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8(수)
 



“안도 타다오 좋아하시죠?” 이 질문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창훈 대표와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2020년 경상북도 건축문화상 최우수상에 선정된 카페 ‘보스케’는 뛰어난 공간미와 자연과의 훌륭한 조화가 돋보이는 곳이다. 현대 건축의 거장이자 노출 콘크리트 공법의 대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지중미술관의 모습과도 닮은 이곳. 지방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작품으로서 완성된 건축물’을 설계한 이는 누구일까? 오랜 검색 끝에 찾은 설계의 주인공은 건축사사무소 원일을 이끄는 이창훈 대표였다. 그를 무조건 만나고 싶은 마음에 대뜸 ‘안도 타다오를 좋아하시냐’ 물었고, ‘엄청난 팬’이라 답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화색이 묻어남을 느꼈다. 기대에 찬 마음으로 기다리길 몇 초, 이 대표로부터 ‘보스케에서 만나자’는 반가운 응답을 얻어냈다. _정효빈 기자

벚꽃이 만개한 3월의 어느 날, 이창훈 대표를 만나기 위해 경주시 현곡면에 자리를 둔 카페 보스케로 향했다. 언덕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자 너른 전원풍경과 조화를 이룬 근사한 회색빛 건축물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노출 콘크리트 공법으로 지어진 건축물이 자칫 차가운 느낌만을 주는 것에 반해 자연에 녹아들 듯 조화를 이룬 보스케는 낯선 차가움보다는 자연스러운 안락함을 느끼게 하고, 귓가에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은 이 멋들어진 건축물을 마주한 감동을 증폭시킨다. ‘하늘, 바람, 그림자 등 자연을 담는 건축을 하고 싶다’는 이창훈 대표는 ‘건축물이 단순해야만 자연을 공간으로 끌어들일 수 있으며, 건축을 할 때도 재료의 물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좀 더 자연스러운 건축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건물 형태는 땅에 의해서 많은 것이 결정됩니다. 경사지고 제멋대로 생긴 땅을 만났을 땐 고민조차도 즐거워지죠. 그런 땅에서 창의적인 건축물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카페 보스케 역시 경사진 대지를 최대한 이용해 건물을 땅에 살짝 올려놓는다는 생각으로 접근하고 싶었습니다. 삼각형 중정을 구심점 삼아 자연과 어우러지도록 했고, 유기적으로 공간을 배치해 자연스럽게 현재의 형태가 나오게 됐습니다.”
이 대표의 안내에 따라 카페 진입부로 발걸음을 옮기자, 좁고 긴 공간에 들어오는 한 줄기 빛과 물 흐르는 소리가 선물처럼 다가온다. 미로처럼 설계된 카페 내부는 모퉁이를 돌 때마다 새로운 공간을 마주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대지 본래의 경사면을 활용해 다양한 레벨로 구성된 공간은 자연에 녹아들며 감각적인 분위기가 완성됐다. 삼각형 중정 꼭대기의 빈 공간을 바라보니, 빛이 드나드는 시간까지 고민한 흔적이 여실히 느껴진다.



“이곳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삼각형 중정입니다. 이 공간 안에 물이 채워짐으로써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공간이 삼각 형태로 갇혀있다 보니 비가 오는 날이면 이 안에서 들려오는 물방울 소리가 마치 피아노 선율 같아요. 햇살이 좋은 2시쯤 삼각형 코너엔 하트가 걸리고, 수 공간 위로는 구름이 넘나들죠. 비워진 중정 공간이지만 햇살, 바람, 구름 등으로 채워지는 공간입니다.”

건축물이 풍경을 가리지 않고 주변 경관에 녹아들도록 한 안도 타다오의 지중미술관처럼, 카페 보스케 역시 주변 경관에 녹아들어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지중미술관에 방문한 후, 형태건축보다 공간에 집중하는 설계로 방향이 바뀌게 되었다’는 이창훈 대표. 건축에 관한 그의 철학이 바뀐 지 오래 지나지 않아 현재 보스케 부지를 만나게 됐고, 지중미술관의 감성을 이곳으로 옮겨오고 싶었다고. 좋은 공간에 관한 이창훈 대표의 믿음 역시 “건축은 공간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물의 형태는 노후되면서 많은 것들이 변하지만 공간은 영원하다고 생각해요. 좋은 공간을 가진 건축물은 외형에서도 자연스럽게 그만의 매력을 가지며 가슴 속 깊은 곳의 감정까지 끌어내기도 하죠. 편안하고 가슴에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좋은 공간이라 생각해요. 이런 맥락에서 아무리 멋진 공간도 이용자가 없다면 가치가 없겠지요.”

카페 보스케와 같이 건축사가 자신의 생각을 많이 담을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란 쉽지 않다. 이는 수도권을 벗어난 지방에서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건축물의 완성도를 충족하자면 수익성은 다소 배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익을 목적으로 한 건축주 입장에선 도전인 것이다. 이 대표 역시 “좋은 건축주와 좋은 부지를 만나는 행운이 따랐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보스케 완공 후부터 좋은 공간을 가진 건축물을 짓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저를 많이 찾아와 주십니다. 이런 작품 활동을 할 기회가 많이 생겨서 저 역시 감사한 마음이고요. 현재는 지방에서 이런 부류의 건축물을 접하기가 쉽지 않지만, 이런 특색 있는 건축물이 하나, 둘 생김으로 인해서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씩 바뀔 것이며, 좋은 건축물도 많이 생겨날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 땅에 맞는 건축물을 구상하고, 그 땅에 맞는 공간을 연출하는 것’이 자신의 평생 일이라 여긴다는 이창훈 대표. 그는 사람들 간의 자연스러운 소통이 이루어지는 자그마한 마을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제가 어렸을 때 동네 어른들은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약속이나 한 듯 자연스럽게 나무 그늘 아래 모여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곤 했어요. 마음만 맞으면 즉흥적으로 아궁이를 만들고, 그 위에 솥그릇을 걸어 전도 구워먹고 막걸리도 한 잔씩 하곤 하셨죠. 동네 어른들은 약속도 없이 왜 그곳에 모였을까요? 동네에서 가장 편안하고 좋은 공간이라서가 아닐까요? 제가 바라는 마을이 바로 그거예요. 편안하고 아무 약속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들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있는 마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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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인물(weeklypeople)-정효빈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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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빛의 모양을 만나는 곳! 보스케, 자연에 녹아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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