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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석원 Choi seog-won / 씨앤엘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변리사는 소위 지식재산권으로 불리는 특허권, 실용신안권, 디자인권, 상표권의 권리취득이나 분쟁 해결에 관련된 제반 업무를 의뢰인을 대리하여 수행하는 전문직 종사자이다. 특히 지적재산권의 독점배타적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지를 법적으로 판단하는 직업으로, 새로운 기술과 브랜드의 끊임없는 등장으로 더욱 주목받는 직업이다. 그리고 이런 특허소송을 비롯해 새로운 기술이나 디자인, 상표 등의 권리과 소송을 대리하는 변리사에 대한 인식과 관심은 최근 들어 드높아 지고 있다. 주간인물이 만난 C&L국제특허법률사무소 최석원 대표는 변리사 18년차로 국내외 지적재산권 전문 변리사로서 개인과 기업, 개인 발명가 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있다. 그를 만나 변리사 라는 직업의 실체와 사회적 역할과 그의 직업정신을 집중 조명해보았다. _장보연 기자 상표전문변리사로서 의뢰인과의 신뢰를 최우선으로 두다 씨앤앨국제특허법률사무소는 최 대표가 특허청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며 특허, 상표, 디자인 등의 실무경험을 두루 갖춘 뒤 2001년도에 설립한 전문성과 체계성을 갖춘 변리사 사무소이다. 최 대표는 요즘들어 기업의 기술력과 제품 디자인이 오롯이 녹아 기업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상표권(브랜드)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역할에 더 많은 노력을 투입하고 있다. 상표는 누구든지 접근할 수 있는 분야이지만 누구도 정답을 말할 수 없는 고도의 전문지식이 요구되는 분야이기 때문이고 상표로 인하여 발생하는 법적 분쟁은 기업의 명운을 거는 경우가 허다하여 최근 들어 그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최근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는 국내 닭 가슴살 전문기업인 A사의 상표권 분쟁을 승소로 이끌기 위한 소송 준비에 영일이 없다며 승소를 이끌어 내겠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씨앤앨국제특허법률사무소는 변리사의 도움이 빈번하고 많은 기업들이 기본적으로 자주 부닥치고 고민을 호소해 오는 상표권 문제의 신속하고도 즉각적인 대응을 위하여 “상표114”라는 홈페이지를 가지고 고객들의 수요에 대응해 나아가고 있다.씨앤엘은 오늘날 배부분의 경제활동이 온라인 상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기업의 상표 담당자들이 주로 신세대인 점에 착안하여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페이스북, 모바일 상담 등 SNS를 이용하는 고객 응대에도 심혈을 기우리고 있다. 오랜기간 동안의 수 많은 사건을 심사하고, 심판을 경험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소신과 진정성을 담아 탄탄한 신뢰와 최고를 지향하는 업무방식으로 의뢰인들과 한번의 인연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신용이 녹아있는 기업이미지를 재산권으로 보호 해주는 것이 변리사의 핵심적인 역할 씨앤엘의 구성원들 최 대표는 우리나라는 제조업기반과 자원의 희소성으로 산업이 확장되는데 여러가지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며 운을 띄었다. 특히 오늘날 IT기술과 인공지능(AI) 바이오, 의료 산업을 기반으로 하여 지적재산과 아이디어 산업이 빛의 속도로 발달되어 가고 있는 최근에는 이들의 권리화의 첨병에 서있는 변리사가 유망업종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한다. 특히 모바일의 발달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전자상거래의 일반화는 핵심기술 외에 회사의 축적된 신용을 상징하는 제품의 시각적인 브랜드와 디자인의 중요성 또한 배가 시키고 있다. 이에 최 대표는 회사의 신용과 품질이 녹아있는 상표(Trade Mark)와 디자인(Trade Dress)은 반드시 이를 재산권으로 관리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것이 바로 변리사의 핵심적인 역할이라며 자신의 소신을 펼쳤다. 올바른 방향으로 기업의 이미지가 녹아 있는 브랜드가 시장에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아울러 소비자들의 신뢰를 보호해주는 것이 변리사의 사회적 책임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최 대표는 기업과 제품의 신용이 녹아있는 브랜드의 상표등록이야 말로 사업의 제1순위라고 힘주어 말하면서, 상표등록을 하지 아니하고는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타인의 상표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침해사건이 발생한다면 고의성에 관계없이 위법성을 따져야 하는 소송에 휘말리고 손해배상은 물론, 제품을 폐기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시골청년, 제3의 물결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다 단란한 가족사진 울창한 금강송 소나무 숲과 송이버섯, 푸른 동해안의 관광 보고로 유명한 경북 울진군에서 나고 자란 최 대표는 고등학교 졸업 후 국가공채시험을 통해 공무원이 되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학업에 매진하여 중앙부처인 총무처(지금의 행정자치부) 7급 공채에 당당히 합격한 최 대표는 1980년에 입신양명(立身揚名)의 큰 꿈을 품고 서울로 상경했다. 그 당시 시험에 합격한 최 대표의 이름은 동네에 현수막이 걸릴 만큼 부모님과 마을의 자랑이 되는 든든한 아들이었다. 순수한 시골청년이었던 최 대표는 서울에 와 정부 인사업무를 수행하는 인사국에 근무하며 80년대의 어지러운 한국 사회와 도시의 변화를 몸소 느꼈다. 최 대표는 “처음에 서울에 왔을 때 어안이 벙벙하고 제가 너무 작다는 것을 느꼈지요.(웃음) 고가도로 위로 아래로 차가 다니고 중앙청 첫 출근 길 앞에 버티고 서 있던 중앙청(지금은 허물어진 옛 조선 총독부 건물)의 위용에 기가죽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자신의 지난날을 회상했다. 그 후 사무관(5급)에 승진하면서 고위 공무원을 교육하는 중앙 공무원교육원에 근무하며 그 당시 초빙교수들의 강의를 듣고 미래를 계획하게 되었다.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 이라는 책이 발간되어 많은 이들의 입으로 회자될 때 최 교수는 ‘지적재산권의 시대가 올 것이다’ 라는 예측과 함께 비전과 소망을 품고 1994년에 당시 존경하던 권오룡 전중앙인사위원장(장관)의 만류를 뒤로하고 특허청으로 직장을 옮겼다. 이후 최대표는 10여년간 특허청에서 근무하며 지적재산권 이론과 실무능력가로서 자신의 용량을 키워갔다. 특허청에 근무하면서 변리사 자격을 취득한 후 지적재산권에 관한 이론 능력을 키우기 위하여 법무대학원에 국비장학생으로 입학하여 지적재산권 법학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최대표는 공무원으로서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도 있었으나, 자신이 흥미를 가지고 어려운 기업들에게 재능기부도 할 수 있으며 평생 일할 수 있는 제2의 직업을 갖기 위해 변리사 라는 전문직업인이 되는 터닝포인트(turning point)로 삼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앞으로도 계속 변리사 업무에 열중하면서 자영업자, 중소기업, 개인발명가를 대상으로 상담과 전문지식을 전파하는데 노력하고 싶다”라고 작은 소망을 밝혔다. 변리사들의 수행 업무가 상당히 법률적, 기술적으로 난해하여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이러한 지식의 간극을 매워주는 대리인으로서의 변리사 역할에 더욱 매진하면서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중단 없는 능력개발에 열중하겠다는 소신을 전했다. 풍부한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이들의 개인과 기업의 지적재산권을 책임지고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최 대표. 그를 통해 다양하고 풍부한 아이디어가 지적재산권으로 보호받아 많은 기업들이 한국을 대표하고 세계의 기업으로 자리잡기를 기대하며 그의 행보를 주목해본다.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법학석사(지적재산권법 전공) •특허청 심사관(`94) •특허심판원 심판연구관(`97) •변리사 자격취득(`99) •특허청 부이사관 퇴임(`01) •변리사시험 출제위원 역임(`03~`10) •서울대학교경영대학원 문화콘텐츠글로벌리더 과정수료(`07.5~10) •대한변리사회(KPPA) 회원, 국제상표협회(INTA)회원(`01~ ) •특허청지식재산연수원, 한국발명진흥회 초빙교수(`99~ ) •한국디자인진흥원 브랜드, 디자인 심사위원(`02~ ) •서울시, 울진군, 하동군, 창녕군 등 지적재산권 자문 변리사 •논문 : 공서양속위반상표에 관한 법적고찰 등 연구보고서, 칼럼 등 다수 [1056]
    • 경제
    2018-11-01

라이프 검색결과

  • 이지헌 법무법인 수호 변호사
    최근 청소년들의 범죄가 악화되어 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유년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반마다 한두 명씩은 꼭 ‘튀는’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주 괴로운 일이지만 특별한 악의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재미로, 호기심에, 튀고 싶어서가 통상적인 이유다. 이와 같은 공격적 행동이 ‘또래 집단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구’, ‘주변의 관심을 끌어 존재감을 확인하고자 하는 욕구’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으며, 콘텐츠 세상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세계를 빨리 만나는 문화적 배경도 한 몫 하고 있다. 더욱 늘어나고 있는 청소년범죄는 무엇보다 객관적인 시각과 판단력이 부족한 아이들의 행동을 정확히 파악하고 진단하여 사건을 해결할 필요성이 있다. 이에 이 변호사는 가해자, 피해자 입장에서 사건의 정당한 해결에 주력하고 있다. 그를 만나 청소년 범죄의 특성과 사건해결 과정에 대해 집중 취재해 보았다. _장보연 기자 의뢰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 이 변호사가 속해있는 법무법인 수호는 2001년 설립된 변호사 27명으로 이루어진 법무법인으로서 민사, 형사를 비롯해 일반 송무 뿐만 아니라 정부기관과 민간기업의 각종 자문과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규모와 전통을 자랑하는 법무법인이다. 이 변호사는 민사와 행정소송과 학교폭력 및 청소년 범죄사건을 주로 맡고 있으며, 에너지와 환경 관련 연구 프로젝트도 병행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특히 의뢰인이 사건에 대한 법률자문을 구할 때 “의뢰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자 노력합니다.”라며 자신의 소신을 펼쳤다. 의뢰인은 단순히 소송을 하여 승소하거나 누군가를 고소하여 처벌을 받게 하는 것 자체가 근본적 목적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며,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원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소송 등을 이용하려 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이 변호사는 무엇보다 충분한 대화를 통해 의뢰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먼저 파악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최적의 해법이 무엇인지 찾아 도와주고자 한다. 또한 이 변호사는 법률조력을 필요로 하는 의뢰인들은 사실상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최적의 방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일단 특정한 종류의 소송부터 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의뢰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여 찾는 것에서부터 일을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청소년범죄사건, 객관적인 시각으로 가해·피해 학생들의 정당한 이익을 대변해야 이 변호사는 “소년범죄와 관련해서는 아직 미성숙한 청소년기에 범한 한번의 실수로 경찰, 검찰의 조사를 받고 형사법정이나 소년법정에 서게 되는 청소년들이 건전한ㄴ 사회 구성원으로 자랄 수 있도록 변호사로서 조력하는 역할을 하면서 강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청소년 사건 전문 변호사로서 볼 때, 외부에서 일반인들이 보는 학교폭력과 실제 일선 학교 현장에서 발생하는 학교폭력에 다소 괴리가 있다고 말한다. 때로는 범죄에 해당할 정도로 정도가 심하거나 주변 학생을 폭행하고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학교폭력도 있지만, 상당수의 학교폭력 사건은 학교생활에서 친구들 사이에 흔히 있을 수 있는 마찰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친한 친구로 지내다 사소한 시비로 시작된 말다툼 과정에서 폭언을 하거나, 장난을 주고받다가 감정이 격해지거나, 친구의 외모에 대한 평가로 기분이 상하거나 등 예전에 학교생활을 했던 성인들의 입장에서는 학교에서 흔히 겪었을 수 있는 일이 학교폭력 사건으로 비화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이 변호사는 억울하게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몰리기도 하고, 사소한 행위로 인해 학교폭력 가해자로 낙인이 찍혀 징계를 받기도 하기에, 학교폭력 가해학생으로 분류된 학생들이 극악무도한 학생들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 변호사는 학교폭력 피해학생 뿐만 아니라 가해학생들의 입장에서 대리하거나 변호하는 업무를 많이 수행하였는데 억울하게 학교폭력 가해자로 낙인찍혀 학교 내·외에서 의지할 곳 없이 외롭게 맞서는 학생들의 정당한 이익을 대변하는 것에서도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역사학도, 사회에 필요·도움이 되고 싶다는 의지로 법조인의 길을 걸어가다 전북 익산에서 나고 자란 이 변호사는 역사를 좋아해 삼국유사를 비롯한 각종 역사책을 섭렵하고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자신이 좋아했던 역사를 학문적으로 배울 때 어려움이 많았다는 이 변호사는 더 깊은 연구에 대한 도전보다는 사회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의미와 가치 있는 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에 개인적 성취와 사회공헌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직업으로서 법조인이 눈에 들어왔고 그 길로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여 법조인이 되기 위해 학문에 매진했다. 특히 역사를 좋아해 기본적인 한자를 가까이 했던 이 변호사는 법을 공부함에 있어 한자가 많고 어려운 용어들이 많지만 거부감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 또한 역사와 같이 깊이 파고드는 학문을 정진해 왔기에 변호사로서 사건을 처리하는 데 있어 깊고 넓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업무수행에서의 자율성과 업무의 폭을 고려할 때 변호사가 적성에 가장 잘 맞았고 본인의 선택에 만족하며 일하고 있다는 이 변호사는 단순히 사건을 처리하는 변호사로서의 역할을 넘어서 논문을 통해 법의 가치와 해석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며 점진적으로 사회와 법체계에 대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다양한 학교폭력 사건에서 피해학생이나 가해학생 및 그 부모 등 개별적인 관계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고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사건이 해결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고자 합니다.”라며 포부를 밝혔다. 또한 이제 국민들도 학교폭력 사건을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보실 것이 아니라 학생 간 상당히 복합적인 감정과 행동으로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현실을 이해하셨으면 하며, 그래야만 상황을 더욱 냉철히 파악하여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며 자신의 소신을 펼쳤다. 단순히 사건을 해결하는 것에만 주력하지 않고, 변호사로서의 사회적인 책임과 긍정적 역할을 해나가며 복합적인 사건에도 흔들리지 않는 시선과 객관성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이 변호사. 그를 통해 성장하는 학생들이 상처받거나 아픔을 오랫동안 겪지 않고 새 희망을 품을 수 있기를 바라며, 그의 단단한 발걸음을 응원해본다. [ 학력 및 경력 ] •現서울잠동초등학교 교권보호위원회・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위원 •現서울잠현초등학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위원 •現이리남중교회 자문변호사 •現주식회사 캐치웰 고문변호사 •前한국원자력문화재단(현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KEIA) 원자력법 사고위원 •現파이낸셜투데이 법률자문위원 •現주식회사 세움 자문변호사 •서울지방변호사회 건설부동산법연수원 수료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 주요취급업무 ] •학교폭력, 청소년범죄, 에너지법, 환경법, 건설・부동산법, 교회법 [ 연구실적 ] ▶ 원자력발전소 해체에 대한 환경법적 고찰 - 환경영향평가를 중심으로- Consideration of the decommissioning of nuclear power plants in relation to environmental law 고려대학교 안암법학회 [안암법학] 제43호 ※ KCI 등재지 ▶ 스마트폰 클라우드 서비스에서의 개인정보 침해 유형 및 관계 법령에 대한 소고 Mobile Cloud Service : Analysis on the Regulations of Data Privacy and Security ­연세대학교 법학연구원 [법학연구] 제23권 제1호(통권 제57호) ※ KCI 등재후보지 ▶ 원자력 안전규제 법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한 고찰 A Study on Improvement for the Problems of Nuclear Power Risk Regulatory Legislation 이화여대 법전원 [이화 로 리뷰] 2013 제3권 제1호 외 다수 [1056]
    • 라이프
    2018-11-01
  • 정성택 청명러시아번역행정사사무소 대표
    러시아는 지리적으로 가까우나 친숙한 나라라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1863년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본의 지배를 당하며 국가의 치욕을 겪은 대한민국에 연해주(지금의 프리모르스키주)가 역사 속에 들어왔다. 함경도의 농가가 이주하여 애국지사들이 망명하고 1910년대에 독립운동의 중심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12km 떨어진 우수리스크에서 1919년 3.1운동 직후인 3월 17일 독립선언문이 발표되고, 대한민국의 설립의 토대가 되었다. 여전히 러시아에는 고려인문화센터를 비롯하여 최재형 선생의 집, 이상설 선생 유허비, 전로한족 중앙총회 장소들 등 한국의 역사를 전하는 지역과 장소들이 많다. 그만큼 역사의 아픔을 함께한 우리의 이웃나라 러시아. 문학전집으로 러시아를 처음 접하고 러시아를 좋아하며 번역행정사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정성택 행정사를 만나 그가 말하는 러시아어 번역활동의 특징과 그의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_장보연 기자 다른 문화와 법 제도를 의뢰인들에게 정확히 전달하여 원활한 행정절차를 돕다 청명러시아번역행정사사무소(이하 ‘청명’)는 매년 40명의 인원이 합격하는 번역 행정사 중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러시아어 번역 행정사라 할 수 있다. 주로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많은 번역 행정사 중 가깝고도 멀고 낯선 나라인 러시아의 번역과 행정을 담당하는 정 행정사. 그는 처음 러시아에 갔을 때 러시아 인들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한국의 1960년대의 인정과 따뜻한 정서가 남아있어 순박하고 투박한 그들의 삶에 빠져들기 시작한 정 행정사. 특히 공군으로 근무했을 당시 만났던 러시아 장교들 조차 세상에서 가장 순한 눈이었다며 이후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더욱 러시아어 공부에 주력하였다. 정 행정사는 한국에서 행정사로서 근무하며 나라의 언어장벽을 해소하고 한국에 있는 러시아인들에게 한국의 제도와 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하며 그들의 행정절차를 돕는데 주력하고 있다. 러시아는 한국과 다르게 졸업증명서에 성적증명서가 함께 붙어있어 분리가 될 경우 효력이 없으며, 결혼증명서는 수첩으로 발급하여 행정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복사를 해야하고, 이혼을 할 경우에는 국가에서 회수를 하는 등 한국과는 다른 문화와 정서를 가지고 있어 행정절차에 다른 행태를 보인다. 이에 러시아의 법과 제도에 알맞도록 행정업무를 도와줘야 하기에 러시아의 법과 제도, 언어를 정확하고 올바르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군사외교활동 러시아문학전집을 섭렵한 문학도, 공군이 되어 러시아를 접하다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성장한 정 행정사는 감수성이 풍부해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즐기고 글짓기 대회에 나가 상을 받는 문학도였다. 특히 러시아 문학전집을 좋아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러시아의 문학을 깊이 받아들였다. 그는 육군사관학교를 가고자 하였으나 우연히 학교에 알려졌던 공군사관학교의 입학원서를 접하고 그 길로 공군사관학교에 지원하여 입학하게 된다.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언제가는 글을 쓰고 싶다는 희망을 품었다. 이후 공군 조종사로서 활동하며 당시 군에서 파견하여 세계 여러 언어를 학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는데 정 행정사는 대위가 되어 외국어대학교 러시아학과로 가서 교육을 받게 되었다. 당시 러시아와 수교가 되지 않아 이탈리아 공군대학에 먼저 가 해외 공군대학에서 배움을 유지하고 이후 러시아 모스크바 국방대학교에서 2년간 유학생활을 한 후 주러시아대사관에서 공군무관으로 6년간 근무하였다. 8년간 러시아에서 근무 후 공군대학 연구부장으로 근무하며 공군으로서의 삶을 마무리하였다. 이후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다 자신이 흥미를 느끼고 잘할 수 있는 일인 러시아어와 현지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러시아 번역 행정사로서의 외길을 걸어가게 된다. 공군사관학교 생도시절 비행훈련모습 정 행정사는 “사람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가치있고 멋있는 삶입니다. 자신의 삶을 더 가치있게 여기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라고 말한다. 청년들이 많은 어려움을 느끼는 사회지만 자신에게 운명처럼 다가오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소신을 펼쳤다. 또한 한국과 러시아는 역사적으로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과 미국보다는 멀지만 미래를 내다보면 자원적, 정치적으로 도움을 서로 줄 수 있는 나라이기에 서로에게 보탬이 될 수 있으며 러시아는 비전있는 나라가 될 것 이라고 말하는 정 행정사. 그의 단단한 신념과 사회를 생각하는 마음이 나라 간의 경계를 없애고 편견없이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하기를 기대하며, 러시아와 한국의 교류의 중심에 설 그의 미래와 행보를 주목해본다. 주러시아대사관 공군무관 시절의 모습 [ 학력 ] •공군사관학교 졸업(1979)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과 졸업(1987) •이태리 공군대학 졸업(1991) •러시아 총참모대학원 졸업(1996) [ 경력 ] •공군 비행대대장 •주러시아대사관 공군무관(1999-2002) •국방부 러시아유럽과장 •주러시아대사관 공군무관(2005-2008) •공군에어쇼기획실장 •공군대학 연구부장 •대령 전역(2010) •러시아어번역행정사 개업(2015) [1056]
    • 라이프
    2018-11-01
  • 김세라 경인법무법인 변호사
    변호사는 사회적으로 공공성을 지닌 법률전문직으로서, 당사자와 그 밖의 관계인의 위임이나 국가 · 지방자치단체와 그 밖의 공공기관의 위촉 등에 의하여 소송에 관한 행위 및 행정처분의 청구에 관한 대리행위와 일반 법률사무를 하는 것을 그 직무로 한다. 변호사는 변호사법에서 명시되어 있듯이 국민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역할을 하나, 실제 의뢰인에게 변호사는 삶의 위기의 순간과 끝자락에서 도움을 청하게 되는 필요의 존재이다. 그렇기에 전적으로 의뢰인은 전적으로 변호사를 신뢰하고 의지하며 법률적 해결과는 다른 자신의 억울함과 상황을 토로하기도 한다. 따라서 변호사는 변호사법 제1조 제2항에 명시되어 있는 “그 사명에 따라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고” 라는 말을 상기하여 법률에 의거한 양심적 법률서비스와 탁월한 소송전략을 이루어 가야한다. 오랜시간 사법고시를 준비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열정과 사람 냄새나는 변호사로서 의뢰인에게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을 찾아가는 김세라 변호사. 주간인물은 그를 만나 그의 굳건한 신념과 의뢰인과의 소통방법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_장보연 기자 열정과 신뢰, 객관적인 시각으로 사건을 해결하다 경인법무법인(이하 경인)의 부천분사무소에서 소속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 변호사. 경인은 경기지역에서 규모도 가장 크고, 사건수임수도 가장 많은 법무법인으로서 인천학익동, 인천주안동, 수원안산시, 부천시와 중국 총 5곳에 분사무소가 있어 넓고 다양한 사건을 해결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에 김 변호사는 민사, 가사, 형사 사건 전반에 대하여 의뢰를 받아 사건을 진행하고 구체적으로 이혼소송, 대여금소송, 손해배상소송, 성범죄 등의 사건해결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매일매일 서면을 작성하고 의뢰인과의 면담 뿐만 아니라 재판에 출석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 자체가 변호사로서 기본적인 역할과 약속이라 생각한다는 김 변호사는 의뢰인이 변호사를 찾아올 때 변호사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경우도 있으나, 법적으로 합하지 않는 결과를 요구할 때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분쟁해결은 결과적으로는 판사님의 판단으로 되는 것이지 변호사가 감히 해결을 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의뢰인에게 가장 유리할 수 있는 법적 구제수단을 잘 찾아서 최대한 열심히 주장하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이지요. 저는 의뢰인의 ‘인생’에 개입했다는 마음가짐으로 일을 합니다. 단순히 의뢰받은 사건만이 아닌 의뢰인의 인생을 의뢰받았다는 마음가짐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유리하게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항상 객관적인 시각을 잃지 않으려 노력합니다.“라며 의뢰인에 대한 진심과 소신을 펼쳤다. 김 변호사는 의뢰인들이 변호사에게 원하는 것은 한 마디로 “열정과 신뢰”라며 무조건 이겨주기를 바라는 의뢰인은 의외로 많지 않고 자신의 사건을 위해 열심히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최선을 다했다면 패소하거나, 구속이 될지라도 의뢰인은 변호사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전한 김 변호사. 그렇기에 그는 더욱 한 사건마다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한다고 말한다. “반드시 법조인 되겠다”는 확고한 신념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열정 전라남도 해남이 고향인 김 변호사는 농사를 짓는 부모님께서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기에 자식들만큼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았고 깊은 사랑을 표현해주었다며 지난 날을 회상했다. 더욱이 김 변호사는 첫째였기에 더 큰 사랑과 꿈을 향한 전폭적인 응원을 해주었다며 부모님을 향한 감사함을 표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서 반장과 부회장을 놓치지 않았고 자연스레 법조인의 꿈을 키웠고, 이후 외국어고등학교와 대학에서의 행정과 법을 공부하며 꿈과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터 고시공부를 시작하여 도서관에서도 유명하리만큼 악착같이 공부하여 1차 시험을 바로 합격하였으나 2차 시험의 벽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갈 만큼 어렵고 험난했다. 계속된 불합격에도 “반드시 된다”는 확신이 있었다는 김 변호사. 확고한 신념과 강한 정신력으로 눈물을 머금으며 공부한 결과 6번의 도전 끝에 합격하게 되었다. 김 변호사는 “횟수로10년간 고시공부하며 시험에 떨어졌을 때는 눈물로 밤을 지새웠던 기억이 아직도 슬프고 가슴 아프게 남아있습니다. 합격 후 가족과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던 것이 생생하며, 그 기억이 변호사의 길을 걸어가는 데 큰 힘이 되고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합니다.”라고 전했다. 더불어 김 변호사는 한국의 법조인양성기관이나 법률교육시스템의 포커스와 일반인의 인식이 판사와 검사에만 맞추어져 있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변호사의 차이는 공무원이냐, 비공무원이냐의 차이지, 비교할 대상이 아닌 각자의 역할과 업무가 있다는 것이다. 변호사는 “무엇보다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것과 따뜻한 마음,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열정이 꼭 필요합니다. 또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보다 실력입니다. 법학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방대하고 어렵기 때문에 그 누구라도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다 알아야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계속 공부하는 자세는 반드시 필요하며 특히 최신판례의 동향이나 지방법원에서 나오는 하급심 판결 등은 꼭 잘 체크할 필요가 있습니다.”라며 앞으로 더 발전하고 노력하는 변호사가 되겠다고 설명했다. “경험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사건경험을 많이 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먼 미래를 상정한 목표라면 ‘국회의원’에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사법은 이미 존재하는 입법에 대한 집행역할을 하기에 본질적인 한계가 있어 입법기관에서 일을 해 보고 싶습니다.“라며 포부를 밝혔다. 본질적인 가치와 사건의 객관성에 집중하고 신뢰와 열정을 다해 의뢰인을 사건을 해결하며 법조계를 이끌어갈 차세대 변호사인 김 변호사. 뜨거운 가슴으로 10년간 하나의 꿈을 가지고 달려왔던 그의 인생과 앞으로의 힘차게 항해할 변호사로서의 삶을 응원하며 단단한 발걸음에 기대를 해본다. •경인법무법인 부천분사무소 소속 변호사 •인천 남동경찰서 범죄예방협의체 위원 •부천 계남고등학교 고문변호사 •인천논현경찰서 범죄예방협의체 위원 •인천지방변호사회 •제46기 사법연수원 수료 •고양보호관찰소 특별법사랑위원 •서울북부지방검찰청 검사직무대리 •서울북부지방법원 국선변호인 •서울북부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 •제56회 사법시험 합격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 법학과 졸업 •전남 외국어고등학교 졸업 [1056]
    • 라이프
    2018-11-01
  • 강우철 한국시니어테니스연맹 회장
    최근 정현 선수를 통해 한국 테니스의 실력이 전세계로 알려져 위상이 높아졌고, 한국에서 테니스의 인기는 전 연령대를 아우르고 있다. 한국에서 테니스 경기가 시작된 것은 1900년대 부터 였는데, 1908년 4월 18일자 탁지부(현재 재경부) 관리들이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회동구락부를 조직한 뒤 미창동에서 테니스 코트를 마련해 경기를 시작한 것이 우리나라 테니스의 시초라 할 수 있다. 테니스는 유럽을 통해 전파된 스포츠이기에 받아들인지 오래되지 않은 한국의 테니스는 선수양성도 그만큼 늦어졌으나, 테니스를 사랑하고 즐겨하는 이들이 많아 단체활동을 통해 전국적으로 인기있는 종목으로 자리잡고 있다. 주간인물이 만난 한국시니어테니스연맹 강우철 회장은 경쟁이 아닌 즐기면서 서로가 화합하는 스포츠로서 즐기고 그 자리를 만들어가는 것이 연맹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그를 만나 연맹의 역할과 테니스가 우리사회에 주는 이점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_장보연 기자 동호인들과 명예회장님들의 노고와 수고로 테니스의 역사를 써내려가다 단체사진 한국시니어테니스연맹 30주년 기념식 2017아시아인터시티 시니어테니스 챔피언쉽 대회모습 한국시니어테니스연맹은 1987년에 창설되어 올해로 31년째 맞는 우리나라 테니스단체이며 역사와 전통을이 깊은 연맹이다. 강 회장은 재작년 인터시티 원정경기 18년 만에 서울시 대표가 계림대회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작년 10월 서울에서 인터시티대회가 열릴 수 있도록 하는데에 김문일 명예회장님의 역할과 노고가 컸다며 감사함을 전했다. 현재까지 김두환 명예회장을 비롯해 이석명, 이계방, 김윤택 대사가 건강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전국의 회원 300여 명이 함께하고 있다. 회장직을 맡았던 역대 시니어 회장들은 초대 민관식 회장을 시작으로 2대 홍종문, 3대 최재정 4대 김교성, 5대 김두환, 6대 최부길 7대와 8대 김두환, 9대 김문일 회장이며 2017년부터 강우철 회장이 회장직을 맡고 있다. 최근 강 회장을 비롯해 테니스계에 귀감이 되는 젊고 실력 좋은 이들이 영입되어 평균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 테니스계에 굵직한 획을 그렸던 선수들이 함께하고 있으며 여성 테니스 발전을 위해 리더 역할을 한 이수은, 남영자, 안갑숙, 최로사, 오정선 회원도 시니어 연맹에서 31년간 함께 하고 있다. 테니스 실력의 고하를 막론하고 테니스와 반평생을 보낸 원로들의 모습이 연맹의 긴 역사를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시니어 연맹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있는 강 회장은 작년 창립 30주년에 원로 분들을 모시고 연맹의 역사를 돌아보는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으며, 앞으로 나이든 사람만이 가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40대와 50대 젊은 시니어들을 많이 영입해 서로 융화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라며 힘주어 전했다. 또한 현재 연맹에서 주최하고 있는 코리아오픈 시니어 대회의 참가 연령을 낮춰 내년에는 50대 베테랑 선수들도 뛸 수 있는 새로운 시도를 할 생각이며, 국제 인터시티 대회도 45세부터 뛸 수 있는 자격이 있기 때문에 시니어 연맹은 앞으로 나이 제한 없이 회원의 폭을 넓혀가고자 한다며 포부를 전했다. 한국을 넘어 세계인을 하나로 만드는 시니어스포츠 삶을 즐기게 하는 테니스! 정현 선수 호주오픈 4강진출 공식환영만찬 한국시니어테니스연맹이 참여하는 아시아도시대항시니어팀테니스대회(이하 인터시티대회)는 1986년 한국테니스협회 홍종문회장, 홍콩의 실업가 휴세광회장, 일본의 스포츠 인사인 가와테이 에이이치씨가 함께 모여 동아시아 시니어 테니스 멤버들 사이의 친선과 단결을 도모하기 위한 경기로 창설하였다. 제1회 인터시티 대회를 개최한 홍콩의 원로테니스연맹 측에서는 참석자들의 항공료를 제외한 모든 비용을 부담하며 파격적인 대접을 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인터시티대회를 주최하는 국가에서는 최선의 대우로 참가하는 선수들을 대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인터시티대회를 다녀오면서 베테랑 테니스인들의 통합된 조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1987년 9월에 한국 베테랑 테니스연맹이 발족되었다. 대한테니스협회 및 대한체육회의 정식승인을 얻었음은 물론 ITF 베테랑연맹에 가입하여 국제대회에도 적극 참여하여 테니스 외교활동에 큰역할을 해왔으며, 2005년 ITF가 베테랑에서 시니어로 명칭을 바꾸면서 우리나라도 현재의 “한국시니어테니스연맹”으로 명칭을 바꾸게 되었다. 또한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고 있는 정현 선수의 호주오픈 4강 신화를 달성을 축하하고 물신양면으로 후원하기 위해 대한테니스협회 정희균 부회장과 김두환 명예회장, 강 회장이 참석하여 축하자리를 가지며 선수 후원과 양성에도 주력하고 있다. 아버지의 성품과 인격을 보며 테니스의 매력을 빠져들다 2017아시아인터시티 시니어테니스 챔피언쉽(서울)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테니스 라켓을 잡은 강 회장은 아버지께서 평생동안 테니스를 즐겨하시는 것을 몸소 보며 자랐다. 아버지께서 흰색 운동복을 입으시고 테니스를 치실 때면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다고 말하는 강 회장은 자신의 아버지를 닮고 싶어했으며 존경했다고 말한다. 특히 새벽마다 일어나서 운동을 다녀오시는 모습을 보며 부지런하고 타인에게 부정적 인식이 전혀 없는 모습을 보며 테니스를 하면 아버지와 같은 모습이 될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강 회장은 과거에 급한 성격으로 차분한 성격으로 고치고자 노력했는데 그 계기가 바로 테니스였다. 테니스는 신사의 운동이자 활동적이면서도 예의가 바르고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운동이기에 테니스를 할수록 삶의 여유를 찾아갔다. 또한 부모님은 평안도가 고향이셨는데, 강한 개척정신과 정신력으로 사업을 하시며 살아오셨기에 운동을 하면서도 그 정신을 유지하고 배울 수 있었다며 그 마음을 일깨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겠다고 전했다. 강 회장은 “무엇보다 테니스를 하면서 경쟁이 아닌 서로가 더욱 즐기고 화합하는 연맹이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스스로 성취력을 느끼며 즐거움을 찾아가는 것이 스포츠이지 결과만을 쫓아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경쟁심을 불러 일으키는 관행을 없애고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 함께 즐기고 이야기 하며 삶을 누려 나갔으면 한다는 강 회장. 그를 통해 테니스의 가치가 더욱 전달되고 시니어들이 삶의 이유와 가치를 되찾고 활기 넘치는 나날이 되기를 기대하며 연맹과 그의 발걸음에 응원을 보낸다. [1056]
    • 라이프
    2018-11-01

포토뉴스 검색결과

  • 최석원 Choi seog-won / 씨앤엘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변리사는 소위 지식재산권으로 불리는 특허권, 실용신안권, 디자인권, 상표권의 권리취득이나 분쟁 해결에 관련된 제반 업무를 의뢰인을 대리하여 수행하는 전문직 종사자이다. 특히 지적재산권의 독점배타적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지를 법적으로 판단하는 직업으로, 새로운 기술과 브랜드의 끊임없는 등장으로 더욱 주목받는 직업이다. 그리고 이런 특허소송을 비롯해 새로운 기술이나 디자인, 상표 등의 권리과 소송을 대리하는 변리사에 대한 인식과 관심은 최근 들어 드높아 지고 있다. 주간인물이 만난 C&L국제특허법률사무소 최석원 대표는 변리사 18년차로 국내외 지적재산권 전문 변리사로서 개인과 기업, 개인 발명가 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있다. 그를 만나 변리사 라는 직업의 실체와 사회적 역할과 그의 직업정신을 집중 조명해보았다. _장보연 기자 상표전문변리사로서 의뢰인과의 신뢰를 최우선으로 두다 씨앤앨국제특허법률사무소는 최 대표가 특허청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며 특허, 상표, 디자인 등의 실무경험을 두루 갖춘 뒤 2001년도에 설립한 전문성과 체계성을 갖춘 변리사 사무소이다. 최 대표는 요즘들어 기업의 기술력과 제품 디자인이 오롯이 녹아 기업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상표권(브랜드)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역할에 더 많은 노력을 투입하고 있다. 상표는 누구든지 접근할 수 있는 분야이지만 누구도 정답을 말할 수 없는 고도의 전문지식이 요구되는 분야이기 때문이고 상표로 인하여 발생하는 법적 분쟁은 기업의 명운을 거는 경우가 허다하여 최근 들어 그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최근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는 국내 닭 가슴살 전문기업인 A사의 상표권 분쟁을 승소로 이끌기 위한 소송 준비에 영일이 없다며 승소를 이끌어 내겠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씨앤앨국제특허법률사무소는 변리사의 도움이 빈번하고 많은 기업들이 기본적으로 자주 부닥치고 고민을 호소해 오는 상표권 문제의 신속하고도 즉각적인 대응을 위하여 “상표114”라는 홈페이지를 가지고 고객들의 수요에 대응해 나아가고 있다.씨앤엘은 오늘날 배부분의 경제활동이 온라인 상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기업의 상표 담당자들이 주로 신세대인 점에 착안하여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페이스북, 모바일 상담 등 SNS를 이용하는 고객 응대에도 심혈을 기우리고 있다. 오랜기간 동안의 수 많은 사건을 심사하고, 심판을 경험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소신과 진정성을 담아 탄탄한 신뢰와 최고를 지향하는 업무방식으로 의뢰인들과 한번의 인연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신용이 녹아있는 기업이미지를 재산권으로 보호 해주는 것이 변리사의 핵심적인 역할 씨앤엘의 구성원들 최 대표는 우리나라는 제조업기반과 자원의 희소성으로 산업이 확장되는데 여러가지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며 운을 띄었다. 특히 오늘날 IT기술과 인공지능(AI) 바이오, 의료 산업을 기반으로 하여 지적재산과 아이디어 산업이 빛의 속도로 발달되어 가고 있는 최근에는 이들의 권리화의 첨병에 서있는 변리사가 유망업종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한다. 특히 모바일의 발달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전자상거래의 일반화는 핵심기술 외에 회사의 축적된 신용을 상징하는 제품의 시각적인 브랜드와 디자인의 중요성 또한 배가 시키고 있다. 이에 최 대표는 회사의 신용과 품질이 녹아있는 상표(Trade Mark)와 디자인(Trade Dress)은 반드시 이를 재산권으로 관리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것이 바로 변리사의 핵심적인 역할이라며 자신의 소신을 펼쳤다. 올바른 방향으로 기업의 이미지가 녹아 있는 브랜드가 시장에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아울러 소비자들의 신뢰를 보호해주는 것이 변리사의 사회적 책임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최 대표는 기업과 제품의 신용이 녹아있는 브랜드의 상표등록이야 말로 사업의 제1순위라고 힘주어 말하면서, 상표등록을 하지 아니하고는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타인의 상표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침해사건이 발생한다면 고의성에 관계없이 위법성을 따져야 하는 소송에 휘말리고 손해배상은 물론, 제품을 폐기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시골청년, 제3의 물결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다 단란한 가족사진 울창한 금강송 소나무 숲과 송이버섯, 푸른 동해안의 관광 보고로 유명한 경북 울진군에서 나고 자란 최 대표는 고등학교 졸업 후 국가공채시험을 통해 공무원이 되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학업에 매진하여 중앙부처인 총무처(지금의 행정자치부) 7급 공채에 당당히 합격한 최 대표는 1980년에 입신양명(立身揚名)의 큰 꿈을 품고 서울로 상경했다. 그 당시 시험에 합격한 최 대표의 이름은 동네에 현수막이 걸릴 만큼 부모님과 마을의 자랑이 되는 든든한 아들이었다. 순수한 시골청년이었던 최 대표는 서울에 와 정부 인사업무를 수행하는 인사국에 근무하며 80년대의 어지러운 한국 사회와 도시의 변화를 몸소 느꼈다. 최 대표는 “처음에 서울에 왔을 때 어안이 벙벙하고 제가 너무 작다는 것을 느꼈지요.(웃음) 고가도로 위로 아래로 차가 다니고 중앙청 첫 출근 길 앞에 버티고 서 있던 중앙청(지금은 허물어진 옛 조선 총독부 건물)의 위용에 기가죽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자신의 지난날을 회상했다. 그 후 사무관(5급)에 승진하면서 고위 공무원을 교육하는 중앙 공무원교육원에 근무하며 그 당시 초빙교수들의 강의를 듣고 미래를 계획하게 되었다.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 이라는 책이 발간되어 많은 이들의 입으로 회자될 때 최 교수는 ‘지적재산권의 시대가 올 것이다’ 라는 예측과 함께 비전과 소망을 품고 1994년에 당시 존경하던 권오룡 전중앙인사위원장(장관)의 만류를 뒤로하고 특허청으로 직장을 옮겼다. 이후 최대표는 10여년간 특허청에서 근무하며 지적재산권 이론과 실무능력가로서 자신의 용량을 키워갔다. 특허청에 근무하면서 변리사 자격을 취득한 후 지적재산권에 관한 이론 능력을 키우기 위하여 법무대학원에 국비장학생으로 입학하여 지적재산권 법학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최대표는 공무원으로서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도 있었으나, 자신이 흥미를 가지고 어려운 기업들에게 재능기부도 할 수 있으며 평생 일할 수 있는 제2의 직업을 갖기 위해 변리사 라는 전문직업인이 되는 터닝포인트(turning point)로 삼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앞으로도 계속 변리사 업무에 열중하면서 자영업자, 중소기업, 개인발명가를 대상으로 상담과 전문지식을 전파하는데 노력하고 싶다”라고 작은 소망을 밝혔다. 변리사들의 수행 업무가 상당히 법률적, 기술적으로 난해하여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이러한 지식의 간극을 매워주는 대리인으로서의 변리사 역할에 더욱 매진하면서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중단 없는 능력개발에 열중하겠다는 소신을 전했다. 풍부한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이들의 개인과 기업의 지적재산권을 책임지고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최 대표. 그를 통해 다양하고 풍부한 아이디어가 지적재산권으로 보호받아 많은 기업들이 한국을 대표하고 세계의 기업으로 자리잡기를 기대하며 그의 행보를 주목해본다.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법학석사(지적재산권법 전공) •특허청 심사관(`94) •특허심판원 심판연구관(`97) •변리사 자격취득(`99) •특허청 부이사관 퇴임(`01) •변리사시험 출제위원 역임(`03~`10) •서울대학교경영대학원 문화콘텐츠글로벌리더 과정수료(`07.5~10) •대한변리사회(KPPA) 회원, 국제상표협회(INTA)회원(`01~ ) •특허청지식재산연수원, 한국발명진흥회 초빙교수(`99~ ) •한국디자인진흥원 브랜드, 디자인 심사위원(`02~ ) •서울시, 울진군, 하동군, 창녕군 등 지적재산권 자문 변리사 •논문 : 공서양속위반상표에 관한 법적고찰 등 연구보고서, 칼럼 등 다수 [1056]
    • 경제
    2018-11-01
  • 이지헌 법무법인 수호 변호사
    최근 청소년들의 범죄가 악화되어 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유년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반마다 한두 명씩은 꼭 ‘튀는’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주 괴로운 일이지만 특별한 악의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재미로, 호기심에, 튀고 싶어서가 통상적인 이유다. 이와 같은 공격적 행동이 ‘또래 집단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구’, ‘주변의 관심을 끌어 존재감을 확인하고자 하는 욕구’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으며, 콘텐츠 세상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세계를 빨리 만나는 문화적 배경도 한 몫 하고 있다. 더욱 늘어나고 있는 청소년범죄는 무엇보다 객관적인 시각과 판단력이 부족한 아이들의 행동을 정확히 파악하고 진단하여 사건을 해결할 필요성이 있다. 이에 이 변호사는 가해자, 피해자 입장에서 사건의 정당한 해결에 주력하고 있다. 그를 만나 청소년 범죄의 특성과 사건해결 과정에 대해 집중 취재해 보았다. _장보연 기자 의뢰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 이 변호사가 속해있는 법무법인 수호는 2001년 설립된 변호사 27명으로 이루어진 법무법인으로서 민사, 형사를 비롯해 일반 송무 뿐만 아니라 정부기관과 민간기업의 각종 자문과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규모와 전통을 자랑하는 법무법인이다. 이 변호사는 민사와 행정소송과 학교폭력 및 청소년 범죄사건을 주로 맡고 있으며, 에너지와 환경 관련 연구 프로젝트도 병행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특히 의뢰인이 사건에 대한 법률자문을 구할 때 “의뢰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자 노력합니다.”라며 자신의 소신을 펼쳤다. 의뢰인은 단순히 소송을 하여 승소하거나 누군가를 고소하여 처벌을 받게 하는 것 자체가 근본적 목적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며,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원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소송 등을 이용하려 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이 변호사는 무엇보다 충분한 대화를 통해 의뢰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먼저 파악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최적의 해법이 무엇인지 찾아 도와주고자 한다. 또한 이 변호사는 법률조력을 필요로 하는 의뢰인들은 사실상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최적의 방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일단 특정한 종류의 소송부터 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의뢰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여 찾는 것에서부터 일을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청소년범죄사건, 객관적인 시각으로 가해·피해 학생들의 정당한 이익을 대변해야 이 변호사는 “소년범죄와 관련해서는 아직 미성숙한 청소년기에 범한 한번의 실수로 경찰, 검찰의 조사를 받고 형사법정이나 소년법정에 서게 되는 청소년들이 건전한ㄴ 사회 구성원으로 자랄 수 있도록 변호사로서 조력하는 역할을 하면서 강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청소년 사건 전문 변호사로서 볼 때, 외부에서 일반인들이 보는 학교폭력과 실제 일선 학교 현장에서 발생하는 학교폭력에 다소 괴리가 있다고 말한다. 때로는 범죄에 해당할 정도로 정도가 심하거나 주변 학생을 폭행하고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학교폭력도 있지만, 상당수의 학교폭력 사건은 학교생활에서 친구들 사이에 흔히 있을 수 있는 마찰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친한 친구로 지내다 사소한 시비로 시작된 말다툼 과정에서 폭언을 하거나, 장난을 주고받다가 감정이 격해지거나, 친구의 외모에 대한 평가로 기분이 상하거나 등 예전에 학교생활을 했던 성인들의 입장에서는 학교에서 흔히 겪었을 수 있는 일이 학교폭력 사건으로 비화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이 변호사는 억울하게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몰리기도 하고, 사소한 행위로 인해 학교폭력 가해자로 낙인이 찍혀 징계를 받기도 하기에, 학교폭력 가해학생으로 분류된 학생들이 극악무도한 학생들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 변호사는 학교폭력 피해학생 뿐만 아니라 가해학생들의 입장에서 대리하거나 변호하는 업무를 많이 수행하였는데 억울하게 학교폭력 가해자로 낙인찍혀 학교 내·외에서 의지할 곳 없이 외롭게 맞서는 학생들의 정당한 이익을 대변하는 것에서도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역사학도, 사회에 필요·도움이 되고 싶다는 의지로 법조인의 길을 걸어가다 전북 익산에서 나고 자란 이 변호사는 역사를 좋아해 삼국유사를 비롯한 각종 역사책을 섭렵하고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자신이 좋아했던 역사를 학문적으로 배울 때 어려움이 많았다는 이 변호사는 더 깊은 연구에 대한 도전보다는 사회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의미와 가치 있는 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에 개인적 성취와 사회공헌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직업으로서 법조인이 눈에 들어왔고 그 길로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여 법조인이 되기 위해 학문에 매진했다. 특히 역사를 좋아해 기본적인 한자를 가까이 했던 이 변호사는 법을 공부함에 있어 한자가 많고 어려운 용어들이 많지만 거부감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 또한 역사와 같이 깊이 파고드는 학문을 정진해 왔기에 변호사로서 사건을 처리하는 데 있어 깊고 넓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업무수행에서의 자율성과 업무의 폭을 고려할 때 변호사가 적성에 가장 잘 맞았고 본인의 선택에 만족하며 일하고 있다는 이 변호사는 단순히 사건을 처리하는 변호사로서의 역할을 넘어서 논문을 통해 법의 가치와 해석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며 점진적으로 사회와 법체계에 대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다양한 학교폭력 사건에서 피해학생이나 가해학생 및 그 부모 등 개별적인 관계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고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사건이 해결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고자 합니다.”라며 포부를 밝혔다. 또한 이제 국민들도 학교폭력 사건을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보실 것이 아니라 학생 간 상당히 복합적인 감정과 행동으로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현실을 이해하셨으면 하며, 그래야만 상황을 더욱 냉철히 파악하여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며 자신의 소신을 펼쳤다. 단순히 사건을 해결하는 것에만 주력하지 않고, 변호사로서의 사회적인 책임과 긍정적 역할을 해나가며 복합적인 사건에도 흔들리지 않는 시선과 객관성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이 변호사. 그를 통해 성장하는 학생들이 상처받거나 아픔을 오랫동안 겪지 않고 새 희망을 품을 수 있기를 바라며, 그의 단단한 발걸음을 응원해본다. [ 학력 및 경력 ] •現서울잠동초등학교 교권보호위원회・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위원 •現서울잠현초등학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위원 •現이리남중교회 자문변호사 •現주식회사 캐치웰 고문변호사 •前한국원자력문화재단(현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KEIA) 원자력법 사고위원 •現파이낸셜투데이 법률자문위원 •現주식회사 세움 자문변호사 •서울지방변호사회 건설부동산법연수원 수료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 주요취급업무 ] •학교폭력, 청소년범죄, 에너지법, 환경법, 건설・부동산법, 교회법 [ 연구실적 ] ▶ 원자력발전소 해체에 대한 환경법적 고찰 - 환경영향평가를 중심으로- Consideration of the decommissioning of nuclear power plants in relation to environmental law 고려대학교 안암법학회 [안암법학] 제43호 ※ KCI 등재지 ▶ 스마트폰 클라우드 서비스에서의 개인정보 침해 유형 및 관계 법령에 대한 소고 Mobile Cloud Service : Analysis on the Regulations of Data Privacy and Security ­연세대학교 법학연구원 [법학연구] 제23권 제1호(통권 제57호) ※ KCI 등재후보지 ▶ 원자력 안전규제 법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한 고찰 A Study on Improvement for the Problems of Nuclear Power Risk Regulatory Legislation 이화여대 법전원 [이화 로 리뷰] 2013 제3권 제1호 외 다수 [1056]
    • 라이프
    2018-11-01
  • 정성택 청명러시아번역행정사사무소 대표
    러시아는 지리적으로 가까우나 친숙한 나라라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1863년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본의 지배를 당하며 국가의 치욕을 겪은 대한민국에 연해주(지금의 프리모르스키주)가 역사 속에 들어왔다. 함경도의 농가가 이주하여 애국지사들이 망명하고 1910년대에 독립운동의 중심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12km 떨어진 우수리스크에서 1919년 3.1운동 직후인 3월 17일 독립선언문이 발표되고, 대한민국의 설립의 토대가 되었다. 여전히 러시아에는 고려인문화센터를 비롯하여 최재형 선생의 집, 이상설 선생 유허비, 전로한족 중앙총회 장소들 등 한국의 역사를 전하는 지역과 장소들이 많다. 그만큼 역사의 아픔을 함께한 우리의 이웃나라 러시아. 문학전집으로 러시아를 처음 접하고 러시아를 좋아하며 번역행정사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정성택 행정사를 만나 그가 말하는 러시아어 번역활동의 특징과 그의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_장보연 기자 다른 문화와 법 제도를 의뢰인들에게 정확히 전달하여 원활한 행정절차를 돕다 청명러시아번역행정사사무소(이하 ‘청명’)는 매년 40명의 인원이 합격하는 번역 행정사 중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러시아어 번역 행정사라 할 수 있다. 주로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많은 번역 행정사 중 가깝고도 멀고 낯선 나라인 러시아의 번역과 행정을 담당하는 정 행정사. 그는 처음 러시아에 갔을 때 러시아 인들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한국의 1960년대의 인정과 따뜻한 정서가 남아있어 순박하고 투박한 그들의 삶에 빠져들기 시작한 정 행정사. 특히 공군으로 근무했을 당시 만났던 러시아 장교들 조차 세상에서 가장 순한 눈이었다며 이후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더욱 러시아어 공부에 주력하였다. 정 행정사는 한국에서 행정사로서 근무하며 나라의 언어장벽을 해소하고 한국에 있는 러시아인들에게 한국의 제도와 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하며 그들의 행정절차를 돕는데 주력하고 있다. 러시아는 한국과 다르게 졸업증명서에 성적증명서가 함께 붙어있어 분리가 될 경우 효력이 없으며, 결혼증명서는 수첩으로 발급하여 행정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복사를 해야하고, 이혼을 할 경우에는 국가에서 회수를 하는 등 한국과는 다른 문화와 정서를 가지고 있어 행정절차에 다른 행태를 보인다. 이에 러시아의 법과 제도에 알맞도록 행정업무를 도와줘야 하기에 러시아의 법과 제도, 언어를 정확하고 올바르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군사외교활동 러시아문학전집을 섭렵한 문학도, 공군이 되어 러시아를 접하다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성장한 정 행정사는 감수성이 풍부해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즐기고 글짓기 대회에 나가 상을 받는 문학도였다. 특히 러시아 문학전집을 좋아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러시아의 문학을 깊이 받아들였다. 그는 육군사관학교를 가고자 하였으나 우연히 학교에 알려졌던 공군사관학교의 입학원서를 접하고 그 길로 공군사관학교에 지원하여 입학하게 된다.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언제가는 글을 쓰고 싶다는 희망을 품었다. 이후 공군 조종사로서 활동하며 당시 군에서 파견하여 세계 여러 언어를 학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는데 정 행정사는 대위가 되어 외국어대학교 러시아학과로 가서 교육을 받게 되었다. 당시 러시아와 수교가 되지 않아 이탈리아 공군대학에 먼저 가 해외 공군대학에서 배움을 유지하고 이후 러시아 모스크바 국방대학교에서 2년간 유학생활을 한 후 주러시아대사관에서 공군무관으로 6년간 근무하였다. 8년간 러시아에서 근무 후 공군대학 연구부장으로 근무하며 공군으로서의 삶을 마무리하였다. 이후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다 자신이 흥미를 느끼고 잘할 수 있는 일인 러시아어와 현지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러시아 번역 행정사로서의 외길을 걸어가게 된다. 공군사관학교 생도시절 비행훈련모습 정 행정사는 “사람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가치있고 멋있는 삶입니다. 자신의 삶을 더 가치있게 여기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라고 말한다. 청년들이 많은 어려움을 느끼는 사회지만 자신에게 운명처럼 다가오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소신을 펼쳤다. 또한 한국과 러시아는 역사적으로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과 미국보다는 멀지만 미래를 내다보면 자원적, 정치적으로 도움을 서로 줄 수 있는 나라이기에 서로에게 보탬이 될 수 있으며 러시아는 비전있는 나라가 될 것 이라고 말하는 정 행정사. 그의 단단한 신념과 사회를 생각하는 마음이 나라 간의 경계를 없애고 편견없이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하기를 기대하며, 러시아와 한국의 교류의 중심에 설 그의 미래와 행보를 주목해본다. 주러시아대사관 공군무관 시절의 모습 [ 학력 ] •공군사관학교 졸업(1979)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과 졸업(1987) •이태리 공군대학 졸업(1991) •러시아 총참모대학원 졸업(1996) [ 경력 ] •공군 비행대대장 •주러시아대사관 공군무관(1999-2002) •국방부 러시아유럽과장 •주러시아대사관 공군무관(2005-2008) •공군에어쇼기획실장 •공군대학 연구부장 •대령 전역(2010) •러시아어번역행정사 개업(2015) [1056]
    • 라이프
    2018-11-01
  • 김세라 경인법무법인 변호사
    변호사는 사회적으로 공공성을 지닌 법률전문직으로서, 당사자와 그 밖의 관계인의 위임이나 국가 · 지방자치단체와 그 밖의 공공기관의 위촉 등에 의하여 소송에 관한 행위 및 행정처분의 청구에 관한 대리행위와 일반 법률사무를 하는 것을 그 직무로 한다. 변호사는 변호사법에서 명시되어 있듯이 국민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역할을 하나, 실제 의뢰인에게 변호사는 삶의 위기의 순간과 끝자락에서 도움을 청하게 되는 필요의 존재이다. 그렇기에 전적으로 의뢰인은 전적으로 변호사를 신뢰하고 의지하며 법률적 해결과는 다른 자신의 억울함과 상황을 토로하기도 한다. 따라서 변호사는 변호사법 제1조 제2항에 명시되어 있는 “그 사명에 따라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고” 라는 말을 상기하여 법률에 의거한 양심적 법률서비스와 탁월한 소송전략을 이루어 가야한다. 오랜시간 사법고시를 준비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열정과 사람 냄새나는 변호사로서 의뢰인에게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을 찾아가는 김세라 변호사. 주간인물은 그를 만나 그의 굳건한 신념과 의뢰인과의 소통방법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_장보연 기자 열정과 신뢰, 객관적인 시각으로 사건을 해결하다 경인법무법인(이하 경인)의 부천분사무소에서 소속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 변호사. 경인은 경기지역에서 규모도 가장 크고, 사건수임수도 가장 많은 법무법인으로서 인천학익동, 인천주안동, 수원안산시, 부천시와 중국 총 5곳에 분사무소가 있어 넓고 다양한 사건을 해결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에 김 변호사는 민사, 가사, 형사 사건 전반에 대하여 의뢰를 받아 사건을 진행하고 구체적으로 이혼소송, 대여금소송, 손해배상소송, 성범죄 등의 사건해결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매일매일 서면을 작성하고 의뢰인과의 면담 뿐만 아니라 재판에 출석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 자체가 변호사로서 기본적인 역할과 약속이라 생각한다는 김 변호사는 의뢰인이 변호사를 찾아올 때 변호사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경우도 있으나, 법적으로 합하지 않는 결과를 요구할 때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분쟁해결은 결과적으로는 판사님의 판단으로 되는 것이지 변호사가 감히 해결을 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의뢰인에게 가장 유리할 수 있는 법적 구제수단을 잘 찾아서 최대한 열심히 주장하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이지요. 저는 의뢰인의 ‘인생’에 개입했다는 마음가짐으로 일을 합니다. 단순히 의뢰받은 사건만이 아닌 의뢰인의 인생을 의뢰받았다는 마음가짐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유리하게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항상 객관적인 시각을 잃지 않으려 노력합니다.“라며 의뢰인에 대한 진심과 소신을 펼쳤다. 김 변호사는 의뢰인들이 변호사에게 원하는 것은 한 마디로 “열정과 신뢰”라며 무조건 이겨주기를 바라는 의뢰인은 의외로 많지 않고 자신의 사건을 위해 열심히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최선을 다했다면 패소하거나, 구속이 될지라도 의뢰인은 변호사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전한 김 변호사. 그렇기에 그는 더욱 한 사건마다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한다고 말한다. “반드시 법조인 되겠다”는 확고한 신념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열정 전라남도 해남이 고향인 김 변호사는 농사를 짓는 부모님께서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기에 자식들만큼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았고 깊은 사랑을 표현해주었다며 지난 날을 회상했다. 더욱이 김 변호사는 첫째였기에 더 큰 사랑과 꿈을 향한 전폭적인 응원을 해주었다며 부모님을 향한 감사함을 표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서 반장과 부회장을 놓치지 않았고 자연스레 법조인의 꿈을 키웠고, 이후 외국어고등학교와 대학에서의 행정과 법을 공부하며 꿈과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터 고시공부를 시작하여 도서관에서도 유명하리만큼 악착같이 공부하여 1차 시험을 바로 합격하였으나 2차 시험의 벽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갈 만큼 어렵고 험난했다. 계속된 불합격에도 “반드시 된다”는 확신이 있었다는 김 변호사. 확고한 신념과 강한 정신력으로 눈물을 머금으며 공부한 결과 6번의 도전 끝에 합격하게 되었다. 김 변호사는 “횟수로10년간 고시공부하며 시험에 떨어졌을 때는 눈물로 밤을 지새웠던 기억이 아직도 슬프고 가슴 아프게 남아있습니다. 합격 후 가족과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던 것이 생생하며, 그 기억이 변호사의 길을 걸어가는 데 큰 힘이 되고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합니다.”라고 전했다. 더불어 김 변호사는 한국의 법조인양성기관이나 법률교육시스템의 포커스와 일반인의 인식이 판사와 검사에만 맞추어져 있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변호사의 차이는 공무원이냐, 비공무원이냐의 차이지, 비교할 대상이 아닌 각자의 역할과 업무가 있다는 것이다. 변호사는 “무엇보다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것과 따뜻한 마음,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열정이 꼭 필요합니다. 또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보다 실력입니다. 법학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방대하고 어렵기 때문에 그 누구라도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다 알아야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계속 공부하는 자세는 반드시 필요하며 특히 최신판례의 동향이나 지방법원에서 나오는 하급심 판결 등은 꼭 잘 체크할 필요가 있습니다.”라며 앞으로 더 발전하고 노력하는 변호사가 되겠다고 설명했다. “경험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사건경험을 많이 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먼 미래를 상정한 목표라면 ‘국회의원’에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사법은 이미 존재하는 입법에 대한 집행역할을 하기에 본질적인 한계가 있어 입법기관에서 일을 해 보고 싶습니다.“라며 포부를 밝혔다. 본질적인 가치와 사건의 객관성에 집중하고 신뢰와 열정을 다해 의뢰인을 사건을 해결하며 법조계를 이끌어갈 차세대 변호사인 김 변호사. 뜨거운 가슴으로 10년간 하나의 꿈을 가지고 달려왔던 그의 인생과 앞으로의 힘차게 항해할 변호사로서의 삶을 응원하며 단단한 발걸음에 기대를 해본다. •경인법무법인 부천분사무소 소속 변호사 •인천 남동경찰서 범죄예방협의체 위원 •부천 계남고등학교 고문변호사 •인천논현경찰서 범죄예방협의체 위원 •인천지방변호사회 •제46기 사법연수원 수료 •고양보호관찰소 특별법사랑위원 •서울북부지방검찰청 검사직무대리 •서울북부지방법원 국선변호인 •서울북부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 •제56회 사법시험 합격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 법학과 졸업 •전남 외국어고등학교 졸업 [1056]
    • 라이프
    2018-11-01
  • 강우철 한국시니어테니스연맹 회장
    최근 정현 선수를 통해 한국 테니스의 실력이 전세계로 알려져 위상이 높아졌고, 한국에서 테니스의 인기는 전 연령대를 아우르고 있다. 한국에서 테니스 경기가 시작된 것은 1900년대 부터 였는데, 1908년 4월 18일자 탁지부(현재 재경부) 관리들이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회동구락부를 조직한 뒤 미창동에서 테니스 코트를 마련해 경기를 시작한 것이 우리나라 테니스의 시초라 할 수 있다. 테니스는 유럽을 통해 전파된 스포츠이기에 받아들인지 오래되지 않은 한국의 테니스는 선수양성도 그만큼 늦어졌으나, 테니스를 사랑하고 즐겨하는 이들이 많아 단체활동을 통해 전국적으로 인기있는 종목으로 자리잡고 있다. 주간인물이 만난 한국시니어테니스연맹 강우철 회장은 경쟁이 아닌 즐기면서 서로가 화합하는 스포츠로서 즐기고 그 자리를 만들어가는 것이 연맹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그를 만나 연맹의 역할과 테니스가 우리사회에 주는 이점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_장보연 기자 동호인들과 명예회장님들의 노고와 수고로 테니스의 역사를 써내려가다 단체사진 한국시니어테니스연맹 30주년 기념식 2017아시아인터시티 시니어테니스 챔피언쉽 대회모습 한국시니어테니스연맹은 1987년에 창설되어 올해로 31년째 맞는 우리나라 테니스단체이며 역사와 전통을이 깊은 연맹이다. 강 회장은 재작년 인터시티 원정경기 18년 만에 서울시 대표가 계림대회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작년 10월 서울에서 인터시티대회가 열릴 수 있도록 하는데에 김문일 명예회장님의 역할과 노고가 컸다며 감사함을 전했다. 현재까지 김두환 명예회장을 비롯해 이석명, 이계방, 김윤택 대사가 건강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전국의 회원 300여 명이 함께하고 있다. 회장직을 맡았던 역대 시니어 회장들은 초대 민관식 회장을 시작으로 2대 홍종문, 3대 최재정 4대 김교성, 5대 김두환, 6대 최부길 7대와 8대 김두환, 9대 김문일 회장이며 2017년부터 강우철 회장이 회장직을 맡고 있다. 최근 강 회장을 비롯해 테니스계에 귀감이 되는 젊고 실력 좋은 이들이 영입되어 평균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 테니스계에 굵직한 획을 그렸던 선수들이 함께하고 있으며 여성 테니스 발전을 위해 리더 역할을 한 이수은, 남영자, 안갑숙, 최로사, 오정선 회원도 시니어 연맹에서 31년간 함께 하고 있다. 테니스 실력의 고하를 막론하고 테니스와 반평생을 보낸 원로들의 모습이 연맹의 긴 역사를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시니어 연맹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있는 강 회장은 작년 창립 30주년에 원로 분들을 모시고 연맹의 역사를 돌아보는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으며, 앞으로 나이든 사람만이 가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40대와 50대 젊은 시니어들을 많이 영입해 서로 융화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라며 힘주어 전했다. 또한 현재 연맹에서 주최하고 있는 코리아오픈 시니어 대회의 참가 연령을 낮춰 내년에는 50대 베테랑 선수들도 뛸 수 있는 새로운 시도를 할 생각이며, 국제 인터시티 대회도 45세부터 뛸 수 있는 자격이 있기 때문에 시니어 연맹은 앞으로 나이 제한 없이 회원의 폭을 넓혀가고자 한다며 포부를 전했다. 한국을 넘어 세계인을 하나로 만드는 시니어스포츠 삶을 즐기게 하는 테니스! 정현 선수 호주오픈 4강진출 공식환영만찬 한국시니어테니스연맹이 참여하는 아시아도시대항시니어팀테니스대회(이하 인터시티대회)는 1986년 한국테니스협회 홍종문회장, 홍콩의 실업가 휴세광회장, 일본의 스포츠 인사인 가와테이 에이이치씨가 함께 모여 동아시아 시니어 테니스 멤버들 사이의 친선과 단결을 도모하기 위한 경기로 창설하였다. 제1회 인터시티 대회를 개최한 홍콩의 원로테니스연맹 측에서는 참석자들의 항공료를 제외한 모든 비용을 부담하며 파격적인 대접을 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인터시티대회를 주최하는 국가에서는 최선의 대우로 참가하는 선수들을 대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인터시티대회를 다녀오면서 베테랑 테니스인들의 통합된 조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1987년 9월에 한국 베테랑 테니스연맹이 발족되었다. 대한테니스협회 및 대한체육회의 정식승인을 얻었음은 물론 ITF 베테랑연맹에 가입하여 국제대회에도 적극 참여하여 테니스 외교활동에 큰역할을 해왔으며, 2005년 ITF가 베테랑에서 시니어로 명칭을 바꾸면서 우리나라도 현재의 “한국시니어테니스연맹”으로 명칭을 바꾸게 되었다. 또한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고 있는 정현 선수의 호주오픈 4강 신화를 달성을 축하하고 물신양면으로 후원하기 위해 대한테니스협회 정희균 부회장과 김두환 명예회장, 강 회장이 참석하여 축하자리를 가지며 선수 후원과 양성에도 주력하고 있다. 아버지의 성품과 인격을 보며 테니스의 매력을 빠져들다 2017아시아인터시티 시니어테니스 챔피언쉽(서울)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테니스 라켓을 잡은 강 회장은 아버지께서 평생동안 테니스를 즐겨하시는 것을 몸소 보며 자랐다. 아버지께서 흰색 운동복을 입으시고 테니스를 치실 때면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다고 말하는 강 회장은 자신의 아버지를 닮고 싶어했으며 존경했다고 말한다. 특히 새벽마다 일어나서 운동을 다녀오시는 모습을 보며 부지런하고 타인에게 부정적 인식이 전혀 없는 모습을 보며 테니스를 하면 아버지와 같은 모습이 될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강 회장은 과거에 급한 성격으로 차분한 성격으로 고치고자 노력했는데 그 계기가 바로 테니스였다. 테니스는 신사의 운동이자 활동적이면서도 예의가 바르고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운동이기에 테니스를 할수록 삶의 여유를 찾아갔다. 또한 부모님은 평안도가 고향이셨는데, 강한 개척정신과 정신력으로 사업을 하시며 살아오셨기에 운동을 하면서도 그 정신을 유지하고 배울 수 있었다며 그 마음을 일깨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겠다고 전했다. 강 회장은 “무엇보다 테니스를 하면서 경쟁이 아닌 서로가 더욱 즐기고 화합하는 연맹이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스스로 성취력을 느끼며 즐거움을 찾아가는 것이 스포츠이지 결과만을 쫓아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경쟁심을 불러 일으키는 관행을 없애고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 함께 즐기고 이야기 하며 삶을 누려 나갔으면 한다는 강 회장. 그를 통해 테니스의 가치가 더욱 전달되고 시니어들이 삶의 이유와 가치를 되찾고 활기 넘치는 나날이 되기를 기대하며 연맹과 그의 발걸음에 응원을 보낸다.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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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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