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8(수)
 


시간이 지날수록 제 맛이 나오는 장처럼, 우리네 인생도 고난을 겪으며 농익은 맛이 깊어진다. 삶의 어느 한 장면도 쉬이 보낸 적이 없는, 시련에 맞서며 연단된 사람에게서는 단단한 삶의 철학이 느껴지곤 한다. 격변하는 외식 트렌드 속, 남다른 내공으로 외식창업메뉴 비법전수를 하는 이가 있다고 해 찾아가봤다. 주인공은 대한민국 조리기능장, 김은경 대표다. _정효빈 기자

조리기능장이자 자신의 이름을 건 ‘김은경기능장요리학원’을 이끄는 김은경 대표. 김 대표가 처음 요리를 배우게 된 계기는 갑작스레 기울게 된 가세 때문이었다. 생계를 이어가고자 그의 아버지가 택한 것이 식당이었고, 이 때문에 가족 전원이 식당 운영에 뛰어들게 됐다. 이제 막 스물이 지난 나이, 고생하는 부모님을 위해 자신이 할 일은 무엇인가를 고민했던 김 대표는  조리사를 고용할 형편조차 되지 않았던 상황 속에서 힘들게 주방 일을 하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메뉴를 지속적으로 리뉴얼하며 식당을 운영했지만 형편은 쉬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주방 일을 했지만, 서른을 앞둔 그의 마음에는 제대로 공부해보지 못한 한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김은경 대표는 그 후로도 여전히 부모님을 도왔지만, 어두운 밤 다락방에서 늦은 수능공부를 시작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뒤늦은 시작이었지만 배우고자 하는 일념이 그를 합격의 길로 이끌었다. 조리학과에서 학문을 이어가던 그는 당시 경주에서 (사)조선왕조궁중음식영남지부 박미숙요리학원을 운영하던 박미숙 원장을 만나며 전통음식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경주에서 일할 때쯤부터 ‘선생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긴 것 같아요.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는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이후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에 숙명여대 특수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서울에 가보니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줄곧 일만 하며 달려오다가 힘이 탁 풀린 기분이었죠. 그 시기 신랑을 만나 백년가약을 맺게 되었고, 모든 일을 접고 다시 지방으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잠시 쉬어갈 때라고 느꼈지만, 그는 도저히 쉬지 못하는 천성을 타고난 것 같았다. 이후 스스로 느끼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기에 나섰고, 마음을 다잡고 다시 영산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다. 남들보다 느리게, 굽이굽이 둘러온 길이었지만 요리에 대한 열정 덕에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원을 졸업하는 성취도 맛보게 됐다.


김은경 대표에게 만족이란 없었다. 그는 조리계의 사법고시라 불리는 ‘대한민국 조리기능장’에 도전했다. 조리기능장은 조리기능사 자격과는 달리 조리에 관한 최상급 숙련기능을 요하는 난도 높은 자격시험이다. 일 년에 단 두 번 치러지는 시험인데다, 시험 당일 컨디션에 따라 결과가 좌우되기도 해 베테랑 조리사들도 합격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전국팔도의 조리기능장이 700여명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김 대표는 식당 일과 강의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기능장이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조리기능장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저 자신과의 싸움이었어요. 시험 준비를 하느라 하루를 온전히 몰두하고 나면 온몸이 녹초가 되곤 했죠. 첫 시험은 경험 차 치렀고, 두 번째 응시에서 합격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나와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뿌듯함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젠 무엇도 겁날 것이 없어졌죠(웃음).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기능장이라는 타이틀이 저를 더 노력하게 만드는 자극제가 된 것 같아요.”
김은경 대표의 발걸음은 고단의 연속이었지만, 고된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 또한 그를 한층 더 단단하게 만드는 양분이 됐다. 쉽게 얻을 수 없는 ‘조리기능장’이라는 타이틀을 손에 쥐었지만, 그는 여전히 요리를 대하는 자세에서 진지함을 잃지 않는다. 



김 대표는 울산 중구에서 ‘김은경기능장요리학원’을 운영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건 상호에서 스스로 부끄럽지 않고자 하는 그의 다짐과 책임감이 느껴진다. 학원에서는 창업요리반, 국가기술자격증취득반(조리기능장·산업기사·기능사), 다양한 쿠킹클래스(전통떡한과, 생활요리 등)을 함께 운영 중이며, 외식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창업 메뉴 비법전수와 더불어 직접 요식업장을 운영해본 그의 오랜 경험을 담아 운영에 대한 폭넓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퇴직금에 약간의 종잣돈을 더해 창업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많이 찾아오시는데, 외식업이 결코 쉬운 분야가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해요. 본인이 한 음식이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다고 도전하시는 경우도 많고요. 요식업에 전혀 경험이 없는 분이라면 직접 식당에서 일하며 주방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고 조언합니다. 창업에는 충분한 정보와 준비 기간이 필요하니 아낌없이 투자하고 공부하셨으면 합니다.”

김은경 대표는 일반 취미반뿐만 아니라 국가기술자격증취득반 교육과정을 통해 수강생들과 교감하며 우수한 인재를 배출해내고 있다. 그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후배들에게 요리뿐만 아니라 삶의 한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단다.
“저도 20대에는 꿈이 무엇이냐고 누가 물어보면 답을 할 수 없었어요. 당장 어려운 집안일을 돕느라 꿈이라곤 생각할 겨를도 없었거든요. 하지만 최악이라 생각했던 상황에도 늘 길은 있었고, 항상 다음을 준비하라고 시련이 닥쳤던 것 같아요. 상황에 안주하는 것도,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것도 모두 본인에게 달려있습니다. 제가 좋은 스승님과 동료들을 만나 성장하고 꿈을 꾸게 되었듯이 다른 이들도 저를 통해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아요(웃음).”

향후 학원 운영을 통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재능기부를 이어가고, 그와 인연을 맺게 되는 이들과 요리라는 매개를 통해 상생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김은경 대표. 꿈을 안고 방황하는 이가 있다면, 망설임 없이 그를 만나게 하고 싶다. 



[ 프로필 ]
•대한민국 조리기능장
•(사)
대한민국한식협회 전통음식 조리명인
•(사)대한민국한식협회 이사
•(사)한국조리기능장협회 정회원
•(사)한국조리사회 부산광역시지회 교육분과 이사
•대동대학교 호텔외식조리과 겸임교수
•고헌재우리음식연구소 대표
•토끼마당가든 메뉴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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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인물(weeklypeople)-정효빈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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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통해 상생하는 공간 만들어가고파”조리기능장의 철학을 담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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