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8(수)
 



최근 고청기념사업회(회장 김윤근)은 제4회 고청상 수상자로 대한민국 도자공예 명장 배용석 명장을 선정했다. 대한민국 도자공예 명장, 배용석 선생은 한평생 신라토기 복원과 재현에 몰두하며 도예에 천착해 온 장인이다. 이번 수상을 통해 그간 도예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주간인물은 뜨거운 장인정신으로 예술혼을 불태운 배용석 명장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배용석 명장은 하늘이 내린 솜씨를 지닌 장인이다. 그의 고향은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 옹기마을. 조부 배천수 선생과 부친 배상윤 선생에 이어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원래 학업에 뜻을 두었던 그는 옹기공장을 운영하던 부친을 일찍이 여의고 가업을 이어받아 열일곱에 옹기공의 길에 들어섰다. “저처럼 짧게 중학교를 다닌 사람은 또 없을 거예요. 교원이 되기 위해 안동사범학교에 입학한 지 3일만에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가야했습니다. 원래 학업에 뜻을 두었으니 집안 어른들이 장남인 제게 집안 일을 맡겼어요. 그렇게 옹기공장을 이어받고 옹기공들에게 기술을 배웠죠. 숙련된 기술자들은 모두 ‘하늘이 내린 솜씨다’라며 탄복했지만 실로 어려서부터 부친의 일을 보고 자라다 보니 남보다 쉽게 기술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공장의 주인인지라 허드렛일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기술을 익힐 수 있었던 것도 컸구요. 옹기공이 된 것은 내겐 운명이었죠.”
스무 살에 화분 제작으로 사업적으로 성공을 거뒀지만 우연히 구 경주박물관에 전시된 신라토기를 보면서부터 그의 작업 방향은 대전환을 맞이했다. “열아홉에 심한 독감을 앓았고 그걸 계기로 교회를 다니게 되었죠. 예배를 마치면 경주박물관을 찾아 몇 시간이고 신라토기를 보는 게 일과였어요. 문턱이 닳도록 경주박물관을 찾아 몇시간이고 신라토기만 뚫어져라 보는 청년을 주변 사람들은 수상쩍게 여겼죠. 그렇게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 혼자서 신라토기를 재현하기 위해 애썼어요. 주변에서는 ‘돈 안 되는 허튼짓을 한다’며 마뜩지 않아했지만 하면할수록 빠져드는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당시 박물관장이었던 황수용 선생께서 어느날 옹기공장을 찾아 신라토기를 재현하려는 모습을 보곤 박물관 관련자들에게 ‘어떻게든 협조하라’는 지시를 내렸어요. 그렇게 신라토기 유물을 직관하고 관련 자료를 공부하며 유물 복원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천년의 역사가 담긴 신라토기. 그 우수한 문화유산을 복원하기 위해 그는 청춘을 바쳤다. 유물 복원을 위해 신라토기에 쓰였던 흙을 찾으러 10여 년간 전국을 다닌 것. 첩첩산중을 헤매다 쓰러져 선인의 도움을 얻어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기도 여러 번. 각고의 노력 끝에 신라토기의 복원을 이뤄낼 수 있었다. “신라토기의 시작은 흙입니다. 전통 토기 흙을 찾기 위해 전국을 다녔지요. 결론적으로 신라토기를 재현하기 위해서는 접착력이 좋아 소성이 잘되는 경주 안강의 흙과 검은 색을 내는 경주 내남 노곡의 흙, 1200도가 넘는 열에도 주저 않지 않고 견고한 영천 봉정의 흙이 필요합니다. 이 세 가지 흙이 적절하게 배합되어야 신라토기만의 색과 형태, 질감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도자기와 달리 신라토기는 유약을 바르지 않고 1200도가 넘는 전통가마에서 5일에서 1주일 정도 구워야 비로소 완성할 수 있습니다.”

물 흐르듯 흐르는 장인의 손길. 그 손끝에서 천년의 세월을 넘어 신라토기가 되살아난다. 말을 타고 있는 ‘인물기마상’을 비롯해 다섯 개의 잔이 등과 연결된 ‘오심등잔’, 오리를 형상화한 ‘오리모양토기’ 등 화려한 신라의 문화유산이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뛰어난 장인의 작품을 소장하기 위해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명사들의 애장품인 동시에 경주를 대표하는 신라토기 복원작으로 각광받으며 전시회를 개최하고 각종 대회에서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1978년 서울 미도파 백화점 화랑 전시회, 1980년 제10회 전국관광민예품경진대회 경북 입선, 1987년 일본 동경 프린스호텔 전시회, 1991년 대한민국 도자기공예 명장 선정, 1996년 일본 동경 예술인 합동 전시회, 2007년 한국장작가마연구회 국제교류전 등에 참가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현재  경주민속공예촌 내 ‘보산토기’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한국폴리텍 대학 명예교수로 후학양성과 도예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사)대한민국명장회 대경지회 회원으로 작가들과 교류하며 작품 활동에 힘쓰고 있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작품 활동에 여념이 없는 명장. 한평생 신라토기 복원과 계승을 위해 헌신해온 그의 삶에서 예술혼을 불태운 우리 시대의 장인의 모습이 보였다. [1142]

주간인물(weeklypeople)-박미희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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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고청상 수상’ 신라토기 복원과 재현에 천착한 우리 시대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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