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 세월 한결같이 뜨겁게 솟아 나오는 온천물처럼...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는 곳
풍부한 수량, 뛰어난 수질, 편리한 접근성으로 인해 신혼여행지로 각광받았을 정도로 부산의 여러 관광지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동래온천’은 중년을 넘긴 이들에게 옛 추억을 되돌아보게 하는 지역이다. 오죽하면 동네 이름부터를 온천동, 근처 지하철 역을 온천장이라고 이름 붙였겠는가. 오락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 주말에 떨리는 맘으로 부모님의 손을 잡고 갔던 금강공원은 또 어떠한가. 동물원, 놀이공원, 식물원뿐만 아니라 개통 당시 국내 최장 길이를 자랑했던 케이블카까지... 명실공히 최고의 종합 테마파크로 부산시민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안겨준 곳이다.
시대적 흐름과 함께 동래온천의 명성이 예전만 못하다. 하지만 질 좋은 온천수, 추억의 파전, 곰장어 같은 먹거리들 만큼은 영원한 가치를 가진다. 옛 영광을 되찾고자 지역 주민들과 상인들이 힘을 모으는 가운데 동래온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 문상학 위원장은 그 누구보다 절실한 마음으로 지역의 부흥을 꿈꾸고 있다. _김유미 기자
“1970, 1980년대만 해도 온천장 일대는 부산 경남에서 제일가는 번화가였습니다. 신혼여행을 오는 젊은 부부가 많았고 김해나 양산 등지에서도 사람들이 몰려올 정도였지요. 역사가 유구한 만큼 온천탕을 비롯해 숙박과 식사 등 편의 시설이 두루 갖춰져 평일이든 주말이든 찾는 사람이 넘쳐났습니다. 안타깝게도 터미널이 옮겨가고 곳곳에 대형 목욕탕들이 부산 전역에 생겨나면서 조금씩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게 되었어요. 냉정하게 봤을 때 관광객들을 끌어당길 만한 특별한 콘텐츠가 없었던 것도 문제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문 위원장은 동래 온천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온천공 개발사업을 하셨다. 말그대로 ‘온천’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집안이다. “제가 나고 자란 곳이 바로 이 골목입니다. 온천장 골목골목을 뛰어다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릴 적부터 저를 봐오신 선배님들께서도 ‘토박이인 네가 맡아서 잘 좀 운영해봐야 되지 않겠나’하고 진심을 다해 응원해주시지요.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게 됩니다(웃음).”
현재 동래온천의 중심인 온천1동은 주민자치위원회, 동래온천번영회를 비롯해 통장협의회, 새마을단체, 바르게살기운동위원회, 자유총연맹 등 11개 단체를 중심으로 모두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지역 살리기를 위해 애쓰고 있다. ‘살고 싶고 찾고 싶은 활기찬 온천1동 만들기’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자생 단체별로 관내 일정 구역을 지정해 매월 1회 이상 환경정비를 하는 등 자구적인 노력도 펼치는 중이다. 제 3회를 맞은 ‘동래 온천장 HOT 페스티벌’ 역시 지난 7월 5일, 온천장 허심청 옆 곰장어 거리에서 성황리에 열리며 많은 이들에게 온천장을 다시금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각종 공연과 즉석 댄스 경연 등 주민들이 다 함께 참여한 알찬 프로그램들로 생각보다 많은 방문객분들이 함께 즐겨주셨습니다. 과일, 치킨 등 각종 먹거리와 일일호프도 운영해 분위기가 좋았어요. 특히 올해 첫선을 보인 동래 온천장 이모·삼촌 가요제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지역 상인들의 기운을 북돋아 주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진행했는데, 처음엔 수줍어들 하시더니 나중엔 아주 열정적으로 출연하시고 끼를 뽐내시더군요(웃음). 지면을 빌어 지역에 일이 있을 때마다 두말없이 지원을 아끼지 않는 온천업을 하시는 지역 원로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모두의 노력들이 모여 다시 한번 활력이 넘치는 온천1동이 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가장 큰 것이 주차 문제입니다. 가까운 지역에 공영주차장이 마련된다면 산좋고 물좋은 온천장을 다시 찾아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역 주민들과 상인들도 계속해서 지역의 강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사업에 대해 협의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하겠습니다.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동래온천의 멋진 변화를 기대합니다.”
뜨끈하게 온천욕을 마친 후, 요구르트병에 빨대를 꽃아 입에 물고 부모님 손을 잡고 나오면 연탄에 구워지는 곰장어 냄새에 발길이 멈춰지곤 했다. 출출한 가운데 곰장어구이 한 점이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온천장에서는 1970년대 들어 현 녹천탕과 녹천호텔 주차장 위치에 5~8평 크기의 곰장어 식당 5군데가 한데 들어서면서 골목시장을 형성했다. 당시 곰장어골목이 다닥다닥 붙은 가건물로 이어져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80년대엔 곰장어가 포장마차의 소주 안주 1호로 꼽힐 만큼 사랑을 받은 데다 스테미너식품으로도 각광받으면서 소위 곰장어 전성시대를 열었다. 온천탕과 온천극장 주변의 유흥가, 곰장어골목 등이 어우러진 동래온천은 당시 부산 최고의 노른자위로 명성을 떨쳤다. 현재는 문상학 위원장이 운영하는 ‘부산토박이산곰장어’를 비롯해 채 열 곳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대부분 2~30년 이상의 역사와 노하우를 가진 맛집들이다.
“지구상에서 거의 유일하게 한국에서는 곰장어를 정력 보강용 스테미나 음식으로 즐겨 먹습니다. 단백질과 지방, 비타민A가 풍부해 영양가가 높은 식품이지요. 채산성이 맞지 않아 양식이 되지 않고 전부 자연산이다 보니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는 말 그대로 서민음식이었는데 이제는 고급 요리가 되어버렸어요. 수급 문제가 가장 크지요.”
‘부산토박이산곰장어’는 오로지 국내산 산곰장어만 고집한다. ‘아시는 분들은 이 집 고기 참 좋네~’ 하고 알아봐주신다면서 문 위원장은 “그럴 때 피로가 가는 듯하다”고 전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24시간에서 밤 10시까지로 영업시간이 줄었습니다. 여러 부대 비용들이 상승하면서 힘든 상황이지만, 손님들이 편하게 찾아오실 수 있도록 최대한 마진을 줄이고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자리를 버텨내고 계신 지역 상인분들에게 응원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연탄곰장어 요리에 많은 분들이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11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