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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검색결과

  • 김영일 K디자인 회장, 경기도자전거연맹 회장
    다양한 영역에서 꾸준히 봉사의 삶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자신의 숙명처럼 여기고 그 분야에 종사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하지만 어려운 이들 곁에서만 아픔을 함께 하기에는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려운 난관에 닥칠 때가 많다. 때문에 K디자인대표 김영일 회장은 평생 사업 외에는 봉사에 전념하며 살아왔고 직접 겪고 느낀 현실적 어려움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판단, 그의 삶과 생각을 이제 온전히 정치에 담아 제대로 된 봉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김영일 회장을 만나 그의 봉사의 삶을 조명해 보았다. _우호경, 홍진희 기자 장애인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교육, 문화 활동 고향은 전북 장수이지만 수원 유신고등학교를 진학한 이후 지금껏 살아온 수원이 김 회장에게는 더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제 2의 고향이다. 고등학생 시절 7세 미만의 아이들이 모여 있는 유아원(수원 경동원)에서 크리스마스 때 인형극 봉사를 하며 느꼈던 행복했던 기억이 지금처럼 봉사하는 삶을 살게 된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역사회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서장대로터리 클럽 초대·2대 회장을 맡아 다양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봉사에 대한 열정은 밝은사회 국제본부 수원클럽 회장을 맡으면서 계속 이어져 수원 새벽빛 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장애인 야간학교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새벽빛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성인장애인들이 생활하고 있는 곳인데 그들은 어렸을 때 열악한 장애인 교육 환경으로 인해 글도 깨우치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김 회장은 이곳에서 후원회장을 10년 이상 맡으며 그들을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컴퓨터, 시, 문학, 사진, 요리, 연극무대도 꾸미는 등 기초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했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덕분에 이 곳의 장애인들은 교육과 문화 다양한 취미 활동 및 현장체험학습을 통해 사회성을 기르고, 나아가 검정고시에도 도전하며 해마다 훌륭한 학생을 배출하고 졸업식을 통해 개인의 자부심을 키워 사회의 일원으로 적응 하는데에 있어 기틀을 마련해준다. 후임 후원회장을 맡아서 해준다는 사람이 없어 부족하지만 장기집권을 하고 있다며 부끄러워했고 김 회장의 노력과 헌신이 아니었다면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지금처럼 운영될 수 있었을까.교육혜택은 물론 문화혜택도 거의 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경기도장애인극단인 “난다”의 후원회장까지 맡아 활동하고 있는 김 회장을 보며 사회의 그 어떤 작은 변화라도 노력없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장애인들이 직접 배우가 되고 주체가 되는 “난다”의 공연은 해마다 열려 방송에도 여러 번 소개되었을 정도이다. 일반인들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 만들어내는 연극공연이지만 관객이 없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웠던 김 회장은 직접 수원 인근에 위치한 학교, 아파트까지 찾아 다니며 학생들에게 연극을 보러오면봉사점수를 주겠다 호소하고 다녔지만 장애인 극단이란 이유로 관객을 모으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방송을 통해 알려져 공주대학교 재활학과에서 극단 “난다”를 초청해주어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곳에서 객석을 가득 메운 대학생 관객들이 관람 했는데 걷는것 조차도 불편하한 장애인 배우들이 정말 무대에서 열정적으로 공연하는 것을 보고 배우도 울고 학생들도 함께 눈시울을 붉히는 것을 보며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장애인 학생들과 함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5km를 완주해낸 것도 장애인학생들에게 자신감과 완주의 경험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에 비해 많은 노력과 반복된 훈련이 필요하지만 기회를 주면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잘 해내는 학생들을 보며 더욱 봉사에 대한 열정을 태울 수 있었다. 진정한 기부문화는 가슴으로 함께하는 따뜻한 마음 김 회장의 봉사활동은 장애인학생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천주교 신자이면서 이미 부부가 가톨릭 대학 병원에 장기 기증을 했고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화성 사강보금자리라는 양로원에 매달 봉사하는 것도 쉬지 않고 하고 있다. 보금자리 원장 수녀님의 요청으로 어르신들을 위한 팔순잔치를밝은사회 국제본부 수원클럽 회장 재직때해드리기도 했는데 친 자식도 아닌 회원들에게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기뻐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며 그날을 회상했다 김 회장은 잔치를 위해 정말 오랜만에 입으신 한복을 벗으려고 하지 않는 어르신들을 보며 얼마나 입고 싶은 한복이면 더 오래 입고 싶겠냐며 원장 수녀님께 2-3일 더 입게 하시라고 했고 직접 한복을 해드리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김 회장은 지금 우리나라가 살기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봉사활동이나 기부를 하는 사람은 턱없이 적다며 안타까워했다. 밝은사회 국제본부 수원클럽에서는 정기적으로 노숙자와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급식 봉사활동 중에 할머니 한 분이 급식 비용을 국가에서 지원 해 주느냐는 질문에 회원들이 십시일반 충당한다는 말에 주머니 속에서 음식 준비에 보태라며 5만원을 주고 가시는 모습이 본인도 어렵지만 기부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평소 생활 철학인 “받는 것 보다 주는 것이 행복하다.”는 평범한 말이지만 어려운 일을 몸소 실천해 내는 삶을 살고 있다. 조금만 나눠줄 것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눠주는 그답게 그의 아내가 일하는 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의 3개월 시한부 20대 환자가 연인과 결혼식을 올리는 데에 도움을 요청 했을 때에도 망설임 없이 힘을 보태며 많은 이들의 슬픔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일에 열정을 다하고 있다. 김 회장은 다문화 가족도 우리 대한민국 국민으로 당당히 살 수 있도록 경기도 50만 다문화인을 위해 경기도다문화사랑연합회 홍보위원장을 맡아 생활습관과 문화가 달라 어려움을 격고있는 다문화가족 지원을 위해 많은 활동도 하면서 장학사업 재능기부 등 다양한 분야의 활동을 통해 그의 가치관을 공유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또한 130만 자전거 동호인이 활동하고 있고 지난해 7월 엘리트 싸이클연맹과 생활체육자전거연합회의 통합된 “경기도자전거연맹”초대회장으로 취임 후 선수 및 임원들과 각종대회 및 행사 참여로 희노애락을 함께한 김회장의 열정으로 엘리트선수 및 생활체육선수들의 활략에 전국체전 종합우승 전국 생활체전종합우승이라는 좋은 결실을 맺었다. 김 회장은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의 소원이 남북통일을 갈망하지만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수년간 준비하고 피나는 노력을 한 대표 선수들이 남북한 대표가 태극기 대신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하는 것도 좋지만 남북 단일팀 출전 이라는 명분으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해 접어야 하는 우리 선수들이 체육 가맹단체장으로서 너무도 가슴이 아프고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 행여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는 듯해 못내 아쉬워 했다. 국민에게 봉사를 위해 정치에 도전 김 회장은 지난 총선에서 국회의원 예비후보로서 선거에 도전하였다. 비록 공천을 받지는 못해 선거에 출마하지는 못했지만 도전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그가 정치를 결심하게 된 것도 바로 봉사 때문이다. 봉사를 하면서 느꼈던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조금씩이라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치란 국민들이 두다리 쭉 펴고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과거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저소득층 및 장애인, 다문화가족, 새터민 들의 처우개선이나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와 지원책 등은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데에 힘을 보태려고 한다. 그래서 다음 번 다가오는 총선에 도전하여 사회복지 분야의 제도마련과 정부정책마련에 기여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한 예로 지금 학생들이 하고 있는 봉사점수가 형식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을 개선하고 싶다. 부모님의 인솔 하에 봉사활동을 하러 와서 그저 점수만 받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생활 속에 봉사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릴 때의 경험과 행복했던 기억이 평생을 지배하는 것처럼 봉사현장에서 직접 보람을 느끼도록 해야 이들이 자라서 다른 이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김 회장은 격과 스펙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서열화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봉사활동 경험이 진학과 취업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게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진정한 미래 자산이다. 제대로 된 봉사,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오늘도 치열하게 봉사의 현장에서 어려운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나는 꽃이예요/잎은 나비에게 주고/꿀은 솔방 벌에게 주고/향기는 바람에게 보냈어요/그래도 난 잃은 건 없어요/더 많은 열매로 태어날 거예요/가을이 오면, 김용석 <가을이 오면> 이 시처럼 김 회장의 삶과 철학을 잘 나타내는 것이 있을까.평소 김 회장이 가장 좋아하는 이 시처럼 열심히 베풀고 나누다보면 그것이 커다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보답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제대로 된 봉사활동을 경험하고 봉사와 기부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사회가 되는 희망의 열매가 맺히기를 꿈꾸며 오늘도 김영일 회장은 열심히 달리고 있다. 김 회장의 생각과 꿈이 우리나라 복지정책에 충실히 반영되기를 기대하며 김영일 회장의 활기찬 행보를 주간인물이 응원한다. ◆김영일 회장 프로필 수원 유신고등학교 졸업 (6회) 경희대학교 / 경희대학교행정대학원 석사졸업 인천일보 사회부 기자 수원서장대로타리클럽회장 밝은사회국제본부수원클럽회장 수원새벽빛장애인자립센터 후원회장 경기도장애인극단 "난다" 후원회장 경기도다문화사랑연합회 홍보위원장 자유한국당 중앙당부대변인 경기도자전거연맹 회장 K-디자인 대표 [1034]
    • 정치
    2018-01-30

문화 검색결과

  • 이동삼 영화감독 / Jin-E 엔터테인먼트 대표
    대한민국은 국제영화시장에서 대단히 큰 규모를 자랑하는 영화강국이다. 매일같이 새롭고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쏟아지고 있고 영화인들의 활동은 이제 영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만큼 영화인을 꿈꾸는 젊은이들도 많아져 이제 영화시장은 문화의 한 축을 넘어 경제영역의 한 부분을 담당할 만큼 시장 규모가 커졌다. 이렇게 변화의 폭이 큰 분야에서 오랫동안 영화인으로서 외길을 걸어온 이동삼 감독을 만나 그의 영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_우호경, 홍진희 기자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내며 대한민국 영화의 역사와 함께 하다 어린 시절의 이동삼 감독은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같은 사물이라도 빛과 사진을 찍는 사람의 감성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는 사진에 깊이 매료되었다. 부모님을 졸라 사게 된 카메라를 들고 무엇이든 사진에 담아내며 그만의 감성과 감각을 키워나갔다. 그런 청소년기를 거쳐 20대 중반에는 영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지인의 추천으로 영화계에 입문하게 된 후 지금껏 수십 편의 영화에 촬영감독, 수중촬영을 도맡아 하며 영화계에서 입지를 다져왔다. 촬영감독 데뷔작인 ‘자전거를 타고 온 연인’을 통해 1992년 제 16회 황금촬영상 시상식에서 신인촬영상을 수상했고 ‘올가미’로 황금촬영상 금상을 수상하기도 하는 등 데뷔작부터 활동하면서 줄곧 능력을 인정받으며 활약해왔다. 그는 여기에서만 머물지 않고 수중촬영감독으로도 영역을 넓혔다. 멜로, 공포, 스릴러, 액션, 코미디 등 가리지 않고 다양한 촬영을 해오면서 어떤 장르이건 연출로 담아내는 내공을 쌓았다. 그런 내공이 쌓여 지난 2009년 천만이 넘는 흥행을 기록했던 ‘해운대’의 수중촬영감독으로써 그만의 필모그래피를 완성해 온 것이다. 촬영감독으로서 활동뿐만 아니라 한국영상대학교 강사와 영상기술지 편집장, 영화제 심사위원 등도 함께 하면서 영화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을 키워나갔고 이제는 프로듀서로 전향하여 제작사를 설립하고 제작자 겸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1년 그가 기획, 제작한 작품인 ‘마스터클래스의 산책’은 한 곳에 모이기도 힘든 거장 감독들의 단편들을 옴니버스식으로 엮어 만들어 당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었다. 그의 도전은 제작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연출을 도맡기까지 했다. 첫 연출작이 바로 2014년에 개봉한 ‘왓니껴’이다. 이 작품에서 중년이 되어 다시 만난 어린 시절의 친구들과 고향풍경을 통해 잔잔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인물간의 조화로움을 통해 이동삼 감독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다. 사람에 대한 관찰력과 감각이 그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소화해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그만의 따뜻한 감성이 만들어낸 이 영화는 부천 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비전익스프레스 부문에 초청되는 등 영화감독으로서의 이동삼의 능력과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쉬지 않는 작품 활동과 열정으로 영화산업의 新 한류를 주도해 나가다 이 감독은 또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제작, 감독할 시나리오가 곧 탈고 예정이지만 상업적인 흥행에 너무 욕심을 내지는 않으려 하고 있다. 그는 오랜시간 영화계에 몸담으며 갈고 닦은 실력과 경험을 그가 만드는 영화에 오롯이 훌륭한 작품으로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화 한편이 만들어지기 위한 다양한 역할들을 두루 경험하며 상황에 따라 그에 맞는 책무를 다하기 위해 늘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이 감독은 촬영감독을 할 때는 연출자의 의도를 더욱 극대화 시키기 위해 늘 연구했고 연출을 할 때는 스텝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창의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또 제작을 할 때는 원활한 현장작업환경 조성을 위해 힘쓰는 등 1인 다 역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다양한 경험이 그의 작품에서 창의적인 표현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감독은 스텝들의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이를 모두 배려하려다 보면 연출자로서는 손해를 볼 때가 많지만 현장에서 아무리 힘들었어도 시사회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는 것을 보는 순간 힘든 기억이 모두 즐거운 추억이 된다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 감독은 또한 중국에서 5년간 영화 드라마 감독/피디 장기 계약을 통해 국내에서만이 아니라 중국에서도 활동을 활발히 이어나가고 있다. 중국에서 제작발표회를 성황리에 마치는 등 경험과 노하우를 중국에서 마음껏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 영상산업 분야에는 실력있는 후배들이 있어 좋은 자극이 되기도 하지만 외국과 달리 은퇴시기가 너무 빨라져 선배들의 원숙한 실력과 기술력을 다 보여주지 못하고 영화계에서 사라지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30대 중반에 헤드스텝이 되어 10여년 정도 활동하고 나면 도태되어 버리는 것이 지금 현실이다. 이 감독은 일찌감치 프로듀서로 전향해 영화를 기획,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오랜시간 경험을 쌓아온 이들이 실력발휘를 할 수 있게끔 영상산업의 다양성과 시장의 크기가 더욱 커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감독이 중국으로 발을 넓힌 것도 이런 문제 때문이다. 중국으로 진출해 우리 베테랑 스텝들의 기술력과 연출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중간다리 역할을 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영화는 문화의 종합예술이다. 시나리오의 창의성과 뛰어난 작품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영상기술과 최첨단 촬영기법 등의 기술력과 수십 명의 스텝들이 모여 만드는 공동의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동삼 감독은 이러한 영화의 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오늘도 한 편의 영화를 위해 온 마음과 열정을 다 바치고 있다. 10여 년간 교수로서 후학양성 활동을 내려놓지 않은 것도 바로 이런 영화의 매력을 알아주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앞으로 한국 영화 산업이 양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더욱 풍성해질 수 있도록 연출자로서, 제작자로서 열정을 쏟고 있는 이동삼 감독의 다양한 활동을 기대해본다. •한국영상대학교 / 대진대학교 졸업 •前 한국영화 촬영감독협회 감사 •前 청풍 영상위원회 운영위원 겸 이사 •前 제천 영상미디어센터 운영 부위원장 •現 진이(Jin-E)엔터테인먼트 영화사 대표 •現 한국영상위원회 이사 •現 서울영상위원회 이사 •現 중국 해피 ERA 미디어 감독 / 피디 •現 중국 곤지 픽처스 이사 / 감독 / 피디 수상 •1992 제 16회 황금촬영상 시상식 신인촬영상 •1994 제 18회 황금촬영상 시상식 동상 •1998 제 21회 황금활영상 시상식 금상 [1035]
    • 문화
    2018-02-26
  • 이병직 아리랑 코러스 감독 겸 상임지휘자
    음악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몸이 아플 때에도, 마음이 힘들 때에도, 심지어 국가 간의 분쟁이나 갈등으로 외교력과 정치력을 동원해도 해결이 힘든 상황에서도 음악은 늘 해결의 실마리가 되어주었고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주는 구심점이 되어주었다. 단원들 각각의 목소리가 모여 아름다운 선율과 하모니를 이루는 합창은 이런 매력을 한층 더해준다. 자신의 음악인생 전부를 합창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 바쳐온 이병직 지휘자는 한국고유의 노랫말과 선율을 합창으로 엮어 한국을 알리고, 나아가 아리랑의 정신을 알리기 위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그를 만나 아리랑 코러스와 합창의 매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_우호경, 홍진희 기자 수십 명의 목소리 악기가 만나 수천 명의 마음을 움직이는 단 하나의 선율이 되는 합창의 매력 이 지휘자는 성악을 전공했다. 무대에서 관객을 바라보며 주인공이 되는 길만을 꿈꾸며 음악을 전공했지만 지휘를 하시던 은사님의 무대를 본 후로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은사님이신 윤학원 선생님과 지방순회공연을 다니던 중 지휘를 하시던 선생님께서 갑자기 팔이 탈골되어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엄청난 고통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이를 악물고 참으며 한 손으로 지휘를 마치시는 선생님의 모습과 그 모습을 지켜보는 단원들이 눈빛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치는 모습을 보고 말로는 표현 못할 감동과 단원들과 의 일체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무대에서 공동작업으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 선보이는 단원들과 그를 하나로 묶는 구심점 역할을 해 주는 지휘자의 역할에 매료된 그 날 이후, 이 지휘자는 한 치의 흔들림없이 지휘자의 자리를 걸어오고 있다. 합창의 가장 큰 매력은 양보와 배려라고 말하는 이 지휘자는 저마다 다른 목소리로 최상의 선율과 화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늘 피나는 노력과 시도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런 노력 덕분에 그가 맡아온 합창단들은 모두 어느 합창단에서도 보기 힘든 방대하고 다양한 레퍼토리를 성공적으로 소화해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아마추어 합창단을 지휘했던 시절 수원시 어머니합창단과 함께 대통령상을 수상하였고 미국, 캐나다, 일본, 독일, 중국 등 권위 있는 세계합창대회 참가와 순회연주 등을 통해 곡 해석과 지휘능력을 일찌감치 인정받았다. 합창음악만을 고집하며 세계 합창음악 조류와 한국 합창에 대한 세계화 연구에 매진해온 이병직 지휘자는 그만의 독특한 곡 해석과 무대 구성력으로 인칸토레스 남성 합창단·선명회 어린이 합창단을 이끌고 세계무대에서 현제 매스컴의 극찬을 받기도 하는 등 한국 합창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우리만의 역사와 정신을 담은 노래로 소통과 공감을 넘어 감동의 세계로 이끌다 이병직 지휘자는 2014년 그의 합창단 지휘인생에 또 하나의 큰 도전을 시작하였다. 바로 유네스코에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자랑 “아리랑”의 세계보급화와 브랜드화를 위해 한국예술비평가 탁계석 회장과 함께 아리랑코러스를 창단한 것이다. 한국 최초의 가곡 작곡집과 민요 합창음악을 편곡 연주했던 월북 작곡가 ‘안기영 발굴 음악회’등을 주관할 정도로 외국 곡만을 합창곡으로 쓰는 것이 아닌 우리 음악, 우리의 노랫말을 합창으로 표현하는 데에 관심이 많았던 이 지휘자의 그간 노력이 아리랑코러스 창단으로 발현된 것이다. 예술이 사회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언제나 함께하고 어루만져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 바로 아리랑 코러스 창단의 목적이자 지향점이다. 아리랑 코러스는 아리랑을 비롯하여, 한국의 아름다운 가곡들과 성가를 합창곡으로 재조명해 되살려내는 한편, 새로운 합창곡들을 선보여 우리의 글과 선율의 매력을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창단연주회에서 선보였던 <조국이여, 박지훈 곡>를 통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위로하며 일제강점의 아픔과 독립투쟁 정신을 되새기며 한국의 근대사를 돌아보고 한국의 미래를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를 제시하는 역할을, 2017년 2회 정기연주회에서는 <독도 환상곡, 박창민 곡>으로 독도에 관한 우리의 자부심을 표현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구나 공감하는 아픔과 기쁨을 함께하기 위한 곡 위주로 레퍼토리를 구성해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바로 우리 전통문화를 현대화하여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고 위로를 건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아리랑 코러스는 단순히 합창을 좋아해서 모인 사람들이 아닌 우리 가락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며, 민요를 민요답게, 아리랑을 포함한 우리 민요를 가장 잘 부르는 합창단으로 성장하기 위해 오늘도 이병직 지휘자의 지도아래 모든 단원들이 한마음으로 일구어 나가고 있다. 정기 연주회 외에도 예술의 전당에서 매달 열리는 “문화가 있는 날”에 합창 연주 기획 최초로 아리랑코러스 서울팀이 초대 선정되기도 했고 “서울 코랄 페스티벌”에 출연해 짧은 합창단 역사에도 불구, 높은 기량을 인정받았다. 또한 매년 여주 소망교도소 재소자들을 위한 연주활동도 활발히 펼쳐 아픔을 치유하고 희망을 전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제 아리랑코러스는 서울을 넘어 대구에 제 1호 지부가 탄생하였고 곧 제2호 창원지부가 2월에 탄생할 것이며 전주, 제주, 인천 뿐만 아니라 베를린,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 해외에서도 관심을 갖고 연습실을 방문하며 관심을 보여 전 세계로 영역을 확장하려고 하고 있다. 이에 이병직 지휘자는 우리 가락과 우리 노랫말의 소중함을 모르고 지내왔던 지난 날들을 반성하며 이제부터라도 우리 노래가 합창으로 더 많이 불리고 사랑받도록 좋은 노래를 더 많이 계발하고 보급하기 위하여 바쁜 걸음을 더욱 재촉하고 있다. 음악만큼 고전을 사랑하는 영역도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전도 새로운 시도가 병행되어야 그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하는 법. 아리랑코러스의 한국적인 합창곡에 대한 시도가 대한민국 고전음악계의 신선한 자극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하여 K-pop의 한류붐처럼, 세계 합창계에서 아리랑 코러스가 하나의 브랜드와 음악계의 거대한 흐름으로 발돋움하게 될 그날을 기대하며 한민족의 혼을 담아낸 이병직 지휘자의 음악활동을 주간인물이 언제나 응원한다. •한국교회음악협회 이사장 •한국합창총연합회 부이사장 •한세대 대학원 지휘과 지도교수 •The voice chamber choir & Arirang Chorus 총감독 겸 상임지휘자 •한국장로성가단 상임지휘자 •한마음코러스 상임지휘자 •서울 남현교회 할렐루야찬양대 지휘자 •최근공연 : 2018 새해인사 나눔음악회 [1033]
    • 문화
    2018-01-17
  • 춤을 사랑하는 마음-그 마음 하나로 우리 전통문화 발전에 모든 열정을 쏟고 싶다
    흔히들 전통문화의 중요성을 말하고는 있지만 실생활 속에서 그것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특히나 태평무, 한량무같은 전통춤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K-POP이 세계무대에서 하나의 흐름을 선도하고 있지만 정작 그 흥과 끼의 근원인 우리 춤에 대하여 그동안 우리가 너무 무심했던 것은 아닐까. 김 회장은 춤에 입문하게 된 그 순간부터 전통춤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지지 않도록 하는 데에 온 정성을 다하고 있다. 전통문화 보존과 계승을 위해 수십 년간 안간힘을 써온 열정과 노력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_우호경, 홍진희 기자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춤 나의 전부가 되다 흔히 무형문화재 이수자라고 하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수련을 해 온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국가중요무형문화재 92호 태평무 이수자인 김복임 회장은 남다른 경력을 가지고 있다. 유년시절부터 시작한 것도 아니고 관련 전공을 한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항상 가슴속에 흥은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과 가정에 매진하느라 흥과 끼는 잊고 살았다. 운명이었던 걸까. 그의 건강을 염려한 딸이 춤을 배워보라며 등록해준 국립극장에 발을 내딛은 순간부터 그의 삶이 바뀌었다. 우리 소리에 맞춰 춤을 추다보면 세상 시름이 없어지고 그 안에 우리네 인생이 녹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 인생을 다독여준다는 느낌도 들었다. 하면 할수록 더 좋아져 남들보다 몇 배의 열정으로 춤을 배우고 또 배웠다. 그 재능과 열정은 당대 최고의 명인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故 강선영 태평무 보유자의 지도아래 태평무 이수자가 될 수 있었다. 그의 노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2016년 6월에는 “무념무상”이라는 제목으로 고희 기념공연을 열기도 했다. 단순히 지금껏 해왔던 공연만 무대에 올린 것이 아니라 안무가 국수호의 ‘고독’을 편집해 그녀만의 ‘무상’이라는 새로운 작품을 올렸을 만큼 그녀의 춤에 대한 갈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실력있는 예술가들의 도전과 새로움을 담아낼 자리를 지켜나가고 싶다 김 회장은 20여 년 전 국립극장과 첫 인연을 맺은 이후로 단 한 번도 이곳을 떠나지 않은 만큼 국립극장에 대한 애정이 깊다. 국립극장 문화학교라는 이름이 전통예술아카데미로 바뀌고 여러 명의 극장장을 거치는 동안 700여명이 훌쩍 넘었던 규모가 많이 작아진 것이 안타깝다. 우리 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막상 관심을 가지지 않다보니 자연스레 관련 시장이 축소되고 예술가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이다. 예술가들이 사라지면 전통 문화의 명맥은 끊길 수밖에 없다. 수십 년간 실력을 쌓아온 예술가들이 무대에서 마음껏 공연을 하고, 스승과 제자가 한 무대에서 어우러지며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말로만 외치는 전통이 아니라 그야말로 ‘전통이 우리 곁에서 함께 숨 쉴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때문에 그녀의 노력은 무대 위에서 뿐만이 아니라 관련부처 등에 개선해야 할 점을 건의하기도 하고 새로운 공연이나 행사를 기획하는 등 여러 분야에서 계속되고 있다. 열정에는 나이가 없다 커져가는 실버산업 시장에 우리 전통문화가 하나의 대안이 될 거라 확신 김 회장은 올해 10월 31일 “남산골에서 명인과 함께 하다”라는 주제로 제1 회 남산 전통예술아카데미 첫 정기공연을 무사히 끝마쳤다. 전통문화 발전을 위해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하겠다는 의무감과 사명감으로 중장년층과 실버 세대가 중심이 되어 모든 세대가 함께 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다. 그는 예술을 하다보면 늙는 과정이 더뎌지는 것 같다면서 급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 시대에 우리 전통문화가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몇 년 전 일지무용단의 예술총감독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일지무용단은 전통예술아카데미 수강생 중에 재능과 열정을 겸비한 분들이 모여 창단한 무용단이다. 5개월간 열심히 연습한 결과 2015년 천안흥타령춤축제 흥타령부 대상도 수상했고 작년 김 회장의 고희 공연에도 함께 했다. 우리 춤과 음악을 배우면서 직접 긍정적 변화를 경험한 그는 나이 때문에, 사회적 시선 때문에 주저하는 이들에게 그럴수록 더욱 배워야 한다고 얘기한다. 우리 춤과 음악은 그 자체에 삶을 녹여내기 때문에 늦게 시작했더라도 하면 할수록 멋스럽기 때문이다. 춤을 추다보면 마음이 정리되고 그러다 보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에너지가 생긴다. 때문에 몸뿐 아니라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도 더 많은 중장년층, 노년층이 전통예술을 즐기는 취미생활을 시작하기를 적극 권하는 것이다. 앞으로 장년층과 노년층이 전통예술을 더욱 쉽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정기적인 명품공연으로 배움의 기회와 일반 관람객들에게는 전통문화의 매력을 새롭게 느낄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그의 꿈이다. 요즘도 매일 집에서 국립극장까지 오는 차안에서 혼자 우리 소리를 들으며 온전히 춤에 젖는 그 시간이 행복하다는 김복임 회장. 행복해지는 경험을 주변에 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전통을 잘 보존하고 잘 물려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종횡무진하고 있다. 그를 만난 후 그동안 전통은 당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왔지만 노력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치지 않는 그의 열정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주간인물은 전하고 싶다. •전라남도 담양 출생 •조선대학교 가정학과 졸업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전문가 과정 수료 •현 국립극장 전통예술아카데미 회장 •현 일지무용단 예술총감독 •현 남산 전통예술아카데미 이사장 수상 및 경력 •2005년, 2010년 2회 문화관광부 장관상 표창 •2011. 10. 10 한일문화교류대상 예술부상 한국대상 수상 •2013. 06. 12 국가중요무형문화재 123호 영광법성포 단오제 심사위원 •2014. 10 천안흥타령춤축제 심사위원 •2014. 10. 31 전국 안양국악예술대회 민요 심사위원장 •2014. 12 세종문화회관 사장 공로상 •2015. 05. 09 기산국악제전 전국국악경연대회 심사위원 •2015. 09. 06 고양행주 전국국악경연대회 심사위원 •2015. 10. 09 천안 춤축제 흥타령부 대상 수상 •2015. 10. 11 광진구 국악경연대회 심사위원 •2017. 05 .28 영광법성포 단오제 심사위원 •2017. 09. 16 천안흥타령춤축제 심사위원 공연 •2010. 06. 27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명인명무전” 공옥진 선생님과 함께 출연. 한량무 •2011. 08. 20 국립극장 상설무대 “경기민요”공연 •2012. 04 국가중요무형문화재 92호 태평무 강선영 대공연 “불멸의 춤” 태평무 출연 •2012. 09. 06 최선선생님 공연“전북춤 명무전”한량무 특별출연 •2013. 12 삼청각 한량무 특별출연 •2014. 04. 26 경복궁 태평무 공연 •2014. 11 삼청각 한량무 공연 •2015. 11 삼청각 일화당 특별축하공연 한량무 •2016. 06. 01 국립극장 달오름 “무념무상” 개인공연 •2017. 10. 16 삼청각 한량무 공연 •2017. 10. 31 국립극장 하늘극장 “남산골에서 명인과 함께하다” 공연 및 기획연출 - 外 40여회이상 공연 - [1029]
    • 문화
    2017-12-01

포토뉴스 검색결과

  • 이동삼 영화감독 / Jin-E 엔터테인먼트 대표
    대한민국은 국제영화시장에서 대단히 큰 규모를 자랑하는 영화강국이다. 매일같이 새롭고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쏟아지고 있고 영화인들의 활동은 이제 영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만큼 영화인을 꿈꾸는 젊은이들도 많아져 이제 영화시장은 문화의 한 축을 넘어 경제영역의 한 부분을 담당할 만큼 시장 규모가 커졌다. 이렇게 변화의 폭이 큰 분야에서 오랫동안 영화인으로서 외길을 걸어온 이동삼 감독을 만나 그의 영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_우호경, 홍진희 기자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내며 대한민국 영화의 역사와 함께 하다 어린 시절의 이동삼 감독은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같은 사물이라도 빛과 사진을 찍는 사람의 감성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는 사진에 깊이 매료되었다. 부모님을 졸라 사게 된 카메라를 들고 무엇이든 사진에 담아내며 그만의 감성과 감각을 키워나갔다. 그런 청소년기를 거쳐 20대 중반에는 영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지인의 추천으로 영화계에 입문하게 된 후 지금껏 수십 편의 영화에 촬영감독, 수중촬영을 도맡아 하며 영화계에서 입지를 다져왔다. 촬영감독 데뷔작인 ‘자전거를 타고 온 연인’을 통해 1992년 제 16회 황금촬영상 시상식에서 신인촬영상을 수상했고 ‘올가미’로 황금촬영상 금상을 수상하기도 하는 등 데뷔작부터 활동하면서 줄곧 능력을 인정받으며 활약해왔다. 그는 여기에서만 머물지 않고 수중촬영감독으로도 영역을 넓혔다. 멜로, 공포, 스릴러, 액션, 코미디 등 가리지 않고 다양한 촬영을 해오면서 어떤 장르이건 연출로 담아내는 내공을 쌓았다. 그런 내공이 쌓여 지난 2009년 천만이 넘는 흥행을 기록했던 ‘해운대’의 수중촬영감독으로써 그만의 필모그래피를 완성해 온 것이다. 촬영감독으로서 활동뿐만 아니라 한국영상대학교 강사와 영상기술지 편집장, 영화제 심사위원 등도 함께 하면서 영화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을 키워나갔고 이제는 프로듀서로 전향하여 제작사를 설립하고 제작자 겸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1년 그가 기획, 제작한 작품인 ‘마스터클래스의 산책’은 한 곳에 모이기도 힘든 거장 감독들의 단편들을 옴니버스식으로 엮어 만들어 당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었다. 그의 도전은 제작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연출을 도맡기까지 했다. 첫 연출작이 바로 2014년에 개봉한 ‘왓니껴’이다. 이 작품에서 중년이 되어 다시 만난 어린 시절의 친구들과 고향풍경을 통해 잔잔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인물간의 조화로움을 통해 이동삼 감독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다. 사람에 대한 관찰력과 감각이 그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소화해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그만의 따뜻한 감성이 만들어낸 이 영화는 부천 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비전익스프레스 부문에 초청되는 등 영화감독으로서의 이동삼의 능력과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쉬지 않는 작품 활동과 열정으로 영화산업의 新 한류를 주도해 나가다 이 감독은 또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제작, 감독할 시나리오가 곧 탈고 예정이지만 상업적인 흥행에 너무 욕심을 내지는 않으려 하고 있다. 그는 오랜시간 영화계에 몸담으며 갈고 닦은 실력과 경험을 그가 만드는 영화에 오롯이 훌륭한 작품으로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화 한편이 만들어지기 위한 다양한 역할들을 두루 경험하며 상황에 따라 그에 맞는 책무를 다하기 위해 늘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이 감독은 촬영감독을 할 때는 연출자의 의도를 더욱 극대화 시키기 위해 늘 연구했고 연출을 할 때는 스텝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창의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또 제작을 할 때는 원활한 현장작업환경 조성을 위해 힘쓰는 등 1인 다 역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다양한 경험이 그의 작품에서 창의적인 표현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감독은 스텝들의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이를 모두 배려하려다 보면 연출자로서는 손해를 볼 때가 많지만 현장에서 아무리 힘들었어도 시사회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는 것을 보는 순간 힘든 기억이 모두 즐거운 추억이 된다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 감독은 또한 중국에서 5년간 영화 드라마 감독/피디 장기 계약을 통해 국내에서만이 아니라 중국에서도 활동을 활발히 이어나가고 있다. 중국에서 제작발표회를 성황리에 마치는 등 경험과 노하우를 중국에서 마음껏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 영상산업 분야에는 실력있는 후배들이 있어 좋은 자극이 되기도 하지만 외국과 달리 은퇴시기가 너무 빨라져 선배들의 원숙한 실력과 기술력을 다 보여주지 못하고 영화계에서 사라지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30대 중반에 헤드스텝이 되어 10여년 정도 활동하고 나면 도태되어 버리는 것이 지금 현실이다. 이 감독은 일찌감치 프로듀서로 전향해 영화를 기획,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오랜시간 경험을 쌓아온 이들이 실력발휘를 할 수 있게끔 영상산업의 다양성과 시장의 크기가 더욱 커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감독이 중국으로 발을 넓힌 것도 이런 문제 때문이다. 중국으로 진출해 우리 베테랑 스텝들의 기술력과 연출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중간다리 역할을 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영화는 문화의 종합예술이다. 시나리오의 창의성과 뛰어난 작품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영상기술과 최첨단 촬영기법 등의 기술력과 수십 명의 스텝들이 모여 만드는 공동의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동삼 감독은 이러한 영화의 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오늘도 한 편의 영화를 위해 온 마음과 열정을 다 바치고 있다. 10여 년간 교수로서 후학양성 활동을 내려놓지 않은 것도 바로 이런 영화의 매력을 알아주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앞으로 한국 영화 산업이 양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더욱 풍성해질 수 있도록 연출자로서, 제작자로서 열정을 쏟고 있는 이동삼 감독의 다양한 활동을 기대해본다. •한국영상대학교 / 대진대학교 졸업 •前 한국영화 촬영감독협회 감사 •前 청풍 영상위원회 운영위원 겸 이사 •前 제천 영상미디어센터 운영 부위원장 •現 진이(Jin-E)엔터테인먼트 영화사 대표 •現 한국영상위원회 이사 •現 서울영상위원회 이사 •現 중국 해피 ERA 미디어 감독 / 피디 •現 중국 곤지 픽처스 이사 / 감독 / 피디 수상 •1992 제 16회 황금촬영상 시상식 신인촬영상 •1994 제 18회 황금촬영상 시상식 동상 •1998 제 21회 황금활영상 시상식 금상 [1035]
    • 문화
    2018-02-26
  • 김영일 K디자인 회장, 경기도자전거연맹 회장
    다양한 영역에서 꾸준히 봉사의 삶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자신의 숙명처럼 여기고 그 분야에 종사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하지만 어려운 이들 곁에서만 아픔을 함께 하기에는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려운 난관에 닥칠 때가 많다. 때문에 K디자인대표 김영일 회장은 평생 사업 외에는 봉사에 전념하며 살아왔고 직접 겪고 느낀 현실적 어려움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판단, 그의 삶과 생각을 이제 온전히 정치에 담아 제대로 된 봉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김영일 회장을 만나 그의 봉사의 삶을 조명해 보았다. _우호경, 홍진희 기자 장애인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교육, 문화 활동 고향은 전북 장수이지만 수원 유신고등학교를 진학한 이후 지금껏 살아온 수원이 김 회장에게는 더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제 2의 고향이다. 고등학생 시절 7세 미만의 아이들이 모여 있는 유아원(수원 경동원)에서 크리스마스 때 인형극 봉사를 하며 느꼈던 행복했던 기억이 지금처럼 봉사하는 삶을 살게 된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역사회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서장대로터리 클럽 초대·2대 회장을 맡아 다양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봉사에 대한 열정은 밝은사회 국제본부 수원클럽 회장을 맡으면서 계속 이어져 수원 새벽빛 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장애인 야간학교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새벽빛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성인장애인들이 생활하고 있는 곳인데 그들은 어렸을 때 열악한 장애인 교육 환경으로 인해 글도 깨우치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김 회장은 이곳에서 후원회장을 10년 이상 맡으며 그들을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컴퓨터, 시, 문학, 사진, 요리, 연극무대도 꾸미는 등 기초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했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덕분에 이 곳의 장애인들은 교육과 문화 다양한 취미 활동 및 현장체험학습을 통해 사회성을 기르고, 나아가 검정고시에도 도전하며 해마다 훌륭한 학생을 배출하고 졸업식을 통해 개인의 자부심을 키워 사회의 일원으로 적응 하는데에 있어 기틀을 마련해준다. 후임 후원회장을 맡아서 해준다는 사람이 없어 부족하지만 장기집권을 하고 있다며 부끄러워했고 김 회장의 노력과 헌신이 아니었다면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지금처럼 운영될 수 있었을까.교육혜택은 물론 문화혜택도 거의 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경기도장애인극단인 “난다”의 후원회장까지 맡아 활동하고 있는 김 회장을 보며 사회의 그 어떤 작은 변화라도 노력없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장애인들이 직접 배우가 되고 주체가 되는 “난다”의 공연은 해마다 열려 방송에도 여러 번 소개되었을 정도이다. 일반인들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 만들어내는 연극공연이지만 관객이 없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웠던 김 회장은 직접 수원 인근에 위치한 학교, 아파트까지 찾아 다니며 학생들에게 연극을 보러오면봉사점수를 주겠다 호소하고 다녔지만 장애인 극단이란 이유로 관객을 모으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방송을 통해 알려져 공주대학교 재활학과에서 극단 “난다”를 초청해주어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곳에서 객석을 가득 메운 대학생 관객들이 관람 했는데 걷는것 조차도 불편하한 장애인 배우들이 정말 무대에서 열정적으로 공연하는 것을 보고 배우도 울고 학생들도 함께 눈시울을 붉히는 것을 보며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장애인 학생들과 함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5km를 완주해낸 것도 장애인학생들에게 자신감과 완주의 경험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에 비해 많은 노력과 반복된 훈련이 필요하지만 기회를 주면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잘 해내는 학생들을 보며 더욱 봉사에 대한 열정을 태울 수 있었다. 진정한 기부문화는 가슴으로 함께하는 따뜻한 마음 김 회장의 봉사활동은 장애인학생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천주교 신자이면서 이미 부부가 가톨릭 대학 병원에 장기 기증을 했고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화성 사강보금자리라는 양로원에 매달 봉사하는 것도 쉬지 않고 하고 있다. 보금자리 원장 수녀님의 요청으로 어르신들을 위한 팔순잔치를밝은사회 국제본부 수원클럽 회장 재직때해드리기도 했는데 친 자식도 아닌 회원들에게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기뻐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며 그날을 회상했다 김 회장은 잔치를 위해 정말 오랜만에 입으신 한복을 벗으려고 하지 않는 어르신들을 보며 얼마나 입고 싶은 한복이면 더 오래 입고 싶겠냐며 원장 수녀님께 2-3일 더 입게 하시라고 했고 직접 한복을 해드리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김 회장은 지금 우리나라가 살기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봉사활동이나 기부를 하는 사람은 턱없이 적다며 안타까워했다. 밝은사회 국제본부 수원클럽에서는 정기적으로 노숙자와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급식 봉사활동 중에 할머니 한 분이 급식 비용을 국가에서 지원 해 주느냐는 질문에 회원들이 십시일반 충당한다는 말에 주머니 속에서 음식 준비에 보태라며 5만원을 주고 가시는 모습이 본인도 어렵지만 기부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평소 생활 철학인 “받는 것 보다 주는 것이 행복하다.”는 평범한 말이지만 어려운 일을 몸소 실천해 내는 삶을 살고 있다. 조금만 나눠줄 것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눠주는 그답게 그의 아내가 일하는 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의 3개월 시한부 20대 환자가 연인과 결혼식을 올리는 데에 도움을 요청 했을 때에도 망설임 없이 힘을 보태며 많은 이들의 슬픔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일에 열정을 다하고 있다. 김 회장은 다문화 가족도 우리 대한민국 국민으로 당당히 살 수 있도록 경기도 50만 다문화인을 위해 경기도다문화사랑연합회 홍보위원장을 맡아 생활습관과 문화가 달라 어려움을 격고있는 다문화가족 지원을 위해 많은 활동도 하면서 장학사업 재능기부 등 다양한 분야의 활동을 통해 그의 가치관을 공유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또한 130만 자전거 동호인이 활동하고 있고 지난해 7월 엘리트 싸이클연맹과 생활체육자전거연합회의 통합된 “경기도자전거연맹”초대회장으로 취임 후 선수 및 임원들과 각종대회 및 행사 참여로 희노애락을 함께한 김회장의 열정으로 엘리트선수 및 생활체육선수들의 활략에 전국체전 종합우승 전국 생활체전종합우승이라는 좋은 결실을 맺었다. 김 회장은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의 소원이 남북통일을 갈망하지만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수년간 준비하고 피나는 노력을 한 대표 선수들이 남북한 대표가 태극기 대신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하는 것도 좋지만 남북 단일팀 출전 이라는 명분으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해 접어야 하는 우리 선수들이 체육 가맹단체장으로서 너무도 가슴이 아프고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 행여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는 듯해 못내 아쉬워 했다. 국민에게 봉사를 위해 정치에 도전 김 회장은 지난 총선에서 국회의원 예비후보로서 선거에 도전하였다. 비록 공천을 받지는 못해 선거에 출마하지는 못했지만 도전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그가 정치를 결심하게 된 것도 바로 봉사 때문이다. 봉사를 하면서 느꼈던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조금씩이라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치란 국민들이 두다리 쭉 펴고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과거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저소득층 및 장애인, 다문화가족, 새터민 들의 처우개선이나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와 지원책 등은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데에 힘을 보태려고 한다. 그래서 다음 번 다가오는 총선에 도전하여 사회복지 분야의 제도마련과 정부정책마련에 기여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한 예로 지금 학생들이 하고 있는 봉사점수가 형식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을 개선하고 싶다. 부모님의 인솔 하에 봉사활동을 하러 와서 그저 점수만 받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생활 속에 봉사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릴 때의 경험과 행복했던 기억이 평생을 지배하는 것처럼 봉사현장에서 직접 보람을 느끼도록 해야 이들이 자라서 다른 이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김 회장은 격과 스펙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서열화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봉사활동 경험이 진학과 취업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게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진정한 미래 자산이다. 제대로 된 봉사,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오늘도 치열하게 봉사의 현장에서 어려운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나는 꽃이예요/잎은 나비에게 주고/꿀은 솔방 벌에게 주고/향기는 바람에게 보냈어요/그래도 난 잃은 건 없어요/더 많은 열매로 태어날 거예요/가을이 오면, 김용석 <가을이 오면> 이 시처럼 김 회장의 삶과 철학을 잘 나타내는 것이 있을까.평소 김 회장이 가장 좋아하는 이 시처럼 열심히 베풀고 나누다보면 그것이 커다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보답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제대로 된 봉사활동을 경험하고 봉사와 기부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사회가 되는 희망의 열매가 맺히기를 꿈꾸며 오늘도 김영일 회장은 열심히 달리고 있다. 김 회장의 생각과 꿈이 우리나라 복지정책에 충실히 반영되기를 기대하며 김영일 회장의 활기찬 행보를 주간인물이 응원한다. ◆김영일 회장 프로필 수원 유신고등학교 졸업 (6회) 경희대학교 / 경희대학교행정대학원 석사졸업 인천일보 사회부 기자 수원서장대로타리클럽회장 밝은사회국제본부수원클럽회장 수원새벽빛장애인자립센터 후원회장 경기도장애인극단 "난다" 후원회장 경기도다문화사랑연합회 홍보위원장 자유한국당 중앙당부대변인 경기도자전거연맹 회장 K-디자인 대표 [1034]
    • 정치
    2018-01-30
  • 이병직 아리랑 코러스 감독 겸 상임지휘자
    음악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몸이 아플 때에도, 마음이 힘들 때에도, 심지어 국가 간의 분쟁이나 갈등으로 외교력과 정치력을 동원해도 해결이 힘든 상황에서도 음악은 늘 해결의 실마리가 되어주었고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주는 구심점이 되어주었다. 단원들 각각의 목소리가 모여 아름다운 선율과 하모니를 이루는 합창은 이런 매력을 한층 더해준다. 자신의 음악인생 전부를 합창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 바쳐온 이병직 지휘자는 한국고유의 노랫말과 선율을 합창으로 엮어 한국을 알리고, 나아가 아리랑의 정신을 알리기 위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그를 만나 아리랑 코러스와 합창의 매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_우호경, 홍진희 기자 수십 명의 목소리 악기가 만나 수천 명의 마음을 움직이는 단 하나의 선율이 되는 합창의 매력 이 지휘자는 성악을 전공했다. 무대에서 관객을 바라보며 주인공이 되는 길만을 꿈꾸며 음악을 전공했지만 지휘를 하시던 은사님의 무대를 본 후로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은사님이신 윤학원 선생님과 지방순회공연을 다니던 중 지휘를 하시던 선생님께서 갑자기 팔이 탈골되어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엄청난 고통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이를 악물고 참으며 한 손으로 지휘를 마치시는 선생님의 모습과 그 모습을 지켜보는 단원들이 눈빛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치는 모습을 보고 말로는 표현 못할 감동과 단원들과 의 일체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무대에서 공동작업으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 선보이는 단원들과 그를 하나로 묶는 구심점 역할을 해 주는 지휘자의 역할에 매료된 그 날 이후, 이 지휘자는 한 치의 흔들림없이 지휘자의 자리를 걸어오고 있다. 합창의 가장 큰 매력은 양보와 배려라고 말하는 이 지휘자는 저마다 다른 목소리로 최상의 선율과 화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늘 피나는 노력과 시도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런 노력 덕분에 그가 맡아온 합창단들은 모두 어느 합창단에서도 보기 힘든 방대하고 다양한 레퍼토리를 성공적으로 소화해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아마추어 합창단을 지휘했던 시절 수원시 어머니합창단과 함께 대통령상을 수상하였고 미국, 캐나다, 일본, 독일, 중국 등 권위 있는 세계합창대회 참가와 순회연주 등을 통해 곡 해석과 지휘능력을 일찌감치 인정받았다. 합창음악만을 고집하며 세계 합창음악 조류와 한국 합창에 대한 세계화 연구에 매진해온 이병직 지휘자는 그만의 독특한 곡 해석과 무대 구성력으로 인칸토레스 남성 합창단·선명회 어린이 합창단을 이끌고 세계무대에서 현제 매스컴의 극찬을 받기도 하는 등 한국 합창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우리만의 역사와 정신을 담은 노래로 소통과 공감을 넘어 감동의 세계로 이끌다 이병직 지휘자는 2014년 그의 합창단 지휘인생에 또 하나의 큰 도전을 시작하였다. 바로 유네스코에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자랑 “아리랑”의 세계보급화와 브랜드화를 위해 한국예술비평가 탁계석 회장과 함께 아리랑코러스를 창단한 것이다. 한국 최초의 가곡 작곡집과 민요 합창음악을 편곡 연주했던 월북 작곡가 ‘안기영 발굴 음악회’등을 주관할 정도로 외국 곡만을 합창곡으로 쓰는 것이 아닌 우리 음악, 우리의 노랫말을 합창으로 표현하는 데에 관심이 많았던 이 지휘자의 그간 노력이 아리랑코러스 창단으로 발현된 것이다. 예술이 사회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언제나 함께하고 어루만져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 바로 아리랑 코러스 창단의 목적이자 지향점이다. 아리랑 코러스는 아리랑을 비롯하여, 한국의 아름다운 가곡들과 성가를 합창곡으로 재조명해 되살려내는 한편, 새로운 합창곡들을 선보여 우리의 글과 선율의 매력을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창단연주회에서 선보였던 <조국이여, 박지훈 곡>를 통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위로하며 일제강점의 아픔과 독립투쟁 정신을 되새기며 한국의 근대사를 돌아보고 한국의 미래를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를 제시하는 역할을, 2017년 2회 정기연주회에서는 <독도 환상곡, 박창민 곡>으로 독도에 관한 우리의 자부심을 표현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구나 공감하는 아픔과 기쁨을 함께하기 위한 곡 위주로 레퍼토리를 구성해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바로 우리 전통문화를 현대화하여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고 위로를 건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아리랑 코러스는 단순히 합창을 좋아해서 모인 사람들이 아닌 우리 가락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며, 민요를 민요답게, 아리랑을 포함한 우리 민요를 가장 잘 부르는 합창단으로 성장하기 위해 오늘도 이병직 지휘자의 지도아래 모든 단원들이 한마음으로 일구어 나가고 있다. 정기 연주회 외에도 예술의 전당에서 매달 열리는 “문화가 있는 날”에 합창 연주 기획 최초로 아리랑코러스 서울팀이 초대 선정되기도 했고 “서울 코랄 페스티벌”에 출연해 짧은 합창단 역사에도 불구, 높은 기량을 인정받았다. 또한 매년 여주 소망교도소 재소자들을 위한 연주활동도 활발히 펼쳐 아픔을 치유하고 희망을 전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제 아리랑코러스는 서울을 넘어 대구에 제 1호 지부가 탄생하였고 곧 제2호 창원지부가 2월에 탄생할 것이며 전주, 제주, 인천 뿐만 아니라 베를린,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 해외에서도 관심을 갖고 연습실을 방문하며 관심을 보여 전 세계로 영역을 확장하려고 하고 있다. 이에 이병직 지휘자는 우리 가락과 우리 노랫말의 소중함을 모르고 지내왔던 지난 날들을 반성하며 이제부터라도 우리 노래가 합창으로 더 많이 불리고 사랑받도록 좋은 노래를 더 많이 계발하고 보급하기 위하여 바쁜 걸음을 더욱 재촉하고 있다. 음악만큼 고전을 사랑하는 영역도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전도 새로운 시도가 병행되어야 그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하는 법. 아리랑코러스의 한국적인 합창곡에 대한 시도가 대한민국 고전음악계의 신선한 자극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하여 K-pop의 한류붐처럼, 세계 합창계에서 아리랑 코러스가 하나의 브랜드와 음악계의 거대한 흐름으로 발돋움하게 될 그날을 기대하며 한민족의 혼을 담아낸 이병직 지휘자의 음악활동을 주간인물이 언제나 응원한다. •한국교회음악협회 이사장 •한국합창총연합회 부이사장 •한세대 대학원 지휘과 지도교수 •The voice chamber choir & Arirang Chorus 총감독 겸 상임지휘자 •한국장로성가단 상임지휘자 •한마음코러스 상임지휘자 •서울 남현교회 할렐루야찬양대 지휘자 •최근공연 : 2018 새해인사 나눔음악회 [1033]
    • 문화
    2018-01-17
  • 춤을 사랑하는 마음-그 마음 하나로 우리 전통문화 발전에 모든 열정을 쏟고 싶다
    흔히들 전통문화의 중요성을 말하고는 있지만 실생활 속에서 그것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특히나 태평무, 한량무같은 전통춤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K-POP이 세계무대에서 하나의 흐름을 선도하고 있지만 정작 그 흥과 끼의 근원인 우리 춤에 대하여 그동안 우리가 너무 무심했던 것은 아닐까. 김 회장은 춤에 입문하게 된 그 순간부터 전통춤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지지 않도록 하는 데에 온 정성을 다하고 있다. 전통문화 보존과 계승을 위해 수십 년간 안간힘을 써온 열정과 노력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_우호경, 홍진희 기자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춤 나의 전부가 되다 흔히 무형문화재 이수자라고 하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수련을 해 온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국가중요무형문화재 92호 태평무 이수자인 김복임 회장은 남다른 경력을 가지고 있다. 유년시절부터 시작한 것도 아니고 관련 전공을 한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항상 가슴속에 흥은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과 가정에 매진하느라 흥과 끼는 잊고 살았다. 운명이었던 걸까. 그의 건강을 염려한 딸이 춤을 배워보라며 등록해준 국립극장에 발을 내딛은 순간부터 그의 삶이 바뀌었다. 우리 소리에 맞춰 춤을 추다보면 세상 시름이 없어지고 그 안에 우리네 인생이 녹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 인생을 다독여준다는 느낌도 들었다. 하면 할수록 더 좋아져 남들보다 몇 배의 열정으로 춤을 배우고 또 배웠다. 그 재능과 열정은 당대 최고의 명인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故 강선영 태평무 보유자의 지도아래 태평무 이수자가 될 수 있었다. 그의 노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2016년 6월에는 “무념무상”이라는 제목으로 고희 기념공연을 열기도 했다. 단순히 지금껏 해왔던 공연만 무대에 올린 것이 아니라 안무가 국수호의 ‘고독’을 편집해 그녀만의 ‘무상’이라는 새로운 작품을 올렸을 만큼 그녀의 춤에 대한 갈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실력있는 예술가들의 도전과 새로움을 담아낼 자리를 지켜나가고 싶다 김 회장은 20여 년 전 국립극장과 첫 인연을 맺은 이후로 단 한 번도 이곳을 떠나지 않은 만큼 국립극장에 대한 애정이 깊다. 국립극장 문화학교라는 이름이 전통예술아카데미로 바뀌고 여러 명의 극장장을 거치는 동안 700여명이 훌쩍 넘었던 규모가 많이 작아진 것이 안타깝다. 우리 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막상 관심을 가지지 않다보니 자연스레 관련 시장이 축소되고 예술가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이다. 예술가들이 사라지면 전통 문화의 명맥은 끊길 수밖에 없다. 수십 년간 실력을 쌓아온 예술가들이 무대에서 마음껏 공연을 하고, 스승과 제자가 한 무대에서 어우러지며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말로만 외치는 전통이 아니라 그야말로 ‘전통이 우리 곁에서 함께 숨 쉴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때문에 그녀의 노력은 무대 위에서 뿐만이 아니라 관련부처 등에 개선해야 할 점을 건의하기도 하고 새로운 공연이나 행사를 기획하는 등 여러 분야에서 계속되고 있다. 열정에는 나이가 없다 커져가는 실버산업 시장에 우리 전통문화가 하나의 대안이 될 거라 확신 김 회장은 올해 10월 31일 “남산골에서 명인과 함께 하다”라는 주제로 제1 회 남산 전통예술아카데미 첫 정기공연을 무사히 끝마쳤다. 전통문화 발전을 위해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하겠다는 의무감과 사명감으로 중장년층과 실버 세대가 중심이 되어 모든 세대가 함께 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다. 그는 예술을 하다보면 늙는 과정이 더뎌지는 것 같다면서 급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 시대에 우리 전통문화가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몇 년 전 일지무용단의 예술총감독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일지무용단은 전통예술아카데미 수강생 중에 재능과 열정을 겸비한 분들이 모여 창단한 무용단이다. 5개월간 열심히 연습한 결과 2015년 천안흥타령춤축제 흥타령부 대상도 수상했고 작년 김 회장의 고희 공연에도 함께 했다. 우리 춤과 음악을 배우면서 직접 긍정적 변화를 경험한 그는 나이 때문에, 사회적 시선 때문에 주저하는 이들에게 그럴수록 더욱 배워야 한다고 얘기한다. 우리 춤과 음악은 그 자체에 삶을 녹여내기 때문에 늦게 시작했더라도 하면 할수록 멋스럽기 때문이다. 춤을 추다보면 마음이 정리되고 그러다 보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에너지가 생긴다. 때문에 몸뿐 아니라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도 더 많은 중장년층, 노년층이 전통예술을 즐기는 취미생활을 시작하기를 적극 권하는 것이다. 앞으로 장년층과 노년층이 전통예술을 더욱 쉽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정기적인 명품공연으로 배움의 기회와 일반 관람객들에게는 전통문화의 매력을 새롭게 느낄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그의 꿈이다. 요즘도 매일 집에서 국립극장까지 오는 차안에서 혼자 우리 소리를 들으며 온전히 춤에 젖는 그 시간이 행복하다는 김복임 회장. 행복해지는 경험을 주변에 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전통을 잘 보존하고 잘 물려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종횡무진하고 있다. 그를 만난 후 그동안 전통은 당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왔지만 노력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치지 않는 그의 열정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주간인물은 전하고 싶다. •전라남도 담양 출생 •조선대학교 가정학과 졸업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전문가 과정 수료 •현 국립극장 전통예술아카데미 회장 •현 일지무용단 예술총감독 •현 남산 전통예술아카데미 이사장 수상 및 경력 •2005년, 2010년 2회 문화관광부 장관상 표창 •2011. 10. 10 한일문화교류대상 예술부상 한국대상 수상 •2013. 06. 12 국가중요무형문화재 123호 영광법성포 단오제 심사위원 •2014. 10 천안흥타령춤축제 심사위원 •2014. 10. 31 전국 안양국악예술대회 민요 심사위원장 •2014. 12 세종문화회관 사장 공로상 •2015. 05. 09 기산국악제전 전국국악경연대회 심사위원 •2015. 09. 06 고양행주 전국국악경연대회 심사위원 •2015. 10. 09 천안 춤축제 흥타령부 대상 수상 •2015. 10. 11 광진구 국악경연대회 심사위원 •2017. 05 .28 영광법성포 단오제 심사위원 •2017. 09. 16 천안흥타령춤축제 심사위원 공연 •2010. 06. 27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명인명무전” 공옥진 선생님과 함께 출연. 한량무 •2011. 08. 20 국립극장 상설무대 “경기민요”공연 •2012. 04 국가중요무형문화재 92호 태평무 강선영 대공연 “불멸의 춤” 태평무 출연 •2012. 09. 06 최선선생님 공연“전북춤 명무전”한량무 특별출연 •2013. 12 삼청각 한량무 특별출연 •2014. 04. 26 경복궁 태평무 공연 •2014. 11 삼청각 한량무 공연 •2015. 11 삼청각 일화당 특별축하공연 한량무 •2016. 06. 01 국립극장 달오름 “무념무상” 개인공연 •2017. 10. 16 삼청각 한량무 공연 •2017. 10. 31 국립극장 하늘극장 “남산골에서 명인과 함께하다” 공연 및 기획연출 - 外 40여회이상 공연 - [1029]
    • 문화
    201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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