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8(수)

통합검색

검색형태 :
기간 :
직접입력 :
~

경제 검색결과

  • 임영배 의령 망개떡 대표
    “내가 잘했다기보다는 우리 지역 주민들이 밖에 나가 우리 떡을 선물로 나누고 했던 것이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어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이니 나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도움 받은 만큼 지역주민들을 위해 봉사해야지요.” 망개떡. 멥쌀가루를 쪄서 치대어 거피 팥소를 넣고 반달이나 사각 모양으로 빚어 두 장의 청미래덩굴잎 사이에 넣어 찐 떡을 말한다. 경상남도에 ‘의령’이라는 지역을 들어보았는가. 이 망개떡은 의령의 자부심이요, 얼굴이다. 1956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3대째 맥을 이어오는 60년 전통의 ‘의령 망개떡’ 임영배 대표와의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조혜영 기자 경남 의령의 ‘남산 떡 방앗간’은 의령시장 한가운데에 위치하고있다. 취재를 위해 들어선 협소한 그 공간은 망개떡을 만드는 직원들의 대화와 웃음소리로 활기가 넘치고, 그들의 망개떡을 맛보기 위해 이른 오전부터 찾아드는 군민들의 발걸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자칭 의령의 ‘핫 플레이스’였다. “처음이야 어릴 때니까 이파리에 싸는 떡이 망개떡인지도 모르고 온종일 어머니를 도와 떡을 만들다 뻗어 잠이 드는 것이 다였습니다.” 딸 다섯에 아들 둘, 그중 장남이었던 임영배 대표는 왜소한 체구에 뼈대가 약한 소년이었다. “집안이 원체 어려우니 나는 공부할 엄두도 안 났지만, 그래도 내 남동생만큼은 꼭 공부시키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를 따라 떡메질을 하고 아버지를 따라 막일도 하며 임 대표는 집안을 위해 헌신했다. “그 옛날에는 떡을 함지박에 이고 팔러 다녔는데 우연이라도 길에서 어머니를 마주치는 날에는 멀리서 보는 우리 어머니가 그렇게 나를 가슴이 아프게 울리더이다.” 스무 살 청년, 이 악물고 장사를 시작하다 “떡은 지긋지긋해서 떡만 아니라면 악착같이 잡히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힘든 노모를 위해 성공이 간절했던 임 대표는 화장품 장사, 어묵 공장 등 떡이 아닌 다른 분야에 도전했지만 결국은 돌고 돌아 떡으로 회귀했다고. “어묵공장을 위해 땅을 매입했는데 하필 또 그곳에 떡 방앗간이 있지 뭡니까. 하는 수 없이 떡 방앗간도 함께 인수했는데 그곳이 지금 이곳입니다. 하하.” 떡이 내 운명이거니 하고 받아들이게 된 임 대표는 그날부로 인정하고 더 나은 망개떡을 위한 개발을 시작했다. “우리 망개떡에는 식품 첨가물이 일절 들어가지 않아 유통기한이 거의 하루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택배를 통해 받아보시는 분들께도 최상의 상태를 제공하기 위해 개발 중에 있습니다.” 예전에는 겨울 동안 떡을 쌀 잎이 시들어 없어 팔지를 못했다. 잎을 겨울까지 보존하기 위해 임 대표는 뻔질나게 산을 오가며 ‘염장법’을 개발하였고 그 결과 사계절 모두 망개떡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대량으로 잎을 채취할 수 있는 곳, 채취 시기, 채취 방법 등 얼마나 고민했는지, 벌에 쏘여가며 아주 힘들었습니다.(웃음)” 식품공학과를 졸업한 큰아들과 함께 계속해서 식품 첨가물 없이도 굳지 않는 떡을 개발 중이라며 웃는 임 대표의 표정에는 일흔이 넘는 그의 나이를 찾아볼 수 없는 젊음이 느껴졌다. “아내에게, 자식들에게, 지역주민들에게, 우리 떡을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터뷰 말미, 임 대표는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 “귀한 집 딸을 데려와 함께 한 40년 동안 너무 고생시켜 늘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 꼭 하고 싶었습니다.” 한 마디의 불평불만 없이 자식들 잘 키워주고 자신 옆에 있어 주어 감사하고 행복하다 말하는 임 대표. 그는 자신의 떡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도 모두 의령 군민의 덕으로 돌렸다. “이웃이 나를 이렇게나 도와주었으니 나도 이웃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봉사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장학금과 기부에도 선뜻 그 뜻을 전하고, 지역단체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활동하는 그.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절대 뒤로 물러나 있는 법 없이 망개떡을 위해 직접 개발에 나서고 지역주민들을 위한 봉사를 멈추지 않으며,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표현도 아끼지 않는다. “이번에 새로 지은 망개떡 공장에는 아이들을 위한 ‘망개떡 체험 공간’이 있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이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의 훌륭한 인품에 감탄이 절로 나는 인터뷰였다. 참 어른이란 그를 두고 하는 말일까. 소박하지만 정성이 가득 들어간 그의 명품 떡처럼 겸손하고도 따뜻한 그와의 행복한 동행이었다. [1043]
    • 경제
    2018-05-14

문화 검색결과

  • 30여 년의 경력이 빛을 발하는 대한민국의 모래 조각 창시자 김길만 작가
    끝없는 바다와 새하얀 백사장이 드넓게 깔린 부산 해운대. 올해도 어김없이 다가오는 여름을 맞게 될 그곳은 젊음의 패기와 무한한 자유가 느껴지는 부산의 에너지원이요, 활력소 그 이상의 공간이다. 그리고 이 해운대 바다에는 1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곳의 자유를 예술로써 승화시키는 대한민국 모래 조각 창시자 김길만 작가가 있다. 이번 주 주간인물은 2018년 5월 19일(토)~22일(화)의 총 3일의 기간에 걸쳐 해운대 해수욕장 백사장과 구남로 일대에서 진행되는 해운대 모래축제를 맞아 모래 조각가 김길만 작가와의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조혜영 기자 꿈을 잃고 낙이 없던 청년 김길만, 부산 해운대 백사장을 만나다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 기온,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피해 김길만 작가를 만난 곳은 ‘피카소’라는 카페였다. “원래 꿈은 대중가요 작사가였습니다. 가수 혜은이의 열렬한 팬이었거든요.” 그는 젊은 시절 서울에서 작사가를 지망하는 30여 명의 지망생들과 함께 동고동락했다고 한다. “열정으로 똘똘 뭉친 30명이었지만 살아남은 것은 그중 단 1명이었습니다. 설운도 씨의 ‘다 함께 차차차’를 작사한 김병걸이 바로 그 친구죠. 저는 살아남지 못해 부산으로 내려와 삶의 낙이 없이 그렇게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친구가 저를 해운대 백사장에 바람을 쐬어주려 데려가더라고요.” 그 날 백사장 모래의 부드러웠던 감촉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는 김 작가. 모래에 빠지게 된 것은 그 날부터였다고 한다.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지 어언 30년. “사람들은 저에게 모래에 미쳤다고 말했습니다.” 하루 온종일 모래 조각에만 매달려 작품을 만들어내는 김 작가를 사람들은 ‘하루살이’ 작가라고 했다. 오래도록 보존하지도 못할 모래를 어제를 오늘처럼 다듬고 만지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지만 김 작가는 작품이 완성되는 그 순간 온몸으로 느껴지는 희열에 자신의 정체성을 뚜렷이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세계로 뻗어 나가는 한국의 모래 조각 그의 끝없는 열정은 해외의 언론매체로까지 번졌다. “2000년에는 미국에 초청받아 다녀왔습니다. 새천년을 맞아 용을 작품화하였는데 시카고 썬 타임지 1면에 실리기도 했죠.” 각국의 초청을 받아 작품 활동의 범위를 넓히며 그는 세계의 모래 조각을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라별 국색에 맞는 문화적 디테일이 살아있는 작품 소재를 표현하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2015년 경남 밀양 꽃 새미 마을 허브 나라 식물원에서 만든 초가집의 ‘고향’이라는 작품과 교과서에 실린 ‘서편제’(2013), 그리고 장승(2010년), 상평통보(2018) 등이다. 세계에서 찾는 그의 수많은 작품이 교과서에 실리는 것을 보고 그는 인재 양성에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세계에서 관심을 가진 한국의 모래 조각, 제 세대에서 끝나지 않길 바랍니다. 모래 조각이란 것은 꼭 해변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학력도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고 오직 모래만 있다면 가능한 예술입니다. 작가인 저의 작품 도구도 그 흔한 나무젓가락과 물뿌리개 정도인 만큼, 아무것도 준비되어있지 않은 일반인일지라도 표현하고자 하는 열정만 있다면 그 나름의 예술로써 나타나는 것, 그것이 모래 조각입니다.” 김 작가는 일본 돗토리 현의 모래미술관처럼 국내 최초 모래 테마파크를 준비 중에 있다. 친환경적인 목공용 풀을 이용하여 몇 달 정도 영구보존 가능하도록 작품을 제작하여 기간을 두고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으로 업데이트하는 방향으로 구상하고 있다. “모래 조각이라는 분야가 우리나라에서도 꾸준히 활성화되고 발전되길 바랍니다.” 올봄에도 어김없이 성큼 다가온 해운대 모래축제. 이번 모래축제의 테마는 ‘영웅’이라 한다. 김 작가는 한국인 최초로 올림픽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마라톤 선수인 ‘손기정’ 선수를 작품으로 구현해낼 생각에 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대회에 참가해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는 일제 강점기 한국인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딴 마라톤 선수이다.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모래축제에서 잊혀가는 영웅을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고 싶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자국 역사상 힘든 시기에 탄생한 마라톤 영웅 ‘손기정’ 선수처럼 사람들의 멸시에도 꿋꿋이 자신의 길을 닦아 세계에 그 명성을 떨치는 대한민국 모래 조각의 영웅은 바로 김길만 작가가 아닐까. 요즘도 이른 아침이면 작업하러 나가는 그 길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하는 끝없는 열정을 가진 그와 그의 작품을 응원한다. [1043]
    • 문화
    2018-05-14

맛집탐방 검색결과

  • 정재오 시계 토끼의 유혹 대표
    청년은 미래다. 그들의 수많은 도전은 각각의 성공과 실패로 이어지고 계속해서 반복되는 과정 속에 젊음은 틀에 박힌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간다. “꿈을 꾸는 자만이 꿈을 이룬다.” 이것은 그 핫 하다는 부산진구 전포 카페거리의 쟁쟁한 카페들 속에서 일절의 꼼수 없이 그 만의 개성으로 한 자리를 차지한 ‘시계 토끼의 유혹’ 청년 정재오 대표의 삶의 모토였다. “저는 늘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습니다. ‘나는 동화 같은 카페를 만들 거야.’ 이렇게 말이에요. 이 카페는 제 꿈이었습니다.” 이번 주 주간인물은 유행을 쫓기보다 자신의 생각과 개성이 잘 드러나는 공간을 고집한 전포 카페거리의 시계 토끼, 정재오 대표와의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조혜영 기자 내 모든 표현이 허용되는 자유의 공간을 꿈꾸다 “군 제대 후 복학 신청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명함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카페에서 일해 달라는 제안이었죠.” 그 제안은 정 대표가 카페를 일로써 접하게 된 첫 계기가 되었다. “카페 일을 일 년, 이년 하다 보니 내 카페를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체적인 성격의 그가 원한 카페는 동화적인 요소가 가미 된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공간이었다. “이 공간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모티브를 따온 만큼, 제가 어떤 소품을 제작하고 어떻게 인테리어를 매치해도 ‘이상한 나라’이기에 모두 허용 되는 곳입니다. 저는 제 모든 예술 표현이 허락되는 곳을 원했어요.” 디자인을 전공한 그의 작품이 고스란히 녹아든 그곳이 바로 정 대표가 원했던 ‘시계 토끼의 유혹’이다. 심플하고 모던한, 깔끔한 느낌이 주류를 이루는 최근 카페들과는 확연히 다른 길을 가는 그만의 공간. 이 차별성은 다녀간 이들의 입소문으로 손님을 끌게 하였다. 틀에 박힌 것들은 하지 않겠다는 ‘고집’ 나는 ‘내 것’을 하겠다는 ‘고집’ 정 대표의 예술작품들로 가득 찬 ‘시계 토끼의 유혹’은 볼거리가 풍성한 곳이다. 하지만 인테리어만큼이나 뛰어난 것은 바로 그가 개발하고 만드는 음료와 디저트였다. “웬만해서 직원을 두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한결같은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함도 있습니다. 라떼 한잔을 시키시더라도 모두가 같은 토끼가 그려진 잔을 받게 하고 싶어요. 덕분에 손님이 몰릴 때는 혼자서 버겁기도 합니다. 하지만 잔을 받아보시는 분이 ‘아 이래서 시간이 걸렸구나!’하고 말씀하세요. 정성이 담긴 차라는 걸 알아주시고 다음에 또 찾아주실 땐 감사하고 뿌듯합니다.” 그는 어디를 가나 카페는 많기 때문에 다른 카페와의 차별성이 없다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정 대표 자신이 원했던 클래식한 감성에 차 한 잔을 ‘대접 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카페를 고집했고 시계 토끼의 유혹은 방향을 구축하기까지의 시간을 견뎌내고 끝끝내 자리를 잡았다. 그가 강조한 것은 ‘고집’이었다. 자칫 유행에 휘둘려 길을 잃지 않도록 하는 고집. “원하는 방향성에서는 고집을 부리지만 카페의 발전을 위한 고민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이 곳은 메뉴를 주기적으로 한 번씩 바꿉니다. 고객의 니즈에 맞춰 매일 개발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거치죠. 저희 가게 베스트메뉴는 시계 토끼가 예쁘게 그려진 카페 라떼와 바닐라 라떼에 저만의 레시피로 만들어진 수제 크림이 듬뿍 올라간 ‘크림 바닐라’입니다. 우리 카페에서만 맛볼 수 있는 부드럽고 달콤한 크림의 진한 풍미를 느낄 수 있죠. 카스테라와 티라미스를 합친 ‘카스티슈’와 함께 드시면 조합이 잘 맞아 단골을 만드는 우리 가게의 무기입니다. (웃음)” 그는 한가한 날이면 야외 정원에 나가 커피 한잔을 마시며 여유를 즐긴다고 한다. “모든 것을 쏟아 부어 만든 가게입니다. 이 공간을 만들기까지 힘들었지만 재밌었고, 계속해서 꿈을 꿀 수 있도록 만들어준 고마운 공간입니다.” “꿈을 꾸는 자만이 꿈을 이룬다.” 그의 끝없는 꿈 나아가 그의 다음 꿈은 2호점을 내는 것이다. “다양한 동화 컨셉으로 점포를 늘리고 싶어요. 주인공은 앨리스이지만 우리는 시계 토끼에게 포커스를 맞췄듯이 주인공 옆의 인물에게 포커스를 맞춰 또 다른 이야기로 동심과 감성이 살아있는 공간을 꾸미고 싶습니다. 2호점을 열게 된다면 그때는 사무실을 만들어 그곳에서 카페를 관리할 거에요. 아, 그리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분야의 일이라면 한 번 도전해보고 싶어요.” 각 잡힌 느낌과는 거리가 먼 서글서글한 웃음에 자유분방한 청년이지만 오롯이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그 모습은 요즘 젊은이들에게서 찾기 힘든 여유와 행복이 느껴졌다. 인생의 주인으로서의 자리를 꿋꿋이 지키며 삶을 즐길 줄 아는 멋진 청년 정재오 대표와의 특별한 만남이었다. [1044]
    • 맛집탐방
    2018-05-28
  • 민병길 길세이로무시 대표
    얼마 전 코미디 TV의 인기프로그램 ‘맛있는 녀석들’에서 ‘세이로무시’가 소개되었다. 4명의 MC가 땀을 흘려가며 먹는 이 요리는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군침을 돌게 하였지만 정작 이 음식이 익숙한 사람은 적었으리라. 세이로무시는 나무 찜통에 식재료를 넣고 쪄서 먹는 일본식 찜 요리로 한국에서 이 세이로무시를 찾는 사람이 늘고있는 반면, 그 본연의 맛을 제대로 표현해낼 전문점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부산 광안리에서 이자까야를 운영해오던 민병길 대표 또한 그러하였고, 그는 이 음식을 보편화시켜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이번 주 주간인물은 세이로무시를 전국적으로 알려 한국에서도 쉽게 그 맛을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길세이로무시’의 민병길 대표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조혜영 기자 순수하게 ‘요리’를 좋아하던 그가 ‘세이로무시’ 전문점을 창업하기까지 부산 연제구, 인테리어적으로나 직원들의 옷매무새를 보아 한눈에 깔끔함과 정갈함을 느낄 수 있었던 ‘길세이로무시’의 매장 내부에 들어서자 침착하게 인터뷰를 준비하던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어떻게 세이로무시를 접하고 창업까지 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그는 “원래는 순수하게 요리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친구들이 맛있게 먹어주면 기분 좋은 그 정도일까요? 우연찮게 지인의 가게에서 일을 하며 꿈이 커졌던 것 같아요. 어깨너머로 배운 것은 나중에 광안리 일대에서 작은 이자까야를 운영하게 만드는 양분이 되었죠. 이자까야를 운영하던 중에 저희 쉐프와 일본에 다녀오게 되었는데. 후쿠오카 일정에서 처음 ‘세이로무시’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찜 요리가 든든하면서도 부대낌이 덜하고 다음 날 가뿐하게 몸이 일으켜지는 것에 ‘아, 이거다!’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어요.” 하고 대답했다. “그때부터 계속 세이로무시를 찾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이 음식을 어떻게 표현해내고 있는지 많이 먹어보고, 세이로무시에 대한 사람들의 평도 계속해서 눈여겨봤죠. 대부분 긍정적인 평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세이로무시를 한국 사람에게 맞게끔 세상에 내놓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세이로무시 사업은 시작과 동시에 많은 주목을 받았다.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움직이며 본보기가 되는 리더로 자리를 지키자 가맹점 문의가 빗발치며 다가오는 6월에는 서면에 2호점 오픈을 앞두고 있을 만큼 ‘대박’이 난 민 대표에게 그 비결을 물었다. “요즘 음식 맛이 없는 곳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웬만하면 다 그들만의 개성이 담긴 요리를 내놓고 있고,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곳이 외식업입니다. 음식 맛으로만 그 가게를 찾아주는 것은 한두 번이라고 생각합니다. 식상한 얘기로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말 한마디라도 친절하게 건네는 서비스 정신입니다.” 때문에 민 대표는 자신과 함께 고객을 맞이하는 직원들과의 소통에 힘쓴다. “가게는 3시 오픈이지만 항상 10시쯤 되면 먼저 출근하여 미리 오픈 준비에 나섭니다. 직원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리더가 되기 위해 노력하죠. 다양한 고객님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직원들의 체력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한 날은 다 같이 술 한 잔하며 다독여주기도 합니다. 가족처럼 생각하는 식구들이니까요. 힘든 날도 있겠지만 그래도 고객님들이 음식을 말끔히 비우고 가시는 것을 보면 직원들도, 저도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습니다. (웃음)” 고객에게 조금 더 맛있고 편한 식사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그가 개발한 세이로무시 테이블은 현재 의장 등록되어있으며 특허 진행 중에 있다. “시간이 지나도 적당한 온도가 유지되어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까지 음식 맛이 한결같을 수 있도록 개발했습니다. 세이로무시 전문점을 오픈하고부터 늘 직접 부딪히며 최고의 맛을 찾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그의 최종 목표는 그가 만들어낸 ‘길세이로무시’가 전국적으로 뻗어 나가는 것. 전국 어느 길세로이무시를 방문하더라도 같은 맛과 같은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이라고 한다. 차분하고 사려 깊은 그의 성품과 같이 빛을 발할 길세로이무시를 기대한다. [1044]
    • 맛집탐방
    2018-05-28
  • 도톰제과 이명윤 대표
    얼마 전, 한 마카롱 가게에서 방문고객과 실랑이를 벌이다 맞고소에 이르기까지 했던 이른바 ‘마카롱 사건’을 알고 있는가. 이 사건을 계기로 마카롱은 온라인상으로 크게 화제가 되며 전국적으로 ‘마카롱 대란’이 일었다. 이처럼 근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마카롱은 작고 동그란 모양의 머랭 크러스트사이에 잼과 가나슈, 혹은 버터 크림등의 필링을 채워 샌드위치처럼 만드는 프랑스의 쿠키를 일컫는다. 이 매끈하고 바삭한 크러스트와 부드럽고 촉촉한 필링의 삼단구조가 빚어내는 독특한 식감과 맛, 그리고 향은 형형색색의 모양을 빚어내는 마카롱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주 주간인물은 자신만의 레시피로 마카롱을 해석한 부산 서면 전리단길의 도톰제과 이명윤 대표와의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조혜영 기자 제2의 삶,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8년간 몸담아온 회사에 사표를 던지다 오후 3시쯤이면 전 메뉴 마카롱이 모두 매진된다는 부산 서면 전리단길에 위치한 ‘도톰제과’. 복층 구조의 매장 내부는 깔끔하고 모던한 감각의 인테리어로 꾸며진 공간이었다. “군대를 자원해서 복무하고, 대학도 졸업 전에 취직할 만큼 미래에 대한 계획이 세워지면 돌진하는 스타일입니다. 전기과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8년 넘게 쉼 없이 달리다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지쳐있는 제 모습을 발견했어요. 그때 제2의 인생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긴 직장생활에 지친 이 대표의 눈에 띈 것은 다름 아닌 달콤한 마카롱. “커피를 굉장히 좋아해 자주 마시다, 커피와 합이 잘 맞는 디저트인 마카롱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첫 맛은 정말 충격이었죠. 이렇게나 맛있는 게 있다니! (웃음). 하지만 마카롱은 고급 디저트인 만큼 직장인들이 사 먹기에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이 신경 쓰였습니다. 그래서 가격을 낮추고, 보기에도 먹기에도 만족감이 충족되는 도톰한 마카롱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날부로 이 대표는 마카롱 클래스에 다니기 시작했다. “이 길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집중하고 몰두했죠.” 오픈과 함께 부산 마카롱 맛집으로 화제를 모으다 이 대표의 확신처럼 도톰 제과는 가 오픈 때부터 인기가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는 한국인이라면 익숙할 맛을 노렸다. “오레오, 죠리퐁, 뽀또 등 사람들이 좋아하는 과자를 많이 이용했습니다. 그 맛은 대중적이고 호불호가 없는 국민 간식이니까요. 익숙한 맛이 마카롱에 접목되어 신선함과 재미를 더했습니다.” 도톰 제과의 베스트 제품은 고소한 아몬드가루를 묻힌 쫀득한 꼬끄 안에 부드러운 앙버터 크림과 바삭한 다이제가 필링 된 ‘앙버터 다이제’와 쑥과 앙금 팥이 통째로 들어간 인절미 콩고물 토핑의 ‘쑥 팥 인절미’, 그리고 일본 수입 말차와 통째 오레오의 조합이 환상적인 ‘말차 오레오’ 등이 있다. 이 대표는 자신의 마카롱을 사랑해주는 고객분들과의 소통에 힘쓴다고 한다. “저희 마카롱을 찾아주시는 분들의 관심에 보답하여 마카롱이 한때 유행에 그치지 않도록 계속해서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고객과의 꾸준한 소통만이 답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관심이 힘들어도 재밌게 일할 수 있는 양분이 됩니다.” 이 대표는 도톰 제과를 인테리어 하는 과정에 있어 사소한 작업까지도 외주에 맡기지 않았다고 한다. 발로 뛰어 인테리어 소품을 찾고, 스스로 톱질하여 의자를 만들었다. “저희 가게 모든 마카롱을 제 손으로 만들어 내듯 가게의 소소한 모든 부분까지도 내 손이 닿는 가게를 만들고 싶었어요.” 정성과 열정으로 꾸려나가는 도톰 제과. 그의 경영 철학은 ‘재료를 아끼지 말고 도톰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상품으로 고객을 맞이하자.’이다.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도 있겠지만 일하는 게 재밌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요즘입니다. 아직 부족한 게 많지만 모든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신뢰가 두터운 ‘도톰’ 브랜드를 키워나가고 싶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마카롱뿐만 아니라 외식부문에서 영향력 있는 ‘도톰’이 되어 한국 외식 경영인으로써 큰 획을 긋는 그가 되길 주간인물도 함께 응원한다. [1044]
    • 맛집탐방
    2018-05-28

포토뉴스 검색결과

  • 정재오 시계 토끼의 유혹 대표
    청년은 미래다. 그들의 수많은 도전은 각각의 성공과 실패로 이어지고 계속해서 반복되는 과정 속에 젊음은 틀에 박힌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간다. “꿈을 꾸는 자만이 꿈을 이룬다.” 이것은 그 핫 하다는 부산진구 전포 카페거리의 쟁쟁한 카페들 속에서 일절의 꼼수 없이 그 만의 개성으로 한 자리를 차지한 ‘시계 토끼의 유혹’ 청년 정재오 대표의 삶의 모토였다. “저는 늘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습니다. ‘나는 동화 같은 카페를 만들 거야.’ 이렇게 말이에요. 이 카페는 제 꿈이었습니다.” 이번 주 주간인물은 유행을 쫓기보다 자신의 생각과 개성이 잘 드러나는 공간을 고집한 전포 카페거리의 시계 토끼, 정재오 대표와의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조혜영 기자 내 모든 표현이 허용되는 자유의 공간을 꿈꾸다 “군 제대 후 복학 신청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명함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카페에서 일해 달라는 제안이었죠.” 그 제안은 정 대표가 카페를 일로써 접하게 된 첫 계기가 되었다. “카페 일을 일 년, 이년 하다 보니 내 카페를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체적인 성격의 그가 원한 카페는 동화적인 요소가 가미 된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공간이었다. “이 공간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모티브를 따온 만큼, 제가 어떤 소품을 제작하고 어떻게 인테리어를 매치해도 ‘이상한 나라’이기에 모두 허용 되는 곳입니다. 저는 제 모든 예술 표현이 허락되는 곳을 원했어요.” 디자인을 전공한 그의 작품이 고스란히 녹아든 그곳이 바로 정 대표가 원했던 ‘시계 토끼의 유혹’이다. 심플하고 모던한, 깔끔한 느낌이 주류를 이루는 최근 카페들과는 확연히 다른 길을 가는 그만의 공간. 이 차별성은 다녀간 이들의 입소문으로 손님을 끌게 하였다. 틀에 박힌 것들은 하지 않겠다는 ‘고집’ 나는 ‘내 것’을 하겠다는 ‘고집’ 정 대표의 예술작품들로 가득 찬 ‘시계 토끼의 유혹’은 볼거리가 풍성한 곳이다. 하지만 인테리어만큼이나 뛰어난 것은 바로 그가 개발하고 만드는 음료와 디저트였다. “웬만해서 직원을 두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한결같은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함도 있습니다. 라떼 한잔을 시키시더라도 모두가 같은 토끼가 그려진 잔을 받게 하고 싶어요. 덕분에 손님이 몰릴 때는 혼자서 버겁기도 합니다. 하지만 잔을 받아보시는 분이 ‘아 이래서 시간이 걸렸구나!’하고 말씀하세요. 정성이 담긴 차라는 걸 알아주시고 다음에 또 찾아주실 땐 감사하고 뿌듯합니다.” 그는 어디를 가나 카페는 많기 때문에 다른 카페와의 차별성이 없다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정 대표 자신이 원했던 클래식한 감성에 차 한 잔을 ‘대접 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카페를 고집했고 시계 토끼의 유혹은 방향을 구축하기까지의 시간을 견뎌내고 끝끝내 자리를 잡았다. 그가 강조한 것은 ‘고집’이었다. 자칫 유행에 휘둘려 길을 잃지 않도록 하는 고집. “원하는 방향성에서는 고집을 부리지만 카페의 발전을 위한 고민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이 곳은 메뉴를 주기적으로 한 번씩 바꿉니다. 고객의 니즈에 맞춰 매일 개발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거치죠. 저희 가게 베스트메뉴는 시계 토끼가 예쁘게 그려진 카페 라떼와 바닐라 라떼에 저만의 레시피로 만들어진 수제 크림이 듬뿍 올라간 ‘크림 바닐라’입니다. 우리 카페에서만 맛볼 수 있는 부드럽고 달콤한 크림의 진한 풍미를 느낄 수 있죠. 카스테라와 티라미스를 합친 ‘카스티슈’와 함께 드시면 조합이 잘 맞아 단골을 만드는 우리 가게의 무기입니다. (웃음)” 그는 한가한 날이면 야외 정원에 나가 커피 한잔을 마시며 여유를 즐긴다고 한다. “모든 것을 쏟아 부어 만든 가게입니다. 이 공간을 만들기까지 힘들었지만 재밌었고, 계속해서 꿈을 꿀 수 있도록 만들어준 고마운 공간입니다.” “꿈을 꾸는 자만이 꿈을 이룬다.” 그의 끝없는 꿈 나아가 그의 다음 꿈은 2호점을 내는 것이다. “다양한 동화 컨셉으로 점포를 늘리고 싶어요. 주인공은 앨리스이지만 우리는 시계 토끼에게 포커스를 맞췄듯이 주인공 옆의 인물에게 포커스를 맞춰 또 다른 이야기로 동심과 감성이 살아있는 공간을 꾸미고 싶습니다. 2호점을 열게 된다면 그때는 사무실을 만들어 그곳에서 카페를 관리할 거에요. 아, 그리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분야의 일이라면 한 번 도전해보고 싶어요.” 각 잡힌 느낌과는 거리가 먼 서글서글한 웃음에 자유분방한 청년이지만 오롯이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그 모습은 요즘 젊은이들에게서 찾기 힘든 여유와 행복이 느껴졌다. 인생의 주인으로서의 자리를 꿋꿋이 지키며 삶을 즐길 줄 아는 멋진 청년 정재오 대표와의 특별한 만남이었다. [1044]
    • 맛집탐방
    2018-05-28
  • 민병길 길세이로무시 대표
    얼마 전 코미디 TV의 인기프로그램 ‘맛있는 녀석들’에서 ‘세이로무시’가 소개되었다. 4명의 MC가 땀을 흘려가며 먹는 이 요리는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군침을 돌게 하였지만 정작 이 음식이 익숙한 사람은 적었으리라. 세이로무시는 나무 찜통에 식재료를 넣고 쪄서 먹는 일본식 찜 요리로 한국에서 이 세이로무시를 찾는 사람이 늘고있는 반면, 그 본연의 맛을 제대로 표현해낼 전문점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부산 광안리에서 이자까야를 운영해오던 민병길 대표 또한 그러하였고, 그는 이 음식을 보편화시켜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이번 주 주간인물은 세이로무시를 전국적으로 알려 한국에서도 쉽게 그 맛을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길세이로무시’의 민병길 대표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조혜영 기자 순수하게 ‘요리’를 좋아하던 그가 ‘세이로무시’ 전문점을 창업하기까지 부산 연제구, 인테리어적으로나 직원들의 옷매무새를 보아 한눈에 깔끔함과 정갈함을 느낄 수 있었던 ‘길세이로무시’의 매장 내부에 들어서자 침착하게 인터뷰를 준비하던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어떻게 세이로무시를 접하고 창업까지 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그는 “원래는 순수하게 요리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친구들이 맛있게 먹어주면 기분 좋은 그 정도일까요? 우연찮게 지인의 가게에서 일을 하며 꿈이 커졌던 것 같아요. 어깨너머로 배운 것은 나중에 광안리 일대에서 작은 이자까야를 운영하게 만드는 양분이 되었죠. 이자까야를 운영하던 중에 저희 쉐프와 일본에 다녀오게 되었는데. 후쿠오카 일정에서 처음 ‘세이로무시’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찜 요리가 든든하면서도 부대낌이 덜하고 다음 날 가뿐하게 몸이 일으켜지는 것에 ‘아, 이거다!’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어요.” 하고 대답했다. “그때부터 계속 세이로무시를 찾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이 음식을 어떻게 표현해내고 있는지 많이 먹어보고, 세이로무시에 대한 사람들의 평도 계속해서 눈여겨봤죠. 대부분 긍정적인 평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세이로무시를 한국 사람에게 맞게끔 세상에 내놓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세이로무시 사업은 시작과 동시에 많은 주목을 받았다.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움직이며 본보기가 되는 리더로 자리를 지키자 가맹점 문의가 빗발치며 다가오는 6월에는 서면에 2호점 오픈을 앞두고 있을 만큼 ‘대박’이 난 민 대표에게 그 비결을 물었다. “요즘 음식 맛이 없는 곳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웬만하면 다 그들만의 개성이 담긴 요리를 내놓고 있고,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곳이 외식업입니다. 음식 맛으로만 그 가게를 찾아주는 것은 한두 번이라고 생각합니다. 식상한 얘기로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말 한마디라도 친절하게 건네는 서비스 정신입니다.” 때문에 민 대표는 자신과 함께 고객을 맞이하는 직원들과의 소통에 힘쓴다. “가게는 3시 오픈이지만 항상 10시쯤 되면 먼저 출근하여 미리 오픈 준비에 나섭니다. 직원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리더가 되기 위해 노력하죠. 다양한 고객님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직원들의 체력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한 날은 다 같이 술 한 잔하며 다독여주기도 합니다. 가족처럼 생각하는 식구들이니까요. 힘든 날도 있겠지만 그래도 고객님들이 음식을 말끔히 비우고 가시는 것을 보면 직원들도, 저도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습니다. (웃음)” 고객에게 조금 더 맛있고 편한 식사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그가 개발한 세이로무시 테이블은 현재 의장 등록되어있으며 특허 진행 중에 있다. “시간이 지나도 적당한 온도가 유지되어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까지 음식 맛이 한결같을 수 있도록 개발했습니다. 세이로무시 전문점을 오픈하고부터 늘 직접 부딪히며 최고의 맛을 찾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그의 최종 목표는 그가 만들어낸 ‘길세이로무시’가 전국적으로 뻗어 나가는 것. 전국 어느 길세로이무시를 방문하더라도 같은 맛과 같은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이라고 한다. 차분하고 사려 깊은 그의 성품과 같이 빛을 발할 길세로이무시를 기대한다. [1044]
    • 맛집탐방
    2018-05-28
  • 도톰제과 이명윤 대표
    얼마 전, 한 마카롱 가게에서 방문고객과 실랑이를 벌이다 맞고소에 이르기까지 했던 이른바 ‘마카롱 사건’을 알고 있는가. 이 사건을 계기로 마카롱은 온라인상으로 크게 화제가 되며 전국적으로 ‘마카롱 대란’이 일었다. 이처럼 근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마카롱은 작고 동그란 모양의 머랭 크러스트사이에 잼과 가나슈, 혹은 버터 크림등의 필링을 채워 샌드위치처럼 만드는 프랑스의 쿠키를 일컫는다. 이 매끈하고 바삭한 크러스트와 부드럽고 촉촉한 필링의 삼단구조가 빚어내는 독특한 식감과 맛, 그리고 향은 형형색색의 모양을 빚어내는 마카롱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주 주간인물은 자신만의 레시피로 마카롱을 해석한 부산 서면 전리단길의 도톰제과 이명윤 대표와의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조혜영 기자 제2의 삶,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8년간 몸담아온 회사에 사표를 던지다 오후 3시쯤이면 전 메뉴 마카롱이 모두 매진된다는 부산 서면 전리단길에 위치한 ‘도톰제과’. 복층 구조의 매장 내부는 깔끔하고 모던한 감각의 인테리어로 꾸며진 공간이었다. “군대를 자원해서 복무하고, 대학도 졸업 전에 취직할 만큼 미래에 대한 계획이 세워지면 돌진하는 스타일입니다. 전기과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8년 넘게 쉼 없이 달리다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지쳐있는 제 모습을 발견했어요. 그때 제2의 인생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긴 직장생활에 지친 이 대표의 눈에 띈 것은 다름 아닌 달콤한 마카롱. “커피를 굉장히 좋아해 자주 마시다, 커피와 합이 잘 맞는 디저트인 마카롱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첫 맛은 정말 충격이었죠. 이렇게나 맛있는 게 있다니! (웃음). 하지만 마카롱은 고급 디저트인 만큼 직장인들이 사 먹기에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이 신경 쓰였습니다. 그래서 가격을 낮추고, 보기에도 먹기에도 만족감이 충족되는 도톰한 마카롱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날부로 이 대표는 마카롱 클래스에 다니기 시작했다. “이 길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집중하고 몰두했죠.” 오픈과 함께 부산 마카롱 맛집으로 화제를 모으다 이 대표의 확신처럼 도톰 제과는 가 오픈 때부터 인기가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는 한국인이라면 익숙할 맛을 노렸다. “오레오, 죠리퐁, 뽀또 등 사람들이 좋아하는 과자를 많이 이용했습니다. 그 맛은 대중적이고 호불호가 없는 국민 간식이니까요. 익숙한 맛이 마카롱에 접목되어 신선함과 재미를 더했습니다.” 도톰 제과의 베스트 제품은 고소한 아몬드가루를 묻힌 쫀득한 꼬끄 안에 부드러운 앙버터 크림과 바삭한 다이제가 필링 된 ‘앙버터 다이제’와 쑥과 앙금 팥이 통째로 들어간 인절미 콩고물 토핑의 ‘쑥 팥 인절미’, 그리고 일본 수입 말차와 통째 오레오의 조합이 환상적인 ‘말차 오레오’ 등이 있다. 이 대표는 자신의 마카롱을 사랑해주는 고객분들과의 소통에 힘쓴다고 한다. “저희 마카롱을 찾아주시는 분들의 관심에 보답하여 마카롱이 한때 유행에 그치지 않도록 계속해서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고객과의 꾸준한 소통만이 답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관심이 힘들어도 재밌게 일할 수 있는 양분이 됩니다.” 이 대표는 도톰 제과를 인테리어 하는 과정에 있어 사소한 작업까지도 외주에 맡기지 않았다고 한다. 발로 뛰어 인테리어 소품을 찾고, 스스로 톱질하여 의자를 만들었다. “저희 가게 모든 마카롱을 제 손으로 만들어 내듯 가게의 소소한 모든 부분까지도 내 손이 닿는 가게를 만들고 싶었어요.” 정성과 열정으로 꾸려나가는 도톰 제과. 그의 경영 철학은 ‘재료를 아끼지 말고 도톰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상품으로 고객을 맞이하자.’이다.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도 있겠지만 일하는 게 재밌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요즘입니다. 아직 부족한 게 많지만 모든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신뢰가 두터운 ‘도톰’ 브랜드를 키워나가고 싶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마카롱뿐만 아니라 외식부문에서 영향력 있는 ‘도톰’이 되어 한국 외식 경영인으로써 큰 획을 긋는 그가 되길 주간인물도 함께 응원한다. [1044]
    • 맛집탐방
    2018-05-28
  • 30여 년의 경력이 빛을 발하는 대한민국의 모래 조각 창시자 김길만 작가
    끝없는 바다와 새하얀 백사장이 드넓게 깔린 부산 해운대. 올해도 어김없이 다가오는 여름을 맞게 될 그곳은 젊음의 패기와 무한한 자유가 느껴지는 부산의 에너지원이요, 활력소 그 이상의 공간이다. 그리고 이 해운대 바다에는 1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곳의 자유를 예술로써 승화시키는 대한민국 모래 조각 창시자 김길만 작가가 있다. 이번 주 주간인물은 2018년 5월 19일(토)~22일(화)의 총 3일의 기간에 걸쳐 해운대 해수욕장 백사장과 구남로 일대에서 진행되는 해운대 모래축제를 맞아 모래 조각가 김길만 작가와의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조혜영 기자 꿈을 잃고 낙이 없던 청년 김길만, 부산 해운대 백사장을 만나다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 기온,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피해 김길만 작가를 만난 곳은 ‘피카소’라는 카페였다. “원래 꿈은 대중가요 작사가였습니다. 가수 혜은이의 열렬한 팬이었거든요.” 그는 젊은 시절 서울에서 작사가를 지망하는 30여 명의 지망생들과 함께 동고동락했다고 한다. “열정으로 똘똘 뭉친 30명이었지만 살아남은 것은 그중 단 1명이었습니다. 설운도 씨의 ‘다 함께 차차차’를 작사한 김병걸이 바로 그 친구죠. 저는 살아남지 못해 부산으로 내려와 삶의 낙이 없이 그렇게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친구가 저를 해운대 백사장에 바람을 쐬어주려 데려가더라고요.” 그 날 백사장 모래의 부드러웠던 감촉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는 김 작가. 모래에 빠지게 된 것은 그 날부터였다고 한다.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지 어언 30년. “사람들은 저에게 모래에 미쳤다고 말했습니다.” 하루 온종일 모래 조각에만 매달려 작품을 만들어내는 김 작가를 사람들은 ‘하루살이’ 작가라고 했다. 오래도록 보존하지도 못할 모래를 어제를 오늘처럼 다듬고 만지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지만 김 작가는 작품이 완성되는 그 순간 온몸으로 느껴지는 희열에 자신의 정체성을 뚜렷이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세계로 뻗어 나가는 한국의 모래 조각 그의 끝없는 열정은 해외의 언론매체로까지 번졌다. “2000년에는 미국에 초청받아 다녀왔습니다. 새천년을 맞아 용을 작품화하였는데 시카고 썬 타임지 1면에 실리기도 했죠.” 각국의 초청을 받아 작품 활동의 범위를 넓히며 그는 세계의 모래 조각을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라별 국색에 맞는 문화적 디테일이 살아있는 작품 소재를 표현하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2015년 경남 밀양 꽃 새미 마을 허브 나라 식물원에서 만든 초가집의 ‘고향’이라는 작품과 교과서에 실린 ‘서편제’(2013), 그리고 장승(2010년), 상평통보(2018) 등이다. 세계에서 찾는 그의 수많은 작품이 교과서에 실리는 것을 보고 그는 인재 양성에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세계에서 관심을 가진 한국의 모래 조각, 제 세대에서 끝나지 않길 바랍니다. 모래 조각이란 것은 꼭 해변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학력도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고 오직 모래만 있다면 가능한 예술입니다. 작가인 저의 작품 도구도 그 흔한 나무젓가락과 물뿌리개 정도인 만큼, 아무것도 준비되어있지 않은 일반인일지라도 표현하고자 하는 열정만 있다면 그 나름의 예술로써 나타나는 것, 그것이 모래 조각입니다.” 김 작가는 일본 돗토리 현의 모래미술관처럼 국내 최초 모래 테마파크를 준비 중에 있다. 친환경적인 목공용 풀을 이용하여 몇 달 정도 영구보존 가능하도록 작품을 제작하여 기간을 두고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으로 업데이트하는 방향으로 구상하고 있다. “모래 조각이라는 분야가 우리나라에서도 꾸준히 활성화되고 발전되길 바랍니다.” 올봄에도 어김없이 성큼 다가온 해운대 모래축제. 이번 모래축제의 테마는 ‘영웅’이라 한다. 김 작가는 한국인 최초로 올림픽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마라톤 선수인 ‘손기정’ 선수를 작품으로 구현해낼 생각에 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대회에 참가해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는 일제 강점기 한국인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딴 마라톤 선수이다.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모래축제에서 잊혀가는 영웅을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고 싶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자국 역사상 힘든 시기에 탄생한 마라톤 영웅 ‘손기정’ 선수처럼 사람들의 멸시에도 꿋꿋이 자신의 길을 닦아 세계에 그 명성을 떨치는 대한민국 모래 조각의 영웅은 바로 김길만 작가가 아닐까. 요즘도 이른 아침이면 작업하러 나가는 그 길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하는 끝없는 열정을 가진 그와 그의 작품을 응원한다. [1043]
    • 문화
    2018-05-14
  • 임영배 의령 망개떡 대표
    “내가 잘했다기보다는 우리 지역 주민들이 밖에 나가 우리 떡을 선물로 나누고 했던 것이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어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이니 나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도움 받은 만큼 지역주민들을 위해 봉사해야지요.” 망개떡. 멥쌀가루를 쪄서 치대어 거피 팥소를 넣고 반달이나 사각 모양으로 빚어 두 장의 청미래덩굴잎 사이에 넣어 찐 떡을 말한다. 경상남도에 ‘의령’이라는 지역을 들어보았는가. 이 망개떡은 의령의 자부심이요, 얼굴이다. 1956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3대째 맥을 이어오는 60년 전통의 ‘의령 망개떡’ 임영배 대표와의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조혜영 기자 경남 의령의 ‘남산 떡 방앗간’은 의령시장 한가운데에 위치하고있다. 취재를 위해 들어선 협소한 그 공간은 망개떡을 만드는 직원들의 대화와 웃음소리로 활기가 넘치고, 그들의 망개떡을 맛보기 위해 이른 오전부터 찾아드는 군민들의 발걸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자칭 의령의 ‘핫 플레이스’였다. “처음이야 어릴 때니까 이파리에 싸는 떡이 망개떡인지도 모르고 온종일 어머니를 도와 떡을 만들다 뻗어 잠이 드는 것이 다였습니다.” 딸 다섯에 아들 둘, 그중 장남이었던 임영배 대표는 왜소한 체구에 뼈대가 약한 소년이었다. “집안이 원체 어려우니 나는 공부할 엄두도 안 났지만, 그래도 내 남동생만큼은 꼭 공부시키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를 따라 떡메질을 하고 아버지를 따라 막일도 하며 임 대표는 집안을 위해 헌신했다. “그 옛날에는 떡을 함지박에 이고 팔러 다녔는데 우연이라도 길에서 어머니를 마주치는 날에는 멀리서 보는 우리 어머니가 그렇게 나를 가슴이 아프게 울리더이다.” 스무 살 청년, 이 악물고 장사를 시작하다 “떡은 지긋지긋해서 떡만 아니라면 악착같이 잡히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힘든 노모를 위해 성공이 간절했던 임 대표는 화장품 장사, 어묵 공장 등 떡이 아닌 다른 분야에 도전했지만 결국은 돌고 돌아 떡으로 회귀했다고. “어묵공장을 위해 땅을 매입했는데 하필 또 그곳에 떡 방앗간이 있지 뭡니까. 하는 수 없이 떡 방앗간도 함께 인수했는데 그곳이 지금 이곳입니다. 하하.” 떡이 내 운명이거니 하고 받아들이게 된 임 대표는 그날부로 인정하고 더 나은 망개떡을 위한 개발을 시작했다. “우리 망개떡에는 식품 첨가물이 일절 들어가지 않아 유통기한이 거의 하루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택배를 통해 받아보시는 분들께도 최상의 상태를 제공하기 위해 개발 중에 있습니다.” 예전에는 겨울 동안 떡을 쌀 잎이 시들어 없어 팔지를 못했다. 잎을 겨울까지 보존하기 위해 임 대표는 뻔질나게 산을 오가며 ‘염장법’을 개발하였고 그 결과 사계절 모두 망개떡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대량으로 잎을 채취할 수 있는 곳, 채취 시기, 채취 방법 등 얼마나 고민했는지, 벌에 쏘여가며 아주 힘들었습니다.(웃음)” 식품공학과를 졸업한 큰아들과 함께 계속해서 식품 첨가물 없이도 굳지 않는 떡을 개발 중이라며 웃는 임 대표의 표정에는 일흔이 넘는 그의 나이를 찾아볼 수 없는 젊음이 느껴졌다. “아내에게, 자식들에게, 지역주민들에게, 우리 떡을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터뷰 말미, 임 대표는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 “귀한 집 딸을 데려와 함께 한 40년 동안 너무 고생시켜 늘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 꼭 하고 싶었습니다.” 한 마디의 불평불만 없이 자식들 잘 키워주고 자신 옆에 있어 주어 감사하고 행복하다 말하는 임 대표. 그는 자신의 떡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도 모두 의령 군민의 덕으로 돌렸다. “이웃이 나를 이렇게나 도와주었으니 나도 이웃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봉사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장학금과 기부에도 선뜻 그 뜻을 전하고, 지역단체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활동하는 그.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절대 뒤로 물러나 있는 법 없이 망개떡을 위해 직접 개발에 나서고 지역주민들을 위한 봉사를 멈추지 않으며,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표현도 아끼지 않는다. “이번에 새로 지은 망개떡 공장에는 아이들을 위한 ‘망개떡 체험 공간’이 있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이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의 훌륭한 인품에 감탄이 절로 나는 인터뷰였다. 참 어른이란 그를 두고 하는 말일까. 소박하지만 정성이 가득 들어간 그의 명품 떡처럼 겸손하고도 따뜻한 그와의 행복한 동행이었다. [1043]
    • 경제
    2018-05-14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