아낌없이 보낸다. •대한민국 여성 최초, 최연소 보건소장 •충북 옥천군 보건소장 •경기도 의정부시 보건소장 •서울시 강동구, 용산구, 강남구 보건소장 •주클리닉 원장(서초, 강남, 강서) •한국 여성 최초 환경부 특별자문위원 •미국 국립보건원 소수민족 에이즈 역학 연구위원 •세계환경기구 특별자문위원 •세계 STOP AIDS운동 본부장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現) •사단법인 대한노인회 중앙회 의료봉사 위원장 •이탈주민들로 구성된 파랑새 예술단 후원회장 •UNESCO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록된 사단법인 남사당 이사장(現) •사단법인 대한보건협회 홍보대사 •사단법인 대한노인회 서울시연합회 여성회장 [1112]
    • 문화
    2021-03-22
  • 최고의 목재, 최고의 하드웨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완벽한 작품을 만드는 공간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지는 요즘 목공예 가구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모든 사람의 생김새가 다르듯 나무도 자란 환경이나 세월에 따라 형태, 무늬, 빛깔 모두가 달라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구를 만들기에는 가장 적합한 재료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목재 선정부터 설계, 제작 등 모든 과정을 100% 사람의 손으로 진행하여 특별함을 더해주는 목재 가구공방을 특히나 많이 찾는다. 이를 따라 수제가구를 제작하는 목공방 창업이 활성화되는 가운데 양질의 목재에 독일의 우수한 하드웨어 브랜드 ‘헤펠레’ 의 기술을 접목하여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가구를 만드는 대구의 한 공방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이에 주간인물이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로 249-2에 위치한 화제의 ‘헤펠레 목공방’을 찾아가 채성수 대표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정호 기자 채성수 대표는 15년 정도 렌터카 사업을 했다. 승승장구하던 렌터카 사업에 대기업이 자리를 잡으며 차차 수주가 줄었다는 그에겐 대기업이 절대 손댈 수 없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어릴 적부터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흥미와 소질이 있었다는 채 대표. 그렇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구를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목공을 시작하게 되었다. “3년간 홀로 목공에 전념하며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나갔습니다. 이 일은 몸으로 부딪치며 실력을 쌓아가야 하는 점이 중요하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어도 절대 좌절하진 않았죠. 첫 시작을 ‘헤펠레’라는 하드웨어를 제작, 판매, 유통하는 업체와 함께 시작하며 하드웨어에 대해서도 동시에 많이 배웠습니다. 거의 모든 공방이 가구를 제작할 때 고급 원목을 추구할 것이기에 저에겐 무기가 필요했죠. 그것이 바로 고급 하드웨어입니다. 가구의 가장 기본적인 경첩, 레일 내부 선반의 움직임까지 좌우하는 하드웨어까지 최고급 제품을 쓰는 공방은 찾기 힘들 것이라 자부합니다. 더불어 보다 튼튼하고 건강까지 생각하는 가구가 되기 위해 마무리 단계에선 순수 완전 천연오일인 ‘AURO’ 오일을 여러 번 얇게 바르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 코팅하고 있습니다.” 원목 외에는 절대 작업을 하지 않는다는 채성수 대표. 또 그는 가구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작업이 없는 날이면 완성품을 전부 해체해 다시 완벽하게 조립하며 신중하게 수많은 도전과 연습을 해오고 있다. “대충 만들어서 마구 팔 생각이었다면 시작하지도 않았습니다.”라며 그는 제품에, 더 나아가 그의 작품에 대한 애착을 아낌없이 표현했다. “아침 6시 출근 새벽 1시에 퇴근하는 날이 대부분이죠. 목재 구매, 배달, 시공 전부 혼자서 합니다. 모두 제 손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똑같은 제품을 만들지 않겠다는 게 제 다짐입니다. 가끔 혼자서 큰 목재를 옮기거나 작업을 할 때면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많고 많은 목공방 중 저를 선택하신 이유를 꼭 보여드리리라 다짐하며 다시 작업에 매진하곤 하죠. 그렇게 제작한 제품은 평생 A/S를 보장해드립니다. 단순히 해당 목재를 교체하는 것이 아닌 100% 다시 제작해서 교환해드리죠. 혼자서 일을 하다 보니 일정이 잘 맞지 않는 때도 있지만 괜찮다며 오히려 감사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힘을 많이 얻습니다(웃음).” 원목 싱크대, 수납장, 침대, 테이블에 이어 리히텐베르크 기법이 들어간 도마까지, 나무로 만들 수 있는 제품은 모두 제작하는 채성수 대표다. 그중에서도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는 ‘편백 발목경사대’와 ‘원목 중문’은 고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특히 그의 중문은 상, 하단의 마감재까지 전부 직접 제작하여 전국 각지에서 러브콜을 받는가 하면 아이들의 약한 피부와 활동적인 면을 고려해 까다롭지만 각진 모서리 하나 없는 발목 경사대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날 정도다. “똑같은 기계를 만지지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를 제품을 제작하더라도 한 공정에서 몇십 번씩 확인하고 수정하고 다듬으며 진심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제 제품은 대부분 다 알아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연습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남들보다 더 완성도 높은 제품을 만들고 싶어요. 저에게 주어진 모든 작업을 배움의 자세로 최선을 다해서 임하겠다고 전하고 싶어요. 제 직업에 긍지를 가지고 앞만 보고 나아가겠습니다!” 어떤 손님이 어떤 물건을 주문할지 모르니 일이 모험과 같다고 말하는 채성수 대표.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다시 구슬땀을 흘리며 커다란 목재를 작업대로 옮기는 그의 모습을 보니 좋은 제품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수적천석(水滴穿石)’ 이란 사자성어가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최고의 작품을 향해가는 그의 행보에 많은 기대가 된다. [1112]
    • 문화
    2021-03-22
  • 직접 닿을 수 있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나눔을 실천하는 도량
    지난 2월, 홍은사는 부산 서대신4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통해 생활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백미 1,000kg을 기탁했다. 홍은사는 오랫동안 관내 백미 기탁, 서대신4동 경로한마당 개최 후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눔을 실천해온 도량이다. 주간인물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할 수 있는 일’로 지역사회에 온기를 전하는 성각스님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정호 기자 “어리석은 사람은 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고 반대로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만을 열심히 한다.” -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中 - 30년 전 성각스님과 함께 부산 서구 서대신4동 꽃마을로에 터를 잡은 홍은사, 아늑한 공간에 이곳저곳 신도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도량의 모습만 봐도 주변을 살피고 베풀 줄 아는 스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오랜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며 매년, 지역에 성품을 기탁하고 경로잔치를 지원하는 등 아낌없는 나눔을 실천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사태로 인해 지역의 행사가 대부분 취소되자 소외, 저소득계층에게 직접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백미를 기탁했다. “관내에 어르신들이 많이 계셔요. 다들 적적하게 지내실 모습을 알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즐거움을 더 드리고자 코로나 이전에는 주민자치회, 새마을 부녀회와 함께 70세 이상의 어르신들을 모셔 경로한마당을 개최하곤 했죠. 학교를 빌려서 하기도하고 구덕야영장 광장에서 다채로운 축하공연과 함께 어르신들을 위한 복지사업 홍보도 같이 진행하곤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대면 행사의 진행이 어렵다 보니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크고 작은 기탁으로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웃음).” 성각스님은 홍은사를 관리, 운영하는 주지이기도 하지만 부모의 인연을 잃은 아이들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이기도 하다. 출가하고 절을 돌보기 시작했을 당시엔 갓 태어난 아이를 절에 두고 가버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그렇게 인연이 닿거나 부모를 일찍 여윈, 갈 곳 없는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일인 부모가 되기로 했다. “아이들을 거두어 지내기 시작한 게 25년이 넘었네요. 정신없이 함께 살아오다 보니 아이들이 벌써 대학교를 다 졸업하고, 대견하게도 직장을 구하고 가정을 꾸려서 제 품을 떠났습니다. 그중엔 인연이 깊은지 아직 저와 함께 지내는 아이도 있어요. 다 자란 아이들이 인사를 하러 오면 그날은 종일 기분이 좋아요. 이미 다 컸다면 큰 아이들이지만 제 눈엔 처음 데려온 그 날이 눈에 선합니다. 자라면서 별 말썽도 안 부리고 주는 부족한 사랑에도 항상 웃어줬던 아이들을 보면 아직도 저는 그저 좋습니다(웃음).” ‘똑같은 꽃이라도 아름다운 색깔과 향기를 내뿜어 사랑받는 꽃이 있듯이 실천이 따르는 사람의 말은 비록 그 메아리가 조용하지만 멀리 울려 퍼진다.’ - 법구경(法句經) 中 - 홍은사는 규모는 크진 않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신도들과 소통을 이어오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직접 찾아오는 신도들이 예전보다 줄었지만 찾아올 한 명의 신도를 위해서라도 꾸준히 경건하게, 겸손하게 법회를 이어오고 있는 성각스님이다. 또 고민이 있어 찾아오는 신도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한 뒤 방향을 잡아주는 이정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제 말을 듣고 큰 희망이 생기거나 실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항상 상대방의 인생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지고 방향을 제시해주려고 합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때로는 칭찬을 하기도 하고 직언을 해야 할 때도 있듯 이야기를 할 때 스스로 힘든 시간을 헤쳐나가실 수 있게끔 지혜를 드리려고 합니다. 누구든, 언제든 홍은사에 오시면 차 한 잔 내어드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웃음).” “지난 2020년 참 힘들었죠. 모두가 힘든데 특별한 일은 갈수록 없고…그래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잘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며 조금만 더 힘내주면 좋겠어요. 코로나가 하루빨리 종식되어 이 각박한 세상의 마음을 다 녹이고 모두가 마음을 열고 서로가 가족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다시 만났으면 합니다. 다시 불자분들, 어르신들을 모실 수 있는 날을 위해 저도 공부와 기도에 매진하며 살아가고 있겠습니다. 부디 모두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웃음).” 이 대화를 마지막으로 성각스님은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까지 아낌없는 나눔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기자와 인사를 나눈 뒤 다시 법당으로 돌아갔다. 한없이 베풀며 살아온 그의 뒷모습이 참으로 따스해 보였다. [1111]
    • 문화
    2021-03-09
  • 희극인이자 언론인, 그리고 소셜테이너로서 문화로의 소통으로 희망을 선도하다
    안산문화재단의 비전과 가치는 미래기반 확충으로 안산 특화정책 개발 및 정보자료 축적, 문화 거버넌스 실현으로 국제화 행사를 브랜드화시켰으며, 문화 예술 안산시민 향유 제고로서는 프로그램 다원화, 찾아가는 문화프로그램 활성화, 예술동아리 활성화, 안산 국제거리극 축제 활성화에 두고 있다. 문화예술지원은 지역문화예술 지원 확대, 지역문화 거점화, 수준 높은 아트센터를 자랑하며, 단원미술관의 위상을 꼽을 수 있다 또한 사업환수율 제고 및 재정안정 및 직원역량 강화 및 우수인력 확보를 하며 평가 보상시스템을 구축, 성과와 협업중심의 조직문화로 운영기반 튼실화를 나타내고 있다. 안산시민들의 높은 기대감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안산문화재단의 김미화 대표이사를 만나보았다. _주정아, 김현채 기자 ‘특별한 끌림’으로 시작된 문화 행정가로의 변신 안산과 김미화 대표의 인연은 어느 행사장에서 만난 ‘4.16 합창단’ 중 한 분에게 받게 된 책 한 권.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빠가 울면 너도 울고, 아빠가 웃으면 너도 웃겠지?’ 가슴 속 편지를 읽는 순간 마음이 너무 아파서 눈물이 하염 없이 흘렀습니다. 노래로서 마음의 슬픔을 녹여내고 그리워하는 그런 애달픔을 갖고 계신 분들이 사는 곳은 어디일까 궁금하더군요. ‘그분들이 슬픈 세월을 마무리 짓고 새로운 희망을 노래하는 세상이 온다면, 또 거기에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보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깊은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에서 코미디언으로 웃음을 전달할 수 있는 따뜻한 행정을 할 수 있겠다 싶어 자신 있게 도전했어요.” 그런 특별한 끌림으로 찾게 된 안산에서 만나게 된 거리축제는 코미디언으로서 코미디 페스티벌을 만들기도 했던 그녀에게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김 대표는 거리와 광장을 무대삼아 연극, 퍼포먼스, 무용, 음악, 다원예술 등 다양한 공연으로 도시민의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우리나라 대표 거리 예술축제인 <안산국제거리축제> 역시 대중문화인으로서 문화예술인들에게 기여하고자 한다. “106개국이 어울리는 화합의 도시인 안산이 가진 매력에 문화예술인으로서 경험을 보태 시민들이 가까이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이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김미화 대표의 색깔로 덧입혀질 안산문화재단에 거는 기대가 크다. 나의 경쟁력은 최선을 다해서 몰입하는 것 장사를 하시던 어머니와 병상에 누워계신 아버지를 대신해 어린 김 대표를 보듬고 예뻐해줬던 건 동네 어른들이었다. 의지할 데 없는 어린 소녀는 전파사 사장님이 만들어준 전용 마이크를 들고 노래도 부르고 주변인들의 흉내도 내면서 웃음을 주었다. 팔다 남은 자두가 개런티의 전부였지만 저녁이 올 때를 기다리며 행복했다. 그 때부터 그녀의 꿈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코미디언이 되고자 했고, 그 이후로 그 꿈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게 넘치는 사랑을 받았고, 받았던 사랑을 안산 시민여러분들이 안산문화재단을 통해 재미와 의미를 가져가실 수 있도록 또 한번 몰입해보고자 합니다. 언니처럼, 딸처럼, 맘씨좋은 이웃처럼 시민들께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해요. 편안한 문화공간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배로 느끼시길 바랍니다.” ‘나는 꿈을 이룬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김 대표, 코미디언,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사업가, 그리고 재단 대표까지 그녀는 어떤 자리에 있던지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해서 임했고 몰입하는 힘을 활용하는 것이 자신의 경쟁력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한다. 문화예술의 도시 안산의 예술적 가치를 알다 안산은 조선의 천재화가 단원 김홍도 고향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문화와 예술이 융성했던 곳이다. 지난해 김홍도의 ‘공원춘효도’가 안산의 품으로 돌아왔다. “68년 만에 고향에 귀향하는 공원춘효도를 맞이하는 데 누구나 예상하는 기념식을 넘어 좀더 색다르게 치르고 싶었습니다. 함께 즐기는 축연 행사를 기획해 판소리에 맞춰 공원춘효도를 재현하고 전통궁중무용단의 재래의식을 통해 안산의 품으로 돌아오는 색다른 퍼포먼스를 선보여 많은 호응을 얻었지요. 심훈의 상록수가 이곳, 안산에 있고 성호 이익 선생의 혼 역시 이곳에 깃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계몽운동가 최용신 선생이 태어나고 활동한 곳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또 하나, 문화예술인이라면 누구나 도전해보고 싶은 멋진 <안산국제거리축제>가 열리는 곳입니다.” 안산은 천혜의 관광문화 섬인 대부도가 자리한 곳으로 문화예술인의 도시답게 시민들의 문화수준도 매우 높은 곳이기도 하다. 인터뷰 내내 김 대표의 안산자랑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그녀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다. 김미화 대표와 함께 문화예술의 도시로 한층 더 성장하고 안산의 중심에 설 안산문화재단을 기대해본다. < 프로필 > •1964년 경기 용인 출생 •안산문화재단 대표이사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 KBS 2기 공채 개그맨 •前)한국백혈병환우회 홍보대사 < 수상이력 > •2012 제10회 언론인권상 특별상 • 2011 보건복지부장관상 •2009 제10회 국회대상 올해의 라디오 프로그램상 •2009 이웃돕기 유공자 포상식 대통령 표창 •2009 코미디대상 대상 •2008 제17회 대한민국무궁화대상 • 2002 기자들이 뽑은 2001 최고의 선행 연예인 •1998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대중예술부문 [1110]
    • 문화
    2021-02-19
  • 태초 이전부터 울려오는 우주의 에너지 ‘옴’ 모든 위대한 공덕을 성취할 수 있어···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를 함께 극복하자는 각계의 기부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불교계도 적극 동참하고 나섰다. 최근 2월 1일 설 명절맞이 이웃돕기 성금 200만 원 기탁을 포함해 20년 넘게 꾸준히 기부를 이어온 홍산스님을 만나기 위해 부산 영도구 절영로 281번길(영선동)에 위치한 ‘영선사’로 향했다. 약 60년 된 사찰로 흰여울 벽화마을을 따라 굽이굽이 봉래산 산비탈 가파른 오솔길을 땀 흘려 열심히 오르면 눈앞에 펼쳐진 남해바다의 풍광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화창한 낮에는 대마도가 코앞에 펼쳐진 것 같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그곳에서 환한 미소로 취재진을 맞이한 홍산스님의 편안하고 따뜻했던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이번 주간인물에서 집중 조명해본다. _김민진 기자 대웅전 앞, 넓은 바다와 법당 뒷면으로는 사방이 소나무로 법당 주위를 에워싸고 있어 경관이 수려하고 산사의 고요함이 숙연하여 신심을 갖고 열심히 기도하면 한 가지의 소원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곳으로 많은 불자들의 기도정진 사찰로 유명한 대한불교옴조계종 총무원 영선사는 2019년 10월 28일, 창종 대법회와 현판 제막식을 봉행했다. “불교옴조계종의 창종됨은 참으로 그 의가 자못 중대하기 이를 데 없고 그 사명과 책임 진실로 언어도단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대원이 구현 성취되어야 할 것이며 일시성불(一時成佛)의 대과가 이곳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누적의 죄업이 여기서 해소되어야 할 것이며 내성의 정진으로 증오와 불과를 여기서 얻어야 할 것입니다. 인천(人天)의 안목을 열 수 있는 명안종사(明眼宗師)가 이 도량에서 쏟아져 나와 격외의 고준한 설법으로 미륜(彌綸)을 제도하는 산림법회(山林法會)가 끊어지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강론 현담으로 항상 법륜상전의 계기가 마련되어 고해에 허덕이고 있는 군생을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언덕으로 인도할 수 있는 법열의 연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대한불교옴조계종 창종의 기본 정신이며 수행납자의 본분 사명일 것입니다.” ▲ 영선사 1대 총무원장 정오스님과 함께 한국 불교계를 보면 신도는 여자가 훨씬 많지만 비구니(bhikkhuni:여승女僧)는 비구에 비해 많은 제약을 받는다. 조계종 종정과 총무원장, 25개 본사 주지를 맡지 못한다고 종헌은 규정하고 있는데, “부처님 살아생전에는 불교에서 성차별이 없었다”라며 “석가모니에 의해 불교 교단이 만들어진 기원전 4세기경의 초기 불교에서는 남성과 동등하게 출가하는 여성 수행자가 있었고, 교단 내에서도 그 사람의 과거나 사회적 계층을 전혀 묻지 않고 남자 수행자와 평등하게 비구니로 자격을 부여했다”라고 설명한 홍산스님의 출가 사연이 궁금하다. “자식 넷 중에 아들 하나가 교통사고로 23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고 당시 신원을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해 한참 뒤에 아들의 시신을 찾게 되었지요. 여성 CEO로서 승승장구하는 때에 저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49재(齋)를 지내며 그길로 부처의 가르침을 만나고 출가를 결심했지요. 이후 불교학과에 진학해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업했던 사람인지라 제가 먼저 근본부터 제대로 알고 기도하고 불법을 전하고 싶었지요. 이 과정에서 느낀 바, 교리보다도 인성이 되어야 하고 내가 직접 도전하며 겪게 되는 산경험이 중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보살은 위로는 불교의 지혜인 보리를 추구하고, 아래로는 고통받는 다양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수행의 목적으로 삼는다는 뜻의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을 강조한 홍산스님은 “코로나19 위기를 겪는 지구촌을 보니 우리 안의 나약한 모습만이 아니라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지구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라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젊어서는 건강, 명예, 돈 등을 자랑하기 바쁘지요. 나이를 먹을수록 베풀고 나누어야 합니다. 내 것이라는 욕심부터 내려놓아야 하지요. 자식도 부모도 만날 인연들도 다 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설법하는 것이 가장 어렵지요. 우리나라 종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신교, 천주교, 불교만 보더라도 기본 밑바탕은 삼강오륜(三綱五倫)이기에 다 똑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화합의 종교로 거듭나야 하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YouTube 채널 운영을 통해 타지역에 있는 불자들과도 지속적으로 소통을 이어가며 학업, 취업, 결혼, 이혼 등 다양한 삶과 죽음의 문턱 속 문제들을 돕고 있는 홍산스님의 가치 있는 행보를 주간인물이 응원한다. [1110] <영선사 유래> 관음 기도 도량으로써 불기 2504년(서기 1960년)에 홍또연 보살이 창건하여 지역주민과 신도님들의 지극한 불심을 모아 대웅전, 천불전, 산신각과 용왕당 및 요사채를 건립하였으며 조계종 종단에 귀속된 사찰로서 법력 높은 큰스님의 원력으로 오늘날에 이르렀다. 불기 2513년(서기 1969년) 8월에는 영선사 화주(강현화 보살)의 아들(김정남 불자)이 당시 화물선 선원으로 근무 중 칠흑 같은 밤에 선상에서 실종되어 태평양 바다에 표류 중 장수거북이 등에 업혀 14시간 만에 구조되는 금세기의 기적이 일어나 세계인들을 감명케 한 바 있으니, 이는 모친 강현화 보살이 평소에 영선사 관음보살께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드린 결과였음이 입증되었다. 지난 불기 2546년 정월 보름 대법회를 회향하는 자리에서 영선사는 구사일생 살아난 김정남 거사께 장수패를 전달했다. 그 후로도 영선사는 지극정성으로 불공을 올린 신도들이 구병 및 천도의 기적을 체험하고 있어 영험한 기도 도량으로 정평이 나 있다.
    • 문화
    2021-02-19
  • 번뇌를 내려놓고 나누며 살자! ‘불자가 닮고 싶은 불자’가 되는 도량, 정종사
    한적한 경남 양산 평산동에 위치한 정종사, 사람 냄새보단 따뜻함이 가득 차 있었다. 이곳의 불자들과 함께 마음을 모아 매해 기탁을 이어오고 있는 여해스님은 코로나19로 많이 여윈 세상을 조금이나마 안아주고 싶다며 앞으로도 꾸준한 기탁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밝아오는 신축년(辛丑年)을 맞아 어려운 이웃들에게 백미 2600kg과 라면 300박스를 기탁하며 주변을 따뜻하게 한 여해스님과 차 한잔을 두고 대화를 나눴다. _박정호 기자 Q. 지역사회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해 온 정종사, 그간 어떤 사회공헌 활동들을 해왔나요? A. 이전부터 꾸준히 기탁을 해왔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운 분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어 신청자의 양심을 믿고서 이유를 묻지 않고 현금을 지원해 드리는 ‘자체 재난지원금’을 운영했습니다. 1차 지원금은 제 사비로 40분에게 50만원씩 나누어 드렸고 2차 지원금은 방생 후 여비로 신청자 20분에게 10만원씩 지원을 해드렸습니다. 또 연말에 쌀 20kg 130포대를 구매해서 통도사 자비원을 통해 양산지역 차상위계층을 포함해 취약계층 200여 가구에 전달하기도 했죠. 최근에 뉴스를 보니 코로나19의 여파로 정규직 취업도 힘들고 알바를 구하기도 어려워 컵라면으로 하루에 겨우 한끼를 먹거나 식사를 거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이 동네에도 그런 분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해 급할 때 간단하게 끼니라도 해결해 드리고 싶은 마음에 컵라면 300박스를 나누어 드렸어요. 보통 보시의 종착점이 사찰인 경우가 많지만 저는 정종사가 보시의 종착점이 아닌 복을 나누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늘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웃음). Q. 어떤 마음가짐으로 절을 돌보고 계십니까? A.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겪은 선대와 달리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쟁이란 시련을 겪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살기 위해 누구를 죽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살고 있죠.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 하고 마음속의 괴로움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울증, 불면증, 가정이나 직장 등에서 쌓인 스트레스로 웃음을 잃은 사람들에게 사회에서는 어떤 치유책도 내놓지 못했죠. 그래서 우리 불교가 사람들의 이런 정신적인 괴로움을 치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종사를 찾아주시는 분들 중에선 기독교나 천주교 신자들도 있고 아직 종교가 없는 분들도 있지만 종교를 떠나 마음속의 번뇌를 알아차리고 다스려 스스로 치유하고 내려놓는 방법, 부정적인 에너지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꾸는 길을 같이 고민하고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타인을 위하는 것이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요. 타인을 위하는 것이 바로 복을 짓는 것입니다. 그 복은 허투루 사라지지 않고 반드시 자신에게 좋은 결과로 돌아와요. 사람들이 마음의 괴로움을 없애고 밖으로 복을 짓는 삶이 고통을 줄이고 행복을 늘리는 방법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정종사의 주지소임을 보고 있죠. Q. 시대상의 변화에 발맞춰 어떤 포교활동을 펼치고 계십니까? A. 요즘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은 필수잖아요. 사실 정종사는 코로나가 오기 전부터 비대면 신행생활을 실천해 왔습니다. 8년 전쯤에 우연히 ‘스토리채널’이라는 SNS를 알게 되어 ‘여해스님 산중일기’라는 채널을 만들어 20여 명의 신도들과 함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SNS를 통해 제 생각을 전해주고 소통하다보니 벌써 구독자가 5000명이 넘었습니다. 구독자뿐만 아니고 비구독자분들도 와서 보기 시작하셨는지 게시물은 하루에 만 명 가까이 보고 계시더군요. 그렇게 SNS로 맺어진 분들이 지금 정종사 신도의 90%를 차지할 정도죠. 그렇게 먼 곳에서 찾아주시는 분들, 아직 얼굴을 보지 못한 채 기도해 드리는 불자님들도 상당수 됩니다. 또한 ‘정종사불자모임’ 밴드를 통해서 소통하기도 합니다. 포교활동의 핵심은 재정의 투명한 공개입니다. 정불회와 공승회 등 보시금이 들어오는 통장의 입출금 내역을 매달 SNS를 통해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어떻게 보시금이 쓰이는지 알려드리는 것이 상호간에 신뢰하는 마음을 만들기 때문이죠. 또한 투명한 시스템으로 운영함으로써 혹여 제 마음속에 재물에 대한 욕심이 자란다면 그런 시스템이 보완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Q. 신도들과 함께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입니까? A. 출가하고 몇 년 동안 경전과 계율을 공부하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하지만 인연에 따라 정종사 주지 소임을 맡은 후 신도님들과 함께 하면서 배우는 것이 더욱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젠 사람을 인도하거나 가르치겠다는 생각보단 앞으로 불자님들과 함께 더 공부하고 배우는 시간을 가지겠다고 다짐했죠. 주지로서 절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다 제 수행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주지가 되기 이전에 올바른 스님이 되고 싶어요. 수행에는 수많은 방법이 있고 그 가운데 제가 선택한 것은 불자님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완성’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웃음). 신도님들 역시 훌륭한 불자라는 칭찬이 주지스님의 입에서 나오는 것보다 다른 신도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 바람직한 모양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종사에 들어오면 보게 되는 현수막이 하나 있습니다. ‘불자가 닮고 싶은 불자가 되자’ 이 글귀에 모든 것이 담겨 있죠. 거만하고 남을 무시하거나 험담과 뒷담화를 습관적으로 하는 모습, 자신을 내세우고 자기 감정만 중시하고 자기 입장만을 고집하는 모습을 닮고 싶은 불자는 없을 것입니다. 불자가 닮고 싶은 불자의 모습은 자신을 비우고 내려놓는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신행생활이 자신도 이롭고 상대방도 이롭다고 항상 말씀드려요. 나를 내세우지 않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의 행복을 위함’이라고 전하고 싶어요. Q. 끝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A. 부처님께서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욕계(欲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욕계의 ‘욕’이 바라고 원하는 것이죠. 잘 생각해보면 사람이 이 세계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무엇인가를 바라고 원하고 기대하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것들 예를 들면 돈, 이성, 자동차, 집, 가족, 친구 등 태반이 외부에 있는 것들이에요. 외부의 것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면 행복을 느끼고 그렇지 않으면 힘들고 괴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내 몸 바깥에 있는 것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느냐… 아니죠. 이것을 불교에서는 구부득고(求不得苦), 구하여도 얻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자신과 제일 가까운 배우자나 자녀조차 내 뜻대로 안 되잖아요. 사실 자기 몸과 마음조자도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인생이죠. 그래서 행복한 인생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부처님께서는 무엇보다 먼저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욕심과 욕망이라는 업에 의해 유지되는 욕계라는 세계에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욕심을 줄이며 사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본래부터 사람도, 물건도 다 내 뜻대로 안 되는 곳이기 때문이죠.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기를 쓰고 다른 사람이나 주변 환경을 통제하려고 애쓰면서 아까운 인생을 소모하지 말고 그나마 몇 가지 뜻대로 되는 일에 감사하고 무탈한 일상에 감사하며 만족할 줄 아는 마음으로 살아보자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채우려고 애써왔던 그 수많은 시간들, 채워져야 행복해질 것 같은 느낌, 이제는 내려놓고 살아갑시다! 지금 나에게 없는 것들을 욕심내고 채워 미래의 행복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행복해지는 것을 방해하는 내면의 욕심을 내려놓아 보세요. 성취로 인한 행복도 있지만 성취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작은 것에도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욕심을 조금 덜 부리며 편안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자고 전하고 싶습니다. [1110]
    • 문화
    2021-02-19
  • 번뇌를 내려놓고 나누며 살자! ‘불자가 닮고 싶은 불자’가 되는 도량, 정종사
    한적한 경남 양산 평산동에 위치한 정종사, 사람 냄새보단 따뜻함이 가득 차 있었다. 이곳의 불자들과 함께 마음을 모아 매해 기탁을 이어오고 있는 여해스님은 코로나19로 많이 여윈 세상을 조금이나마 안아주고 싶다며 앞으로도 꾸준한 기탁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밝아오는 신축년(辛丑年)을 맞아 어려운 이웃들에게 백미 2600kg과 라면 300박스를 기탁하며 주변을 따뜻하게 한 여해스님과 차 한잔을 두고 대화를 나눴다. _박정호 기자 Q. 지역사회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해 온 정종사, 그간 어떤 사회공헌 활동들을 해왔나요? A. 이전부터 꾸준히 기탁을 해왔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운 분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어 신청자의 양심을 믿고서 이유를 묻지 않고 현금을 지원해 드리는 ‘자체 재난지원금’을 운영했습니다. 1차 지원금은 제 사비로 40분에게 50만원씩 나누어 드렸고 2차 지원금은 방생 후 여비로 신청자 20분에게 10만원씩 지원을 해드렸습니다. 또 연말에 쌀 20kg 130포대를 구매해서 통도사 자비원을 통해 양산지역 차상위계층을 포함해 취약계층 200여 가구에 전달하기도 했죠. 최근에 뉴스를 보니 코로나19의 여파로 정규직 취업도 힘들고 알바를 구하기도 어려워 컵라면으로 하루에 겨우 한끼를 먹거나 식사를 거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이 동네에도 그런 분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해 급할 때 간단하게 끼니라도 해결해 드리고 싶은 마음에 컵라면 300박스를 나누어 드렸어요. 보통 보시의 종착점이 사찰인 경우가 많지만 저는 정종사가 보시의 종착점이 아닌 복을 나누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늘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웃음). Q. 어떤 마음가짐으로 절을 돌보고 계십니까? A.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겪은 선대와 달리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쟁이란 시련을 겪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살기 위해 누구를 죽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살고 있죠.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 하고 마음속의 괴로움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울증, 불면증, 가정이나 직장 등에서 쌓인 스트레스로 웃음을 잃은 사람들에게 사회에서는 어떤 치유책도 내놓지 못했죠. 그래서 우리 불교가 사람들의 이런 정신적인 괴로움을 치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종사를 찾아주시는 분들 중에선 기독교나 천주교 신자들도 있고 아직 종교가 없는 분들도 있지만 종교를 떠나 마음속의 번뇌를 알아차리고 다스려 스스로 치유하고 내려놓는 방법, 부정적인 에너지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꾸는 길을 같이 고민하고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타인을 위하는 것이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요. 타인을 위하는 것이 바로 복을 짓는 것입니다. 그 복은 허투루 사라지지 않고 반드시 자신에게 좋은 결과로 돌아와요. 사람들이 마음의 괴로움을 없애고 밖으로 복을 짓는 삶이 고통을 줄이고 행복을 늘리는 방법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정종사의 주지소임을 보고 있죠. Q. 시대상의 변화에 발맞춰 어떤 포교활동을 펼치고 계십니까? A. 요즘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은 필수잖아요. 사실 정종사는 코로나가 오기 전부터 비대면 신행생활을 실천해 왔습니다. 8년 전쯤에 우연히 ‘스토리채널’이라는 SNS를 알게 되어 ‘여해스님 산중일기’라는 채널을 만들어 20여 명의 신도들과 함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SNS를 통해 제 생각을 전해주고 소통하다보니 벌써 구독자가 5000명이 넘었습니다. 구독자뿐만 아니고 비구독자분들도 와서 보기 시작하셨는지 게시물은 하루에 만 명 가까이 보고 계시더군요. 그렇게 SNS로 맺어진 분들이 지금 정종사 신도의 90%를 차지할 정도죠. 그렇게 먼 곳에서 찾아주시는 분들, 아직 얼굴을 보지 못한 채 기도해 드리는 불자님들도 상당수 됩니다. 또한 ‘정종사불자모임’ 밴드를 통해서 소통하기도 합니다. 포교활동의 핵심은 재정의 투명한 공개입니다. 정불회와 공승회 등 보시금이 들어오는 통장의 입출금 내역을 매달 SNS를 통해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어떻게 보시금이 쓰이는지 알려드리는 것이 상호간에 신뢰하는 마음을 만들기 때문이죠. 또한 투명한 시스템으로 운영함으로써 혹여 제 마음속에 재물에 대한 욕심이 자란다면 그런 시스템이 보완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Q. 신도들과 함께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입니까? A. 출가하고 몇 년 동안 경전과 계율을 공부하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하지만 인연에 따라 정종사 주지 소임을 맡은 후 신도님들과 함께 하면서 배우는 것이 더욱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젠 사람을 인도하거나 가르치겠다는 생각보단 앞으로 불자님들과 함께 더 공부하고 배우는 시간을 가지겠다고 다짐했죠. 주지로서 절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다 제 수행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주지가 되기 이전에 올바른 스님이 되고 싶어요. 수행에는 수많은 방법이 있고 그 가운데 제가 선택한 것은 불자님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완성’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웃음). 신도님들 역시 훌륭한 불자라는 칭찬이 주지스님의 입에서 나오는 것보다 다른 신도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 바람직한 모양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종사에 들어오면 보게 되는 현수막이 하나 있습니다. ‘불자가 닮고 싶은 불자가 되자’ 이 글귀에 모든 것이 담겨 있죠. 거만하고 남을 무시하거나 험담과 뒷담화를 습관적으로 하는 모습, 자신을 내세우고 자기 감정만 중시하고 자기 입장만을 고집하는 모습을 닮고 싶은 불자는 없을 것입니다. 불자가 닮고 싶은 불자의 모습은 자신을 비우고 내려놓는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신행생활이 자신도 이롭고 상대방도 이롭다고 항상 말씀드려요. 나를 내세우지 않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의 행복을 위함’이라고 전하고 싶어요. Q. 끝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A. 부처님께서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욕계(欲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욕계의 ‘욕’이 바라고 원하는 것이죠. 잘 생각해보면 사람이 이 세계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무엇인가를 바라고 원하고 기대하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것들 예를 들면 돈, 이성, 자동차, 집, 가족, 친구 등 태반이 외부에 있는 것들이에요. 외부의 것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면 행복을 느끼고 그렇지 않으면 힘들고 괴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내 몸 바깥에 있는 것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느냐… 아니죠. 이것을 불교에서는 구부득고(求不得苦), 구하여도 얻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자신과 제일 가까운 배우자나 자녀조차 내 뜻대로 안 되잖아요. 사실 자기 몸과 마음조자도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인생이죠. 그래서 행복한 인생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부처님께서는 무엇보다 먼저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욕심과 욕망이라는 업에 의해 유지되는 욕계라는 세계에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욕심을 줄이며 사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본래부터 사람도, 물건도 다 내 뜻대로 안 되는 곳이기 때문이죠.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기를 쓰고 다른 사람이나 주변 환경을 통제하려고 애쓰면서 아까운 인생을 소모하지 말고 그나마 몇 가지 뜻대로 되는 일에 감사하고 무탈한 일상에 감사하며 만족할 줄 아는 마음으로 살아보자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채우려고 애써왔던 그 수많은 시간들, 채워져야 행복해질 것 같은 느낌, 이제는 내려놓고 살아갑시다! 지금 나에게 없는 것들을 욕심내고 채워 미래의 행복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행복해지는 것을 방해하는 내면의 욕심을 내려놓아 보세요. 성취로 인한 행복도 있지만 성취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작은 것에도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욕심을 조금 덜 부리며 편안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자고 전하고 싶습니다. [1110]
    • 문화
    2021-02-19
  • ‘정말 잘돼! 할 수 있어!’ 진정한 ‘불교’를 행하며 자비를 베푸는 곳, 안심정사
    생활불교로 널리 알려진 법안 스님(안심정사 회주). 그는 <운명을 바꾼 사람들>, <걱정 말고 기도하라>, <법안스님과 함께 하는 불교 교리>, <생활법문> 등의 책을 출판한 한국불교태고종(韓國佛敎太古宗)의 학승이다. 현재 법안스님은 전국적으로 6개 도량 (부산, 논산, 대구, 서울, 창원, 제주)을 오가며 자비와 나눔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백미 기탁, 봉사활동 등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있는 것. 대한민국이 한국불교태고종(이하 태고종)으로부터 올바른 ‘불교’를 행하기를 바라는 법안 스님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정호 기자 “나랑 같은 시대에서 사는 사람들이 어렵거나 생활고에 시달리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수도승이나 교화승은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불교에 국한되지 않고 어느 종교든 자비의 실천이 가장 중요하며 그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 그 수많은 자비의 실천 중에서 전국에 위치한 안심정사에 대한 이야기로 긴 인터뷰를 시작했다. “우리가 하는 활동은 네 가지 입니다. 첫 번째는 불자들이 오면 신앙심을 갖도록 만들어 줘야 합니다. 그게 기도 의식이에요. 첫 번째가 가장 중요해요, 여기 신도들이 오면 기도를 하잖아요. 수도승이 독경염불을 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 이유가 마음이 편안해지기 위해서 일정한 틀의 법회, 즉 의식을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마음을 함께해 신앙심을 통해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도움을 줍니다. 두 번째는 교리학습입니다. 불교라는 종교가 부처님의 가르침이잖아요. 그 가르침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신자가 문제가 생기면 그에 따른 답을 줘야 하잖아요. ‘스님 괴롭습니다’라고 하면 ‘부처님께선 이런 상황에 이런 괴로움이 생긴다고 하십니다’라며 교리 학습을 시켜줍니다. 세 번째 신앙상담입니다. 1:1로 신도들을 만나 상담을 해줘야합니다. 1000명씩 두고 강의하면 다 알아듣는 것 같아도 사실은 알아듣는 게 끝이 아니에요. 내일 시험을 본다고 하면 상담을 하며 일러줍니다. 네 번째는 자원봉사입니다. 전국 군법당에 8~90% 초코파이 초코바를 넣어주고 있습니다. 신병교육대에도 들어가죠. 한 달에 2000만원씩 베풀고 있습니다. 또 각 6개 지자체에 쌀이 매년 120톤씩 들어갑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안심정사의 손이 닿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이렇게 기도법회, 교리학습, 신앙상담, 사회봉사 네 가지 큰 맥락으로 불교를 행하고 있습니다.” ‘불교’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이전에 태고종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도 ‘대승, 보살, 교화 이 세 가지’라며 유창한 달변을 이어갔다. “‘대승'은 모두가 극락을 가자는 것, ‘보살’이라고 하는 것은 ‘상구보리하와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 위로 보리, 즉 부처님 말씀을 배우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한다는 뜻으로,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행복해지고 성공하는 불교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 그게 바로 보살과 교화입니다. 그래서 대승, 보살, 교화 이 세 가지입니다.” 스님이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불교’란 무엇일까. “불교라는 종교는 저 하늘에서 “이렇게 저렇게 해라”라고 하는 게 아니라 지장보살님처럼 지옥에 직접 들어가 같이 지옥에서 사는 것입니다. 불난 집에 들어가 번뇌 속에서 중생들과 함께 부대끼며 사는 것이 태고종의 정체성이죠. 그래서 결혼도 허락이 됩니다. 지금까지 역대 부처님이 다 결혼을 하셨고 아드님이 다 있었죠. 단순히 독경, 수행만 하는 게 아니고 세속을 겪어내며 불자들을 구원하는 것이 본질입니다. 결혼을 해봐야 불자들의 부부사이의 번뇌를 보살필 수 있습니다. 아들에 대한 집착, 가정사에 대한 모든 문제를 겪으며 해결해야 부처가 될 수 있고 보살들을 교화할 수 있습니다. ‘스님이 가정에 대해 어떻게 아시나요?’라는 질문에 ‘나는 결혼해봐서 잘 알아요’라고 답변해줍니다(웃음). 신도가 궁금해 하는 것에 답을 주지 못한다면 누가 나를 찾아오겠습니까?” “태고종은 선종이지만 염불로 교화를 합니다. 조상천도나 방생을 통해 아픔을 어루만져 주기도 하죠.” 그의 말을 뒷받침하듯 안심정사 1432년 효령대군이 지낸 이후 최초 ‘한강 수륙재’를 통해 호국영령과 무주고혼 등을 위문했다. 500여 년 만의 수륙재를 안심정사가 어떻게 이뤄냈을까? “처음엔 반대가 많았습니다. 어느 종단도 사찰도 한강에서 수륙재를 할 수 없었죠. 그걸 안심정사가 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비웃었어요. 종교행사가 안된다고 하니 저는 수륙재 명칭을 ‘영산재(문화축제)’라고 칭하기로 했죠. 그러니 반대할 명분이 없게 되었습니다(웃음). 개신교 신자였던 당시 공원사업소장은 나중에는 수륙재가 연례행사가 될 수 있도록 도움도 주셨습니다. 한강에서 수륙재를 하고 나니 전국 어디서도 수륙재를 봉행할 수 있게 됐죠. ‘한강에서도 했는데 왜 안되냐’면서 한강 수륙재 자료를 보여주면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회마다 1억 이상 삼보정재가 들어가지만 행사를 마치면 1억 이상이 다시 보시로 들어옵니다. 제주도 수륙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듯 베풀면 그만큼 돌아옵니다. 폭리를 취해서도, 취하려고 해서도 안되요. 그저 베풀기만 하면 됩니다.” 대중포교인 ‘생활법문, 기초교리’를 중심으로 불교 전파에 큰 획을 그은 법안스님. 이에 그치지 않고 군부대에 ‘부처님 말씀’이라는 소책자를 매년 6만권 ~ 12만권 기증해 현재까지 54만권을 보냈다. 젊은이들에게 불교를 전하기 위해서 만화로 경전을 만들기도 한 법안스님은 포교에 있어서 선을 정해두지 않는다. “부산의 지자체장분들 중에 불교신자가 많이 계십니다. 리더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잘 해나갈 수 있도록 지도자 양성에도 도움을 주기 위해서 불교계와 안심정사가 돕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인이자 지도자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하고자 합니다.” “과거, 절도 없이 작은 골방에서 지내며 한국불교에 대해 누구보다도 더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진정 불교가 무엇일까 하는 고민이 대부분이었죠. 국민들의 불교에 대한 인식을 바꿔주기 위해서 아주 많이 노력했습니다. 당시 불자들은 ‘마음 비워야하고 사회에서 희생하고 양보해야한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제가 불자들한테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어요. 마음을 비우라는 것이 ‘번뇌망상’을 놓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고 교만하고 하는 악한 마음이죠. 반면에 희망 용기 의욕을 버리라고 한 적은 없어요. 나쁜 것들을 버려야지 모든 마음을 다 버리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는 게 아니고 불교로 돌아가자며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설득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엔 ‘태고종 중이 빨간 가사 두르고 방송에 나왔다’라며 면전에다 비속어를 하는 등 쉽지만은 않은 과정이었다. 하루는 절에 직접 찾아와 분노를 쏟아내는 한 신자에게 법안스님은 당당하게 일침을 놓기에 이르렀다. “‘번뇌 일으키지 마라. 내가 너를 아는데 과거 나는 예비고사에서 최상위 분야였다. 너와 레벨이 달라, 나는 한 고등학교에서 IQ가 제일 높은 사람이었다. 내가 태고종 중으로 빨간 가사 두르고 있지만 교리와 학문적 불교 공부도 다 마쳤다. 너랑은 수준이 다르다’라고 일침을 놓았죠. 그러니 조금 있다가 조용히 자리를 뜨더군요. 반면에 제가 학문적으로 지식을 갖췄더라도 명확히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불자들에게 모른다고 얘기하기도 합니다(웃음).” 안심정사에 쌀을 가져다 놓으라고 한 적이 없지만 지금도 안심정사 논산 본찰에는 1주일마다 쌀이 1000kg씩 쌓인다. 신자들의 돈독한 신뢰가 스님에게는 큰 선물이라고. “그 신뢰를 지키기 위해 매 끼니 한 그릇 흰죽만 먹으며 밖에서는 음식을 안 먹습니다. 술, 고기, 오신채는 입에 대지도 않아요.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엔 밥 한 그릇을 물에 말아서 한 끼 식사를 합니다.” “무슨 일이든 뜻만 있다면 이룰 수 있습니다. 계율을 잘 지키고 늘 기도하고 수행한다면 못 이룰 일이 없어요. 본래 제 사주는 무재, 무관 사주였습니다. 운명을 바꾸기 위해 연구하며 자기계발서를 100여 권 읽었죠. 결국엔 마음먹기 달렸다는 이야기, 곧 불교의 심법과 이어지는 말인 겁니다. ‘이 쉬운 일을 사람들은 어렵게 생각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여기서 영감을 얻어 소원표, 기도표를 만들었습니다. 나는 ‘누구나 내게 오면 내가 아낌없이 줄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소원했습니다. 무재, 무관 사주인 제가 부처님 품에서 안심정사를 일구고 여기저기 베풀면서 삽니다. 환경은 누구 편이 아닙니다. 내 편이라고 생각하면 내 편이 되고 내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내 편이 아닌 것이 되는 겁니다. 이렇듯 불교는 심법 입니다. 생각을 통해서 내 환경과 운명을 바꾸는 종교죠. 생각을 바꾸면 잘될거에요. 빠르거나 더딘 차이만 있을 뿐이죠.” “불교의 문제점은 불교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불교라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쪽으로 돌아간다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웃음). 절대로 신도들을 통해 돈을 벌려고 하지 말라고 합니다. 베풀면 돌아온다. 베푸는 게 사람들 마음을 열기 쉽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저 베풀기만 하면 됩니다. 베풀면 그만큼 그 이상이 돌아오게 되어 있어요.” “안심정사를 200곳으로 늘여 더 많은 신도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스님은 “절은 많은데 스님이 없다. 안심정사를 새로 열고 보낼 상좌가 없다”라며 태고종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하루빨리 ‘바른 불교’로 돌아가야한다는 그의 의지가 어려운 시기, 큰 위로가 된다. [1108]
    • 문화
    2020-12-30
  • 한국 장례꽃 장식 발전에 기여한 ‘엔딩 플로리스트’ ‘울산광역시 최고장인’ 선정으로 화제!
    최근 이윤희 이윤꽃예술원 대표는 제6회 울산광역시 최고장인으로 선정됐다. 울산시는 미용과 화훼장식, 패션디자인, 실내건축, 용접 등 5개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력과 업적을 쌓은 5명을 제6회 울산광역시 최고장인으로 선정했다. 이번 화훼장식 분야의 최고장인으로 선정된 이윤희 대표는 41년간 화훼분야에 종사하면서 고전적 형태의 장례꽃 장식을 현대적 기법으로 연출하는데 기여한 인물이다. _박미희 기자 이윤희 대표는 41년간 화훼장식 분야에 천착(穿鑿)해온 장인이다. (사)국제꽃예술인협회 이사장으로 국내 최초 장례화훼 기능경기대회를 개최하고 장례꽃 관련 서적을 출간하는 등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독일 장미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해 세계에 한국 장례화훼의 우수성을 알린 이윤희 대표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장례꽃 전문가, ‘엔딩플로리스트’다. ‘울산광역시 최고장인’ 선정이란 핫이슈로 그녀를 만나기 위해 울산 영락원을 찾았다. 한국 장례문화를 선도하는 울산 영락원은 최신식 시설을 갖추고 고품격 장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영락원의 장례꽃을 전담하고 있는 그녀는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사람이다. 장례화훼 기능경기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루기 위해 서울 출장을 다녀왔다는 그녀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밝은 표정으로 취재진을 맞이했다. 최고장인 선정 소감에 대해 묻자 그녀는 빛나는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소감을 밝혔다. “최고장인 선정은 개인적으로 가장 뜻 깊은 일이에요. 울산 영락원이 생기면서 처음 울산에 와서 지금까지 일하면서 11년이란 세월이 금방 지나가버렸네요. 처음엔 많이 낯설고 힘든 점도 많았지만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고 많은 도움을 받아 이제는 제2의 고향과 같은 울산에서 최고장인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어 너무나 기쁘고 감사합니다. 훌륭한 분들이 많지만 제가 화훼분야에서 울산에서 처음으로 선정됐다는 것은 앞으로 화훼분야 발전에 기여하라는 뜻으로 압니다. 앞으로 울산광역시 최고장인이란 이름에 걸맞게 인재육성과 산업발전에 기여하라는 큰 숙제를 받았다고 생각해요(웃음).” 이윤희 대표는 타고난 심미안(審美眼)을 지닌 플로리스트다. 꽃꽂이와 요리가 신부수업의 필수이던 시절, 취미로 꽃꽂이를 배운 그녀는 화훼장식의 매력에 푹 빠졌다. 1979년도 한국 꽃꽂이협회 헬레나 초급 입문을 시작해 1급 사범을 수료했고 1986년 일본 유학길에 올라 15년간 선진 화훼장식 문화를 배웠다. 일본 현대 꽃꽂이 전문학교인 ‘마나코’를 졸업한 뒤 ‘Lee Art’ 꽃꽂이 분교 학원을 창업했다. 일본 유학생활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에 대해 묻자 그녀는 꽃으로 한국을 알린 일화에 대해 말했다. “88올림픽이 개최되던 해에 일본 전통 꽃꽂이 미생류에서 개최하는 일본여류작가전에 외국인 최초로 참가했어요. 기모노를 차려입은 일본인들 속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좋은 작품을 선보였어요. 보수적인 문화 속에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히 꽃으로 한국을 알린 제 모습을 보고 감격한 친구가 눈물을 보이기도 했지요.” 일본의 선진 화훼장식 문화를 배운 그녀는 귀국 후 2002년에 첫 사업자를 내고 화훼산업 분야에 정식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그녀는 국제행사 화훼장식 기획총괄, 기업체 공간장식 전문가, 엔딩 플로리스트, 웨딩 플로리스트, 화훼사업 경영자, 독일 조경사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대표적으로 2005년 APEC 정상회담, 2006년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화훼장식을 맡아 APEC하우스, 벡스코, 그랜드호텔 등의 화훼장식을 담당했고, 2015년 한·중·일 국가정상회담의 화훼장식을 맡아 청와대 영빈관의 화훼장식을 하기도 했다. 2006년 아·태 신시장 포럼, UN교통장관 회담, 2015 아시아 송 페스티벌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담당해 화훼장식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국제행사를 총괄한다는 책임감에 밤샘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이윤희 대표. 고된 작업이었지만 국제무대에서 빛나는 작품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단다. “큰 행사 하나를 담당하면 생각보다 많은 곳에 꽃이 필요해요. 행사가 열리는 무대와 장소뿐만 아니라 건물 로비, 계단 등 많은 곳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또한 오프닝파티, 에프터파티의 장소와 손님들이 묵을 호텔 내부 꽃 장식까지... 국제행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곳을 신경써야하기 때문에 상당히 고된 작업이죠. 하지만 공들인 작품들이 국제행사에서 빛날 때 정말 보람을 느껴요. 무엇보다 국제행사를 통해 한국 화훼장식의 가치를 세계에 알렸다는 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선진 화훼문화를 배우기 위한 그녀의 열정은 컸다. 다시 독일 유학길에 올라 2004년 독일상 공부 조경사(실내외조경분야 응용)를 취득했고 같은해 독일 조경박람회에 참가해 금·은·동 메달을 수상했다. 독일에서 체계적인 화훼기술 이론을 익혔고 선진 조경기술을 습득해 산업에 적용하는 시도를 했다. “도시화로 녹지공간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지요. 이런 맥락에서 일찍부터 국내에서 그린 디자인 작품을 시도했습니다. 대표적으로 2004년에 아르피나호텔에 코르크를 활용해 산을 형상화한 작품을 연출했고 2008년에는 에덴벨리스키장 골프장에 실내 액자형 녹화작품을 연출하기도 했지요. 시대를 앞서 그린 디자인 작품을 연출한 경험을 통해 관련 숙련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요.” 그녀는 세계무대에서 한국 화훼장식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국제세미나와 국제박람회에 참여했다. 2018년에는 독일 장미대회에 출전해 금메달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화훼 선진국인 독일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수상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꼈어요. 한국 화훼장식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동시에 세계의 주목을 많이 받았고 기업의 러브콜도 많이 받았습니다. 한국 화훼장식을 더 발전시킨다면 장차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이 될 것이라는 비전을 보았습니다.” 41년을 회고하며 그녀가 가장 큰 보람으로 꼽는 일 중에 하나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장례화훼 기능경기대회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그 당시만 해도 한국 화훼산업은 선진국인 일본, 독일에 비해 미개척지와 같았습니다. 장례꽃 관련 전문서적이 부족했을뿐더러 체계적인 이론이 정립되어있지 않아 후학양성에 어려움이 컸어요. 이를 타개하기 위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장례화훼기능경기대회를 마련했습니다. 지난 15년간 일본에서 배운 선진 화훼문화와 독일에서 익힌 체계적인 화훼이론을 기반으로 「장례의 탄생」, 「동서양의 장례문화」 등을 집필해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 화훼문화를 이끌어갈 차세대 인재를 육성하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에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윤희 대표는 선진 화훼장식 기술로 장례꽃 분야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고인의 생애를 표현한 스토리텔링의 이미지 제단(祭壇 : 제사를 지내는 단), 작업 효율성과 작품성을 높인 획기적인 퍼즐식 꽃장식으로 관련 특허, 디자인등록만 14건에 달한다. “흰 국화를 일렬로 배치하는 기존의 제단 꽃장식에서 탈피해 획기적인 시도를 많이 했어요. 대표적인 것이 고인의 생애를 표현한 스토리텔링 이미지제단입니다. 예를 들어 순국하신 소방공무원을 위해 불꽃 모양의 제단을, 산에 잠든 산악인을 위해 산 모양의 제단을 통해 고인을 추모하는 것이지요. 다양한 디자인을 폭 넓게 선택할 수 있고 급박한 상황에서 빠르게 설치하고 철거할 수 있도록 퍼즐식 꽃장식을 고안해냈어요. 작업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장례꽃 장식의 작품성을 높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그간 화훼장식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2019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공로상 포상(2회)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또한 숙련 기능인으로 기술 전수와 후진 양성에 기여해 2017년 국무총리배 국제꽃장식대회 금상, 2018년 국무총리배 국제꽃장식대회 협회장상, 2019년 울산 틴 마이스트 지방기능 경기대회 국회의원상, 울산광역시 2020년 지방경기대회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새로운 장례꽃 장식문화를 이끌어가는 이윤희 대표. 그녀에게 장례꽃 장식분야의 발전을 위해 어떤 변화가 있어야하느냐고 묻자 관록이 묻어나는 혜안을 말했다. “장례꽃 문화의 전통을 잇되 현대적으로 계승·발전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능경기대회 활성화,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장차 산업을 이끌 차세대 인재들을 육성하고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한국 장례꽃 장식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 학력 ] •울산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영산대학교 호텔관광경영학과 박사 [ 경력 ] •2008-현재 울산영락원 위탁업체 •2014-현재 (사)한국장례꽃문화협회 대표 •2016-현재 (사)대한민국전통명장협회 전통명장 •2018-현재 (사)국제꽃예술인협회 8대 이사장 •2019-현재 대한민국신지식인 •2020-현재 울산광역시 최고장인(화훼장식 분야) [1108]
    • 문화
    2020-12-30
  • 2천년의 역사 '김해장군차' 가야 역사와 문화의 상징 다시 태어나다
    2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김해지역 특산품 ‘김해장군차(將軍茶)’. 허황옥이 가야 김수로왕에게 시집올 때 차 씨앗을 가져와 전해져 내려오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통차다. 가야문화권을 통해 일본에도 전파되었고 중간에 명맥이 끊기기도 했었지만 향토사학자들의 가야차 뿌리를 찾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 끝에 1987년 자생군락지를 발굴했고 1999년부터 농가재배를 시작했다. 그 중심에 새날제다의 김종국 대표가 있었다. 장군차시배지 안내와 제다기술 등 역사문화를 알리는데 힘을 써 온 김 대표는 장군차의 산 증인이다. 주간인물은 김해장군차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새날제다’ 김종국 대표를 만났다. _신지원 기자 “1986년 9월에 김해 가야역사의 연구 발굴 및 보존을 위해 몇 명이 뜻을 모아 가야문화연구회를 창립했습니다.” 창립멤버 중 한명인 김종국 대표의 부단한 노력으로 대중들에게 알릴 수 있었고 2004년에는 청와대에 장군차 선물을 하게 되었다. 이는 2005년 해운대 동백섬 누리마루에서 제13차 APEC 정상회담이 열릴 때 장군차를 회담 탁자에 내어 놓는 데까지 연결이 되어 홍보가 확실히 된 셈이다. “서울 코엑스에서 차(茶) 전시를 할 때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께 김해장군차를 드시고 힘내시라는 뜻으로 청와대에 좋은 차 한통을 보냈습니다. 이후 정상회담에서 차 시음할 때 장군차가 사용된 겁니다. 각 언론에서도 부산 APEC 퍼스트 레이디들의 친교시간에 김해에서만 생산되는 장군차를 시음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장군차 선물에 관해서는 「봉하일기」 목차 ‘봉하일기 4’ 에도 나와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본래 차에 관심이 많았는데 청와대를 찾은 김해 분들에게서 장군차를 선물 받은 뒤 차 재배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기재되어있다. 장군차의 역사는 여러 사료(史料)에 등장하고 몇 가지 차(茶) 전래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능화(李能和1869~1943)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에는 ‘김해 백월산에 죽로차가 있는데 세상에 전하기를 수로왕비인 허왕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차 씨앗이라고 전한다’는 기록도 있지만, 김 대표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언급된 내용을 강조했다. “허황옥이 가지고 온 물품을 ‘한사잡물(漢肆雜物-한나라에서 나는 갖가지 물품)’이라 하여 한나라의 여러 물건이라고 언급한 점입니다. 바다를 건너오면서 가져온 한나라 여러 물건 중에 옷·필단·금은주옥·장신구 등 씨앗도 있었고 이것이 장군차 씨앗으로 중국 사천성에서 도래한 중엽종일 가능성을 뒷받침해 주는 요소로 특기할 만 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허황옥과 관련된 내용 중에 중국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보인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 외에도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에는 김수로왕의 15대손인 신라 30대 법민왕(문무왕)이 서기 661년에 가락 왕묘에 제향을 올리도록 조칙을 내렸는데 제수(祭需)품목 중에 차(茶)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흥덕왕3년(828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대렴이 중국에서 가져온 차 종자를 가져와 왕께 드렸더니 지리산에 심으라고 했다는 대렴 전래설도 있다. 하지만 대렴이 가져오기 전인 진흥왕과 선덕여왕 때에도 차를 마셨다는 기록은 있다. 또한 조선 중종 25년(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고려 충렬왕이 김해에 들렀다가 금강사 절의 뜰에 있는 차나무를 보고 맛과 향이 차 중에서 으뜸이라 하여 ‘장군’이라고 명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 법민왕의 명으로 김수로왕 제사상에 차를 올린 시기만 해도 대렴이 당나라에서 차(茶) 씨앗을 가져온 시기보다 앞섭니다. 김해에는 지금도 차(茶)와 관련된 지명으로 남게 된 곳들이 동상동의 차밭골(다전동 茶田里) 등 여럿 있어요. 여러 가지 자료와 정황을 종합하면 김해가 한국 최초의 차 시배지(始培地)입니다.” 동상동·대성동 일대의 김해 장군차 서식지는 역사를 증명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뿐 아니라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어 2017년 6월29일 경상남도의 기념물 제287호로 지정되었다. 1999년 새날제다 설립 후 장군차 묘목 육성, 제다기술 숙련, 장군차 홍보 등에 앞장서 온 김 대표는 2010년 제 3회 대한민국 차(茶) 품평대회 발효차 최우수상을 수상한 경력도 있으며, 친환경 유기농법 무농약 인증을 받아 20년간 주촌면에서 장군차를 최고의 차로 가공하여 유통 중이다. “‘새날제다’는 새로운 날이라는 뜻의 새날과 차를 만드는 기술이라는 뜻의 제다(製茶)를 합쳐 만든 이름입니다.” 장군차는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서도 구매할 수 있는데 포장지 앞면에 가야금과 찻사발이 눈에 띈다. “가야의 가야금과 불교의 동자승이 차를 끓이고 있는 모습인데, 불교와 차가 한국에 먼저 들어왔다는 것을 뜻하는 김해를 대표하는 것들의 그림입니다.” 김 대표는 오래전부터 불교와 차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고자 인도에 두 번 다녀왔어요. 밤을 꼬박 새며 모기한테 물리는지도 모르고 참선을 했어요.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 많이 해봤어요.” 김 대표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딸 김서리 씨는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인도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해 태국의 불교대학에서 강의를 했었으며, 현재는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강사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을 언급하는 김 대표. “없던 것이 있고 있는 것이 없다는 것, 걸레가 빨면 행주가 되고 행주를 쓰다보면 걸레가 되는 그런 이치에요. 불교 공부할 때 10년 이상 헤맸는데 어느 날 화장실에서 눈이 번쩍 뜨이더라구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는 생명체가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집착할 이유가 없구나 해서 더 헤맬 것 없이 차농사를 짓게 됐고 차 밭에 완전 묻혀 살았어요. 그 당시 5년 간 차를 키우며 흘린 땀이 평생 흘린 땀보다 더 많았어요. 차 밭에서 참선을 하면 새가 내 어깨 위에 놀다가 가기도 하고. 그땐 악이라는 건 없을 때에요. 세상 살다보면 악도 생기고 욕심도 생길 수 있지만 그래도 무애심(無碍心)으로 마음에 걸림 없이 살아가려고 합니다.” 장군차는 색·향·미가 있는 차다. 차를 만들 때 심혈을 기울여 만든다는 김 대표는 “차를 잘 만들어 사람들이 좋은 차(茶)를 맛있게 마실 수 있었으면 합니다.”라며 건강에도 좋다고 덧붙였다. “장군차는 발효차라서 오래될수록 좋습니다. 발효와 숙성은 다른데 발효가 끝나고 나면 숙성이 됩니다. 차를 잘 보관 해놓으면 숙성이 되면서 특유의 맛과 향이 자연적으로 생깁니다.” “장군차는 효능도 많아요. 머리도 맑게 하고 피도 맑게 하며 노화방지·고혈압·당뇨에도 좋습니다.” 다른 차나무와 달리 인도 남방계통의 잎이 큰 대엽류의 찻잎으로 카테킨, 아미노산, 비타민류, 미네랄 등의 무기성분 함량이 높은 게 특징이다. 품종과 맛에 차별성이 있고 장군차의 신장보호효과 연구도 나와 있는 등 약학적 효능도 연구돼 있다. 사라져가는 식재료와 조리법을 보존하기 위해 1997년 이탈리아 슬로푸드 본부에서 시작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된 ‘맛의 방주’라는 프로젝트가 있다. 장군차는 국제 슬로푸드 지정 ‘맛의 방주(The Ark of Taste)’에 등재되기도 했다. 지역의 먹거리를 보존하는 국제적인 프로젝트인 ‘맛의 방주’에도 오른 한국의 차 ‘김해장군차’는 김해지역 뿐 아니라 서울도심 유명호텔 최고층 한식레스토랑에서도 아름다운 야경을 내려다보며 마실 수 있고 온라인 구입을 통해 집에서도 즐길 수 있다. 장군차는 세계차연합회(WTU)에서 격년제로 개최하는 국제명차품평대회에서 2008년 최고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이후 연속해 금상·은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2008년부터 11년 연속 대한민국 ‘올해의 명차’에 선정된 바 있는 등 국내외에서 명성을 높여가고 있다. 내년에 김해시 최고명장신청을 할 예정인 김종국 대표. 다양한 지원책을 통해 김해의 대표 브랜드로 키워 장군차 인지도를 높여 나갔으면 한다.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은 2천년의 역사 김해장군차의 맛과 향기가 국내를 넘어서 해외 깊숙한 곳까지 퍼져 나가길 기대해본다. [1108]
    • 문화
    2020-12-30
  • 진주냉면과 효종갱, 침도를 복원해온 식생활문화연구가! (주)닥게리와 세계무대 진출을 꿈꾸다
    우리나라를 알고자 하는 열풍이 한식에까지 뻗어 세계화에 도달했다. 한식의 소비가 증가했고, K-푸드라는 말도 생겼다. 이는 곧 우리의 문화를 더 가깝게 받아들이고자 하는 의미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식을 세계적인 음식으로 발전시키고, 그에 따른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우리 식문화의 뿌리를 이해하고 이를 조화롭게 접목해 나가는 것이 ‘K-Food’의 진정한 성장이 아닐까. 여기, 50년 동안 한국 식생활 문화의 스토리를 정립하고 음식을 복원해 온 이가 있다. 문화인류학과 역사학, 사회학 등 방대한 자료를 치밀하게 분석해 이론과 방법론을 바탕으로 음식문화를 이야기해 온 인물, 김영복 회장의 이야기다. ‘음식의 맛은 주관적인 취향일 수 있지만, 식문화는 한 민족의 거대한 역사를 담고 있으며 우리 전통의 자산이자 무형의 가치’라며 김 회장은 인터뷰의 포문을 열었다. _김정은 기자 김영복 회장이 식문화를 연구한 지는 이미 50여 년이다. 해병대를 제대한 후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해 반세기 동안 해왔지만, 식생활 문화연구에 입문하게 된 특별한 계기를 꼽을 수는 없단다. 음식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만들어지는 일련의 과정에 이르기까지 어느 순간 식문화에 매료돼 깊은 연구를 하면서부터 우리나라 음식에 대한 스토리가 제대로 정립이 안 된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고. 그때부터 식문화 연구를 위해 전국을 누비며 고서를 찾고, 자료를 모으며 지금까지 720가지의 음식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고 하니 이만하면 김 회장에게 식생활 문화 연구는 ‘업’이라고 밖에 설명이 안 된다. “식문화의 영역은 단순히 영양학과 조리학, 가공학이 아닌 역사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의미를 지닙니다. 한 개인과 사회가 소비하는 음식을 보면 그 사회가 처한 환경이나 슬픔, 기쁨 그리고 역경과 고난이 드러나기도 하지요. 때문에 다른 민족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식생활문화는 민족의 거대한 역사와 전통의 큰 자산임에도 점점 그 의미가 희미해져 가는 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식문화를 연구해 온 이유도 우리 음식에 대해 논할 때 ‘왜’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배경이 되고 싶었습니다.” 50여 년간 720가지 음식 이야기 만들어 진주냉면ㆍ효종갱 · 침도 등 30여 가지 전통음식 재현 음식 칼럼ㆍ방송 출연으로 식문화 알리며 일본과 중국, 미국 등 국제행사를 통해 한식 세계화에 기여 180㎝의 훤칠한 키와 당당한 풍채, 남다른 패션 감각까지. 범상치 않은 아우라가 전해지는 김영복 회장의 첫인상. 올해 74세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인터뷰 내내 보이는 여유로움과 위트, 마주 앉은 사람을 배려하는 매너까지. 집무실을 가득 채운 상당한 양의 책과 소품,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까지도 그의 분위기를 똑 닮았다. “제가 연구를 시작할 초창기엔 식문화 연구가 우리나라에서 흔하지 않았습니다. 어디서 배울만한 곳도 없었고,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때도 아니었으니 고서를 찾고자 헌책방이나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었죠. 실제 조리하는 과정을 보고자 할 때는 수소문 끝에 향토음식을 만드는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을 찾아 나서기 일쑤였고요.” 지난 50여 년간 720여 건의 한식 스토리를 정리해 온 김 회장. 그가 풀어낸 음식 스토리는 방송을 통해 자문하거나 출연해 역사와 유래를 중심으로 식문화를 재조명하면서 우리 음식의 가치를 시청자에게 전했다. 방송뿐 아니라 여러 매체에 연재한 맛 칼럼 중 ‘김영복과 떠나는 향토 음식 순례’와 ‘음식과 문화’ ‘사라진 우리의 맛’ ‘김영복의 이야기가 있는 음식 여행’ ‘참살이 여행’ ‘대를 이은 맛집’ ‘숟가락을 들기 전’ 등의 맛 칼럼은 독자들에게 여전히 인기가 높다. 또 2000년부터는 한식 세계화에 기여하고자 일본과 중국, 미국의 9개 도시를 다니며 한식문화 강좌와 한식을 알리는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으며 한식의 멋과 전통 그리고 맛의 우수성을 동시에 알리는 국제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민간 외교에도 기여해 왔다. 경남대 산업대학원 교수직과 BBQ 계열 글로벌 푸드아트 전문학교 이사장, 서울관광호텔 직업전문학교 이사장으로 역임할 때에도 음식을 복원하고 개발하는 일에 몰두해 온 김 회장. 지금까지 재현한 전통음식은 30여 가지가 넘는다. 그중 사라졌던 ‘진주냉면’도 1999년, 그의 손에서 다시 빛을 봤다. “북한평양출판사가 펴낸 ‘북한 민속전통’ 책을 읽고 조선 냉면 중 최고는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길로 진주에 내려가 하루에만 5~7그릇씩 냉면을 먹으며 사라진 진주냉면의 맛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지요.” 진주냉면 기술자 3명을 찾아가 공통된 맛을 추려내 오늘날의 진주냉면을 복원시킨 그. 2005년에는 황덕이씨와 함께 진주냉면을 재현해 상품화에도 성공했다. 그 음식이 바로 진주 하연옥에서 맛볼 수 있는 ‘진주냉면’이다. 김 회장이 재현한 대표적인 또 다른 음식은 효종갱(曉鐘羹)이다. 문헌을 통해 조선의 배달 음식인 효종갱을 알았다는 그는 조선 후기 1925년 최영년이 쓴 ‘해동죽지’에서 경기도 광주성 내에서 먹은 배춧국인 ‘효종갱’이 나온다고 전했다. “경기도 광주 마을에서 항아리에 효종갱을 담아 한양 양반집으로 배달했지요. 효종갱은 높은 벼슬의 양반들이 연회를 마친 후 술에 시달린 속을 다스리기 위해 시켜 먹던 최초의 배달 음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식문화의 역사적 스토리를 언론에 최초로 공개한 그는 이어 복숭아물김치(침도)를 재현해 KBS ‘도문대작’에 소개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진주칠보화반과 진주헛제사밥, 해주비빔밥, 무술주, 흑삼계탕, 구선왕도고, 꿩짠지, 어육김치가 그의 손에서 재현됐다. 교수로 재직했던 2005년에는 시장에 파는 떡에 대한 문제점을 파악한 후 한양대학교와 경남대학교에 떡 연구 과정을 등록해 영양 떡을 중점으로 상인들에게 교육했으며 오늘날 천연색소로 만든 떡의 시초를 열기도 했다. 닭가슴살 요리 전문 프랜차이즈 (주)닥게리 설립 닥살냉면과 닭살 육전을 비롯, 닭요리만 30여 가지 이상 개발해 유통 후학 양성을 위한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열어 “우리나라 외식업계는 식당은 많지만, 메뉴로 차별화된 곳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인테리어나 마케팅에 대한 투자만 늘고, 정작 음식은 카피하거나 모방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게 매우 안타까워요.” 외식산업의 질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해 닭가슴살 요리 전문 프랜차이즈인 (주)닥게리를 설립해 청도에 본사를 연 김영복 회장. 여기서 ‘닥게리’는 닭을 가두어 기르는 어리를 이르는 전남 방언이다. 문을 연 지 한 달도 안 된 때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데, 맛도 맛이지만 재료에서 오는 이색적임도 호기심을 자극할만하다. 흔히들 닭가슴살은 퍽퍽하기 때문에 면 역시 뚝뚝 끊어질 것이라 예상하지만 면발이 쫄깃하다는 게 이곳의 비법. 50년 동안 한국의 음식을 연구한 식생활 문화연구가 김영복 회장의 노하우가 집약된 메뉴다. 그래서인지 김 회장이 출시한 메뉴라는 것을 알고 찾아오는 이들도 부지기수. 음식에 대한 그의 신념은 이미 많은 이들에 신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의 중간 정도의 탄성을 가진 면을 개발하는데 2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닭가슴살을 이용해 면을 개발한 이유는 우리나라의 닭 소비량이 10억 마리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중 날개와 다리는 인기가 높아 금방 소진되지만, 닭가슴살은 40%에 그친다고 하더군요. 때문에 닭 소비가 높아질수록 닭가슴살의 재고도 쌓인다는 통계를 보았습니다. 물론 닭가슴살을 활용한 반려동물 식품이나 다이어트 식품 등으로 상용화되고 있지만 퍽퍽하다는 이유로 즐겨 먹는 식품은 아니지요. 때문에 맛있고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닭가슴살을 만들어보고자 다양한 요리로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1인분에 50g 정도의 닭가슴살이 들어가기 때문에 담백한 맛이 깊고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하다. 육수 역시 쇠고기를 쓰는 평양냉면과 달리 닭을 고아서 농축 시켜 구수하고 깔끔한 맛이 일품이라고. 냉면 위에도 닭가슴살 육전이 올라가는데 사람들은 이게 또 별미라고 입을 모아 호평한다. 이 기세에 힘을 얻어 닭가슴살 육전만 따로 메뉴가 편성되었을 정도. 이어 4계절을 겨냥해 칼국수와 떡국, 닭곰탕 등을 출시해 인기를 끌고 있으며 식품공장을 설립해 닭을 재료로 만든 30여 가지 음식을 전국에 유통하고 있다. 올해 12월에는 온라인 매장까지 오픈 예정 이라고 하니 닥게리의 염지 비법이 첨가된 닭가슴살과 닭가슴살 육전, 칼국수는 택배로도 받을 수 있게 된다. 현재 닥게리는 천안역점 개설과 함께 서울 잠실, 수원 경기대후문, 부산연제구 연산점 개설 준비를 하고 있으며 식당의 성격에 맞는 닭가슴살 요리를 납품해 13개의 MP(Matching Partner) 점과 파트너를 맺고 있다. “제가 73살에 닥게리를 창업했습니다. KFC 회장이 62살에 창업을 했다고 하니, 어쩌면 제가 더 큰 용기를 낸 것이 아니겠습니까(웃음). 물론 고비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힘차게 달려온 이유는 젊은 친구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착한 기업, 그리고 나아가서는 사회와 세계에 봉사하는 기업을 만들자는 목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루지 못한다면, 제 뒤를 이어 기업을 이끌어갈 수 있는 후진 양성에도 적극적으로 임할 계획입니다.” 50년 동안 한국의 식생활 문화를 알려 온 것에 그치지 않고 기업가로서 새로운 도전을 펼치고 있는 김영복 회장. 이어 자신이 익힌 학문과 방대한 자료들을 연구할 후학 양성에도 뜻을 품고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완공을 앞두고 있다고. 앞으로도 ‘살아가는 삶’을 위해 달려갈 것이라는 그의 열정을 주간인물에서 응원한다. [ 약력 ] •現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원장 •現 ㈜닥게리 회장 •경남대학교 산업대학원 초빙교수 •전국직업전문학교협회 회장 •서울호텔관광전문학교 이사장 •BBQ 계열 글로벌 푸드아트 전문학교 이사장 •KNN, SBS 창사특집방송 진주냉면 2000년 •KBS 추석특집 도문대작 2008년 •KBS 한국인의 밥상 - 자문 및 전문가 출현 •KBS 밥상의 전설 고정출현 •2000. 일본 오사카 ‘마당’ 초청 재일교포 요리사 교육 •2000. 사라진 진주냉면 재현(KBS, MBC, SBS 방송) •2004. 하이 서울 축제 전통음식 전시 •2005. 미국 뉴욕 한가위 축제 떡 퍼포먼스 •2006. 미국 뉴욕 ‘한국 음식 강연 및 전시회’ •2007. 국회 떡 세계화 작품 발표회 주관 •2007. 농림부 축산안전물 요리경연대회 심사위원장 •2008. 미국 뉴욕 뉴욕총영사 유엔외교사절 초청만찬 주관 [1106]
    • 문화
    2020-12-09
  • 유안, 소통의 건축을 말하다 - 유헌상 건축사사무소 유안 대표 건축사
    유헌상 건축사를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건 우연히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의 한 통신회사 사옥을 보고 난 후였다. 건축사사무소 유안이 설계와 시공을 맡은 숨(S:UM)이라는 이름의 사옥은 따스한 햇살을 풍부하게 공간 내부로 끌어들이고, 층계를 오가는 계단 통로 사이엔 나무를 심어 건물 안에서도 자연의 싱그러움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왔다. 하루의 대부분을 사무공간에서 보낼 이들을 위한 배려가 물씬 느껴졌다. 이런 세심하고 따뜻한 설계라니. 햇볕을 쬘 시간이 적은 직장인들에겐 꿈과 같은 공간이 아닐까? 건축은 꿈을 현실로 가져오는 작업이라고 했던가. 공간에 머무는 이들의 꿈이 그의 설계 안에 녹아있음을 발견했다. _정효빈 기자 ‘안락함과 미학을 공간에 담다’ 깊이 있는 소통으로 완성되는 생명력을 품은 공간 건축사사무소 유안은 대구와 경북을 주 무대로 활동하며 이용자의 편의를 고려한 설계와 완성도 높은 시공으로 지역 내 탄탄한 입지를 다지고 있는 건축 스튜디오다. 건축사사무소 유안을 이끄는 유헌상 대표 건축사는 빛의 강조를 통해 공간의 깊이를 표현하는 섬세한 설계로 아름답고 편안한 공간을 창조해내고 있다. “뭇 사람들은 건축물이 무생물이라고 하지만 저는 생명을 가진 유기체와 같다고 생각해요. 건물의 전기시설이나 수도, 배수관은 인체에 빗대면 핏줄이나 소화기관과 다를 바 없죠. 사람과 에너지를 주고받는 생명력을 가진 공간인 만큼,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가치를 지닌 건축물이 더욱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공간이란 본디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규모에 따라 공간이 갖는 성격이 모두 다르고 사람들의 행동과 동선에 따라 각기 다른 공간감을 부여해야 하기에 클라이언트에게 꼭 맞는 공간을 구성하기란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유헌상 대표는 어떻게 공간을 설계하고 건축주의 마음을 읽을까? 그는 대지를 둘러싼 환경과 더불어 클라이언트와의 깊이 있는 소통을 설계의 첫 단계로 꼽았고, 그들의 요구를 재구성해 설계에 담아내는 것이 건축사의 역할이라 말한다. “건축을 시작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시간이 갈수록 선 하나 긋는 것이 더욱 어렵고 신중해지는 단계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제가 그은 선들이 토대가 되어 좋은 건축물이 완성되면 거주자는 더욱 풍성한 공간에서 평생을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이 건물이 그들의 미래이자 전 재산이 될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면 설계에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건축주와의 소통에서 중요한 건 그들의 막연한 요구 속에서 구체성을 캐치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마치 맞춤복을 제작해주는 과정처럼요(웃음). 건물을 계획하기 위해서는 대지와 주변 환경과의 소통도 중요한데요. 설계 전 여러 번 현장에 가서 건물이 지어질 대지와 환경을 오랜 시간 둘러봅니다. 도심이라면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 공간을 어떻게 마련할지, 주변 경관이 훌륭한 곳이라면 멋진 풍경을 어떻게 공간에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고요. 매 프로젝트에 애정을 갖고 오랜 시간과 공을 들이다 보니 고객분들께서도 이 점을 알아봐 주시는 것 같습니다(웃음).” 건축설계·시공·인테리어 아우르는 통합시스템으로 시너지를 높이다 주택은 주거와 사무, 휴식 등 모든 행동이 일어나는 복합적인 성격을 띤 공간이다. 유헌상 대표는 “집이라는 공간 설계를 응용해 모든 공간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히 매력적”이라며 주거공간 설계에 흥미를 나타냈다. “집은 모든 행동이 일어나는 공간이에요. 집 안의 서재가 때로는 사무공간이 되기도, 잘 꾸며진 부엌은 카페가 되기도 하죠. 이렇듯 집 안에서는 다양한 행동이 일어나기 때문에 특정 목적만을 가진 건축물보다 더 많은 부분을 고려한 설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작고 협소한 공간을 잘 다룰 줄 알면 이를 응용해 더 넓은 공간에 적용할 수 있어요. 각기 다른 목적을 띤 공간이 공존하는 주거공간 설계를 통해 만족감을 줄 수 있다면 다른 공간에서도 충분히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건축사사무소 유안은 건축 설계와 감리, 시공, 인테리어를 모두 도맡아 설계 의도가 고스란히 반영된 완성도 높은 건축물을 완성해내고 있다. 유 대표가 자랑하는 건축사사무소 유안의 경쟁력 역시 건축의 시작과 끝을 모두 책임져 바쁜 클라이언트의 편의를 돕고 건축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현장을 잘 아는 건축사가 현실감 있는 설계를 할 수 있고, 이것이 곧 불필요한 시공 과정과 추가공사비용을 줄여 클라이언트에게 최대의 만족감을 선사할 수 있다”는 유헌상 대표의 철학에서 비롯됐다. “도면을 그리는 단계에서부터 머릿속에 건축물의 이미지가 그려지곤 하는데, 막상 공사에 들어가면 도면과 완전히 다른 건물이 지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더라고요. 색감이나 디테일 등 처음 설계 의도가 온전히 반영된 건축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설계와 시공, 인테리어가 일괄적으로 작업 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 구축은 유헌상 대표의 오랜 고민에서 비롯됐다. 그가 설계 사무소에서 일하던 시절, 설계 의도에서 현저히 벗어난 건물들이 숱하게 지어지는 것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껴왔다고. 그는 설계와 시공, 인테리어가 하나 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먼저 자신의 집을 지어보기로 했다. 유 대표와 그의 아내가 건축주이자 설계사가 되었고, 시공 역시 자체적으로 진행했다. 이 과정을 통해 건축물 하나에 모이는 각기 다른 요구와 입장을 한층 더 깊게 이해하게 됐고, 이는 현재의 운영시스템을 자리잡게 한 밑거름이 됐다. “건축과 관련된 모든 것을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클라이언트분들이 큰 호응을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시공사와 인테리어 업체를 따로 선정하고 의견을 조율하려면 또다시 시간과 비용을 들이셔야 하니까요.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건축사는 실제 공사에 착수했을 때 건물이 어떠한 형태로 완성될지 감을 잡기 쉬워집니다. 지휘자 한 명이 오케스트라를 조화롭게 이끌어가듯 건축도 일관된 지휘 아래 설계와 시공, 인테리어까지 마무리된다면 더욱 완성도 높은 공간이 탄생한다고 믿습니다.” “분야를 아우르는 전문가 양성이 목표 만족도 높은 프로젝트 완수하는 종합건축사사무소로 거듭나고파” “건물 완공 후 건축주의 얼굴에 피어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이 처음 저를 찾아왔던 설렘과 기대감에 찬 얼굴과 겹쳐 보일 때, 그 순간의 보람과 희열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요. ‘완벽한 건축’이란 코드가 잘 맞는 건축주와 건축사가 만나 그들의 코드에 딱 맞는 건물이 완성된다는 의미 아닐까요?(웃음)” 기업의 성공에는 대개 몇 가지 원칙이 있다. 경영 혁신, 고집스런 품질 제일주의, 철저한 신용 등이다. 여기에 직원의 성장과 행복을 책임지려는 CEO의 살뜰함이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건축사사무소 유안은 치밀한 건축설계와 이를 구현하는 완성도 높은 시공, 인테리어 작업까지 건축에 관한 종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앞선 모든 요소가 톱니바퀴처럼 완벽하게 맞물리게 하기 위한 구성원 전원의 노력은 수많은 업계 경쟁자들보다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히딩크 감독의 훈련방식과 전술이 굉장히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모든 플레이어를 한 가지 포지션만 소화하는 선수가 아닌 멀티플레이어가 되도록 훈련시켰죠. 저 역시 건축설계뿐만 아니라 시공 분야에 관해서도 지속해서 공부하는 등 현장을 잘 아는 건축사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건축과 밀접하게 관련된 다방면의 분야에서 저와 함께 내공을 쌓고 성장할 인재들도 언제든 환영입니다(웃음).” ‘종합건축 유안E&C’를 슬로건으로 삼고 향후 건축사사무소 유안을 실력 있는 종합건축사사무소로 성장시키고 싶다는 유헌상 대표. 그는 끝으로 “설계, 감리, 시공, 인테리어 등 각 분야별로 팀을 나누되, 구성원 모두가 멀티플레이어가 되어 서로의 분야를 이해하고 빠른 의견 조율이 이루어지는 활기찬 조직을 만들어갈 것이며, 구성원과 클라이언트 모두가 행복한 건축사사무소로 거듭나고 싶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전했다. “경사진 대지에 층계가 여러 개로 나누어진 사옥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일과 생활 모두 즐거운, 집과 사무실이 결합된 재밌는 공간이 탄생되지 않을까 싶어요. 개인적으로 정말 멋있다고 생각한 국내 건축물이 있는데, 하늘에서 봤을 때 꽃 모양이 연상되는 것이 참 인상 깊더라고요. 저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마음속에 ‘저곳이 전국에서 가장 멋있다’라고 생각되는 건축물을 지어보고 싶습니다(웃음).” [1106]
    • 문화
    2020-12-09
  • 자연과 함께 묻어나는 도자기 갤러리 카페, 아버지 호를 따서 만든, 마음의 여유와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곳
    자연과 건물이 일체가 된 듯 정원 풍경과 건축물이 잘 어우러진 토곡요(土谷窯)와 토곡정원. 통도사 근처 경상남도 양산에 위치하고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이다. 선명한 하늘과 초록색 자연 그리고 세련된 건축물은 한 폭의 수채화같이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밤에도 로맨틱한 경관으로 은은한 조명이 한 몫 한다. 주간인물은 자연과 더불어 힐링공간으로 호평받고 있는 토곡요(土谷窯) 도자기 갤러리카페의 참모습을 알리고자 이영풍 대표를 만났다. _신지원 기자 복합 문화공간으로써의 토곡요와 토곡정원은 커피와 음식만 단순히 먹고 마시는 곳이 아니라 감성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토곡요(土谷窯)는 베이커리와 커피가 있는 카페이면서 도자기 전시실 관람과 구매도 가능한 점이 특색이고, 토곡정원은 레스토랑이면서 스몰웨딩, 각종 축하모임 등 단체 손님들에게 대관이 가능한 곳이다. 차로 3분거리 정도의 1.5km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고 두 군데 모두 이영풍 대표가 현재 운영 중이다. 토곡요는 커다란 통유리로 되어있는 건축물 앞에 멋진 정원이 펼쳐져 있고 실내로 들어가면 심플하면서 모던하다. 곳곳에 다양한 도자기와 벽에 걸린 그림들로 장식되어있고, 둥근 조명이 달린 높은 천장과 트인 전망은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을 준다. 토곡정원 역시 맛과 자연 공간이 어우러진 곳으로 영화에 나오는 웨딩 혹은 축하파티 장면이 절로 떠오른다. 전등과 야외 하얀 테이블세트들이 깔끔하면서 분위기 있게 보인다. 두 군데 모두 우리나라에서 인정받는 ‘토곡 이경효’ 도예가이신 이 대표의 아버지 호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호 ‘토곡(土谷)’에 도자기를 만드는 곳이라는 뜻으로 기와굽는 가마 ‘요(窯)’를 합쳐 지은 이름이다. “도자기하시는 분들 작업공간은 ‘요’로 많이 끝나요. 가마 ‘요’자거든요. 원래 이 자리가 토곡요였으니깐 카페도 토곡요로 하고 레스토랑도 뭘로 할까 하다가 토곡정원으로 지었어요.”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서 하고 있는 이 대표는 고모님과 부모님이 도자기 작업을 해오셨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도자기를 친숙하게 보고 자라왔고, 지금은 동양화를 그리는 아내까지 예술가 집안이다. 이 대표는 단국대 도예과에서 학·석사를 마치고 고향으로 내려와 도자기 작업과 카페·레스토랑 운영을 병행하고 있다. 아버지가 롤 모델이라는 이 대표의 아버지를 향한 존경심은 컸다. “아버지처럼 최선을 다해서 아버지 발가락이라도 따라가고 싶습니다. 평생 도자기만 하셨고 거의 없는 백지 상태에서 이 정도 만드신 분이고 다른 건 한 번도 하신 적이 없이 도자기만 하셨어요.” 이경효 도예가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작가로 도자기 업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는 분이다. “평생 정말 열심히 하셨고 잠을 줄이면서까지 작업을 하셨어요. 어머니는 그림을 그리시고 아버지랑 두 분 같이 작업하셨어요. 도자기에 그림 들어가는 것은 어머니가 다 그리세요. 저희 아내도 동양화하고 있어서 제가 만든 거에 아내가 그려주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랑 같이, 이 대표는 부인과 같이 작업하고 있다고 한다. 건축설계와 인테리어하는 지인들의 도움도 컸고 실내공간은 부인의 손길도 많이 닿았다고 한다. “친구와 후배가 건축물 설계부터 인테리어 마감까지 고생 많이 했어요. 친구들이 있어서 든든했습니다. 전등부터 식물 등 소품·공간 배치 등 세세한 것들은 아내의 도움도 컸어요(웃음). 벽에 걸린 그림들도 와이프가 그린 거에요.” 도자기는 기다림의 미학이다. 공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 대표는 나가서 보여주고 싶어 작품과 연계된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도자기가 많이 위축되더라구요. 전통 도자기를 좀 더 알리고 싶었고 젊은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자기를 많이 팔지 않더라도 사람들에게 많이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카페를 시작했어요.” 이 대표는 시간 날 때마다 도자기 작가로서 작업을 계속 한다고 한다. “제가 커피나 음식을 전혀 못하기 때문에 그 부분은 전문 직원들이 직접 해주고 저는 작업만 하고 운영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토곡요에서 사용되는 찻잔은 모두 만든 작품이다. “제가 만든 식기에 내고 싶고, 원두라든지 재료도 제일 좋은 것을 씁니다. 빵도 매일 매일 구워요. 저희는 외부에서 가져오는 것은 하나도 없고 매일 전부 만듭니다.” 야외에서는 일회용이지만 실내에서는 직접 작업한 컵들이 사용된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가져가서(웃음) 그게 좀..” 만든 일정 수량에서 어느 순간 없어지기도 하고 cctv에 가져가는 것도 보이고 경찰이 잡은 적도 있다며 이 대표의 걱정도 있지만 그만큼 그가 작업한 도자기가 사랑받고 있는 사례다. 토곡요는 오픈한지 2년, 토곡정원은 오픈 한 지 몇 개월 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다. 탁 트인 전망과 자연·예술·맛이 공존 하는 곳으로 인기가 많다. 젊은 사람들이 전통도자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길 바래왔던 그의 마음도 통했다. “젊은 사람들이 도자기에 관해 관심을 많이 가져요. 평소에 많이 볼 수 없는 것들이니깐 처음 보는 사람들이 그런 것에 신기해하고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구요. 나이 드신 분들은 도자기를 많이 좋아하시더라구요. 어떤 분은 구경할게 많다면서 차도 마시고 장시간 머물다 가시기도 해요. 주말에는 3대가 같이 오시는 가족분들도 많아요.” 토곡 이경효 도예가 편안한 곳으로 사람들이 오래도록 생각해줬으면 한다고 한다. “도심을 벗어나 정원을 베이스로 편안하게 와서 피크닉 분위기를 낼 수 있는 곳입니다. 저희가 뭐 하지마라는 게 거의 없거든요. 어느 정도 지킬 것만 지켜주시고 오시는 많은 분들이 편안하게 쉬다가 갈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튀지 않고 꾸준히 걸어 나가고 싶다는 이 대표는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앞으로는 도자기 수강도 해볼 수 있고 문화예술적인 프로그램들이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오래된 주변 공간들을 활용해 다양한 공간을 만들 계획이라는 이 대표는 평범함과 꾸준함을 강조했다. “포근하고 편안했으면 좋겠고, 성실하게 나아가고 싶어요.” 그의 도자기에 대한 열정과 오래 살았던 동네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끝으로 ‘애 잘 키우고 화목한 가정 지속’을 언급하며 아이들과 아내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전했다. 성실한 자세로 묵묵하게 나아가고 싶다는 이 대표의 행보가 기대된다. [1105]
    • 문화
    2020-12-02
  • 흙과 불, 도공의 손길에 담긴 백년의 꿈 - 배창진 2대토광도예 대표
    2020년 경남지방중소벤처기업청이 선정한 백년소공인에 소산(小山) 배창진 대표작가가 이름을 올렸다. 그는 선친인 종산(宗山) 배종태 선생의 뒤를 이어 물레성형, 장작가마 등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독창적인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투철한 장인정신과 숙련기술로 백년소공인으로서 성장역량을 인정받은 배창진 작가. 그를 만나기 위해 분청사기의 본고장, 경남 김해시 진례면으로 향했다. _정효빈 기자 “선친께서 살아계실 땐 늘 함께 작업을 했습니다. 어느 날은 가마에 불을 지피자마자 눈이 오기 시작했어요. 허리까지 쌓일 정도의 폭설이라 불이 꺼지지 않도록 밤새도록 불을 땠지요. 기압이 낮아 불 온도가 잘 유지되지 않았는지 가마를 열어보니 50점의 도자기 중 단 한 점만이 살아남아있었습니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도자기 한 점을 꺼냈는데, 힘 력(力)자를 연상시키는 문양이 새겨져있더라고요. 마치 신께서 ‘오늘 고생 많았다’라고 말하는 듯 했습니다. 긴 노고 끝에 나오는 이런 작품 한 점을 통해 자연의 경이로움과 엄청난 희열감을 느끼곤 합니다.” 언제부터였을까. 최초의 기억이 시작되던 순간부터 흙과 불을 다루던 아버지의 모습은 늘 그와 함께였다. 전통 장작가마 기능보유자였던 종산(宗山) 배종태 선생의 아들로 자라온 배창진 작가에겐 도예가의 길이 어쩌면 정해진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김해시 진례면에서 선친의 뒤를 이어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배 작가. 도예가로서 긴 여정을 걸어가고 있는 그에게는 아버지의 발걸음을 그저 뒤따라가지만은 않겠다는 것이 큰 숙제이자 임무다. “아버지께서 작업하는 걸 보고 자라서인지 작품도 닮아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모습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저는 저로서 새롭고 독창적인 작품을 빚어내고 싶은 욕심이 크죠. 김해를 대표하는 분청사기와 진사를 어떻게 하면 대중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합니다. 가마에 불을 때는 날엔 많은 분들이 직접 작품을 보실 수 있도록 공방에서 품평회를 여는데요. 좋은 작품에 대한 판단기준을 세워드리기 위해 전체 제작과정을 설명해드리기도 하고, 가마 앞에 모여 어떤 조건에서 이러한 작품이 나왔는지, 왜 실패했는지 등 의견도 다양하게 나눕니다. 이 시간을 함께한 분들께선 작품도 더 귀하게 여겨주시고 도공의 노고를 더욱 깊게 이해해주시는 것 같아 저 역시 참으로 애정하는 시간입니다.” 흙과 불, 도공의 혼이 빚어낸 분청사기는 청자에서 백자로 넘어가는 중간단계인 15~16세기에 번성했던 생활자기의 하나로, 가장 한국적인 미의 원형으로 평가받는다. 투박하지만 형태와 문양이 자유롭고 박진감 넘쳐 서민적이면서도 예술성이 뛰어난 도자기로 알려진 분청사기. 그중 도자기 유약에 구리를 환원 소성해 만든 진사도자기는 제작 난도가 높아 숙련된 도공들도 쉬이 도전하지 못하는 분야다. “진사도자기는 도공이 직접 문양을 새기거나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가마 속의 불이 독특한 빛과 문양을 만들어냅니다. 도공의 힘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란 뜻이지요.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 뒤, 나머지는 자연에 맡기는 수밖에 없어요. 가마에서 모두 깨져버린 도자기를 보고 있노라면 불의 힘 앞에서 비참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성할 때의 날씨와 주변 환경, 가마의 수분 함유량, 나무의 상태, 도공의 컨디션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문양이 탄생하기에 그 가치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배창진 작가는 손수 물레를 사용해 도자기를 성형하고, 전통 장작가마를 사용해 도자기를 구워낸다. 고된 작업이지만 전통방식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형과 색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소량 생산하는 작은 생활자기까지, 모든 작품의 시작과 끝이 그의 수작업으로 탄생한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이 내 그릇으로 내 몸에 들어갈 음식을 먹는 일”이라며 “시간은 오래 걸릴지라도 모든 작품을 수작업으로 완성한다는 자부심이 크다”라며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배 작가가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김해시 진례면은 수많은 도예가들이 불과 흙을 다루며 귀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수많은 도공들이 작품활동에 몰두하기 위해서는 자연에서 얻는 영감만큼 중요한 것도 없는데 배창진 작가는 그 역시 “가을이 되면 넓은 들판에 노란 밀알이 익어가던 멋진 동네가 점점 공장으로 둘러싸이고 있다”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예술가의 머릿속엔 늘 풍부한 감성이 피어올라야 하는데, 삭막해지는 주변 환경을 보며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도자기를 만들며 발생하는 연기나 소음 때문에 외진 곳에서 작업을 하는데도 각종 민원으로 화살이 향할 때면 도공들이 떳떳하게 설 자리가 없다고 느낄 때도 많고요. 또한 돼지열병과 코로나19 확산으로 2년째 김해도자기축제가 개최되지 못하고 있어 아쉽습니다. 도자기축제는 대중들에게 작품을 선보일 기회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작품을 연구하고 작가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도 해주거든요. 제가 55세가 되는 해에 첫 개인전을 열 계획을 갖고 있는데, 얼른 힘든 시기를 극복해 대중들과 다시 만나 작품을 통해 소통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몸을 태워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나무. 불을 지피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나무처럼 자신의 모든 혼을 쏟아 좋은 작품을 완성시키고 싶다며 밝게 웃는 배창진 작가. 그의 굳건한 다짐과 발걸음을 주간인물이 응원한다. [1105]
    • 문화
    2020-12-02
  • 장묘업계의 차별화된 관리와 유지! 추모문화의 발전을 선도, 고객의 소리에 항상 귀 기울이고 정도경영 실천
    세상에 가장 공평한 것이 있다. 누구나 태어나서 늙어가며 죽음이라는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좋은 곳으로 가셔서 편히 쉬세요.’ 정중한 예를 갖추고 드리는 장의사들의 인사로 고인이 마지막으로 듣는 말이다. 관·혼·상·제(冠婚喪祭)중에서 상례는 인간의 죽음이라는 엄숙한 사태에 직면했을 때 돌아가신 분을 정중히 모시는 절차인 만큼 가장 중요한 예법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건강하게 잘 사는 것만큼 인생을 잘 마무리 하는 것도 중요하기에 현대사회에서 장례문화는 나날이 중요해지고 있다. 유가족들의 마음을 위로하면서 고인을 좀 더 생각하고 기릴 수 있도록 항상 고민하고 연구하는 곳이 있다. 경남 김해에 위치하고 있는 공원형 프리미엄 추모공원 ‘재단법인 낙원공원묘원’. 주간인물은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주고 있는 (재)낙원공원묘원 박승현 이사장을 만나 장묘(葬墓)문화에 대해 집중 조명해 보았다. _신지원 기자 많은 분들이 안장되어있는 곳에 가면 엄숙한 곳인 만큼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공원묘지란 묘지 이용자에게 휴식 등을 제공하기 위하여 일정한 구역 내에 묘지와 공원 시설을 혼합하여 설치한 묘지를 말한다. (재)낙원공원묘원은 무겁고 어두웠던 이전의 공동묘지라는 고정관념을 한 번에 없애준다. 장묘문화는 현대의 흐름 속에서 급속히 변화하고 있고 유가족들에게 좀 더 편안하고 편리한 추모와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확산되어간다. 그 중심에 (재)낙원공원묘원이 있다. 김해 금은산의 따뜻하고 아늑한 산세(山勢)와 앞으로 드넓게 펼쳐진 평야의 풍경은 (재)낙원공원묘원이 간직한 아름다운 절경이다. 거대한 고대 원형극장을 연상케 할 만큼 분묘들이 중앙 무대를 향해 둥그렇게 줄지어 있는 듯하다. 총 2만5천 기(基, 무덤·비석·탑 따위를 세는 단위)라고 하니 직접 가보지 않은 사람도 규모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재단법인 낙원공원묘원은 1982년 설립된 사설묘지공원이다. 박승현 이사장은 대학에서 건축학을 졸업한 후 대형건설사에서 10여 년 근무하고 부동산을 운영하다가 아버지 박영근(85)씨가 이끌어오던 (재)낙원공원묘원을 이어받아 2011년 10월에 (재)낙원공원묘원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건설업계와 부동산에서 쌓아온 경험과 지식이 (재)낙원공원묘원 업무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공원묘지가 건축, 토목, 부동산을 알아야지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게 미리 공부가 되어있지 않으면 보기가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개발을 하는 부분들도 부동산과 연결되어있고 집을 짓고 도로를 만드는 것은 토목과 건축이 접목되는 부분들이 있거든요. 전체적으로 콘트롤했던 경험이 도움됐습니다.” 끊임없는 투자 박 이사장은 취임 후 지금까지 끊임없이 투자를 해오고 있다. “2000년도부터 사설묘지공원이 공설묘지공원과의 경쟁에서 밀려나 업황이 어려워지다 보니 슬럼화 되는 사설공원묘지들도 생겨났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저희 공원묘지는 끊임없이 투자를 진행해 온 것이 자생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습니다. 다른 공원묘지에 비해서 깨끗하고 시설 이용하기가 편리한 부분들이 많아요.” 선투자 했던 부분들이 지금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부분들이 많다며 고객들에게 감사한 마음 또한 잊지 않는다. “공설공원묘지와 사설공원묘지의 가격차이로 그만한 메리트가 없으면 사설공원묘지가 선택받기 힘든 시장으로 바뀌어버렸어요. 그래도 고객의 사랑을 많이 받고 유지되어 오고 있는 부분에 대해 저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재)낙원공원묘원은 부산을 비롯해 김해 경남권에서 인정을 받는 곳이다. “부산과 가까워 부산에서 오시는 분이 50% 김해 및 기타 경남지역 분이 50% 정도입니다.” 입소문 타고 알음알음 고객이 고객을 소개 (재)낙원공원묘원에서는 특별히 광고하고 있는 것은 없다. 고객이 고객을 소개하는 식으로 지금까지 유지해오고 있다며 박 이사장은 시설이나 관리에 대한 차이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묘지관리가 잘 유지되고 시설이 깨끗하게 변하는 과정을 다 봐오신 기존 묘지에 모셔져 있는 분들의 유가족들이 주변에 알음알음 소개로 저희 공원묘지는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입소문으로 고객이 찾아오십니다.” (재)낙원공원묘원의 모든 직원들이 유가족들과 고인이 되신 분들을 자기 부모님처럼 생각해 따뜻하고 소중하게 대하기 때문에 기존의 장사(葬事)업자 이미지와는 달리, 진정성 있는 마음이 고객들에게 자연스레 전달된다. 이런 점이 인정돼 김해시청 표창장과 보건복지부 표창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고의 관리수준, 365일 매일매일 철저한 관리 “묘지가 1년 365일 계속 관리됩니다. 20여 명의 현장 전문 인력들이 매일 아침 7시부터 각각 담당구역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관리하고 있어요.” 박 이사장은 꼼꼼한 현장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는 즉시 보고하는 체계가 잘 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묘지에 이상이 생겨 유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선조치한 부분을 말씀드리면 굉장히 고마워하십니다. 산소 묘지도 세월이 흐르면 손을 볼 시기가 옵니다. 관이 썩게 되면 썩는 만큼 봉분도 내려앉거든요. 세월이 지나 오래된 곳은 사진을 찍어서 보내거나 전화를 드려 유상 혹은 무상으로 들어가는 부분 모두 얘기해 드립니다. 바쁜 일상 속 유가족들이 생각지도 못한 부분들에 대해 저희가 연락드리면 울컥하시는 분들도 많으시고, 그럴 때 고인 생각이 많이 난다고 하십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그런 일들이기 때문에 모셔져 있는 분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저희 부모님이라고 생각하고 모시고 있습니다. 작은 부분들에 감동을 해서 찾아주시는 고객분들이 많으십니다. 낙원공원묘원은 세심한 묘터 관리와 편리하고 아늑한 성묘가 될 수 있도록 임직원 모두가 정성을 다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유족과 고인의 연결고리 공간, 새로운 추모문화 새로운 추모문화를 만들어가는 추모음악회는 고인에 대한 유족들의 편지 사연을 공유하면서 고인을 생각할 수 있는 자리로 참석한 많은 분들에게 진한 감동과 깨달음을 준다. “애기들 데리고 가족단위로 오시는 분들도 많은데 편지낭송 등을 들으면서 교육에 도움이 되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으세요. 공원묘지 내 작은 공간을 마련해 2시간 정도 진행됩니다. 편지 사연들로 눈물바다가 되기도 해요. 엄마를 위해 작사 작곡한 노래를 부르시는 분도 계시고 나름대로 재미있고 뜻 깊은 시간입니다. 고인과 유가족들과의 연결고리를 저희 공원묘원에서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에서 추진된 겁니다. 여태까지 4번 열렸는데 매년 호응이 좋았어요. 1년에 한번 추석 1~2주 전에 열립니다.” 유가족들은 고인과의 추억을 되살리고 고인에 대한 사랑과 은혜를 되새겨보는 기회로 소중한 자리 마련에 고마워한다고 한다. 추석명절 합동추모제 추석 당일 고객들을 위한 합동차례를 개최한다. “합동추모제는 핵가족화 되고 1인 가구도 늘어나면서 나이 드신 분들의 차례상차리기 힘들다는 말씀을 듣고 그런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합동제사를 지내기로 했습니다. 별도 공간을 만들어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그날은 하루 종일 상을 놔둡니다. 유가족들이 시간 되실 때 오셔서 각각의 방식으로 인사드리고 가십니다.” 장묘문화 인식제고 필요, 쉼터공원 같은 공간으로 “묘지라는 곳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입니다. 부모님이 생각날 때 찾아가는 곳이에요. 힘들 때 부모님한테 하소연하는 자리, 기쁠 땐 기쁨을 나누는 자리, 새해에는 결의를 다지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더 이상 묘지는 성묘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떠나보낸 고인들과의 소중한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부모님을 화장한 후 강물이나 산에 뿌리는 사람들도 많은데 헤어짐을 재촉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안타깝더라구요. 장묘문화 인식제고도 필요합니다. 성묘 보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선 동선이나 편리함이 제일 중요해요. 옆에 자투리 공간들은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놨습니다. 쉼터·휴식공간 마련을 위해 꾸준히 진행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을 위한 박 이사장의 마음은 한결같다. 더 나은 회사를 위해 직원들 복지에도 신경 써 박 이사장은 모든 직원들의 생일을 일일이 다 챙긴다. 전체 직원이 모여 사내식당에서 축하하는 자리를 가진다. “저희는 최대한 가족적인 분위기로 하려고 합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직원들을 대하고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중요해요. 직원들 호응도 좋고 결속력도 생기는 것 같아요. 이 외에도 월별 우수사원 투표를 올해 처음 시작해봤는데 역시 효과가 좋습니다. 직원들이 직원을 평가해서 뽑는 거에요.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따뜻하게 하고 직원들끼리 도움도 주고 서로 챙기며 마음을 열고 다가서는 부분이 생기더라구요. 그런데 아쉽게도 제 표는 많이 안 나오더라구요(웃음). 연말에는 표를 전부 집계해서 한 사람에게 뭔가 의미 있는 선물을 전달하려고 합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봉안당(납골당) 만들 것 토탈장례시스템도 계획 중 “가까운 시일 내에 대한민국 최고의 봉안당(납골당)을 지을 계획입니다. 더불어 토탈장례시스템을 생각 중인데요. 장례식장과 연결해 원스톱 서비스로 장기계획에 있습니다. 코로나19사태 전에는 1년에 두세 번 정도는 중국·일본·대만·미국 등 외국에 가서 해외 우수 장례시설을 견학했어요. 잘 되어 있는 사례들을 보고 접목할 수 있는 것들을 매년 공부합니다.” 박 이사장은 고객들을 위해 항상 연구하고 올바른 경영을 하려고 노력한다. “장례업이 왜곡된 곳이 많은데 저희는 앞으로도 정도경영(正道經營)의 길을 걸으려고 합니다. 수수료 문화를 없애고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재)낙원공원묘원이 되고 싶고 고객에게 알파(α)혜택을 더할 수 있는 법인이 될 거예요. 다양성과 함께 올바른 장례문화를 확립시키고 싶습니다.” 고객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진심으로 다가가려는 박 이사장의 소신과 다짐은 확고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게 제 철학입니다. 계획을 가지고 생활하려고 해요. 12월 달 되면 내년 계획 잡습니다. 계획 없이 살아가게 되면 하루하루가 무의미해집니다. 1년 동안 뭐했는지 생각해보면 한 것도 없고 안 한 것도 없고 그냥 무의미하게 건너가는 해들이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하루하루· 한 달· 일 년 그렇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최선을 다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말이 있다. 하루하루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내일도 그렇게 살아가겠다는 마음을 항상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다보면 좋은 일도 생긴다. (재)낙원공원묘원은 엄숙한 곳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고 깨닫게 되는 공간이다. 박 이사장의 ‘하루하루를 열심히 달린다’는 말이 새삼 와 닿는다. 항상 고객을 진정성 있게 대하고 올바른 회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재)낙원공원묘원이 많은 이들에게 더욱더 신뢰받는 곳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1104]
    • 문화
    2020-11-11
  • 아름다움을 찾으며 끊임없이 채워가는 삶 “뷰티전문가의 성장을 돕겠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언제나 변함없는 마음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과 관심은 지대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갖는다는 것은 남녀 누구나 바라는 일일 것.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찾고, 아름다움으로 삶을 채워가는 이를 주간인물이 만났다. 주인공은 ‘FILL UP 아름다움을 채우다’ 김하나 원장이다. 그는 멈추지 않고 자신을 가꾸는 과정 속 새로운 삶의 방향을 설정한 후, 국내외에 K-뷰티의 우수함을 알리고 있다.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로 학교와 강연장을 종횡무진 누비는 뷰티 전문가, 김 원장을 홍대 핫플레이스에 위치한 ‘FILL UP 아름다움을 채우다’에서 만났다. _우호경 취재본부장, 한원애 기자 ‘FILL UP 아름다움을 채우다(이하 필업)’ 뷰티센터는 헤어, 속눈썹, 두피문신, 왁싱, 네일, 메이크업, 에스테틱을 전문으로 하는 토탈 뷰티센터로, 차별화된 뷰티·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며 소비자의 만족을 이끌어내고 있다. 김하나 원장은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변함없는 마음”이라며 ‘언제나 같은 마음으로 고객들의 아름다움을 채우겠다’는 신조로 필업 뷰티센터를 이끌어가고 있다. 유년 시절부터 예술과 문화에 깊은 관심과 재능을 보였다는 김 원장. 일찍이 여러 분야에서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인 그녀는 기계체조를 배우기도, 여러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은 물론 글쓰기에도 재능을 보여 직접 집필한 단편수필 수상 이력이 있을 정도. 억대 연봉을 받는 금융인으로 20대를 보낸 그녀가 뷰티 업계에 발을 들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저것 잘하는 것은 많았지만 제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어떤 삶이 의미 있는 삶인지에 대한 답은 찾지 못한 상태였어요. 깊은 고민을 이어가던 중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됐죠. 북경대학교에서 이어간 학문은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이었습니다. 유학생활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던 어느 날, 우연히 네일아트를 접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정말이지 운명처럼 빠져들게 됐죠.” 그간 쌓아온 커리어와 정반대였던 뷰티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자 도전이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점이 김 원장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고. ‘행복을 중심에 두니 나의 삶과 미래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는 김하나 원장은 30대 중반, 뷰티샵 오픈을 시작으로 피부관리 분야까지 서비스 분야를 넓혀 다년 간 경력을 쌓았다. 이후 꾸준한 배움을 위해 다양한 교육과정, 세미나를 이수하는 등 열정적인 자세로 임해왔다고. 그는 변화하는 트렌드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등 역량 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유모차에 아이들을 태운 채로 이곳저곳에 사업제안서를 건네던 기억이 생생해요(웃음). 그때도 힘든 줄 모르고 마냥 좋았습니다. 도전할 수 있어서,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맘껏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요(웃음).” K-뷰티 우수함 알리려 먼 해외로… “프로 미용인 후배 양성할 것” 각종 미용시술과 성형수술이 흔해지며 쌍꺼풀 수술이나 필러는 흔한 시술이라는 인식이 퍼져가고, 성형시술을 받기 위해 국내에 들어오는 성형관광패키지가 붐처럼 일어났던 시기. 김 원장은 다양한 해외 활동을 통해 K-뷰티의 자부심은 높였고, 높은 연봉으로 능력을 인정받기도. K-뷰티붐을 발 빠르게 캐치한 김하나 원장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중국시장에 본격적인 진출을 꾀했다. 당시 여권이나 비자를 받기 까다로운 여건이었지만 극소수만이 통과할 수 있던 좁은 문을 뚫고 중국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 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다양한 교류가 잠시 멈춘 상태이지만, 향후 중국 청도에 300평 규모의 미용교육시설을 오픈할 예정입니다. 다른 이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중국 현지 미용학교를 컨택해 MOU를 체결하기도 했지요. 사스, 메르스의 위기도 이겨냈고 지금은 코로나19로 상황이 힘들지만, 낙심하진 않습니다. 위기가 곧 기회라고 생각하고 새로운 해외시장을 개척하려는 꿈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더 열심히 준비하려 합니다.” 김 원장이 운영하고 있는 필업 뷰티센터는 최정예 뷰티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는 곳이다. 자격증 취득 후에도 기술이 숙련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수강생들을 도와 고객도 행복하고 수강생도 행복하며 교육훈련을 도운 필업 뷰티센터 역시 행복하기를 꿈꾸고 있다고. 김하나 원장은 “수강생 전원이 모두에게 박수 받는 프로 미용인이 될 수 있도록 교육에 온 힘을 집중하고 있다”며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김하나 원장은 현재 반영구화장 시술을 정식으로 합법화시키기 위해 관련 협회 회장단과 함께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반영구화장을 알리고 전문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한다고. 그녀는 현재 대한반영구메이크업재단의 교육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재단에 공헌할 단단한 체계를 갖추고 준비를 마친 상태다. 필업 뷰티센터를 이끄는 수장으로, 후배를 양성하는 교수로, 대한반영구메이크업재단의 교육위원장으로 활약하며 프로 미용인 양성에 열정을 다하고 있는 김하나 원장. 아름다움을 찾아서 사는 삶,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채워가는 삶을 살아가며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는 것’이 꿈이라 밝히는 김 원장. 뷰티사업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으로 멈추지 않을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는 그녀를 주간인물이 응원한다. [수상 경력] •2015년 대한민국 대상(제1회 대한민국 최고국민대상 뷰티부문 공로대상 : 이수성 前국무총리상) 부상으로 받은 상금을 전액 장학금 기금 전달 [대표 약력] •현) 필업뷰티 대표원장 •전) 하나 뷰티 대표원장 •현) 숙명여자대학교 뷰티최고경영자 과정 외래교수 •한국미용대학 교수협회 연수원 초빙 교수 •GBEC글로벌 미용전문가협회 협회장 •중·한 국제미용학교 교육이사 •중국 심천, 청도, 광저우 다수 수석 강사 출강 •중국 우한시 국제 미용학원 원장 •서울대학교 STHIS 뷰티 최고경영자 과정 •국제미인대회 글로벌 미스퀸 공식 샤프롱 •제1회 대한민국 최고국민대상 뷰티부문 공로대상(이수성 前 국무총리상) •다수의 국회의원 상장 보유 •대한민국 대중스타 대상 뷰티문화공로 부문 •아시아K뷰티포럼 100대 뷰티명장 대상 •제1회 GBEC글로벌 미용전문가 대회 대회장 •국내·외 미용대회 조직운영위원장, 감독관, 심사장, 심사위원 위촉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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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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