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8(수)
 



 창원시 의창구 동읍 용잠리, 한적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8m에 달하는 대불(大佛)이 아주 멀리서부터 눈길을 끈다. 대불을 등대 삼아 가다 보니 쉽사리 대한불교조계종 용잠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마치 정토(淨土)에 온 듯한 향내가 코끝을 적셨다. 이른 시간에 도착했건만 주지 원공(圓空)스님은 법당 앞에서 이미 기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어주는 스님, 이렇게 또 주간인물과 새로운 인연이 생겼다. _취재 박정호 기자, 글 송인주 기자

‘창원시의 대표적인 전법도량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라는 평을 듣는 용잠사는 5년 전 창건 된 전법도량이다. 창건 이후 다양한 포교 활동과 기도, 불자들을 위한 불교대학 교리강좌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20년 10월에 봉안된 높이 8m 높이의 석가모니 대불은 용잠사에 찾아오는 불자들에게 친견하는 것만으로도 신심이 우러나게 하고, 마음의 고뇌를 내려놓게 하는 안식처가 되게끔 도량을 돌봐주고 있다.
“용잠사에선 다양한 신행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기도, 교리 강좌와 해탈의 직접적인 수행인 참선수행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기본적인 기도로 새벽예불을 새벽 4시에, 오전 10시 10분에 사시마지를 올립니다. 그리고 저녁예불을 저녁 6시 30분에 올리고 있어요.
교리 강좌에 있어선 1월부터 7월까지 매주 월요일에, 6개월 과정으로 기본교리과정을 진행하고 있고, 경전반은 여러 경전을 바꿔가며 매주 수요일에 강의하고 있습니다. 본과반이라고 할 수 있죠(웃음). 시절이 시절이니 만치 밴드나 유튜브를 통해서 비대면으로도 함께 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주지 소임을 다하고 있는 원공스님은 뛰어난 학승(學僧)이다. 1994년 대한불교조계종 단일계단 수계(受戒)를 거친 스님은 해인사 강원 졸업, 망월사, 해인사, 동화사의 선방(禪房)에서 수년간 안거 수행하며 법력을 쌓아왔다.
2017년, 대승불교의 바탕인 공(空)사상을 오롯이 담은 ‘제법공상의 이해와 수행’을 출간하여 불교의 핵심이 되는『반야심경(般若心經)』을 누구나 쉽게 이해 할 수 있게 정리하기도 했다.
“고뇌에 빠진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제시하고 열반으로 이끌기 위해 함께합니다. 경전을 배웠기에 가르치는 것이고 참선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리고 행하고 함께하고 있습니다.”라고 피력한 스님의 말을 빌려 신앙이념에 관하여 담아보기로 하였다.
불교에서는 열반을 가르치는데, 열반이란 나고 죽음을 해결하여 다시는 나고 죽음을 되풀이 하지 않고, 평안을 누리는 경지를 말합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 너무나 추상적이게 생각되기도 할 것인데, 열반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자기의 본래상태’입니다.
모든 생명체를 크게 나누어 보면 열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상대적인 관계 속에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지 행하면, 그것의 결과가 생기는데 그것을 불교에서는 ‘업(業)’이라고 합니다.

이 업(業)에는 반드시 보(報. 갚음)가 있기 마련이어서 그 업의 결과 과보로 인하여, 좋은 업(業)이 있으면 인간, 천상의 모습을 이루고, 나쁜 업(業)이 있으면 축생, 아귀, 지옥, 아수라 등의 모습을 이룬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인간인 것은 업에 의한 과보(果報)의 모습이지 진짜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업(業)을 지으면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범부중생은 이 여섯 종류의 길에 돌고 돌며,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또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기도 하고, 미운 이와 만나기도 하고, 하고 싶은 것에 뜻대로 안되기도 하며,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끝없이 변해가는 일을 겪고 있습니다. 이 겪고 있는 일들이 뜻대로 안되니 ‘괴롭다’ 하는 것입니다. 중생의 삶이 ‘괴로움’이라는 뜻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렇게 살아야만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 괴로운 윤회의 삶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생활은, 현재의 내가 바깥의 보이는 것, 들리는 것들을 향해서 갈구(渴求)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몸으로, 입으로 업(業)을 지어 그 결과로 나타난 상태라고 합니다.
그렇게 밖으로 향하지 않고,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등의 이끌림을 그치고 안으로 고요를 이룬다면, 이 여섯 삶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분들을 아라한, 벽지불, 대보살이라고 하며 열반(涅槃)을 이룬 분들이라고 하여, 나고 죽음과 그 가운데의 여러 가지 일들의 뜻대로 안 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분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들도 아직은 완전한 열반(涅槃)을 이룬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더 깊이 닦아서 여래(如來)가 되고서야 완전한 열반을 이루어 대자유인(大自由人)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열 가지 생명의 존재’ 이치로 살펴보면, 중생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일을 행하느냐에 따라서, 인간, 천상, 축생, 아귀, 지옥, 아수라 등의 상대적 업에 매여 괴로운 생활을 하는 여섯 종류의 삶을 살수도 있고, 또 아라한, 벽지불, 대보살 등 업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의 자유를 누리는 세 종류의 삶으로 살수가 있으며, 또 여래가 되어 대자유인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 이 이치로 보면 열반(涅槃)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자기의 본래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저 지옥에서 천상까지가 모두 나의 행하는 바대로 나타나는 나의 업의 모습이고, 열반도 그 업을 벗어난 나의 삶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이 업의 모습에만 ‘나’라는 인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만, 윤회의 삶과 해탈의 삶을 살펴보면 우리 중생이 얼마나 큰 능력의 존재인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나를 몰라서 내가 지은 나의 업(業)에 매여서 자유롭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고, 내가 나를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회복하기만 한다면, 모든 얽매임을 벗어나서 대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렇듯 열반은 자기의 ‘본래 모습’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자기 개발(開發)입니다. 자기의 숨어 있는 무한(無限)의 역량을 개발하여 스스로 대자유인이 되자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중생들이 당신의 품속에서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이러하니 누구나가 자기의 본래 상태 즉 열반을 성취하여 대자유의 삶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가르침을 펴신 것입니다."
용잠사는 꾸준한 사회공헌활동으로 온기를 전하고 있는 도량이기도 하다. 신도회인 ‘금강회’와 함께 김장 나눔, 이웃돕기 쌀 나눔, 불자들의 마음을 모은 장학금 기탁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나눔을 실천해오고 있다.
“고마운 분들이 참 많습니다. 불자 분들이 등(燈) 하나라도 달아주시는 마음을 모아 그 마음 그대로 사회에 돌려드리는 것뿐이에요. 그리고 수행처소를 마련해주셔서 참 고맙고 그런 감사한 마음을 나누려고 나름 열심히 정진하고 있습니다.”라고 피력한 원공스님, 지면을 빌어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도 함께 풀어놓았다.
“불교란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차근차근 기본교리부터 시작하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내가 나를 몰라서 어렵고 괴로운 생활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바르게 회복한다면 무한능력의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꼭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을 내셔서, 인연이 닿는 곳에서 좋은 인연을 맺어보시기 바랍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많이들 고달프실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등불 삼아서 힘겨운 시절을 잘 이겨내기를 바랍니다.”  [1115]


주간인물(weeklypeople)-박정호 기자, 송인주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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