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8(수)
 



신협은 믿음과 나눔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서민과 중산층을 위해 비영리로 운영되는 협동조합 금융 기관이다. 과거 쌀 한 가마니를 꿔오면 2가마니로 돌려줘야 하는 고리대로 고생을 하던 시절, 은행에서 소외된 경제적 약자들의 지위 향상에 기여하며 계층 간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1960년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에 의해 부산 메리놀병원에서 창립된 성가신용협동조합을 시작으로 많은 신협이 등장하였다. 현재에 이르러 편리한 인터넷 금융,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 조합원들과 함께 든든한 협동조합의 기틀을 마련했다. 영도구 동삼동 태종대성당에서 태동한 태종대신협, 1975년부터 시작된 그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회공헌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20년 겨울에도 ‘사랑의 이웃돕기 물품 전달식’을 개최하며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태종대신협의 김부연 이사장을 찾아가 보았다. _박정호 기자



김부연 이사장은 태종대신협의 역사라고 해도 무방한 인물이다. 그는 90년부터 신협에 몸담으며 이사로 활동했다. 2,3억정도의 규모였던 당시 4대 이사장님이 “자네가 임원을 하지 말고 직원으로 여기 신협을 좀 맡아주게”라고 하여 95년도에 직원으로서 조합을 맡게 되었다. 슬레이트 지붕 아래에 있던 작은 12~3억 규모의 조합을 바로 받아 태종대성당 안의 작은 장소를 빌려 점포를 내며 변화를 도모했다. 그 후 96년도에 본점 부지를 매입하고 97년도에 공사를 시작, 98년 1월 17일에 태종대신협 본점 건물을 세우기까지 이르렀다.
“제가 2010년 5월에 정년퇴직했습니다. 저의 젊음을 전부 신협에 바쳤죠. 30년 가까운 시간, 참 다사다난했지만 IMF 당시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당시 신협들이 정말 많이 문을 닫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득을 크게 봤어요. 당시 금융업 한정으로 파산 시 조합원들에게 정부에서 전액을 보상해주는 임시 정책이 생겼어요. 그런 국가적 대책이 있으니 전화위복의 기회가 생겼습니다. 정책 발표 직후 태종대신협은 18%까지 금리를 올렸어요. 당시 타 금융 기관이 금리를 26% 정도 줬었던 걸 생각하면 엄청난 일이었죠. 저와 평소에 신뢰를 쌓던 분들 저를 믿어주신 분들이 투자해주신 덕에 IMF를 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웃음).”

김부연 이사장은 태종대 신협이 단순히 그의 직장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에게 있어 이곳은 바로 ‘평생’이었다. 75년 11월 조합원 81명 123만 원의 자산으로 조합이 설립되었다. 1985년 이사진으로 합류한 이후로 들어오게 된 그는 이후로 평생 신협과 함께하며 현재 자산 800억 이상, 조합원 수는 6,000여 명 이상 성장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조합원을 최고로 모신다는 경영이념을 가지고 있다며 조합원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했다.


“조합원들이 의료 편의를 볼 수 있도록 의료시설, 병원, 장례식장 등과 제휴하고 있습니다. 조합원들의 활동 범위를 고려해 고신대 병원, 성모병원, 고려병원 등과도 제휴하고 있습니다. 건강검진 관련 지원도 많이 해드리고 있습니다. 원래는 5월 경 조합원들과 국내 좋은 곳에 가서 신협의 활동내용과 조합원으로서 자랑스러운 가치관을 교육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내용은 모두가 받아야 하는 혜택이라 생각하기에 거동이 불편하신 분, 장애인분도 동행, 운영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단체관광이 어렵다 보니 작은 식사 규모나 다른 복지혜택으로 돌려드리려고 합니다. 조합원이 주인이니까 이익금을 바로 돌려드리기 위해서 제일 나은 방법을 항상 고려합니다.”
올해 코로나-19 때문에 은행에 맡겨둔 자산을 부동산에 투자하는 흐름이 있었다.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줄어 금융권의 자산이 빠지며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를 보였다. 올해의 업적이라면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웃음 짓는 그를 직원들은 “현장에서 발로 뛰는 사람, 조합의 업무를 솔선수범 하며 자신의 이익보다 조합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자신을 희생하시면서 업무에 임하셨던 분”이라며 칭찬했다.

“올해 신협의 사정이 그렇게 좋지는 못했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역구민들께 도움을 드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작게나마 10kg 쌀 100포와 이불 세트 22채를 기탁했죠. 어려운 이웃들한테 돌아갈 수 있도록 태종대신협의 뿌리인 성당을 통해서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김장 인력 지원, 고춧가루 지원, 기타 지원금을 전달하기도 하고요. 연탄 기부활동도 했죠. 최대한 멀리 손을 뻗어서 많은 분께 도움을 전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과거 25만 명 정도가 거주했던 영도구, 이젠 12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김 이사장은 “학군도 그렇고 모든 것이 낙후되어 있다”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영도구 소재의 부산남고등학교 이전에 대한 움직임에 직접 나서 대책 회의를 통해 막으려고 노력한 그는 지역이 경제적으로도, 학군도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인구 유입이 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움직여 조합을 조금이라도 더 성장시켜 조합원과 지역민을 위한 더 큰 규모의 환원 사업을 꿈꾸고 있었다.

“제가 여기 있다는 것은 태종대신협이 조합원, 지역 환원 사업을 위해서 힘쓰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익이 있어야 그 이익금으로 주민과 구민을 위해서 더 활동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 아닌 서민들과 함께 만들어온 신협은 서민들을 위해서 이익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어여삐 여겨 신협을 애용해 주셨으면 합니다(웃음).” 


[1107]

주간인물(weeklypeople)-박정호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태그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조합원, 지역민에게 바친 30년. 태종대 신협의 역사와 함께한 산증인!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