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8(수)
 


<이익을 얻기 위하여 어떤 일이나 사업에 자본을 대거나 시간이나 정성을 쏟음>
‘투자’의 사전적 의미는 이러하다. 하지만 울산의 중심, 중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탑플러스 경매학원은 단순히 사전적 의미의 ‘투자’ 연구와 강의의 연속으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다. 박동일 원장이 고액 투자가 부담스러운 서민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정성을 쏟아오고 있는 곳이다. _박정호 기자


통신 사업에 몸 담았으나 여의치 않은 현실에 잠시 주춤했던 박동일 원장은  2002년, 우연히 ‘경매’를 알게된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경매’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오직 그 한 길만을 보며 달려갔다. 그렇게 그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메모지를 들고 울산 근교에 경매 관련 자료와 매물들을 알아보고 다녔습니다. 처음에 경주 산내에 있는 시골 농지를 낙찰받아 동네 이장님들께 팔았는데 수익도 수익이지만 적성에 맞았어요. 첫 사업에 힘겨울 때에 만난 분들로부터 ‘본사에서 월급받으며 직원으로 일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었습니다만 스스로가 월급 받고 일하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자립해서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 했었지요(웃음). 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경매를 하다가 울산에 주거용으로 임대사업을 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수익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2002년도부터 시작했으니까 7~8년 정도 지났을 때네요. 당시엔 강의를 나가거나 그러지 않았는데도 알아보시는 분들이 생겼습니다. 울산에서 경매를 공부하는 분들을 모아서 연구소 10층에 사무실을 만들어 정보를 나누곤 했어요. 당시에 만든게 ‘울산생활경매연구소’입니다. 점차 주변에 알려지고 소개를 해주시는 분들도 늘어가면서 강의도 나가게 되었습니다.”

2001년 결혼할 때 가지고 있던 돈 4,000만원에다 대출금을 합쳐서 산 집이 가격이 오르면서 팔게 된 박 원장, 울산 근교의 4,000만원 상당의 빌라를 사서 월세를 받기 시작하며 실전 투자에도 점점 발을 들였다.
“2005년 부터는 토지 투자 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농지도 몇 번 구매를 해보았지만, 농지는 바로 팔 수가 없는 특수성이 있어요. 그래서 월세를 좀 받거나 작은 토지들, 지분이라고 하는데 전체의 일부분을 낙찰해서 배당을 받거나 토지만 낙찰을 받아서 토지 사용료를 청구하는 방식으로 투자를 진행하고 수익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박동일 원장은 울산광역시 여성회관, 교차로문화센터, 현대중공업 한마음회관 위주로 강의를 진행해오고 있다. 서민들을 중심으로 한 무료강의도 다수다.

“투자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아도 자세히 몰라서 손해를 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보증금을 떼인 분들도 허다했어요. 무료로 강의를 나가며 개인적으로는 토지 투자를 계속 했습니다. 월세 받는 것보다는 경험이 중요하다 생각하여 직접 소액 투자를 하며 연구했습니다. 근로자들이 많은 울산의 특성에 맞추어 천만원 단위의 소액투자로 도전할 수 있는 선례를 만들어 갔죠. 작은 규모의 투자, 말하자면 재건축 부지의 1~2평, 공원 일부분, 토지의 지분 일부분을 낙찰받는 것들이죠.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전국 공공기관의 공매정보를 한눈에 보여주며 인터넷으로 직접 공매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든 공매포털인 ‘온비드(Onbid)’에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2년째 이어오고 있는데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고 있어요. 또 카페를 통해서도 연구한 내용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학원운영은 제가 하고 있는 일 중에 하나입니다.제 카페를 보신 분들이 학원 수강생이 되는 경우도 많아요. 강의를 직접 들어보시고 찾아 오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의 강의는 기초부터 다지는 ‘기본반’과 실전에 다가가는 ‘투자반’으로 크게 나뉜다. 항상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필요한게 있다면 말해주세요.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상담 해드리겠습니다”라고 운을 떼며 수업을 시작한다고.
“혹시나 주변에 경매 관련해서 어려움을 겪는다면 언제든 말해 주시라고. 저는 항상 이 자리에 있으니 도와주겠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나는 늘 하는 일이지만 그분들에게는 인생 전부가 걸린 일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절실한 분들이기 때문에 그 이상으로 도와주려고 하다 보니까 마음에 상처가 많이 생기기도 합니다. 제 나름 최선을 다한다곤하지만 급한 불을 끄고 나면 ‘선생님이니까 당연히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제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 분들이 있어요. 돈이 걸린 예민한 문제다보니 처음과 끝이 다른 경우도 간혹 있지요. 사람이다보니 저 역시도 그럴 땐 너무 섭섭하고 속상하죠. 하지만 제 스타일이 무엇 하나라도 시작을 하면, 끝까지 책임지고 마무리하는 스타일이고 특히 일에 대해서는 자존심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감내하고 최선을 다합니다. 저한테 상담을 오시는 분들이 잘되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비록 큰돈은 아니지만 꼭 보전하셨으면 좋겠다, 더 성공하셨으면 좋겠다, 하며 상담에 임하고 도전해요.”

그에게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는지 물었다.

“5년 전, 수강생이었던 분이 급하게 상담을 요청하셨습니다. 서울에 있는 아들이 살고 있던 곳이 경매로 넘어가게 됐는데 보증금을 못받게 생겼다는 겁니다. ‘경매는 진행되고 있고 절차상 문제 때문에 못받게 생겼다. 배당요구가 끝났고 경매는 진행이 되고 있고...’ 자세히 알아 보니 건물에 살고 있던 학생들이 대부분 학교생활을 하다보니 배당요구 신청을 못했던 거예요. 사유가 있으면 배당요구는 연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통보를 못받았다’고 사유를 제출하고 ‘일단 무조건 법원 뛰어가라’고 했습니다. 결국 연기가 되어 애들이 다시 보증금을 받게 되었어요. 기분이 짜릿하더라구요. 아버지 되는 분이 한여름에 10층을 뛰어올라 오셨습니다. 보증금을 수령하신 후엔 복숭아를 한상자 들고 오시더라구요(웃음). 2014년 경 밀양에 입찰하러 갔을 때부터 아직까지 이어지는 인연도 있어요. 당시 계약이 틀어진 거예요. 마침 주변에 매매가 있다길래 동네 부동산에 갔습니다. 저는 투자를 하러 갔기 때문에 마지못해 주택을 입찰했습니다. 그리고 그 주택에 세를 놓았죠. 그런데 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오시는 거예요. 월세를 100/10만원~100/15만원 정도로 세를 내놓은 집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세를 받을 목적은 없었어요. 그 건물을 허물고 토지를 활용하려고 했었죠. 그런데 할머니 할아버지분들께서 월세도 잘 내시고 또 옹기종기 모여 사시니까 저도 좋아서 토지 활용은 포기하고 주택을 그냥 뒀습니다. 제가 자주 연락을 하려고 하는데 대부분 핸드폰을 잘 안쓰셔서 쉽지가 않더라구요. 그중에 가장 젊은 할아버지가 대표로 연락을 해주세요. 청소나 유지 보수도 하는김에 찾아가서 인사도 드리고 음료수도 좀 사오라고 하시면 사가기도 하고 왕래하고 있습니다(웃음).”



“투자라는 것은 혼자 하는 것이지만 혼자 할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박 원장. 혼자서 왔다면 꾸준히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작은 집에 벽화도 그려주시고 목공예 하시는 수강생이 책상을 만들어 주기도 하셨어요. 오래 되었지만 그 책상을 버리질 못하겠어서 아직도 쓰고 있습니다. 경매 답사를 가면 외부로 나가야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보험을 미리 들어놓기 위해 학원을 차렸습니다. 어떤 분은 감사의 의미로 상추를 한박스씩 들고 오시기도 하고 그러십니다. 사람 살아가는 ‘정(情)’이란게 뭐 그런거 아닐까요.”

바쁜 가운데에도 어려운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전달하며 소외된 이웃들을 살피는 일도 앞장서고 있다. “저는 먹고 살기만 하면 되니까요”라며 웃어보이는 그는 “작은 도움과 선행을 함에 소소한 재미가 있다”고 했다.

“남들보다 부지런히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문화가정이나 사정이 어려운 분들, 아이들에게 무료로 강의도 하고 있어요. 아이들을 만나러 갈 때 고작 피자 몇 판 들고 갈 뿐인데, 너무나 반겨주고 좋아해줘서 오히려 제가 행복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돌아보니 참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네요(웃음).”

“정신없이 살다보니 벌써 큰아이는 대학생이 될 나이가 되었네요. 참 쉽지 않은 인생인 듯 합니다. 사업하다가 무너져 다 잃었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주변에 있는 분들이 좋은 분들이셔서 여기까지 왔다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제 주변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적을 만들지 말자’ 라는 생각을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 ‘차라리 내가 조금 손해를 보는게 낫다’고 매번 다짐합니다. 저는 제가 일을 한참 더 할 수 있다, 또 더 할거라 생각합니다. 욕심을 많이 버렸습니다. 욕심을 냈더라면 크게 투자를 했을텐데 서민형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당장의 수익을 바라지 않고 7~8년 째 공부하고 계신 분들과도 함께하고 있어요.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고 그렇게 상부상조하며 더불어 살아가고자 합니다.”

부산, 울산, 경남 지역에는 이렇다 할 소액토지투자전문가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기본적으로 큰돈으로 전국적으로 투자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박동일 원장은 울산에서 큰 포부가 있다며 마지막 말을 전했다.

“제가 정(情)도 많고 소소한 즐거움에 행복을 느낀다고는 했지만 강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소액투자에 대해서는 최고의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있습니다. 학원을 운영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꼭 듣고 싶어요. 나중엔 전국 단위에서 서민들을 위한 적은 금액 투자의 최고가 되고 싶습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098]

주간인물(weeklypeople)-박정호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태그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경매’, 오직 한 길을 걸어온 20년 “서민들을 위한 소액토지투자의 최고 전문가로 불리고 싶습니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