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8(수)
 



최근 장정희 변호사가 ‘제57대 광주지방변호사회 회장’으로 당선됐다. 장정희 회장은 전남 영광 출신으로 전남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96년 제38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거쳐 1999년 광주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했다. 이후 광주지법 순천지원 판사, 광주고등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광주지법 가정법원 장흥지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법무법인 감동으로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광주지방변호사회 공보이사, 제1부회장을 맡아 회무 경험을 쌓았으며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으로 회원들의 높은 지지를 얻어 제57대 광주지방변호사회 회장으로 당선 됐다. 주간인물은 2023년 계묘년(癸卯年)을 맞아 지역 법조계를 이끌어갈 리더의 모습을 담았다. _박미희 기자


장정희 회장은 명망 높은 법조인이다. 그의 고향은 전남 영광. 3남 2녀의 셋째로 시골에서 농사짓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명석한 두뇌로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그가 법조인의 꿈을 꾸게 된 것은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고. “초등학생 때 우연히 변호사에 관한 책을 읽게 됐어요. 주인공인 변호사가 위험을 무릅쓰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변론을 하고 천신만고 끝에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며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변호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던 평범한 소년이었던 저는 그 책에 영감을 얻어 변호사를 꿈꾸게 됐어요. ‘나중에 커서 변호사 되면 어떻겠느냐’는 제 말에 크게 기뻐하시며 대견해하던 부모님이 지금도 눈에 선해요. 그 이후로부터 자연스럽게 장래희망은 변호사가 되었습니다(웃음).”

변호사란 직업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순수한 시골 소년은 한 권의 책에 깊은 감명을 얻어 법조인의 꿈을 꾸게 된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고학(苦學)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 법조인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그 당시 저희 집 형편은 매우 어려웠어요. 그래서 저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입주과외를 하며 학비를 벌었고 고등학교도 영광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변호사의 꿈을 포기한 적이 없었기에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전남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당시, 1987년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의 절실함에 공감해 학생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죠. 대학교 2학년 때 ‘통일선봉대’로 참여했다가 시위현장에서 경찰에 체포, 휴학을 하고 군대를 가게 됐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고시공부를 시작해 1996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의 꿈을 이룰 수 있었어요.”
눈빛이 살아있는 청년. 그는 어려운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사법연수원에서 진로를 정할 때도 고민이 많았어요. 애당초 변호사가 꿈이었지만 판사의 길은 지금 선택하지 않으면 다신 갈 수 없는 길이기에 결국 판사의 길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판사로 임관한 이후에도 법관으로서 직분을 다 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1999년 광주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한 이후 광주지법 순천지원 판사, 광주고등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광주지법 가정법원 장흥지원장을 역임했다. 20년 가까이 법관으로 살며 만인에게 공정한 법 앞에 억울한 이가 없도록 매 순간 최선을 다 해왔다. 명법관으로 이름이 높았던 장정희 회장. 평소 특유의 소탈한 성품과 온화한 태도로 법원 직원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맺어왔다. 일례로 장흥지원장을 역임할 당시, ‘상·하반기 지원장 적합성 평가 99점대’를 기록할 정도로 그 덕망이 높았다.

후배 법조인들의 롤모델로 꼽히는 장정희 회장은 평소 강연 때마다 법관의 필수 덕목으로 ‘경청(傾聽)’을 꼽는다. “법관의 필수 덕목은 경청이죠. 판사로서 재판을 진행할 때마다 당사자의 말을 끝까지 차분하게 들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사실 법정에서 당사자들은 판사에게 하소연하고 싶은 사정은 있지만 대부분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법 불신의 원인은 소송당사자들과의 소통 부재에서 오고 이 같은 소통 부재는 법관들이 당사자들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는 데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당사자가 원하는 재판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법관 앞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면 그 결과를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법관 더 나아가 법조인의 최고의 덕목은 경청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판결. 그 판결을 내리기 위해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기록을 검토하고 고뇌했던 시간들로 그는 청춘을 보냈다. “판사로 일하면서 인간적인 고뇌를 느끼는 순간이 많았죠. 왜냐면 형사사건의 경우, 중형이 선고됐을 때와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 한 사람의 인생이 크게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판결을 내리기까지 많은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특히 성폭력 사건, 살인 사건 같은 강력 사건에서 목격자나 증인이 부족한 상태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확실한 물증도 없는 사건에 대해 판결을 내려야 할 때 실체적인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많이 애썼던 기억이 나네요.”

20년 가까운 법관 인생을 뒤로하고 그는 2015년 변호사로 새로운 법조 인생을 시작했다. 고위직 법관으로 전도유망한 길을 앞두고 그가 돌연 변호사로 새로운 인생 2막에 도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는 법관 생활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법조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법원에서 대부분의 주요 보직도 거쳤고 대법원에서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하면서 사건을 보는 시야도 넓어졌지요. 지원장으로 근무하면서 법원 직원들과도 원만하게 지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법관으로서의 삶은 어찌 보면 주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이기에 늘 새로운 길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변호사로 새로운 법조 인생을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광주지방법원 부장판사를 역임하고 국회의원을 지낸 송기석 변호사와 2018년, ‘법무법인 감동으로’를 설립했다. 6개월 뒤, 서울중앙지검 중요경제범죄수사단 부장검사를 역임한 이상길 대표 변호사를 영입, 민사, 형사 사건의 체계적인 협업 체계를 구축했다. ‘법무법인 감동으로’는 특화된 법률서비스로 지역 법조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올해 서울 서초동에 분사무소를 개소, 서울남부지검장을 역임한 송삼현 변호사가 대표변호사로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호남과 서울 수도권을 잇는 강소 로펌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
“민사와 형사 사건은 보통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경우가 많죠. 법원 부장판사, 검찰 부장검사를 역임한 구성원들로 민사와 형사 사건의 협업 체계를 구축, 다각적인 측면에서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어요. 중요한 사건이라도 멀리 서울, 경기도까지 가지 않아도 가까이에서 전문적인 법률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의 주요 현안을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풀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요.”

많은 사건을 맡았던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에 대해 물었다. 대표 사건을 꼽는 여느 변호사들과 달리 그는 사회적 울림이 있는 한 사건을 들었다. “의뢰인은 한국인 남편에게 시집을 온 외국인 여성이었어요. 중소기업을 다니던 남편은 어느 날 과로사로 사망하게 되고 의뢰인은 근로복지공단을 대상으로 유족급여를 청구했죠.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에서는 급여 지급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유족급여 지급을 거부했고 결국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도 패소를 했어요. 이후 저를 찾아온 의뢰인을 통해 억울한 사연을 듣게 됐습니다. 항소심에서 남편의 사망과 과중한 업무의 연관성을 밝혀냈고 결국 승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외국인 의뢰인들의 사건을 맡아보면 한국의 실정을 잘 모르고 한국어도 서툴기 때문에 억울하게 피해를 입거나 범죄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어요. 점점 외국인 거주자가 늘어나고 있는 시대상에 발맞춰 법률 사각지대에 있는 외국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광주국제교류협력단 상임이사, 전남대학교 총동창회 상임부회장, 청소년범죄예방위원회 수석부위원장, 누리문화재단 운영위원 등으로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사회의 오피니언으로 지역사회의 현안을 함께 해결하고 풀어나가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명법관으로 유명한 그지만 사건을 맡을 때면 변호사를 꿈꿨던 소년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항상 경청하는 법조인이 되자’는 초심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사건에 임하는 것. “변호사는 항상 의뢰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건을 의뢰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많은 사건을 수임하다 보면 자칫 소홀하게 대하는 사건이 생기게 되죠. 결과의 승패를 떠나 소홀하게 대한 사건의 의뢰인을 생각하면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반면 패소를 했으나 사건에 임할 때 정말 내일처럼 최선을 다 한 사건은 의뢰인도 결과를 떠나 정말 고마워하더라고요. 의뢰인들의 입장에 서서 항상 경청하는 태도로 사건에 임하는 것이 변호사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강소 로펌을 이끌고 있는 그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제57대 광주지방변호사회 회장으로 앞으로 지역 법조계 발전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나갈 계획이다. 당선 소감에 대해 그는 힘찬 포부를 밝혔다. “회원들의 정당한 권익 옹호와 복리 증진을 위해 노력해나갈 것입니다. 특히 어려운 청년 변호사를 우선적으로 배려하면서 적극적인 지원을 계속해나갈 계획입니다. 또한 변호사의 공익적 가치를 실현하고 변호사회에 주어진 시대적, 사회적 역할을 다하면서 광주지방변호사회가 쌓아놓은 훌륭한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나가겠습니다. 앞으로 2년 동안 회원들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하고 회원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지역사회의 현안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지역민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아울러 법치행정이 정착될 수 있도록 공익적 역할에도 힘쓸 생각입니다.”

장정희 회장은 △변론권 침해 방지 △전자경유제도 실시 △회관 리모델링 △경유증지 단가 인하 △외부위원 추천 시 청년변호사 우선 고려 △신입회원과 선배회원 간 결연 △변호사 직역 수호 및 확대 △지속적인 사회공헌활동 △법원·검찰·경찰 평가를 통한 사법제도 개선 등을 주요 공약으로 회원들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올바른 사법 시스템을 확립하기 위해 기존 광주지방변호사회 법관·검사 평가 특별위원회 외에 경찰 평가 특별위원회를 신설할 계획이다. “수사 과정에서 불합리한 일이 생기지 않고 공정한 수사를 받을 수 있도록 새롭게 경찰 평가 특별위원회를 설립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올바른 사법 시스템이 정착되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바쁘게 일하는 중년인 장정희 회장은 아내, 이화영 씨와 함께 슬하에 2녀를 둔 다정한 가장이기도 하다. 인터뷰 말미, 그는 “가장 고마운 사람은 늘 곁에서 힘이 되어준 아내”라며 자랑을 잊지 않는다. 언제나 밝고 건강하게 자라준 아이들과 화목한 가정이 가장 큰 버팀목이자 자랑이다.

법조인의 휴머니즘을 담은 책 한 권으로 시작된 꿈은 진행형이다. 순수한 시골 소년에서 고학으로 꿈을 이룬 청년, 명법관으로 살아온 20년, 열정적인 변호사로 지역을 대표하는 오늘날까지... 그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 [1144]

주간인물(weeklypeople)-박미희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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